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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욕망을 그물로 엮어낸다. 그러나 그 그물은 ‘내가 너의 욕망을 읽어주지’라고 말하며 사실은 자신의 욕망에 배우의 욕망을 꿰맞추는 위대한 감독의 손아귀 안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배우에겐 고통을”이라는 어느 감독의 말에 덧붙여 이 영화는, 배우와 스탭의 고통을 통해 ‘감독에겐 창작의 환희를!’이라고 외친다. 감독과 배우의 욕망이 엇갈리면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의 묘한 숨막힘은 감독의 컷 사인과 함께 사라지고 스크린 위에는 오직 감독의 머릿속에서 정렬된 욕망이 자리잡는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트뤼포가 보여준 영화에 대한 애정과는 달리 감독의 깐깐한 자의식과 욕망을, 심지어 창조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숱한 ‘못할 짓’들을 진지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그 중심에는 여신 같은 감독과 ‘바보 같은’ 남자들이 있다.
감독 잔느(안 파릴로)가 자신의 자의식이 온전히 살아 있는 영화를 찍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그녀를 지탱하는 키
<팻 걸>의 제작과정 훔쳐보기, <섹스 이즈 코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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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출간된 쥘 베른의 소설 가 단숨에 수많은 소년 소녀들을 매혹시켰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당무계한 난제를 논리정연한 과학적 이성으로 격파해나가는 필리어스 포그라는 캐릭터가 안겨주는 신선함(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도 비슷한 쾌감),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대영제국’ 신사의 눈을 통해 보는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스펙터클이 안겨주는 엑조틱한 즐거움 말이다.
이번에 <웨딩 싱어>의 감독 프랭크 코라치에 의해 영화화된 버전의 는 필리어스 포그(에서 매혹적인 주인공 토니 윌슨으로 등장했던) 대신 그의 하인 파스포트(성룡!)에게 비중을 두는 변화를 단행했다. 고향 마을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유럽에서 동분서주하는 재치있는 파스포트가 바로 필리어스 포그의 세계일주 내기를 성사시키는 장본인이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팀장 역할도 파스포트가 맡는다. 그에 따라 필리어스 포그는 원작에서처럼 냉정한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성룡표 ‘19세기 말 세계 기행문’, <80일간의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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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형통의 변론을 위해 여기저기 불려다니다가 아예 상투의 시장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말, ‘욕망’. 그것에 대해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루어 소중하게 그려내는 희귀한 예가 바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이다. <나쁜 교육>은 그 욕망의 관계들을 자신만의 영화적 구조로 완전하게 집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알모도바르의 신작이다.
촉망받는 영화감독 엔리케(펠레 마르티네즈)는 새 영화를 구상 중이던 어느 날, 누군가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는다. 지금은 앙겔(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라는 이름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그나시오로 불렸던 엔리케의 첫사랑. 새 영화에서 배역을 맡고 싶다며 찾아온 앙겔은 엔리케에게 시나리오 한편을 건네준다. 엔리케는 그것을 읽어내려가며 상상과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가톨릭 기숙사에서 엔리케와 이그나시오가 보냈던 혹독한 어린 시절, 그곳의 교장이었던 마놀로 신부와의 사건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나리오에 매혹되어 영화를 만들어가던 중에
끝나지 않을 열정의 천일야화, <나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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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꼭 네 집을 사야 한다.”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마감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 아버지가 외아들 필기(차승원)에게 남긴 유언은 다름 아닌 ‘내집 장만’이었다. 버젓한 조선소에서 기사로 일하는 그가 야간엔 대리운전을 하며 ‘투잡스’ 대열에 낀 것도, 슈퍼마켓에서 부득불 10%를 깎아대는 알뜰한 생활을 한 것도 따지고보면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거제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장만하게 된 필기가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 집에는 딱 한 가지 사소하다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귀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기가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 출신이라지만 소파를 춤추게 하고 식칼을 날려보내며 ‘이 집에서 나가라’고 협박하는 귀신의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다. 피눈물 모아 애써 마련한 집을 귀신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필기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김상진 감독의 7번째 영화 <귀신이 산다>는 <
김상진표 코미디영화의 새로운 시도, <귀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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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그들과 청룡이 맞붙는 날이면 한시름 놓았던 팀으로 기억한다. 나와 친구들은 웬만하면 지는 그 팀을 ‘삼미 슬퍼스타즈’라고 불렀던 것도 같다. 물론 페이소스 따위를 스포츠에서 구하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다. “약체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라 좋은 것은 패배를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라고 자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한 수필을 읽은 것도 훨씬 나중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열등생과 아웃사이더는 영화의 오랜 스타다. 그들의 성취담은 영화가 스토리라는 것을 갖게 된 이래 환영받는 소재였다. 이 테마에 대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꾸준한 매혹은 약자의 반격을 그린 내러티브에 내장된 파괴력을 증명한다. 엄밀히 말해 <슈퍼스타 감사용>의 주인공 감사용은, 복원해야 할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고전적 약자 히어로의 속성을 뭉뚱그린 일종의 기호다. 과연 <슈퍼스타 감사용>은 예고편부터
어느 꼴찌 투수의 찬란한 나날, <슈퍼스타 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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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대원으로 복무했던 크리스 본(더 록)은 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제재소는 일손이 부족해서 이미 3년 전에 문을 닫았다. 새로 생긴 카지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일은 하지 않고 술과 도박에만 빠져 지내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카지노에 들른 크리스는 카지노가 속임수를 써서 이익을 늘리고 마약까지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카지노 주인 제리에게 매수당한 보안관은 크리스의 고발을 묵살한다. 분노한 크리스는 친구 랜디(조니 녹스빌)의 도움을 받아 자기 손으로 제리와 그 부하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한다.
