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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순정만화, 하이틴 로맨스 문고, 그리고 인터넷 소설로 이어져 내려오는 십대들의 ‘로맨스 탐식’이 그렇다. 로맨스의 주인공들도 달라지는 게 없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한 여자주인공에게,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남자(들)이 푹 빠지고 매달리고, 암튼 순정을 다 바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십대 소녀들의 고달픈 일상을 달래주는 ‘판타지’다.
달라진 게 있다면 화법 정도가 아닐까. “-_-ㅅ-_- 그놈은 이런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ㅠㅠ 설마 얘가 걔란 말인가? 쿠궁 ㅜㅜ 잘생겼다고 인정하긴 싫다.” “그놈은 나를 광견병 걸린 개 떼어내듯이 홱 팽개쳐냈다. 헉헉. 이게 뭐야. 이럴 수가…. 지은성은 더 놀란 듯 O_O 이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엉엉엉. ㅜㅜ 난 주그따.” 이모티콘과 한글 파괴, 솔직하고 과감하게 또래들과 교감하는 인터넷 세대들의 이야기에 충무로가 눈독을 들이기
만화적 상상력과 MTV적 스타일, <그놈은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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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궁지에 몰린 영화미학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대안적인 영화형식으로서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심사위원장이었던 타란티노의 궁색한 변명이야 어찌됐건 <화씨 9/11>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누가 뭐래도 확실히 정치적인 제스처였다고밖에는 달리 판단할 길이 없다. 무어는 화씨 911도가 “자유가 불타는 온도”라고 말했다지만, 생각건대 그것은 영화가 타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온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는 기꺼이 미학을 찢어발기고 논리를 포기하면서 프로파간다의 길을 선택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화씨 9/11>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엔 한참 못 미치는 영화이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부시 대통령의 온갖 행태들에 반감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원할 법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또 들려주는 영화다.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의 긴밀한 유착관계, 자국민의
안티-부시 프로파간다 영화, <화씨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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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매불망 해적되기를 소원하는 얼치기 동네 해적단이 있다. 그리고 해적 교본을 들고 수칙을 암송하며 무해한 무기로 해적 흉내를 내는 이 철없는 돼지들에게 진짜 위험에 빠진 공주가 나타난다. 하늘에 뜬 공중요새와 동력장치, 공주의 목걸이가 가진 비밀 등 점차로 그들은 진짜 해적과 세계의 운명이 결부된 위험한 모험에 끌려들어간다. 익숙한 모험스토리,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비행정을 타고 다니는 돼지 마테오에게서 이미 <붉은 돼지> 포로코를 떠올렸다면 그 이야기가 <천공의 섬 라퓨타>에서 온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의 독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 영화에선 무의미한 일이다. 영감을 미야자키 하야오에 빚지고 있는 것이 비단 <날으는 돼지-해적 마테오>(이하 <마테오>)의 일만도 아닐 터. 출전을 아예 밝히고 들어가는 바에야 기대할 것은 어차피 새로운 상상력이 아니다. 그렇다고 풀 3D로 제작
‘여름방학 특선 만화영화’, <날으는 돼지-해적 마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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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로맨스>는 지구상 어느 철학자도 풀지 못할 이 세계의 수수께끼, 사랑을 정의하기 위한 소동이다. 귀여운 격언이다. 익히 들어온 속담이다. 정해진 승패를 두고 속아주는 긴장이다. 부족한 세인들을 위해 마련된 위험하지 않은 ‘환상’이다.
영화 속에는 7년을 사귄 남녀가 있다. 여자는 이 남자의 프로포즈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남자는 7주년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에 약할 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허술하다. 게다가 7주년 기념일에 선물을 사러가서는 사올 것은 안 사오고 대신 다른 여자와의 로맨스를 들고 온다. 그것도 당대 최고 여배우와의 로맨스를. 그 로맨스, 내 남자의 로맨스를 어떻게 말려야 하는 걸까? 그뒤로 보통 여자 김현주(김정은), 그 여자의 남자 김소훈(김상경), 그 여자의 남자의 또 다른 여자 은다영(오승현)은 “자연의 섭리”의 마지막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사랑의 먹이사슬’ 안에서 울고 웃는다.
