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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레스>는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스탭들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선 국내 최초의 극장 개봉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일종의 실험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동화와 원화 부분은 한국에서, 그리고 시나리오와 연출 등은 일본 스탭들이 담당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이치다.
<건드레스>는 제작과정이 복잡하다. 일본의 닛카쓰와 파나소닉 디지털 콘텐츠, 이너브레인 등의 회사가 동아수출공사와 공동으로 제작비를 댔다. 거대 프로젝트라 일컫어도 어색하지 않다. 국내 스탭이 기획 및 제작, 배급에 참여했고 각본과 캐릭터 설정 등 주요 부분은 주로 일본인 스탭의 손을 거쳤다. 스탭 진용은 쟁쟁한 편이다. 주목할 인물은 <애플시드>와 <공각기동대> 등의 SF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시로우 마사무네. 캐릭터 설정을 맡아 예의 날렵한 사이버펑크풍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연출자 야타베 가쓰요시는 &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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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땐 누구나 한번쯤 ‘난 혹시 미운 오리새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봤을 것이다. 나만 유별나다는 섣부른 자의식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고, 친구들로부터 외돌아졌다는 소외감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의 감옥’을 들락거리게 했다. 그 시절의 상처는, 무뎌지기는 해도 잊혀지지는 않아서, 지금도 기억 속에서 느닷없이 기어나와 그때의 나를 뼈아프게 각성시킨다. 조시 또한 그랬다. 유능하고 현명한 어른인 조시는 취재기자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시 고등학교로 뛰어들지만,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건 ‘특종거리’가 아니라 그녀의 옛날이다.
<25살의 키스>는 이렇듯 어른을 주인공으로 한 10대 코미디 영화. 조시의 시선으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을 유머스럽게 스케치한다. 조시가 잠입한 학교는 더이상 꽉 막힌 공간이 아니다. 무엇도 아이들을 가두지 않으며 아이들은 경쾌하고 풍요롭다. 그럼에도 친구 만들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으며, 그곳에서 조시는 ‘또다른 조시’를 발견하고 분노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 <25살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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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를 표방한 <인코그니토>는 <토요일 밤의 열기> <블루썬더> <니나> <고공침투> <닉 오브 타임> 등을 연출했던 존 바담 감독의 최신작. 렘브란트의 그림 한점을 그려주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브로커들의 덫에 걸려든 해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렘브란트 작품을 모조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품(?)을 훔쳤다는 누명. 체포되어 법정에 선 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위작을 또 한번 그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해리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두장의 그림 사이에 <인코그니토>는 익숙한 스릴러 장르의 복선과 장치들을 채워놓았다.
자신의 재능을 확인할 때라곤 남의 그림을 베낄 때 뿐인 해리와, 생계를 위해 당대 유럽의 최고 화가였던 루벤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던 렘브란트. 사전 정보를 조금 챙겨보면 그렇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인코그니토>의 해리
결백한 도망자, <인코그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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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인 홍콩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컬트가 된 주성치 영화는 품위와 상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버릴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희한한 종류의 코미디다. ZAZ 사단의 패러디 정신과, 인분이나 정액을 과감히 등장시키는 패럴리 형제의 악취미가, <주성치의 007> <홍콩레옹> <홍콩 마스크> <식신> 등으로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에 고루 깃들어 있다. <희극지왕>은 그의 영화치고 좀 점잖은 축에 속해서 주성치를 섬기는 교파에 입문하기에는 비교적 적당한 코스다.
진지함을 뒤집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주성치가 <희극지왕>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007>이나 <마스크>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현장 자체다. 홍콩에서 최고 몸값을 받는 배우인 그는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는 경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대신한다. 영화에서 무능력한 사내가 현실에서 백마탄 기사가 된다는 <희극지왕>
주성치의 낭만과 낙관이 넘실대는 무대, <희극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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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흔두살인데, 일년 안에 죽을 것이다. 물론 난 아직 그걸 모르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불치병에 걸린 걸까. 사고를 당하나. 자살한다는 건가. 죽는다 해도 이 말은 누가 언제 하고 있는 걸까. <아메리칸 뷰티>는 첫 내레이션에서부터 시점(時點)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슬쩍 지우며 시작한다. 목소리의 주인공 버냄은 중년의 미국 화이트 칼라다. 대도시 근교의 멀쩡한 집에서 아주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 아니, 말하는 걸 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외양은 매끈하기 짝이 없다. 집도 근사하고, 미인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다니는 딸도 몹시 예쁘다. 그런데도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진다. “난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른다. 내 아내와 딸은 내가 엄청난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의 뜻은 ‘①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②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③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라
병든 가족, 벌레먹은 꿈,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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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아이도 아닌, 소녀는 그 비정형의 존재감 때문에 남성들에게 성적 판타지의 주요 테마가 되어왔다. <소녀>의 여중생 요코와 중년의 경찰관 도모카와의 사랑은 그래서 도발적이지만 익숙하고, 용인될 수 없지만 이해될 수 있다. 어린 시절 목을 매고 자살한 아빠, 아빠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를 끌어들였던 엄마, 엄마와 외간 남자의 정사를 목격한 뒤 인간과 동물을 불문하고 섹스하는 광경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는 오빠.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소녀 요코를 불안정한 자기혐오적 존재가 되게 한다. 그녀는 도모카와를 만나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꿈꾼다.
