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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와 와이어를 거부하는’ 리얼 액션을 주창했던 모 영화에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영화계에 있어 <돌려차기>나 <바람의 파이터> 그리고 <역도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업들을 들여다보면 일체의 다른 도구 없이 육체와 육체가 직접 맞부딪치는 액션, 그 짜릿한 날것의 느낌에 당분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극진공수도라는 실전무술을 창시했던 무도인 최배달의 삶을 다루고 있는 <바람의 파이터>는 몇분을 채 넘지 않는 가운데 ‘일격필살의 한방’으로 승부를 가려야 하는 특유의 대결 구조 속에서 최대한 리얼한 액션의 쾌감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수모와 차별을 겪으면서도 일본 무도계를 제패하고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잊지 않았던 최배달이라는, 드라마틱한 영웅의 인간적 면모 역시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단 영화는 익숙한 블록버스터의 외형적 특성에 매우 충실하다. 적절한 고뇌와
짜릿한 액션의 영웅 신화, <바람의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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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목장 위의 집’(Home on the Range)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카우 삼총사>는, 목장 위의 집을 지키고자 의기투합한 젖소 세 마리의 짧은 모험기다. ‘천국 목장’이라는 순박한 이름의 작은 목장에 젖소와 염소, 돼지와 새끼돼지들, 닭과 병아리 등 사랑스러운 가축들이 그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할머니 펄(캐롤 쿡)과 함께 말 그대로 낙원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은행빚 750달러 때문에 가축과 목장은 모조리 차압당할 위기에 놓인다. 이를 막기 위해 ‘천국 목장’에 온 지 얼마 안 된 씩씩한 젖소 매기(로잔느 바)를 비롯해 영국 출신을 뽐내는 우아한 젖소 캘러웨이(주디 덴치)와 노래를 사랑하는 낙천적인 음치 젖소 그레이스(제니퍼 틸리)는 정확히 750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전설의 소도둑 앨러미다 슬림(랜디 퀘이드)을 잡으러 나선다. 그들의 한켠엔, 현상금을 잡으러 다니는 남자 리코와 그에게 선택받고 싶어 갖은 애를 쓰는 꿈 많은 말 벅(쿠바 구딩 주니어)이 있다. &
괴짜 감성 젖소 세 마리의 모험기, <카우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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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한 도시의 밤 풍경 사이로 카섹스를 하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수룩한 노총각 아사오(단간)의 상상 속에 있다. 아사오가 상상을 통해 여자 꾀는 데 차가 제일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순간, 제대로 된 제목이 뜬다. 모-두-하-고-있-습-니-까? 기타노 다케시의 다섯 번째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견 잘못 놓여진 작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코미디의 '비트'와 영화의 '기타노'를 철저히 분리해오던 다케시는 기타노 스타일의 집대성작인 <소나티네> 이후 일본의 사건과 노래, 영화들을 패러디한 블랙코미디를 만들었다. “일본 코미디계를 평정한 ‘다케시’로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코미디영화를 단번에 부숴버리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의도로 시작된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쑥스러운 실패작이자, 기념비적인 컬트가 되었다.
영화는 섹스를 지상목표로 하여 고군분투를 벌이는 아사오의 행적을 뒤쫓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장기를 매매해서 우여곡절
다케시의 퉁명스럽고 능청스러운 블랙코미디, <모두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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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점거하러 집을 나서는 로마의 16살 고교생 실비오(실비오 무치노)가 뜯어말리는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버지도 싸웠잖아요?” 왕년의 운동권이 응수한다. “우리가 싸운 건 진짜 문제들이었다.” 잠시 뒤 아들은 스킨헤드족을 때리다가 아버지에게 들킨다. “아버지도 파시스트를 때렸잖아요?” “우리가 팬 건 진짜 파시스트였다.” 급기야 아들은 외친다. “그래요! 역사는 아버지들만 바꾼다 이거죠?” 어느 모로 보나 번듯한 적(敵)을 가졌던 68세대 부모를 질투하는 실비오와 친구들에게, 캠퍼스 점거는 운동회 같은 연례행사이자 혁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기실 “획일화 사유화 결사 반대”라는 올해의 슬로건보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주제는, 거추장스런 동정을 어떻게 떼어버리고 근사한 연애를 하느냐다. 농성의 혼란을 틈타 실비오는 친구 마르티노의 여자 발렌티나(줄리아 카르미냐니)에게 키스하고 그 소문은 학교를 한 바퀴 돌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에 분노한 청춘은 배신당한 마르티노만이 아니었으니
천진한 로맨티시즘으로 가득찬 청춘예찬, <나에게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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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는 심지어 아이들과 놀아주는 과외 아르바이트가 있다 한다. 무작정 아이들을 내놓기엔 무서운 세상, 직접 어울릴 여력은 없는 한국 부모들의 이런 처방을 뭐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부모가 쳐놓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세상을 휘젓고 싶은 아이들의 욕구가 잠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존층 파괴로 대륙이 모조리 물에 잠겨버린 먼 미래. 망망대해 한가운데 외로이 솟구쳐 있는 촛대마을의 장난꾸러기 망치의 꿈도 요즘 아이들처럼 단 한번 세상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망치의 소원을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다. 망치로선 잠자리와 자전거를 합쳐놓은 모양의 소형 비행기 날틀을 타고 아침 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 일주하며 반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 망치에게 기회가 온다. 제미우스국의 공주 포플러가 반란자인 뭉크의 부하들에게 쫓겨 촛대마을에 불시착하는 일이 벌어진 것. 포플러는 지원 요청을 위해 아크라국에 데려다달라고 간청하지만 인정 많기로 소문난 할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매정
셀애니메이션으로 전하는 따뜻한 온기,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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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 둘은 매력적인 두 여자 혹은 두 사람일 것이다. 중의적인 제목이 주는 혼란을 장난스럽게 부각시킨 영화 <신부수업>은, 이제 그런 삼각관계는 지겹다고 말할 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신학생 규식(권상우)은 ‘못 말리는 자매님’ 봉희(하지원)와 그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느님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람’이 아닌 그 둘 사이의 선택이라면 새로운 로맨틱코미디를 기대할만하다.
