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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음직한 괴담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밤마다 움직인다, 미술실에 혼자 있으면 석고상이 노려본다, 유관순 초상화에는 7가지 비밀이 있다, 소풍날 비가 오는 건 학교 귀신 때문이다, 등등. 불합리한 교육제도나 폐쇄공간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원초적이고 근거없는 두려움들이, 어린 마음들을 떠돌았던 것 같다. <학교전설>은 어린 시절 우리의 귀와 입을 바쁘게 했던, 전설과 괴담을 다룬 영화다. 어른 관객도 나눠가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건 이런 이유다.
<학교전설>은 시청각적으로 매우 공포스럽다. 음악, 음향효과, 특수분장, CG 등은 학교에, 아이들 머릿속에 떠도는 괴담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하지만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도, 계몽과 선도에 대한 강박을 벗어내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영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동급생들의 왕따로 밝혀지면서,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식의, 진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 <학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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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콜렉터>는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의 영화다.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양들의 침묵> <쎄븐> 이후 할리우드의 단골로 급부상했고, 범죄를 일종의 예술처럼 여기는 기묘한 사디즘은 정교한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물론 <본 콜렉터>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양념들을 듬뿍 쳐놓았다. 머리를 제공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배우 덴젤 워싱턴이며, 그의 수족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몸의 결합은 요즘의 한 경향이고 그것도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면 금상첨화다. 범인이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 뉴욕의 과거를 훑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낡은 도살장, 한권의 추리소설, 뉴욕의 어두운 지하도 등.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강과 결말로 이끈다.
하지만 범인의 등장은 빛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을 만든 호주 출신의 필립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 <본 콜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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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역사가들은 뮤지컬과 네편의 영화에 원안을 제공한 애나 레노웬스의 회상록을 한 고독한 여인의 분홍빛 몽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감정한 바 있다. 그러니 이 로맨스가 실화인가는 따로 묻기로 하자. 무엇보다 <애나 앤드 킹>은 두 사람의 강한 인간, 온 세상을 짊어진 남자와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꾸어 온 여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그런 커플을 보았다. 마리아가 폰 트랩 가에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면, 시암의 왕궁에 당도한 애나의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은 자애와 용기다.
말레이시아 로케이션과 런던 스튜디오를 오가며 촬영된 2시간이 훌쩍 넘는 <애나 앤드 킹>은 호화 양장본의 증보판이다. 앤디 테넌트 감독이 생각한 이 리메이크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 미장센과 색채의 보강이었던 모양. 첫 그림부터 스크린은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을 상기시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애나 앤드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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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비틀거리는 걸음, 초췌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의 마흔살 남자. 우리가 영화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이 사내는 불행해보이지만 별 동정은 가지 않는다. 야유회장에 술 취한 채 나타나 분위기 깨는 이런 인간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샌가 철로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질러댄다. 뻔하다. 저 한심한 인생이 더러운 꼴 크게 한번 당한 게로군, 하면서도 놀던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달려오는데, 사내는 물러서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정말 죽을 작정인가. 아무리 꼴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죽겠다고 나서면 썩 내키진 않지만 놀이를 멈추고 일단 만류한 뒤 그의 사연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눈물이 흐를 듯 고인 채 파르르 떠는 사내의 눈은, 피하고 싶은데도 결국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
한 사내의 20년에 걸친 개인사,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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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여.” ‘조폭마누라’가 장성한 세 아들을 뒀다면 이랬을까. 여수 백호파의 대모 홍덕자(김수미)는 조직을 물려받은 세 아들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그 덕에 조직은 외풍없이 평화를 누리지만,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세력 확장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큰아들 인재(신현준)가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급기야 그녀는 두 아들에게 “내 환갑날까지 느그 형 색싯감을 찾아오라”는 엄명을 내린다.