소녀 요코가 섹스에 탐닉할 때, 거기에서는 사랑보다는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장의사인 할아버지를 따라 시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화장(化粧)하던 요코는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그녀에게 화장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기 위한 것 혹은 거짓된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사랑을 통해 자기혐오의 굴레를 벗어나다,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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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낡은 경찰서에 모인 루저들. 12월31일, 때마침 몰아친 눈보라. 마약과 좌절감에 찌든 경찰들이 술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찰나, 눈길을 피해 허술한 죄수 호송차가 도착한다. 경찰을 살해한 거물급 마약상과 세명의 애송이 범죄자들은 폭설로 고립된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그런데 새해가 밝기도 전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리가 경찰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총부리가 경찰서 안 모두에게로 향해 있음을 직감한 루저들은 살아남기 위해 경찰과 범죄자라는 신분의 차이를 잠시 잊기로 한다.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언제나 기본 이상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더구나 외부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에서는 내부의 두려움과 혼란의 밀도가 상승하게 마련이다. <어썰트 13>은 버려진 경찰서 안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려질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갈등의 두축은 경찰과 범죄자의 정체성이 아니
생존을 위한 위험한 협상, <어썰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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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베일(리 에반스)은 재스퍼 일가족을 몰살시킨 혐의로 법정에 섰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는 자신을 기소했던 에머릭 형사(숀 맥긴리)나 범죄심리학자 시거(이안 맥니스)가 언제라도 또 다른 죄목을 자기에게 뒤집어씌울 것에 대비하여 그뒤 10년 동안 매 순간 집에 설치된 90대의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에머릭 형사는 1998년 10월15일 저녁 무렵의 알리바이를 대라고 을러댄다. 그날 죽었다는 메리 쇼우의 살인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그날 그 시간대의 테이프를 찾는 순간, 베일은 문제의 테이프가 온데간데없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21세기의 카프카가 지하생활자를 주인공으로 부조리한 스릴러를 쓴다면 이런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혹은 <메멘토>의 주인공이 <패닉 룸>의 그 패닉 룸에 들어간다면 이런 이야기로 바뀌지 않았을까. 존 심슨의 데뷔작 <프리즈 프레임>은 이 모든 익숙한 전제들을 극히 제한된 등장인물과 시공간으로 압
‘기계복제시대’의 편집증의 시각적 단면, <프리즈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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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은 오래된 미래였다. 1898년 작가 H. G. 웰스가 화성인의 침공을 걱정한 이후, 1938년 오슨 웰스의 라디오 드라마를 비롯해 몇 차례 웰스의 후예들이 화성인의 침공을 재현하며 일찌감치 미래를 발명한 선배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했다.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앞으로 이 작품이 더이상 영화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감을 준다. 도로를 뚫고 올라와서 건물을 날려 버리며 출현하는 외계인의 등장은 매우 극적이다. 지진이나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도시 기능 전체를 마비시키는 도입부는 박진감과 공포를 동시에 준다. 절정부까지 휘몰아치는 공포의 리듬은 주인공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 가족의 필사의 탈출기와 맞물리며 객석을 죄어온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외계인 침공이 주는 공포는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다. 공포는 우선 그 외계인이 공격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인지, 또는 유기체인지부터 불분명하다는 데
외부의 침입에 대한 공포의 재현, <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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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450만명의 난민, 그 가운데 파키스탄 페사와르에 사는 100만명의 난민들, 그중 단 두 사람의 이야기다.” 여기 아닌 다른 곳은 어디든 괜찮을 거라 믿었다. 사촌형의 런던 밀입국 여정에 동행한 아프간 소년 자말은 먼 옛날 아시아의 거부들이 무역로로 삼았던 그 길 ‘실크로드’를 되짚어 올라가지만, 어쩐지 행복이나 풍요의 꿈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 느낀다.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 이란과 터키를 거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찍고, 고대하던 런던으로 잠입해 들어가지만, 어디도 그의 종착역이 될 수는 없다.