<단적비연수> <울랄라 씨스터즈>를 지
안전하고 유쾌한 환상들의 잔치, <내 남자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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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새삼스럽지만,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은 관객이 <해리 포터> 영화를 냉정히 판단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독자의 눈을 가진 관객은 책이 묘사한 수많은 마법과 실물(의 이미지)을 대조 확인하는 일만 해도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아이처럼 숨이 벅차다. 거꾸로 <해리 포터>를 읽지 않은 관객이 영화를 온전히 음미하기도 어렵다. ‘포터월드’를 관통하는 복선과 뉘앙스를 암시하는 영화의 윙크에 제때 호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이하 <아즈카반의 죄수>)는 원작 독파 여부를 불문하고 더 큰 만족감을 안긴다. J. K. 롤링이 문장으로 쓴 것을 영화로 옮기는 데에 근면했던 1, 2편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과 달리, 신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롤링이 문장으로 쓰지 않은 것, 어둡고 도발적인 <해리 포터>의 영기(靈氣)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출은
어둡고 도발적인 그림자를 포착하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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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아리>는 <링>과 흡사하다. 원한을 품고 죽은 여인이 있고, 그 저주는 첨단문명의 이기를 통해 전달된다. 남과 여가, 원한의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설정이 비슷한 것은 전혀 흠이 아니다. <착신아리>는 완벽하게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자기만의 공포를 지니고 있는 공포영화의 수작이다. <착신아리>는 <링>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전달한다. 무섭게 한다면서 그냥 <링>의 사다코를 베끼는 파렴치함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거장의 졸작은, 종종 평범한 감독의 무난한 영화보다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들도 그렇다. 1998년 <타임>이 ‘21세기에 가장 장래가 주목되는 감독’의 하나로 꼽았고, 해외영화제에 단골로 초청되는 미이케 다카시는 거장이긴 하지만, 약간 해괴한 감독이다.
91년 데뷔한 이래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온 미이케 다카시의 필모그래피에는 걸작과 범작,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섬뜩한 원혼의 저주, <착신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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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는 많은 이들이 <천년여우>를 실사영화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가져온 <천년여우>는 실사영화에도 어울리는 이야기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곤 사토시는 그 질문에 “그림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의 공통분모다. 나는 다른 길은 알지 못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내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다”라고 답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묻는 <천년여우>는 그처럼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밖에는 모르는 장인이 고집세게 사색해온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단 몇장의 그림에서 태어났지만, 치요코가 몸을 싣는 우주선처럼, 2차원의 이미지를 넘어 깊은 공간을 향해 자유롭게 시간을 타고 흐른다. 꼼꼼한 고증을 거친 <천년여우>는 화려한 제목과 어울리는 그림을 층층이 겹쳐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천년여우>는 평생 동안 첫사랑을 찾아 헤맨 어느 여배우의
평생동안 첫사랑을 찾아 헤맨 여배우의 이야기, <천년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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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계의 ‘저승사자’ 중태(박중훈)는 카드 빚이 1500만원에 달하지만 못 갚겠다고 버티고 있는 뺀질뺀질한 유흥업소 대리운전자로 일하는 훈(차태현)을 손봐주러 온다. 돈을 안 갚으면 12시간 뒤에 콩팥을 떼겠다고 위협하며 훈이 일하는 장소까지 따라붙는 중태, 그러다가 만취한 외국인 손님의 대리운전을 하게 된 훈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차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 안에 있던 가방을 꼭 찾아오라며 불같이 화를 내는 외국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중태가 남고 훈이 가방을 찾으러 가는데, 이 가방을 노리는 중국인 스파이 조직이 보낸 킬러가 외국인을 살해한다. 얼결에 문제의 가방을 손에 넣은 훈과 중태는 그때부터 중국인 스파이 조직과 국가안전정보국 양쪽 모두에게 쫓기게 되는데….
<투 가이즈>의 장점과 약점은 전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너무나 직접적인 제목과 배우들의 기용은 영화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악질 채무자와 악질 채권자, ‘투-배드-가이즈’가
단순명쾌한 티격태격 버디무비, <투 가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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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서울가자>는 <달마야 놀자>의 속편이면서도 아주 다른 영화다. 사실 ‘조폭의 산사 습격 사건’은 그 설정만으로도 임팩트가 있었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조폭들의 버티기와 스님들의 밀어내기 구도가 웃음을 자아냈던 것이다. 코미디의 속편이 대개 그렇듯, 이 경우도 장소를 바꾸고 인물을 불렸다. 공격(스님파)과 수비(조폭파)의 역할이 전편과 바뀌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 그러나 무엇보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그리고 정서의 차이다. 전편의 캐릭터와 설정을 이어받아 다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흩어진 염주알을 손 안 대고 주워담으라’는 새로운 화두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였을 것이다.
