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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만 빼면 원제 그대로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의 옷차림(fashion)이 아니라 수난(Passion)을 다룬 영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수난극은 오직 피 흘리는 피부밖에 걸칠 게 없었던 한 인간의 처절한 패션쇼이기도 하다. 예수는 인류 최악의 고문으로 온몸이 찢어질 때까지 아무 기적도 행하지 못한 채 줄곧 상처투성이 육체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유다가 예수를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 예수는 신의 아들을 자처했다는 불경죄로 공격당하며,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 군중의 압력에 밀려 십자가형을 언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사흘 뒤 부활하더라, 는 줄거리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런 유의 사극엔 으레 따라붙는 내레이션이나 배경 설명이 전무한 <패션…>은 모든 인물과 내러티브를 관객이 다 안다는 전제 아래 출발한다. 관객은 마치 <패션…> 10부작의 최종회를 보듯,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예
철저하고 처절하게 재현해낸 예수의 수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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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남자의 얘기.” 구자홍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마지막 늑대>를 이렇게 요약한다. 딱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하이컨셉이 이 영화에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주인공 최철권(양동근)은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일하다 탈진한 어느 날 선언한다. “오늘부터 나 일 안 해.” 곧이어 강원도 산간오지 무위마을에 도착한 최철권이 보인다. 맑은 공기, 푸른 숲, 청명한 하늘, 무위도식을 위한 최상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수십년간 범죄가 없는 마을, 일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작은 파출소에서 꿈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나 1년 뒤, 범죄율 낮은 파출소를 없앤다는 공문이 내려오면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 일도 안 하기 위해 그는 이제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 없는 범죄도 만들어내야 한다. 나의 평화를 위해 마을의 평화를 흔들어야 하는 아이러니, 거기서 <마지막 늑대>의 코미디가 시작된다.
물론 아이러니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제 맛이다. <마지막
파출소 폐쇄위기에 처한 두 경찰의 악전고투, <마지막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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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100명의 여인들’인 이 영화는 〈8명의 여인들>을 십수배 확대한 유럽영화가 아니라 ‘아메리칸’으로 시작하는 미국영화라는 걸 번역제목으로 친절히 일러주고 있다. 그렇다고 <아메리칸 뷰티>나 <아메리칸 스플렌더> 같은 만만찮은 미국 해부 영화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아메리칸 러브홀릭>은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달콤함에 <아메리칸 파이>의 방정맞음을 한 단계 낮은 수준에서 짬뽕한 섹시 로맨틱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렌디피티>의 운명론적 설정이 신선함보다 억지스러움만 돋보이는 방식으로 덧붙는다. 미술학원에서 쫓겨나고 여자친구에게 퇴짜맞은 샘(채드 도넬라)은 돌연히 나타난 미모의 호프(에린 바틀렛)에 넋을 뺏기는데, 손바닥에 적힌 그녀의 전화번호는 빗물에 씻겨버리고 만다. 동네방네 뒤진 끝에 호프를 찾아내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우울함만 가득하다. 샘은 그녀가 사는 독신녀 아파트를 들락거리며 호프의 미소를 되
<아메리칸 파이>의 아류, <아메리칸 러브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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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이 영화는 삶을 집에 비유하는 영화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케빈 클라인), 그는 살 수 있는 남은 4개월 동안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망가진 가족관계를 돌이킬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과연 집은 완성될 것인가? 무력했던 아버지는 집과 더불어 다시 태어난다.
