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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브릿지>는 불행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남녀가 서로의 짝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난 아예 불행 자체니까요”라고 말하는 창녀 아델은 난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자신은 ‘역’과 같은 존재다.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왔지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신념으로 행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가보가 찾아온다.
사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새로운 행복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창녀 아델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공연을 가는 곳마다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녀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나눈 뒤 물건을 사러간 여자는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이제 둘 사이에는 행복의 절정보다는 ‘하강’만이 남았기 때문이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 <걸 온 더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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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인간 군상을 그린 <매그놀리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퀴즈쇼다. 영화 시작과 함께 던져지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들. 그린 베리 힐의 한 선량한 약사가 강도 셋에 피살됐는데, 범인들 이름이 그린, 베리, 힐이더라. 헬기에서 떨어져 죽은 다이버와 그를 떨어뜨린 조종사가, 사건 며칠 전 카지노 블랙잭에서 다퉜다더라. 옥상에서 몸을 날린 꼬마가 부부싸움중이던 부모의 총기 오발로 추락중에 즉사했는데, 그 총은 부모의 싸움에 넌더리난 꼬마가 아무나 죽어버리라는 심정으로 장전했다더라. <매그놀리아>는 우연치곤 기막히게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인 상황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걸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하는 물음과 함께. 아홉이나 되는 주인공들에 휩쓸리다 보면, 그 해답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큰 축은, 죽어가는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자 비로소 그들의 이기심으로 가족들이
기묘한 우연의 희극, 엇갈린 인연의 비극, <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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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사 ‘최가박당’을 이끄는 대표적인 감독 왕정이 주성치와의 콤비를 통해 코믹물을 주도했다면, 유위강과 정이건의 만남은 최가박당의 액션과 무협을 이끌어왔다. <고혹자>시리즈 이후 둘의 만남은 하나의 공식이 되었고, 빈번히 여자 파트너만을 바꾸며 정이건은 그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아마도 정이건은 주윤발이 떠난 90년대 홍콩영화계를 채우는 최고의 액션스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부여된 임무는 카레이서. 그런 점에서 <극속전설>은 유덕화와 양영기가 주연한 <열화전차>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내용상으로도 도시를 질주할 수밖에 없는 홍콩의 청춘군상을 장르적 스타일로 소화해낸 <열화전차>의 기본적인 설정들이 고스란히 차용됐다. 심지어 타이틀 시퀀스에서도 작게 ‘열화전차2’라는 타이틀이 삽입될 정도. 그러나 드라마의 틀은 오히려 무협영화에 가깝다. 강호를 주름잡던 스카이는 새로운 적수를 만나 패배를 맛보고, 전설 속의 아버지를 찾아가 다시 내
유위강과 정이건의 만남, <극속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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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구덩이가 반드시 좋은 함정은 아니다. 전문가일수록 얕은 함정을 판다. 대신 남는 시간은 수많은 유혹의 덫들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데 사용한다. 스릴러물은 특히 그렇다. 계산하지 않고 뭉텅뭉텅 잘라낼 만큼 장면과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미리 캐릭터와 사건과 복선을 배분해서 마름질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를 연결하는 인과 매듭이 뫼비우스 끈처럼 매끈하게 꼬이는 것이다. 스릴러의 장치들을 끌어모았지만 <디펜스>는 이를 솜씨있게 다루는 데는 실패한 영화다.
한때 촉망받는 검사였지만 지금은 별볼일 없는 변호사 신세인 앤드루. 그에게 어느 날 청각장애인인 화가 제인이 찾아온다. 남편 노비의 폭력에 시달리는 제인이 안쓰러운 앤드루는 이혼소송을 맡게 되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문제는 노비가 죽지 않을 경우 이혼이든 위자료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혼전 계약서. 낌새를 눈치챈 남편을 앤드루는 우발적으로 죽이고 서둘러 사건을 은폐하지만 이번엔 제인이 남편살해혐의로 기소된다. 제인을 변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영화, <디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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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스의 후예들이 코미디의 옷을 걸치면 이런 모습일까? 코너와 머피 형제는 도시의 성자를 자처하고 나서 도시의 쓰레기를 제거해나간다. 그들은 총을 든 도시의 십자군이 되어 마피아와 폭력배들을 살해한다. 그리고는 “네 칼은 빛나고, 내 손은 심판을 내린다”로 시작되는 기도문을 외운다. 그렇다고 해서 <분닥 세인트>가 진지하게 선과 악, 살인과 죄의식의 문제 따위를 다루는 건 아니다. 또한 신랄한 살인 장면 묘사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분닥 세인트>는 이런 것들을 반쯤은 농담 혹은 장난으로 그린 코미디영화다.
