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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3대 기서로 꼽히는 책으로 <봉신연의>란 작품이 있다. 우리에게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이 무왕을 도와 600년간 존립했던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구축한 역사적 사실을 도교적 세계관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신선과 요괴와 도사가 대거 등장하는 이 책은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많은 무협소설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류승완 감독이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저변에 깔린 사고는 <봉신연의>와 다르지 않다. 지금, 이곳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신선이 살고 있다. 다만 일반인이 모를 뿐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그렇게 첫운을 뗀다. 누구나 한번쯤 길에서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숨가쁜 일상에서 귀담아 듣기 힘든 그 말을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액션코미디의 쾌감에 실어나른다. 여주인공 의진(윤소이)이 빌딩숲을 붕 날아오르는 순간 다가오는 짜릿한 흥분이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무림고수들의 대결, <아라한 장풍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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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 내건 구호이기 이전에,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가 끊임없이 관객에게 건네던 잠언이었다. 비록 당신의 성격이 더러워서 친구 한명 곁에 없어도, 눈가의 주름이 감춰지지 않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당장 살아갈 방도가 막막해서 몸을 팔아야 할지라도, 사랑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세상은 살 만해진다고. 그리고 이제 새로운 로맨틱코미디는 사랑의 대상은 많을수록 좋고(<어바웃 어 보이>), 반드시 이성일 필요도 없다고(<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그래서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말한다. 어느 날 당신의 엄마가 스무살 어린 체코 여자와 사랑에 빠지더라도, 직장 상사는 몇달째 저임금으로 부려먹고,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때려치우려면 구차하게 엄마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며,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그와의 로맨스는 당신의 자격지심 때문에 결정적 순간마다
사려 깊은 여성적 낙천주의,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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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실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충실한 멤버십에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한적한 맨션이라는 물적 토대. 이상을 모두 갖춘 가정에서 불행의 기운을 읽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일상에 미묘한 균열이 나타나면 이 안정된 구조는 금세 고립된 실내 공포극으로 돌변할 충분한 자양분을 갖추게 된다. 역설적인 것은 그 구조가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불안감이 더욱 커져간다는 사실. 프랑스영화 <바디 스내치>가 끌어내려는 공포도 이처럼 완벽한 가정과 일상의 행복, 그 총체를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작은 불안감에 있다.
프랑스 리옹 외곽에 살고 있는 로라(에마뉘엘 세이그너)의 경우도 마찬가지. 한때 매춘부나 다름없는 비참한 스트리퍼였지만 성실한 조경설계사인 마르코(필립페 토레통)의 순진한 구애를 받아들여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서 끔찍한 교통사고로 청력을 잃고 몸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런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남편 마르코에게는 스트리퍼였던 그녀의 과거만큼이나 대수롭지
완벽한 가정의 행복을 뒤흔드는 작은 불안감, <바디 스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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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의 문구는 ‘대통령이 암살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 사막투성이의 황량한 뉴멕시코시티다. 이곳에 대통령이 올 일이 없지 않은가.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프랭크라고 부르며 자신이 그의 약혼녀였다고 주장하는 미모의 여인 클로이, 극장과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묘한 시선을 던지는 두명의 낯선 남자, 암호 ‘롬버스’, 삼각형 모양의 암살 구도…. 프랭크는 불분명한 기억의 편린들을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기 시작한다.
마돈나와의 작업으로 유명해진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마이클 하우스만은 이미지 중심의 개인기를 펼치기보다는 를 작업한 각본가 F. 폴 벤즈를 기용하여 정연한 내러티브 중심의 정공법적 스릴러를 선택하는 야심을 부린 듯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라인드 호라이즌>은 스릴러로서 합격선을 결코 넘지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자동
롬버스 작전과 JFK 암살의 맥없는 조우, <블라인드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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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미 <파이널 판타지>의 대담한 실험에서 영화와 게임의 성공적인 합방은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파이널 판타지>가 ‘영화를 흉내내는 게임’이었다면 <오토기리소우>는 ‘게임을 흉내내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축약해놓은 게임 설명서 같다. 나미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산으로 저택을 물려받는다. 게임회사 사장인 전 애인과 함께 아버지의 저택을 찾아간 그녀는 아버지의 정체가 공포스러운 작품들을 남긴 전설적인 미술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로 같은 저택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아버지의 그림들, 그 이면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들과 나미의 쌍둥이 여동생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간다. ‘복수’라는 꽃말을 지닌 ‘오토기리소우’(고추나물)로 둘러싸인 저택에서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토기리소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흉내낸다. 대화창을 화면에 띄우는 것
게임을 흉내내는 영화, <오토기리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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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나가던 작가 프란시스(다이앤 레인).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맞는 바람에 졸지에 집에서도 쫓겨나 신세 처량한 이혼녀가 된다. 신세 비슷한 이들이 수두룩이 투숙한 호텔에 칩거한 그녀에게 정말 큰 문제는 삶의 의욕 내지는 창작에 대한 열정까지 모두 사라졌다는 것. 벽을 타고 들리는 울음소리에 공명하며 자살의 유혹까지 직면했으니 정말 위기의 여자랄밖에. 그나마 그녀에게 남은 행운은 마음 써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정도. 그녀가 레즈비언 친구 패티(산드라 오)의 권유를 받아들여 투스카니 여행 티켓을 손에 쥐면서 실의에 빠진 여인이 삶을 되찾는 희망의 갱생스토리가 펼쳐진다.
