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와 불의가 싸울 때 저울질은 간단하다. 정의가 이기면 안도하고 불의가 이기면 리얼리티의 쓴잔을 들면 된다. 그러나 만약 정의와 정의가 충돌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물며 불의와 불의가 투쟁한다면? 어쩌면 당신은 천칭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모래와 안개의 집>에서 캘리포니아 바닷가의 집 한채를 놓고 벌어지는 참담한 줄다리기는 관전하기 녹록지 않은 싸움이다. 역시 어느 한쪽을 편들기 힘든 <주먹이 운다>의 두 복서는 장렬히 싸워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족했지만, 여기서는 누군가 얻으려면 누군가 잃어야만 한다.
분쟁의 한쪽은 1970년대 말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쫓겨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군인 마수드 아미르 베라니(벤 킹슬리)다. 우리는 베라니 대령을 <대부>의 돈 콜레오네처럼 딸의 화려한 결혼식에서 처음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돈 콜레오네와 달리 절박한 가장이다. 인도인, 유대인, 영국인을 오가며 국적을 지워내는 연기로 정평난
집 한채를 놓고 벌어지는 참담한 줄다리기, <모래와 안개의 집>
-
댄스스포츠와 사교춤의 구분이 아직까지 모호한 한국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분야다. 지난해 개봉했던 <바람의 전설>은 댄스스포츠와 사교춤에 대한 인식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가를 보여주었다(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바람). 하지만 댄스스포츠에 국가대표 여동생 문근영과 뮤지컬 배우 박건형을 접합시킴으로써 <댄서의 순정>은 댄스스포츠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느끼함의 편견을 털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최고의 댄스스포츠 선수였던 영새(박건형)는 사랑했던 여인을 라이벌 현수(윤찬)에게 빼앗기고 경기 중에 현수 일당에게 다리를 짓밟힌 뒤 폐인처럼 살고 있다. 옌볜에서 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였던 여자 선수와 새로 파트너를 해 재기를 노리려고 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채린(문근영). 열아홉살의 채린은 춤에 대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 우여곡절 끝에 채린은 영새에게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선수권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모든 단점을 덮어주는 문근영의 힘, <댄서의 순정>
-
<러브 액츄얼리>에서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하던 남자를 기억하는지?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도 고백하던 그의 애타는 마음을. 그 남자가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어바웃 러브>는 친구의 아내를 너무 오래 사랑해온 한 남자가 그 마음을 우연한 계기로 고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로맨틱코미디로 풀어냈다.
밸런타인 데이가 되면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의 아내 앨리스(제니퍼 러브 휴이트)를 사랑하는 아치(더그레이 스콧)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 혼자 술에 취해 길을 걷던 그는 술김에 앨리스에게 익명으로 사랑 고백 엽서를 보내는데, 앨리스는 남편 샘(지미 미스트리)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익명으로 그에게 카드를 쓴다. 샘은 ‘미지의 여인’을 향해 열정을 품는다. 문제는, 샘이 카드를 보낸 사람이 오랜 정부 캐챠라고 생각한다는 사실. 장난처럼 시작한 익명의
로맨틱코미디의 예정된 해피엔딩, <어바웃 러브>
-
완벽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형이자, 남편인 한 사내(율리히 톰센)가 자신이 일군 화목한 가정을 떠나 전장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는 무사귀환하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 게릴라의 공격을 받고 그들의 포로가 된 이 사내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감행한다. 그 사이 그의 사망 통지를 받은 가족들은 가족의 중심을 잃고 슬픔에 휩싸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은 어찌됐건, 살게 마련이다. 가족들이 그의 부재에 적응해나갈 무렵, 그가 거짓말처럼 살아 돌아온다. 문제는 바로 여기,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2005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던 <브라더스>에는 제목 그대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형제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형제애 혹은 형제의 갈등 자체보다도 전쟁과 가족애라는 두개의 대립축에 맞춰진다. 영화는 모든 것을 포용하던 단란한 가정이 자기 파괴적인 전쟁을 겪고 다시
평화로운 가정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 <브라더스>
-
-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영화감독 무자파르(무자파르 우즈데미르)는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고향 마을에 온다. 그는 고향 사람들을 배우로 쓰고 촬영도 그곳에서 할 생각이다. 한적한 마을에는 무자파르의 부모와 번번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도 대도시로 나가려고만 하는 사촌 사펫(마흐멧 에민 토프락), 멜로디 시계를 갖고 싶어하는 아홉살 사촌동생 알리 등이 살고 있다. 무자파르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배우로 서게 하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십년 동안 주인없는 땅에서 키워온 포플러 나무가 정부 소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다.