무엇보다 <분닥 세인트>는 영화광의 영화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낯익다. 도시의 성자를 자처한 머피 형제와 범인들의 뒤를 쫓다 그들에게 동화된 형사라는 주요 인물의 설정에서, 시간의 앞뒤를 뒤섞은 구성, 사운드와 화면의 대위법적 충돌까지 지금껏 익히 봐오던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게 아니라
종잡기 힘든 황당한 설정, <분닥 세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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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코미디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기적 같은 사랑을 늘어놓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왕자님과 슈퍼마켓 점원이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져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결혼’이라는 목표에 골인한다는 것일 게다. 그런 낡아빠진 신데렐라 사랑 타령 가운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비포 선라이즈>를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두 작품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우리, 사랑일까요?>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남녀에 관해 대단히 진실한 접근법을 보여준다.
7년 전, LA발 뉴욕행 비행기에서 올리버(애시튼 커처)는 에밀리(아만다 피트)를 만난다. 이제 막 애인과 깨진 에밀리는 짙은 화장, 검은색 옷차림, 다양한 액세서리들로 치장한 전형적인 펑크족이다. 서른살이 되기 전, 안정된 직업과 가정을 갖는 것이 최대 이상인 올리버에게 건방지면서도 쿨한 에밀리는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도발적인 대시로 인해 둘은 비행기 화장실
사랑과 우정에 관한 진실한 접근법, <우리, 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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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모험담과 동심의 꿈, 여기에 약간의 상처입은 영혼만 덧붙이면 그럭저럭 볼 만한 유년기의 영화가 탄생한다.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냉혹한 세상, 세속에 찌든 어른들, 그 틈바구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희망. <세컨핸드 라이온스> 역시 이러한 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허허실실’ 유년의 기억이다. 이 기억 속에는 자식을 버리는 엄마가 있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혈기왕성한 유사 아버지들이 있다. 영화는 이 유사 아버지들과 소년이 만나 환상적인 과거의 순간들을 나누고 서로에게 지혜를 배우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철없는 엄마에 의해 생면부지 노인 삼촌들에게 맡겨진 월터(할리 조엘 오스먼트). 월터는 엄마로부터 삼촌 집에 머무는 동안 현금이 숨겨진 곳을 찾아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러나 감춰진 과거를 안고 세상에서 고립된 두 노인의 생활방식은 어린 월터에게 낯설기만 하다.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점차 익숙해져가면서 삼촌들의 거칠고
‘허허실실’ 유년의 기억, <세컨핸드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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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시걸. <언더씨즈>가 유일한 흥행작인 쌍팔년도 액션가이. 도시락통 같은 얼굴은 달이 갈수록 부어가고 드럼통 같은 몸은 해가 갈수록 굳어가지만 아랑곳없다. 그는 1년에 2∼3편씩 꼬박꼬박 주연작을 찍으며 비디오 대여점과 케이블TV에서 암약하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그만큼 재미있다. 묵직하고 묵묵한, 중년 취향의 B급 액션. 그게 ‘시걸 스타일’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의 영화 한편으로 왠지 자기 싫은 늦은 밤시간을 즐겁게 때우고 있을 것이다.
<인투 더 썬>은 일본에서 자란 전직 FBI요원 트래비스(스티븐 시걸)가 신진 야쿠자인 ‘쿠로다’(오사와 다카오)파와 한판 붙는 이야기다. 쿠로다는 ‘진기’를 버리고 돈만 좇는, 비열하고 잔혹한 반미치광이로 그려졌다. 이 젊은 야쿠자는 폼새 사납게 중국 조폭과 손잡고 미얀마 마약조직과 직접 거래를 튼다. 3개국이 얽힌 가운데 FBI가 끼어들고 정통 야쿠자 ‘코지로’파가 가세한 와중에, 트래비스는 오
시걸 마음대로, <인투 더 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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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나 사생활로나 잘 팔리는 마술사 지훈(연정훈)은 어느 날, 매니저 동선(하하)이 ‘국산몰카야동’으로 검색한 동영상 중 자신이 찍힌 몰카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문제는 상대 여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훈은 몇통의 전화와 고심 끝에 예전 고등학교에 마술 공연을 갔다가 학교 선생과 같이 잔 일을 기억해낸다. 미술 교사인 희원(박진희)은 성형외과 의사인 선배로부터 프로포즈를 받고 기분이 들떠 있는 상태. 하지만 지훈에게서 몰카 동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겁한다. 두 사람은 어느 모텔에서 이런 짓을 했는지 잡아내기로 하고, 희원의 다이어리에 적힌 기록에 의지해 예전에 함께 투숙했던 모텔들을 수색한다.
몰래카메라 사건에는 해피엔딩이 드물다. 몰카 속의 상대가 부도덕한 관계의 연인이 아니라 해도, 연인이나 부부 관계라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몰카의 유일한 생존자랄까, 몰카로 당당하게 이득을 본 유일한 경우는 파멜라 앤더슨 정도. 여기에 힌트가 있다. 몰카
신파도 부족하고 노출도 부족하다, <연애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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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낯선 길,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연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게 마련이다. 파리에서 알제리까지의 5000km를 자동차와 배와 두 다리에 의지해 가는 <추방된 사람들>의 주인공 남녀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날 불현듯 알제리행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남녀는 이 긴 여정이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지 못했겠지만. 사실, 연인인 자노(로맹 뒤리스)와 나이마(루브나 아자벨)가 무료함을 떨치기 위한 여행의 행선지로 알제리로 잡은 건 뜬금없는 일만은 아니다. 자노의 조부모는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이던 시절 이곳에서 반식민 운동을 펼쳤고, 나이마는 알제리 출신 부모를 두고 있다. 결국 원하지 않더라도 이 여행은 그들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될 게 자명하다.