전국관객 500만명을 끌어모았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 이번엔 엘리트 며느리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재는 어느 날 도식(김해곤) 일당한테 쫓기던 여검사 진경(김원희)을 구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상대가 실은 “깡패들 잡아 콩밥 먹이는” 강력부 검사이고 “오후 2시에 출근해 6시면 사우나로 직행하는” 깡패 보스임을 알아차리기까지,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막힌 데이트를 더해간다.
조
과도해진 웃음강박증, <가문의 위기: 가문의 영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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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크레이븐이 돌아왔다. 상영시간은 짧아졌고, 공간은 압축되었고, 인물들도 줄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도, 가면을 쓴 괴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나이트 플라이트>의 웨스 크레이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긴장과 이완에 영화의 무게를 싣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순간이 없어도 안도의 한숨과 절박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충분히 생동감 있다. 과연 7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영화는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두번의 급박한 반전과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비행기의 공간적 성격을 통해 답한다.
호텔리어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남자, 잭슨(킬리언 머피)과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기상 악화를 뚫고 비행기가 이륙을 마친 순간, 잭슨의 정체가 드러난다. 리사의 호텔에 머무르기로 계획된 정부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리사를 협박하는 잭슨. 불안정한
미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불안한 시선, <나이트 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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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옛날 조선에서. <형사 Duelist>는 여느 나그네의 요설처럼 막을 올린다. 아니, 영화의 프롤로그는 정말로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여인네에게 유혹당하는 나그네의 요설이다. 극과 상관없는 프롤로그가 갑자기 중단되면, 장터에서 잠복근무 중인 좌포청의 안 포교(안성기)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처럼 걸걸한 남순(하지원)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화폐위조범들의 출처를 알아내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병조판서(송영창)와 그의 하수인인 슬픈눈(강동원)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남순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슬픈눈과 사랑에 빠지면서 임무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사라져간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이명세는 더이상 서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서사의 공백을 대신하는 것은 활동사진의 쾌락이다. 고속촬영과 저속촬영, 프리즈 프레임(정지화면), 색감과 명암의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를
서사를 대신하는 활동사진의 쾌락, <형사 Du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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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아내와 남편은 불륜을 저질렀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낯선 고장 삼척으로 달려와 혼수상태인 아내와 남편을 볼 때까지도. 아마 그들은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낯선 곳에서, 절대로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자기를 속인 배우자를 간호하면서, 그들의 변명조차 듣지 못하면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수와 서영은, 일상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장 혹독한 고통의 순간에 만난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라는 인수의 말처럼,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만약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먼길을 찾아온 후배에게, 취한 인수는 그냥 가라고 말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이탈과 내쳐짐의 정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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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말이지만, 배우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실사까지 파고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발전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배우 없는 영화’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좀 호들갑스러울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다 도리질만 할 수 없는 것은 <스튜어트 리틀>이 내비친 가능성 때문이다. 사람 세상에 입양된 쥐의 모험담이 애니메이션 아닌 실사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이 1억달러의 제작비가 쓰일 만한 보람직한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 사람은 기껏 조연이거나 배경 그림에 불과하다.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 스튜어트, 립싱크 솜씨가 훌륭한 고양이 스노벨과 그 패거리들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나 영국 출신 연기파 휴 로리에게 눈길을 보내는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튜어트 리틀>이 일궈낸 기술혁명은 그렇듯 눈부시다. 풍부한 표정연기와 다이내믹한 액션연기를 소화하는 스튜어트의 생생함은, 그것이 살아
어린 관객에게 전하는 ‘친화적인’ 메시지, <스튜어트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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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깊이, 오래 생각하면 성자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나티네>를 보면 성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나티네>는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가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언젠가 기타노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소나티네>를 꼽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죽음에 홀려 있던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머리에 지그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기타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세번 반복되는데 한번은 총알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두번은 뻥 뚫린 두피 사이로 피가 용솟음치는, 몸서리쳐지는 장면들이다. 그는 왜 이런 끔찍하고 살벌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다케시는 야쿠자 보스 무라카와를 통해 그 의미를 돌아본다.