<인 디스 월드>는 실제 아프간 소년들을 등장시켜, 다큐멘터리의 질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난민촌에서 나고 자란 소년 자말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런던으로 떠나가는 사촌형 에나야트의 영어 통역과 가이드를 자청하고 따라나서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 브로커에게 거금을 주고 길을 떠나왔지만, 그 거래가 안전한 여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검문을 피해 후세인을 닮
슬프고 차가운 로드무비, <인 디스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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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은 제목대로다. 90년대 중반의 인기 TV드라마 <종합병원>을 영화화했으며, “천일 동안 지속된 사랑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주인공 시완의 대사처럼 두 남녀의 눈물나는 사랑을 그린 멜로다. 드라마 <종합병원> <우리들의 천국>을 연출했던 최윤석 감독이 사랑의 삼각대를 세울 공간으로 종합병원을 택한 건 “기존 멜로 영화들은 주인공의 직업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그가 속한 공간에 충실하지 못했다”라는 반성 때문이다. 또한 은수와 승현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를 빌려 한국 멜로 영화가 소홀히 해온 여성성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천일동안>의 두 여주인공 승현과 은수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승현은 완벽한 의사로 성공하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인물이다. ‘명예남성’이고 싶어하는 승현은 여성을 마치 콤플렉스처럼 여기며, 후배 은수에게도 같은 길을 요구한다. 작은 실수를 저지른 은수에게 승현은
여성성에 대한 통찰,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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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재를 회한하는지도 모른다. 옛 사랑이라는 과거에 발목잡혀 사는 영훈과 딸만을 바라보고 사는 진영을 비롯해 네 남자의 삶에는 결핍의 공간이 들어앉아 있다. 옛 감정을 들춰내게 하는 조동진의 노래처럼, <산책>에는 젊은 날에 대한 향수가 은근하게 펴져 있다. 눈물젖은 <편지>로 전국 2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국 감독은 <산책>에서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을 묽고 엷게 담는다. 화인(火印)의 역사와 희화화한 현실비판, 인공의 사랑이 빠진 자리에 남은 건 볼품없는 일상뿐이다. 이 남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연민이 어려있는 건, 그들 어디엔가 그가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감독은 소재의 일상성을 지나치리만치 평이한 영화언어로 담아냈다. 평범한 인물, 평범한 이야기가 곧장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린 것이다. 등장인물을 비롯해 현실의 일상성을 영화로 재현함에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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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달콤하다.” <필름 코멘트>의 평론가 데이브 커가 말한 스티븐 킹 작품세계의 모토를 프랭크 다라본트만큼 충실히 실천한 감독도 드물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파렴치한 교도소장을 감쪽같이 속이고 탈옥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는 어렵게 자유를 얻은 기쁨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여배우 포스터 뒤에 뚫린 터널과 텅 빈 금고를 확인하는 교도소장의 허탈한 표정은 복수가 왜 달콤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96년 6권 연작으로 발표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린 마일>에서도 악당을 벌주는 대목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케 한다. 하지만 대공황기에 사형수 감옥 ‘그린 마일’에서 일어났다는 이번 이야기는 앤디의 탈옥처럼 희망적인 쪽은 아니다. 오히려, 나쁜 짓 한 사람 한둘 지옥에 보낸다고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적 정서를 깔고 있다. 똑같이 감옥을 배경으로 삼고도 <그린 마일>이 <쇼생크 탈출>과 달리 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야기, <그린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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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이기보다는 뛰어난 다른 누군가인 척하는 게 낫다-<리플리> 중”.
완벽할 수 없는 삶의 순간순간, 리플리와 같은 욕망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해도, 볼품없고 초라한 자기 연민의 늪 근처에도 가본 일 없노라 자신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는 삶의 무게는, 부족함 없어뵈는 비교항을 만나면 한결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햇빛 찬란한 이탈리아 해안에서 쾌락을 즐기는 디키를 만났을 때의 리플리처럼. 거울을 마주한 리플리의 탄식 같은 독백으로 문을 여는 <리플리>는, 나 아닌 타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욕망의 파행적 행로를 따라간다.
호텔에서 손님 시중드는 보이, 연회장의 피아노 연주자로 생활을 꾸려가는 리플리의 현실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디키의 동창 행세로 얻어낸 이탈리아행 티켓은, 상류사회의 삶을 갈망하는 리플리의 욕망에 뜻밖의 길을 열어준다. 리플리는 자신이 꿈꿔온 모든 것을
나 아닌 타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욕망의 파행적 행로, <리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