<5월의 구름>은 지난해 개봉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화다. 같은 배우 두명이 도시와 시골에 사는 사촌형제를 연기하는 이 두 영화는 모두 연출과 스탭을 도맡아하며 혼자 영화를 만들어온 세일란에게는 반쯤은 자화상과도 같다. 그러나 금이 간 유리컵처럼 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우작>에 비해 아직
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잔잔한 정서, <5월의 구름>
-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제 엄마세요.” 입학심사 중인 프린스턴대 관계자가 읽어내려가는 자기 소개서로 <스팽글리쉬>는 시작한다. 이후 계속되는 내레이션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모레노(셀비 브루스). 대학에서 문화적 차이를 연구하고 싶다는 그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꿋꿋이 살아왔던 엄마 플로르(파즈 베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러한 도입부와 스페인식 영어를 의미하는 제목 ‘스팽글리쉬’에는 영화의 주제가 드러낸다. 그것은 백인 중산층과 이민자들 사이의 문화적 갈등, 미국사회에 적응하면서 딸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슬픔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취직한 플로르는 처음으로 미국인들의 상식과 일상을 접하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경험한다. 최고급 음식점의 요리사인 존(애덤 샌들러), 아침마다 맹렬하게 조깅을 즐기는 그의 아내 데보라(테아 레오니), 유쾌한 알코올중독자 장모 에블린(클로리스 리츠먼), 그리고 따뜻한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돌과 이해, <스팽글리쉬>
-
현하의 국제정세를 고려해 생각해볼 때, 유엔, 그러니까 국제연합의 본부가 미국 뉴욕에 자리잡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의 결의와 무관하게, 때로 이를 어기고서라도 팽창주의적 전쟁을 자행하는 미국의 영토 안에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한다는 이 기구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할 세계 곳곳의 문제보다 자국의 이익만을 신경쓰기에 바쁜 미국 안의 유엔은 환락가 속의 성스런 교회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정치스릴러 <인터프리터>의 기본 줄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기반한다. 아프리카의 마토보라는 국가에서는 잔혹한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이 마토보의 대통령 주와니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청을 드높이고 있는 와중, 주와니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설득을 벌이겠다며 유엔 방문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이때 유엔 통역사인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은 유엔 회의장에서
씨도 먹히지 않는 이상론, <인터프리터>
-
‘어린이의 죽음은 신의 죽음’이라는 엘리 위젤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채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 국경을 떠돌면서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쿠르드족 어린이를 보노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당장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 전쟁을 일으킨 사악한 어른들의 목을 조르고 싶다.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아이들의 국적은 관객의 국적이 되고, 아이들이 쓰는 쿠르드어는 관객의 언어가 된다. 아니, 정녕 그렇게 부담스럽고 진지한 영화란 말입니까?
아니다. 이 영화는 지하철 앵벌이 소년소녀를 이라크로 데려가 찍은 최루성 영화가 아니다. 여러 가지 독법으로 즐길 수 있는 열린 작품이다. 물론 바닥엔 영화 내내 아이들의 발목을 적시는 더러운 진창 같은 현실이 있지만 말이다. 첫 번째 독법은 소년이 소녀를 사랑한다는 기둥 줄거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다. 무대는 2003년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한 이라크 국경지대 쿠르디스탄. 전쟁이 벌어진다는 흉흉한 소식은 암울한 공기가 되
가파른 현실에도 활기찬 어린이들의 움직임, <거북이도 난다>
-
1997년작 <아나콘다>는 세월을 탈수록 재미도 늘어가는 드문 오락거리다. 제니퍼 로페즈, 오언 윌슨, 아이스 큐브 등 지금은 A급 스타가 된 배우들이 B급 괴물영화 속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그렇거니와 CG 아나콘다보다도 더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존 보이트는 명불허전이다. 8년 만의 속편도 슬리퍼 히트 이후 DVD로 짭짤한 판매량을 기록한 전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편만한 속편 없다는 속설은 어떨까.
전편이 미지의 아마존 부족을 찾아나선 다큐멘터리팀을 아나콘다의 제물로 바쳤다면, <아나콘다2: 사라지지 않는 저주>는 희귀식물을 찾아나선 제약회사 직원들을 보르네오의 정글로 밀어넣는다. 불로장생 약재인 전설의 ‘혈난초’를 찾아나선 직원들은 우기에 강을 거스르는 위험한 항해를 위해 낡아빠진 배에 승선한다. 7년에 단 한번만 꽃을 피우는 혈난초는 까다로운 식물이라 2주가 지나면 져서 자취를 감출 셈이다. 급박한 일행이 위험
세월을 탈수록 재미도 늘어가는 드문 오락거리, <아나콘다 2>
-
여기, 백화점에서 태어나고 백화점에서 낙원을 꿈꾸는 한 남자가 있다. 번쩍번쩍 빛나는 의상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한 이 쾌락의 왕국. 화려한 꽃들 대신 색색의 옷과 보석들이, 아담과 이브의 거친 본능 대신 세련된 성욕이 들어선 이 시대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구매되고 판매된다. 남자의 야망은 성과 돈이 흐르는 이 낙원의 교주가 되어 죽음 또한 이곳에서 맞는 것이다.