그러나 이 뿌리찾기는 단지 부모나 조부모를 향한 그것만에 머물지 않는다. 남녀는 스페인의 황량한 한 지방에서 알제리에서 왔다는 소년과
나에게로 가는 길, <추방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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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자축하며 도달불능점의 정복 의지를 다지는 6인 탐험대의 애틋한 분위기에 미스터리의 그림자를 처음 드리우는 건 내부로부터다. 그들 옆, 눈으로 채운 용기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카메라가 그 내부를 투시한다. 끓고 있는 건 얼음덩어리라기보다 섬뜩하게 꿈틀거리는 무엇이다. 첫 번째 암시다. 겉은 차분하고 단단하지만 속은 정복의 욕망으로 끓고 있는 탐험대의 내부에서 뿌리를 키우다가 터져나오고야 말 그 무엇을 은유하는. 문제는 그 정복욕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끔찍한 현실로 귀환할 것이냐에 있다.
<남극일기>는 미스터리 드라마이지만 무보급 행군으로 남극의 도달불능점에 이르려는 지난한 탐험의 형식을 취한다. 우리도 탐험의 끝에 귀환하는 모종의 실체와 마주하기까지 몇 가지 의혹의 관문 혹은 장애물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 크레바스는 크레바스 자체다. 빙하 유동의 속도 차이로 생긴 균열을 가리키는 크레바스는 눈에 덮여 가려진 경우가 많아 대원들을 기습적으로 삼켜버릴
남극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남극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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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형식으로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하는 게 정형시다. 기껏해야 스무자, 스물다섯자에 불과한 오언(五言)절구는 몇개의 낱말로 우주와 인간을 담아낸다. 결구의 짧고 간결한 맺음은 긴 여운을 이끌어내지만 어떻게 보면 느닷없기도 하다. <당시>는 그런 영화다. <당시>를 즐기려면 문자 하나하나에 파묻혀야 하고, 구에서 구로 넘어가는 사다리를 조심스레 타야 한다. 등장인물의 작은 몸짓 하나에 줄거리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꽃 지고 바람 부는 서정성 넘치는 작품이라 넘겨짚으면 안 된다.
자막이나 크레딧 없이 <당시> TV 강연 프로그램 소리를 들려주며 첫장이 열린다. 이윽고 전화벨과 초인종 같은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의 소리들이 화면을 채운다. 카메라는 아파트 복도와 실내 바깥으로 벗어나는 법이 없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피사체에 집중한다. 카메라가 골똘히 잡아내는 건 손을 떠는 한 중년 남자와 춤을 추는 나이든 여자다. 남자의 일상
한없이 느리고 적막한 정형시 같은 영화,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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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벌의 원인이다. 벌은 죄의 결과다. 죄지으면 벌로 다스린다는 것. 국가가 개인에게 부과한 도덕률의 제1원칙이다. <프락치>는 이러한 전제의 일방향성을 문제삼는다. 국가의 죄는 어떻게 물을 수 있나. <프락치>는 자신이 정한 도덕률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가 죄없는 개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제의가 필요했고, 얼마나 많은 희생양들이 필요했느냐고, 국가를 추궁한다. 30대 후반의 기관원 권과 20대 초반의 프락치 희철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기거하는 여관방은 또 다른 감옥이다. <프락치>는 뜨거운 여름 푹푹 찌는 여관방을 실험실 삼아 카메라를 장치하고 국가라는 괴물의 흉포함을 고발한다.
<프락치>는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정체가 드러나 도피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의 관계는 명확한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바퀴벌레를 희롱하거나 묵찌빠를 수행하며 매일을 버티던 이 금
국가라는 괴물의 흉포함을 고발한다, <프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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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은 <스타워즈> 열성팬을 위한 영화다. 최첨단의 특수효과와 화려한 디자인들로 장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스타워즈>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겨난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양한 음조로 변형시켜 되풀이하는 교향곡에 비유한다. <스타워즈>가 루크의 이야기이고, <보이지 않는 위험>은 그의 아버지 아나킨의 이야기이지만 스토리 전개는 거의 비슷하다. 우주에서 위험에 처한 레아, 아미달라는 구원을 요청한다. 타투인 행성에 살고 있던 루크, 아나킨은 제다이의 꿈을 안고 집을 떠난다. 그래서 새로운 장면들이 등장할 때에도 관객들은 <스타워즈> 3부작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무역연합과의 공중전이 벌어질 때는 ‘데스 스타’와의 격전이, 겅건족의 전투에서는 이워크족의 전투가 연상된다. 이야기만이 아니다. 기본의 <스타워즈>
특수효과로 뒤덮은 미국인의 신화, <스타 워즈 1:보이지 않는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