하지만 어떻게? 영화는 <투스카니의 태양>이 그녀에게 필요했던 처방의 모든 것이라는 식의 순진함을 보이진 않는다. 처방의 요점은 유쾌하고 낭만적인 일련의 일탈. 낙천적인 게이들 사이에 파묻혀 일종의 묻지마 관광을 떠난 것도 그렇지만 있는 돈 탈탈 털어 다 쓰러져가는 투스카니의 전원주택
인생을 재건하려는 어느 이혼녀의 묻지마 프로젝트, <투스카니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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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농부라면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이야기처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그의 영화는, 칼날 같았다. <청춘잔혹이야기>(1960)에서 <교사형>(1968), <의식>(1971), <감각의 제국>(1976)에 이르기까지 오시마 나기사는 영화를 통해 전후 일본사회를 통찰했다. 그의 영화는 모두를 적으로 대했으며 또한 그것을 예리하게 베고 또 베었다. 상대는 늘 바뀌었다. 부패한 일본사회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국가, 도덕적 관념, 이데올로기일 경우도 있었다. 영화형식을 극단적으로 실험함으로써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영화를 현대화시킨 당사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거장의 행보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고하토>는 10여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극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오시마 나기사의 1999년작이다. 이 영화에 세계적인 관심과 비평의 시선이 쏠렸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예상외로 <고하토>는 거
한 미소년을 둘러싼 사무라이들의 암투와 대결, <고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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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전쟁은 죽음을 낳고, 사랑을 낳으며,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낳는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영화화한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치적 음모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의 징후들이 유령처럼 맴돌던 프랑스 식민치하의 베트남, 1952년의 사이공, <런던타임스>의 특파원인 토마스 파울러는 전쟁의 기운에 대해 “나는 아무런 의견도 없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말려들지 않는다. 나는 그저 기자일 뿐이다”라고 독백한다. 젊고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풍’과 사랑에 빠진 늙은 영국인 유부남에게 독립과 이데올로기 정쟁으로 가득 찬 베트남 민중의 삶은 그저 관망의 대상일 뿐이다. 그 평화로운 파울러(마이클 케인)의 일상은 미국인 파일(브랜든 프레이저)이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활달하고 매력적인 미국 젊은이는 파울러의
사랑은 떠나고 전쟁의 기운은 그의 세상을 흔드네, <콰이어트 아메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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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에서 순진하게만 자라난 아가씨가 낯선 곳에 도착해서 낮은 신분의 남자와 만나 그가 속한 하부문화와 춤에 매료된다. 소녀의 준거집단에서야 금기나 다름없지만 소녀는 이 문란한 춤을 배워, 신분을 뛰어넘는 관능과 사랑에 눈을 뜨고 여자가 된다. 물론 진부하고 과잉이다. 하지만 62년의 한적한 여름 휴양지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가 강렬하고 예민한 성장드라마로 기억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미를 석권한 와 <더티 댄싱>의 춤이 보여준 마술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는 58년 쿠바의 아바나로 또 한명의 순진한 아가씨 케이티(로몰라 게리)를 데려오며 이 마술을 다시 한번 더 재현하려 든다. 전편이 87년에 제작됐으니 17년 만의 귀환이다.
그러나 원래 이 영화의 안무가이기도 한 조앤 젠슨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려는 프로젝트로 시작해선지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는 거의 동일한 플롯인 전편과 그렇게 많이 상관있어 보이지 않는다.