모범신학생 규식과 ‘러시아 여신도의 포교’에 정신없는 신학생 선달(김인권), 두 사람의 안 어울리는 짝패에서 <신부수업>은 시작한다. 영화는 선달의 실수로 얼떨결에 영성강화훈련을 받게된 고지식한 규식이 원장신부의 천방지축 조카 봉희를 세례받게 만드는 미션을 부여받으면서 본격적인 갈등구도에 들어선다. 전반부의 목표가 이 갈등을 코믹하게 그리는 것이라면, 후반부는 봉희로부터 하느님을 대신할 만한 매력을 발견하는 규식의 고군분투를 절절
하느님과 여자, 그 사이에서 이뤄지는 길찾기,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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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영화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여름이다. 호러 장르에 대한 기본도 없는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안병기의 <분신사바>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 안병기는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한우물만 열심히 파온 감독이고, 전작 <가위>와 <폰>은 서툴지라도 가능성만은 열어두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영화는 왕따를 당하던 전학생 유진(이세은)이 분신사바 주문으로 원혼을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불에 타서 죽어가는데, 시작 부분은 시각적으로 꽤나 강렬하고 프로덕션디자인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화의 리듬은 조금씩 늘어진다.
인물들은 설명하고 또 설명하느라 화면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때문에 30년 전 벌어졌던 비극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관객의 잘 전달되지 않는다. 전작들의 약점이었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의 부재’를 극복해보고
고립된 마을의 집단적 공포, <분신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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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불가능의 상처를 가지고 농락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20여년 전 방영된 TV형사물의 납량특집 <얼굴없는 미녀>가 남겼던 ‘교훈’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최면요법은 환자의 깊은 내면과 만나 고통의 근원을 식별하고 제거하려는 수술도구일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그걸 욕정의 해소 수단으로 삼았다. 최면암시를 걸어두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아름다운 환자를 오게 만들어 몸을 탐했다. 여느 때처럼 불시에 신호를 받은 환자는 육신의 주인에게 향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환자는 혼의 몸이 되어, 원귀가 되어, 명령을 이행하려고 한다. 이제 의사는 자신이 만들어낸 원귀에게 쫓겨야 하는 끔찍스런 처지에 빠진다.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는 이런 사필귀정, 일벌백계의 호러 리메이크가 아니다. 환자 지수(김혜수)는 물론이고 의사 석원(김태우)에게 감당하지 못할 상처와 사연을 비슷하게 안겨주고 절대고독에 빠진 그들끼리 또 한번 물고 물어뜯게 만든다. 석원은 가해자이기에 앞서 슬
매혹적인 이미지들로 엮은 파괴적 사랑의 순간, <얼굴없는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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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황금빛 들녘을 누비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해서 전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전 영화들과 똑같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토록 풍요로운 순진함과 행복으로만 충만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해서 언제나 용서받고 감싸지고 그들의 순수함이 보존되어야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만은 없다. <지중해>와 <너바나>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신작 <아임 낫 스케어드>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아름다움의 견고함을 확신하고 있던 10살짜리 소년이 순수함을 상실하기까지, 그 직전의 풍경을 가슴 아프게 그려보인다.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성장한다는 것의 쓰라림 혹은 꿈과 환상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 경악.