숙녀복 섹션을 담당하는 라파엘(길레르모 톨레토)의 목표는 백화점의 새 지배인이 되는 것이다. 그의 경쟁자는 맞은편 남성 잡화의 담당자인 안토니오(루이스 바렐라)이다. 점잖음으로 무장된 남성 잡화 섹션과 달리 라파엘의 숙녀복 섹션은 감언이설의 천국이다. 자신의 영토에 대한 끈적거리는 애정에도 불구하고 라파엘은 안토니오에게 지배인 자리를 내주게 된다. 하루아침에 해고의 위기에 처한 라파엘은 실수로 안토니오를 죽이고 우연히 이를 목격한 여인이 있었으니, 숙녀복 섹션의 대표적인 ‘추녀’, 루르데스(모니
인간의 허영심과 권력에 대한 풍자, <퍼펙트 크라임>
-
애니메이션 <타임 마스터>(1982)는 르네 랄루의 두 번째 장편이다. 르네 랄루의 첫 번째 작품 <판타스틱 플래닛>(1973)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임 마스터>는 <제5원소> <블레이드 러너> 등 쟁쟁한 SF영화들의 의상디자이너로 활약했던 뫼비우스가 그 훨씬 전에 오리지널 스케치와 각색 등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슈테판 울의 소설 <뻬르디드의 고아>가 원작이다.
우주 말벌의 습격을 받고 아버지와 함께 피신하던 소년 삐엘의 비행기가 갑자기 불시착한다. 생명이 다한 것을 느낀 아버지는 아들 삐엘에게 무선 ‘마이크’를 넘겨주며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알려주고는 비행기에 홀로 남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 삐엘은 이때부터 마이크를 살아 있는 친구로 여기며 낯선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찬 행성에서의 모험을 시작한다.
고풍스러운 미적 터치와 기괴한 우울증의 기운, <타임 마스터>
-
<미트 페어런츠2>의 그렉(벤 스틸러)은 남자 간호사다. 결혼을 앞둔 그는 몹시 심란하다. 전직 CIA 출신이자 보수적인 장인어른 때문이다. 이미 4년 전 장인의 거짓말 탐지기에 당한 경험이 있는 그는 부모들의 상견례가 두렵다. 일단 전업주부 아버지와 섹스 테라피스트 어머니를 각각 변호사와 의사로 위장은 해놨지만, 계획은 늘 엎어치라고 있는 게 아니던가. 우선 그렉의 부모님인 포커 부부는 너무 개방적이다. 가슴까지 훤히 드러낸 어머니의 패션이나 포옹과 키스가 기본 인사법인 아버지는 첫 만남에서 온건하고 보수적인 사돈 번즈 부부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번즈 부부는 ‘모범 부부상’감이지만 섹스에 관한 한 입을 꾹 다문 갱년기 커플이다. 이들 가문의 충돌은 불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 충돌에는 현실 감각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포커씨는 상견례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들의 첫경험을 떠들어대고 번즈씨는 남의 집안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숨기거나 사위의 사사로운 과거를 캐낸다. 장
가족간의 화해와 갈등을 표면적으로만 그린 코미디, <미트 페어런츠2>
-
<역전의 명수>는 기획 단계부터 제목으로 유명해진 영화다. 한때 제목을 사수하기 위해 타 영화와 공방을 벌이기도 했던 만큼 이 제목이 갖는 의미는 크다. ‘역전’ 국밥집 아들 ‘명수’가 인생 ‘역전’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함축해 보여주면서, 스스로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통쾌한 한방’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하니까. 공감과 대리만족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켜줄 것이냐가 자칭 ‘휴먼코미디’ <역전의 명수>의 관건이었다.
영화의 인물과 공간은 상징적이다. 의리에 살고 죽는 실속없는 인생 명수(정준호)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쌍둥이 동생 현수(정준호)를 위해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한다. 복잡한 여자관계도 대신 정리해주고, 사법고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군대도 대신 가고, 출세에 지장없도록 감옥도 대신 간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다. 그런 명수에게 베일에 싸인 여인 순희(윤소이)가 접근해, 은행을 털자고 제안한다. 명수는 얼떨결에
예측 가능한 소동을 통한 예측 가능한 성찰, <역전의 명수>
-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의 책상에서 천사를 찾으려고 했다. 시로 세속의 성공을 누리길 원했고, 그 책상 곁에는 연인으로서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 동반자가 서 있기를 꿈꾸었다. 재능있는 소녀는 숱한 시험을 통과하고 장학금을 따낸다. 그러나 결벽증적 투지는 자주 그녀를 죽음과 한뼘 거리까지 몰아세웠다. 스물한살에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실비아(기네스 팰트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훗날 계관시인이 된 남편 테드 휴스(대니얼 크레이그)를 만난다.
영화는 여기부터다. 애초 <톰 앤 비브> <헨리와 준> 같은 문인 전기영화와 운을 맞추어 <테드와 실비아>라는 가제로 출발했던 <실비아>는 남편에 대한 동업자적 시기와 성적인 질투심으로 출렁거린 시인의 결혼생활에 집중한다. 테드 휴스는 정말 부정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그녀의 병적인 의심이 테드로 하여금 배신을 선택하도록 내몰았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충실한 팬이라는 크리스틴 제프스
여성 문인의 파괴와 쇠락, <실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