스님들, 서울에 가다. “울어도 서서 울라고 서울”이라는 그 야박한 속세에, 자연과 불심에만 묻혀 살았던 현각(정진영)과 무진(이원종)과 대봉(이문식)이 간다. 큰스님의 유품을 전해주러 가는 길,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 즈음 출가한 그들의
성(聖)과 속(俗)의 대결, <달마야, 서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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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결하는 상대와는 닮는 법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둘은 점점 더 비슷해져 거의 차이를 알아볼 수없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오히려 그 때문에) 대립은 격화된다. 영화 <무간도>는 배신과 음모가 도사린 누아르의 음울한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바로 18층 지옥의 최저층부인 ‘무간’(無間), 즉 문자 그대로 양자간의 차이가 전혀 없는 상태라는 뜻의 생지옥이다. 하지만 홍콩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이기도 한 이 3부작 프로젝트는 두 스파이의 존재론적 투쟁이었던 1편을 거쳐, 누아르 세계의 연원을 파고드는 전사(前史)이자, 비정한 모자이크인 2편에 들어 아예 지옥의 계보학(genealogy)으로까지 나아갔다. 지옥의 역사를 꿰뚫는 이 계보학적 서사는 일약, <무간도>를 <대부> 3부작과 견주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3편 <종극무간>(終極無間)이 도착했다.
시점은 다시 영인(양조위)이 죽고 난 다음인 2002년, 자신의 정체를
질긴 시간의 폐쇄회로, <무간도3 종극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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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 <스파이더 맨>의 속편에는 제작 초기에 몇 가지 가제가
따라붙었다. 한때는 <스파이더 맨: 노 모어>였고, 또 한때는 <스파이더 맨: 언마스크드>였다. 스파이더 맨의 ‘회의’와 ‘혼돈’을 너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일까. 결국 ‘2’를 붙인 무난한 제목이 선택됐지만, 가제가 암시했던 내용물까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1편의 막바지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되뇌던 피터/스파이더 맨은 2편에서 “사회적 책임감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무엇이 올바른 삶일까 자문하면서.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 맨2>를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피터의 여정”이라고 소개한다. 알려진 대로 그 여정에서 피터를 옥죄는 것은 사랑과 우정이다. 소극적인 피터에게 지친 메리 제인은 편집장의 아들인 우주비행사와 연인이 되고, 친구 해리는 스파이더 맨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해하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살아가기, <스파이더 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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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슬기로운 꼬마 양양은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소년을 사로잡은 주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어른들에게 어린 예술가가 밝히는 의도는 명쾌하다. “사람들은 항상 절반밖에 못 보잖아요. 나머지 반을 보여주고 싶어요.”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도 비슷한 소망을 내비친다. 얼굴의 반대편에 있기에 타인은 유심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본인은 아예 잊고 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인어공주>에는 돌아앉은 남녀의 등을 응시하는 숏이 유난히도 많다. 티셔츠를 훌렁 벗고 탕에 들어가는 때밀이 어머니의 등, TV 앞에 멍하니 앉은 아버지의 등, 받아쓰기에 열중한 스무살 처녀의 웅크린 등, 마음 끌리는 처녀의 자맥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집배원의 등. 그리고 이 모든 뒷모습들은 못나고 가난한 부모에게 절망한 딸이 엄마의 놀라운 ‘뒷모습’과 마주치는 여행 속에 흩어져 있다.
불행한
스무살 시절 엄마를 만난 딸,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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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블록버스터 속편들이 있다. 아마도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일 터. 난데없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속편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컬트영화 취급을 받고 있는 폴 버호벤 감독의 전작에서 설정만 따서 만들어진 비디오용 영화이고, 당연히 원작자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이름은 찾아볼 수도 없다.
어쨌든 여기서도 벌레들과 인간의 전쟁은 계속된다. 그중에서도 <스타쉽 트루퍼스2>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자그마한 기지에 갇혀 구출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작에서 가져온 예의 그 ‘배달의 기수’식 패러디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 후속편에 번듯하게 첨가된 프로파간다 풍자는 좀 의아하다. 전작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폴 버호벤 특유의 살짝 배배 꼬인 유머들은 나름대로 싱거운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뉘앙스가 거세된 저자본의 비디오용 후속편이 그걸 따라하려 하니 유머는 사라지고 그 허세만
막나가는 B급 비디오영화, <스타쉽 트루퍼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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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양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세이메이의 팬인 동시에 세이메이를 연기한 배우 노무라 만사이의 팬이다. 세이메이의 흡입력은 그가 세계와 거리를 두고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다. 인간과 여우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을 가진 음양사 세이메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다. 숙명적으로 경계에 위치한 그는 모호하고 양면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교겐(狂言)계의 스타 노무라 만사이는 세이메이 캐릭터에 요염한 자태와 우아한 몸짓을 부여했다. <음양사2>에서 더욱 강해진 세이메이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유감스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전작이 비교적 선명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야마토 황실을 수호하려는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이토 히데아키)의 활약을 중심에 두었던 데 반해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가 각본에 참여한 <음양사2>의 축은 오히려 멸망당하고 잊혀진 이즈모국의 복수극이기 때문이다.
이즈모를 멸망시켰던 야마토국의 수도에서 귀족들이 습격
잊혀진 패자 이즈모국의 복수극, <음양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