이야기의 뼈대만으로 짐작이 되듯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는 다소 보수적인 가족 멜로드라마다. 가족의 문제는 가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데서 발생한다. 아버지는 이혼을 했고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은 마약에 찌든 문제아다. 직장에서 밀려나고 시한부 판정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서 아버지의 권위 회복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들도, 헤어진 아내도 잊고 있던 아버지의 넓은 가슴을 그리워하게 된다. 영화의 보수적 태도는 이야기의 밑그림이 되는 선악구도로도 드러난다. 펑크 스타일
보수적인 가족 멜로드라마 속 빛나는 배우들,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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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날아와 언제 자신의 목숨을 끊을지 모르는 저격수의 탄환, 그것만큼 전쟁의 판타지를 박살내는 것도 없다. 하지만 며칠이고 한자리에 매복해 2km 바깥의 표적을 명중시키고야 마는 이들의 초인적 능력에 대한 매혹도 동시에 존재한다. 90년대 초, <플래툰>의 인상적 악역 톰 베린저를 맞아들여 만든 <스나이퍼>는 사실 이 매혹에 기초한 영화였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이라기보다 차라리 심리적 충돌에 가까운 이 살인기계들끼리의 대결은 (아마도 본의 아니게) 심리드라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파나마의 검은 정글에서 드러났던 것은 그들이 맡은 임무의 부도덕성과 미국 정부의 세계적 암약, 그 더러운 실체였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미국의 은밀한 개입주의를 고발하게 된, 93년의 <스나이퍼>는 걸작은 아니지만 쉴새없는 광장공포증으로 아득한 장렬한 소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손가락을 잃고 시력마저 온전치 않아 퇴역했던 파나마의 저격수가 다시
돌아온 해병의 후일담을 위해 준비된 특설 스파링, <스나이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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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의 원형은 <플래시댄스>다. 허니 역의 제시카 알바는 “어린 시절 보았던 <플래시댄스>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고, 이런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 스트리트 보이즈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빌리 우드러프 감독 역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이 될 <허니>의 시나리오를 보고 떠올린 작품이 <플래시댄스>였고, <플래시댄스>처럼 인상 깊은 삽입곡이 만들어지길 원했다. 오마주의 장면도 있다.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즈가 친구와 함께 길거리에서 흑인 소년들이 추는 브레이크 댄스를 보고 감탄했던 것처럼, 제시카 알바도 친구와 함께 힙합 댄스로 신이 올라 있는 거리의 흑인 소년들을 보고 잠시 넋을 놓는다. <허니>와 <플래시댄스>의 ‘운명’은 여기서 상징적으로 갈린다.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에서 <문워커>를 선보이기 전, <플래시댄스>
제시카 알바의 매력이 돋보이는 ‘계몽적 힙합영화’,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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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장수를 해도 서울대를 나와야 대박이 난다. <맹부삼천지교>는 이 오래된 미신을 굳게 믿고 있는 아버지 맹만수(조재현)의 ‘삼천지교’ 일대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맹만수는 아들 맹사성을 서울대 보내는 게 유일한 꿈인 홀아비다. 생선가게를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그는 어느 날 학교와 학원과 집의 거리가 1km 이내, 그것도 대치동에서 1km 이내가 아니면 서울대 가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리를 접한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이 바로 대치동. 만수는 사채를 써서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가지만, 바로 앞집으로 모의고사 전국 1등 소녀 현정의 조폭 삼촌 최강두(손창민)가 은신하고자 찾아온다. 이제 조폭을 쫓아내기 위한 만수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맹부삼천지교>는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아버지와 궁지에 몰린 조폭이 빚어내는 코미디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감하고 현실적인 주제 때문에 이 영화는, 학원비리를 소재로 삼은 <두사부일체&g
물불 안 가리는 아버지, 궁지에 몰린 조폭을 만나다 <맹부삼천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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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 아홉살은 지나치게 행복했던 편은 아니었고, 그리하여 나 또한 세상을 느끼기 시작했다.”(위기철의 <아홉살 인생> 중) 모두가 같은 시기에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는 건 아니지만,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 참담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건 대체로 열살 언저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년의 아픔을 담아낸 한국영화는 거의 전례가 없다. 순수로의 회귀, 동심을 통한 교화, 각성과 성장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테마였을 뿐이다.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성장기 <아홉살 인생>이 극장으로 간 것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숙하고 의젓한 아이 여민. 깡도 있고 싸움도 잘하지만, 그는 언제나 약자 편이다. 동네 쌈장을 제압한 뒤에도 “내가 이겼다고 소문내지 않겠다. 대신 애들 별명 부르지 마라”고 경고하는 식이다. 효심도 지극하다. 똥지게 수를 세고, 아이스케키를 팔고, 심부름을 해서 모은 돈으로 ‘애꾸’ 엄마에게 색안경을 선사하려 한다. 그렇게 듬직하고 무던하던 그의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성장기, <아홉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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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심하게 다투며 헤어지자고까지 말했던 정남과 혜숙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고 화해한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온전한 하루의 생이 이 연인들 앞에 남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 하루가 끝나면 헤어질 것이다. 결말은 예정되어 있고 이제 그 과정을 돌아볼 차례. <후회해도 소용없어>는 이처럼 연애의 종점에 해당하는 단 하루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영어제목인 〈Irreversible〉이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과 같다고 해서 영화가 시간을 역순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평온하기만 하던 이들의 관계는 정남의 선배이자 혜숙의 옛 애인인 동률을 만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사이는 급격하게 벌어지고 사소한 오해에도 상대를 상처 줄 말들을 줄줄 읊는다. 그리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서로의 간격이 드러난다. 이처럼 영화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의 ‘돌이킬 수 없음’을 장탄식하기보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그들의 관계와 말라