17년 만에 돌아온 <더티 댄싱>의 속편, <더티 댄싱2: 하바나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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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여지없이 부숴버린 그 비극을 작정하고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됐고, 그 선택은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사소한 욕망이 낳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진짜 공포스러운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어느 날 유괴범한테 쫓기던 소녀가 우연히 사토(야쿠쇼 고지)의 가방에 숨어들고, 유괴사건의 담당 형사는 단서를 찾기 위해 혼령을 불러내는 능력을 지닌 준코(후부키 준)에게 접근한다. 준코는 결국 소녀를 남편 사토의 가방 속에서 발견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망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 순간부터 이들 부부가 보여주는 변화들은 영화의 전반부에 이미 암시된 것들이다. 준코는 자신만 볼 수 있는 원혼들로 인해 괴로워했지만, <식스 센스>의 소년과 달리 그들의 사정에는 귀기울이지 않았
소리없이 출몰하는 건조한 심리적 공포,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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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는 레이 쿠니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연극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었던 <라이어>는 적절하게 바꾸어놓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원제는 다) 거짓말만으로 전체를 이끌어나간다. 사소한 사고와 그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한 한 남자의 삶, 그 삶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에 끌려든 몇몇 인물이 전부인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뼈대 위에 영화 한편을 올려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김경형 감독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성공작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모티콘으로 얼버무리고 지나간 원작 인터넷 소설의 여백을 에너지로 채웠고, 그저 나열하기만 하는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흘러가는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김경형 감독은 또 한번 부딪힌, 집 한채를 뜯어고친다고 할 만한 어려운 각색을 어떻게 만들어왔을까. <라이어>는 구멍 하나없이 촘촘한 원작과 함께 그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에도 흥미로운 영화다.
설정과
거짓말에 휩싸여 자신마저 잃어버린 남자의 비애, <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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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청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일본영화의 위대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절망에 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키즈 리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배틀로얄>에서 후카사쿠 긴지는 시스템에서 탈주하는 소년 소녀들에게 외쳤다. “뛰자!” 여기 <밝은 미래>에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덧붙인 것은 ‘가라’는 사인이다. “지금까지 난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 가라는 신호는 벌써 떨어졌는데.” <밝은 미래>의 주인공 니무라(오다기리 조)가 극중에서 던지는 이 한마디는 그간 인간 본성의 지옥도를 주로 그렸던 구로사와가 품고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절망의 심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희귀한 희망 한 조각을 건져올린다.
<밝은 미래>는 24살 젊은이 니무라가 자신의 꿈에 대해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꿈에서 행복한 미래를 보는 이 청년은 그래서 꿈
절망의 심연에서 건져올린 희귀한 희망, <밝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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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영화에서 ‘유령들린 집’이라는 소재는 끊임없이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흡혈귀만큼이나 자주 출몰하는 고전이며 전통이다. <샤이닝>은 인디언의 묘지 위에 지어진 휴양지에 한 가족을 초대하고, 원인 모를 광기로 미쳐가다 결국 죽음을 맞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 단위를 붕괴시킨다. <싸이코>의 미친 아들을 조종하는 것은 죽었으나 존재하는 무서운 어머니의 육성이다. 유령들린 집의 매력은 근래의 할리우드 경향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윌리엄 캐슬의 <하우스 오브 헌티드 힐>은 조엘 실버와 로버트 저메키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헌티드 힐>로 리메이크됐고, 로버트 와이즈의 <악마의 집>은 얀 드봉의 손에 의해 <더 헌팅>으로 다시 태어난 바 있다. 대개의 경우 이 저택에는 원혼이 스며든 미완의 과사들이 점철되어 있으며, 그 안에 발을 딛는 집단의 단위는 종종 가족이고, 그들은 처참하게 무너져간다. 아니라면, <디 아더스>의 어머
즐거운 놀이동산 유령의 집, <헌티드 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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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명이 몰려 살고 표준화된 정보관리를 받는 도시의 삶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만 몇개의 숫자로 표현될지 모른다. 거기서 공포의 연원을 읽는 스릴러영화 <테이킹 라이브즈>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사실 공동체적 기반을 잃고 살아가는 도시의 독신자들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의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범작에 그치긴 했지만 <왓쳐>의 경우도 피해자를 예고하는 데도 정작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속수무책인 도시 생활의 삭막한 익명성을 파고든 적이 있다. 그러나 <테이킹 라이브즈>의 연쇄살인범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사람을 살해하고 난 다음 그 사람의 이름과 신분증, 카드를 사용하며 아예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야말로 정체성 도둑인 것. 그리고 미모의 FBI 프로파일러 스콧(안젤리나 졸리)이 천재적 직관과 관찰력으로 결정적인 증인 코스타(에단 호크)와 함께 범인의 심리를 추적하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쎄븐
남의 인생을 훔치는 연쇄살인마와 섹시한 여형사의 매치업, <테이킹 라이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