기타노 자신이 연기하는 무라카와는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작은 조직의 보스지만 마음에 안 들면 최고 보스의 오른팔이라도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 <소나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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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선 누구나 슬퍼하고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대개는 슬픔을 추스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맞닥뜨리면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밥도 먹고 웃고 떠들기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도 세상살이의 한 부분이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장의사, 말만 들어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섬뜩해서 오싹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데 장의사에겐 죽은 사람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초상을 치르는 일이 ‘일상사’다. “사람은 마지막 떠날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할아버지에게 가업으로 하는 장의사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수긍할 만하다. “장의는 죽은 사람의 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락실 타령을 하는 망나니 같은 손자에게 장의일을 권하고, 여관방에서 목을 매 죽으려던 철구가 낙천장의사를 찾아오면서부터, 할아버지의 투철한 ‘장인정신’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덜거리지만 마지 못하는 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끌어낸 얕은 코미디, <행복한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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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게도 장선우 감독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옮겨오면서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 첫째 구멍, 둘째 구멍, 셋째 구멍이란 원작에 없는 중간제목을 붙였다. 논란과 대결을 의도한 장정일의 말썽 많은 원작에 장선우는 자기식의 방점을 찍어 각색한 것이다. ‘구멍’의 물리적 의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난 너의 세 구멍과 전부 하고 싶어.” J라는 남자는 아예 구멍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그는 불편하다. 그곳은 모두 ‘거짓말’이다. 여관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별로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는데, J는 굳이 여관만 전전한다. 그것도 땟국물 전 이불과 값싼 조명이 달린 눅눅한 여관만.
그러고 보면 여관도 구멍이다. 그곳에서의 습한 기억을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만, 짐짓 보이지 않는 척하는 그래서 세상에는 없는 척하는, 세상의 구멍이다. 장선우 감독은 <우묵배미의 사랑>과 <경마장 가는 길>에
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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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낯선 사람과의 질펀한 섹스다. 두 번째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친 섹스다. 접촉의 종류는 다르지만 오르가슴의 종류는 마찬가지라고 전제된다. 두 가지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잠깐, 또 하나의 전제를 빼먹었다. 판단의 주체는 남성이며 여성은 객체다. 두명의 여자는 각각의 섹스를 대표하며 각각의 섹스에 빠져 있다. 삼각관계의 중심은 늘 남자 한명이다. 감독·각본의 홀리오 메뎀은 이 상태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는 상식적인 혹은 교과서적인 결론을 갖고 있다. 교과서로 장편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주체인 남성에게 혼돈을 일으킨다. 첫 번째 종류의 섹스가 남긴 흔적을 기억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내 생애 최고의 섹스’였던 추억이 물리적 잉여가 돼 나타나자 남자는 혼비백산한다. 끝내 어디론가 도망쳐버린다. 깊은 사랑의 섹스에 빠져 있던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후폭풍을 맞는다. 여자는 상처를 씻고자 먼 여행길에 나선다.
소설가 로렌조(트리스탄 우
신비롭고 관능적인 모험,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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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충격을 주었던 조지 A. 로메로는 그 삼부작 이후 20년 동안 좀비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사이 영화 속의 좀비들은 빠르고 영리하고 코믹한 존재로 진화했고, 더이상 자신의 조상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랜드 오브 데드>는 노인네의 허무한 발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느릿느릿 걷는 게 전부인 저능아 좀비. 로메로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오래전 “인간이 가진 능력의 5%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던 클래식한 좀비들을 거느리고, ‘좀비 삼부작’의 리메이크가 아닌, 지금 이순간의 영화를 만들었다.
되살아난 시체들이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하고 몇년이 지난 언젠가. 라일리(사이먼 베이커)는 좀비들이 점령한 마을에서 식량과 물품을 가져오는 보급부대의 군인이다. 그는 좀비들에게 이성과 의사소통 능력이 생기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북쪽지역으로 떠나려는 라일리. 그러나
가볍고 통쾌한 오락영화, <랜드 오브 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