헤어진 연인들의 마지막 하루, <후회해도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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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번의 긍정> <울리불리 다이어트> <슬픈 크리스마스 푸딩> <몰락취미를 꿈꾸다>
<좀비처럼 걸어봐!>는 전방위 문화게릴라를 자처하는 창작집단 파적필름이 제작한 디지털 단편옴니버스영화다. 네명의 감독이 슬픔을 주제로 만든 이 영화는 좀비처럼 휘적휘적 걷는 한 남자의 그림자로 영화를 연결하고 있다. 첫 번째 <만번의 긍정>은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는 한 남자의 파괴적인 행동을 뒤쫓는다. 김설우 감독은 붓으로 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휘청이는 카메라로 상실을 인정할 수 없는 남자를 담아냈다.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도, 그는 영원히 죽어버린 자신의 한 부분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슬픔으로 무거워진 화면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꿈처럼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마지막까지, 짧은 시간 안에 변화하는 호흡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울리불리 다이어트>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가 다이어트 컨설턴트로 변신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영화, 좀비처럼 걸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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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이터’(Sin Eater)라고 들어보셨는지? 중세판 안락사를 시술한 이 별난 ‘사면자’는 죽어가는 자의 가슴에 빵과 소금을 얹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그 사람의 죄를 먹어주는(사면해주는) 일을 했다 한다. 이런 특이한 면죄의식(免罪儀式)은 교회에서 거부된 이단종교단체에서 실재했다고 전해진다. <씬>에서 사면자는 특히 완고한 교권에 저항한 아웃사이더 사제이자, 온갖 죄를 흡수하여 영생을 누리게 된 악마적 존재로 나온다. 젊은 신부 알렉스(헤스 레저)가 아버지와 다름없던 노신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로마를 뒤지다 마주친 인물도 바로 이 사면자다. 한데 알렉스는 사면자가 살인자임을 확신하면서도 그에게 말려들고 종교를 버리면서까지 사랑에 탐닉하더니, 끝내 연인이 죽을 찰나 자신도 사면자가 되기에 이른다.
기독교의 한 사파를 파고드는 <씬>은 연쇄살인을 둘러싼 고문자 해독과 교회 비판의 모티브 등이 <장미의 이름> 같은 중세 미스터리스릴러를 떠올리게 하
B급 정서를 풍기는 종교 미스터리스릴러,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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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녀에게 할리우드 스타와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아이디어는 이처럼 간단명료한 소망실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부터 출발한다. 슈퍼마켓 점원 로잘리는 우연히 ‘할리우드 스타 태드 해밀턴과의 데이트’ 이벤트에 당첨되고 할리우드로 가서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한다. 이는 스캔들로 얼룩진 태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에이전시의 아이디어였지만, 순박한 소녀에게 반해버린 태드는 웨스트 버지니아로 날아가고야 만다. 시골 마을은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으로 술렁이고, 가장 심사가 꼬이는 사람은 로잘리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피트다. 그러니까 애초에 말했듯이 모든 것은 간단명료하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삼각관계로 살짝 양념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을 배치하면 영화는 완성된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그 뜬금없이 실종된 시대성이다. 영화 속 웨스트 버지니아는 마치 50년대 클래식영화들의 무대처럼 보인다. 로잘리가 할리우드로 떠나는
싱그러운 청춘들의 시대착오적 로맨스,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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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카우보이 프랭크 T. 홉킨스(비고 모르텐슨)에게는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는 운디드니의 학살장면을 목격한 뒤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못한 채 술에 절어서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의 구경거리로 스스로를 전락시킨다. 하지만 우연히 아라비아 사막 3천 마일을 횡단하는 죽음의 경주 ‘불의 대양’에 출전할 기회를 잡게 된 프랭크는 자신처럼 ‘잡종’인 말 히달고와 함께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실존인물인 프랭크 T. 홉킨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히달고>는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고전적인 액션어드벤처영화에 향수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소박한’ 영화 앞에서 기꺼이 무장해제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엄청난 상금을 얻기 위해 살해와 모략을 서슴지 않는 무시무시한 경주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내적 투쟁을 극복함으로써 동시에 외적인 난관까지 헤쳐가는 과묵한 영웅 프랭크는 고전 서부극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보
익숙한 고전영웅의 전형적 숭고미, <히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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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 속 모나리자는 행복했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모나리자 스마일>의 각본가는 어느 날 1950년대 웰슬리대학의 연감에서 한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깔끔한 드레스를 입고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젊은 여자가 찍힌, ‘결혼이 최고의 학생을 만든다’라는 제목의 사진을. 그리고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사진 속 그 여자는 행복했을까?
<모나리자 스마일>의 전반부는 자유분방한 서부 출신의 미술사 교수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동부의 명문여대로 부임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충격을 비교적 정교하게 묘사한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젊은 학생들의 일생의 목표가 완벽한 결혼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결혼 이외의 인생의 목표를 그들에게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쩔 수 없는 기시감으로 인해 <죽은 시인의 사회&g
여성이 삶의 딜레마와 선택, <모나리자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