1970년대 남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시골 마을, 귀여운 여동생과 아름다운 어머니, 터프한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미카엘은 어느 날 버려진 집의 지하 굴에 갇힌 이상한 존재를 발견한다. 눈도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아임 낫 스케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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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드라큘라 백작의 명으로 창조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다. 시체들로부터 얻어낸 조각조각난 신체로 얼기설기 입혀진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목도하는 순간, 드라큘라 백작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살해한다. 그는 세명의 신부들로부터 얻은 ‘죽은 채로 태어난’ 수많은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프랑켄슈타인의 생명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생명체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시체와 함께 사라지고…. 그로부터 1년 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세상의 악을 처단하는 비밀스런 임무를 부여받은 반 헬싱(휴 잭맨)은 드라큘라 백작의 음모를 저지하라는 새로운 일거리를 맡게 된다. 반 헬싱은 모든 종류의 싸움에 능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어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중이다. 트란실바니아에 도착한 반 헬싱은 집안 대대로 드라큘라와 전쟁을 벌여온 발레리우스 가문의 마지막 후예 안나 공주(케이트 베킨세일)를 만나 힘을 합치고 놀라운 사실을 접한다. 드라큘라가 프랑켄슈타인의 생
게임 속 젊고 핸섬한 슈퍼히어로, <반 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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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사이 인형들이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는다면’, ’내가 사랑한 인형이 말을 걸어온다면’.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피노키오까지 다양하게 변주된 이 고전적인 상상은 <마네킹> <토이 스토리> 등의 영화 속에서 재기발랄하게 그려진 바 있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소중했던 인형의 이름은 기억조차 희미해지게 마련. 그러므로 그 무책임한 상상이 막상 현실이 된다면, 인형들이 복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지도 모른다.
인형의 모델이 되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털털한 성격의 조각가 해미(김유미). 그는 모델 같지 않은 직업모델 태승(심형탁), 19년 넘는 세월을 인형 데미안과 살아온 영하(옥지영) 등 자신과 같은 이유로 모여든 네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을 맞는 것은 음산한 인형제작자(김보영)와 최 관장(천호진), 이유없이 해미의 주변을 맴도는 미나(임은경), 그리고 곳곳에 존재하는 괴기스러운 인형들이다. 가장 불안해 보이던 영하가 발작을 일으키고 그
무심한 인간에게서 잊혀진 인형의 애틋한 배신감, <인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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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기계-피조물의 반란이라는 소재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게까지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닳고 닳은 소재가 여전히 창작자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그것이 매혹과 공포의 교접에서 탄생한 원형적 주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일 게다. 고전적인 작품들의 경우 의식을 지닌 존재를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위반해서는 안 될 한계를 넘어선 데 대한 가혹한 처벌과 반드시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의식을 지닌 피조물에게 인간 자신의 존재론적 갈등이 투사될 때 이는 좀더 철학적, 신학적인 차원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이런 설정이야말로 참으로 현대적인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거기엔 인간적 실존과 사물적 존재 사이에 놓인 우리가 어느 순간 문득 경험하게 되는 긴장과 떨림이 반영되게 마련인 탓이다.
<아이, 로봇>에서 자유의지를 지닌 피조물- U.S.R.사 건물 전체를 관장하는 메인컴퓨터 ‘비키’(VIKI)-
의식의 진화가 일어난 미래세계 로봇들의 반란, <아이,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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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발칙한 영화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지지고 볶다가 결국 인연으로 맺어지는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 이 영화에선 여러 번 틀어진다. 우선 여자 셋에 남자가 하나다. 여자 셋은 심지어 우애 좋은 친자매간이다. 그들 모두가 한 남자와 은밀하게 연애를 한다. 그러다 결국 그중 누구 하나와 맺어질까? 글쎄다. “세상에 한 가지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남자는 말한다. 여자들도 그 말에 공감한다. 동방예의지국, 많이 컸다, 싶다.
그 남자 수현(이병헌)은 <왓 위민 원트>의 멜 깁슨처럼 여자의 속마음을 훤히 읽어낸다. 한술 더 떠, 여자의 억눌린 욕망과 무의식까지 흔들어 깨운다. ‘사랑은 쇼핑’이라고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셋째 미영(김효진)에겐 순진한 듯 무심한 듯 다가가, 밀고당기는 기술로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아버린다. 경험으로 알아야 할 세상사의 이모저모를 책에서 구하는 학구파 둘째 선영(최지우)에겐 인문학적 교양을 과시해 접근한
세 자매와 한 남자의 은밀하고 발칙한 욕망론, <누구나 비밀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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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뒤칸에 몸을 실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고 나이들게 하면서 저승으로 이끄네….” 이때에 영화를 보는 우리가 어떤 당혹감을 느꼈다면, 인생의 경로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이런 식의 노래는 인생의 여러 험한 굴곡들을 거쳐온 어른들의 입에서나 나올 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느낀 당혹감의 원인은 또 있었다. 영화 속 쿠르드족 아이들, 어린 나이에 생존을 위해 힘쓰다 삶의 쓰디쓴 맛을 본 그 아이들은 그 같은 노래를 부를 ‘자격’(?)이 충분히 있는 이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혹해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후 독일의 참상을 다뤘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영년>(1947)에서 이미 봤듯이, 통상적인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의 조건 속에 처해 있을 때 아이들의 성장은 보통의 속도를 넘어서며 이뤄진다. 바흐만 고바디의 인상적인 데뷔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
어느 동정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의 울림,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