<워킹 톨>은 낯익은 주인공과 스토리에 기대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원안이 된 1973년작 <워킹 톨>은 더티 하리처럼 총과 각목을 손에 쥐고 부패에 대항하는 보안관 버포드 푸서를 끌어들여 두편의 속편과 TV시리즈를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실존인물 버포드 푸서가 전직 레슬러라는 점을 생각한다
감정을 허용하지 않는 딱딱한 레슬러의 분노, <워킹 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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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비너스에는 마음의 상처를 방치한 채 익명 속에 숨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호텔의 웨이터 겸 손님들의 식사와 빨래를 책임지는 ‘초난’(구사나기 쓰요시), 한때 유능한 의사였으나 지금은 알코올 중독인 ‘닥터’(가가와 데루우키)와 그의 ‘와이프’(나카타니 미키), 꽃가게 주인이 꿈인 ‘소다’(조은지), 킬러 흉내를 내는 ‘보이’(이준기), 그리고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호텔 주인 ‘비너스’(이치무라 마사치카)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이’(박정우)라는 남자와 ‘사이’(고도희)라는 소녀가 호텔을 찾아오면서, 각자의 시간들은 서로 부대끼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생기없는 초난의 시선을 통과한 호텔 비너스에서 시간의 흐름은 마치 부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빛바랜 화면은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을 보여주기를 반복한다. 바닥은 계속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과도하게 분절된 숏들은 탭댄스의 리듬을 타고 따끔거린다. 시간은 고여 있거나 지속성을 지니지 못하고,
초난강식 소통을 위한 실전 가이드, <호텔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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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자면 <시크릿 윈도우>에서 스릴러의 만듬새 자체는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결말이 유도될지 피해자 모트 레이니(조니 뎁)와 가해자 존 슈터(존 터투로)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정도는 중반 즈음에 쉽게 눈치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곳저곳에 묻어나는 원작자 스티븐 킹의 체취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대성공으로 블록버스터계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또다시(!) B급 정서로 돌아온 조니 뎁의 원맨쇼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들)을 사랑하는 이라면 <시크릿 윈도우>를 보는 내내 전작의 흔적들을 비밀스럽게 만끽하며 즐거운 상상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가 고요한 호숫가의 표면을 훑다가 창문을 통해 외딴 오두막집으로 넘어들어가 쓰다만 문장이 깜빡거리고 있는 노트북 화면으로, 그리고 거울로 다가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작가 모트 레이니를 보여주는 긴 오프닝 시퀀스
B급 정서로 돌아온 조니 뎁의 원맨쇼, <시크릿 윈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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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곳을 두고 두개의 상충하는 관점이 존재한다. 이것을 평화롭게 유지시키는 것은 수용소의 담벼락 같은 것들이다. 이 담장을 넘고 관점을 넘어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관찰자의 시점이 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세계관이 부딪쳐 굉음을 내고 폭발한다. 이때, 대조와 명암이 분명한 카니발의 생명력과 광휘가 엿보인다. 이상이 구조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언뜻 판타지처럼 보이는 남미 리얼리즘의 전통이다. 헥터 바벤코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수용소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관점과 관점 사이를 넘나드는 남미 스타일 전통의 시각적 쾌감을 사랑한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의 도심에 자리한 남미 최대의 교도소, ‘카란디루’의 정원은 3500명, 실제 수용인원은 7천명이다. 열악한 환경과 물리적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이 대형 감옥 안에는 마약 거래와 에이즈가 창궐한다. 그리고 1992년 폭동이 일어난다. 진압과정에서 111명의
‘그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었네’, <카란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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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관한 가슴 아픈 추억을 가진 쥬베이(사카구치 다쿠)가 갑자원 우승을 노리는 세이도고로 전학 온다. 세이도고는 천재적인 재능을 겸비한 쥬베이에게 기대를 걸지만 상대팀이 공포의 게도고라는 소식에 아연실색한다. 게도고의 야구부는 게임의 규칙 따위는 무시하고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인야구로 유명한 팀. 쥬베이는 과거의 상처를 야구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동료들과 함께 야구계의 악(惡)인 게도고를 처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에 출전하기로 한다.
가타로 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그야말로 한권의 만화책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야구를 소재로 하지만 정상적인 야구 경기는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야구 영화다. 배트와 글러브 대신에 사람의 몸이 경기의 도구가 된다. 말하자면 이들이 벌이는 경기에는 나름의 야구 정신은 있으되 규칙을 비롯한 야구의 외형적 조건은 그 무엇도 갖춰져 있지 않다. 마치 ‘야구로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의 총집합을 보여
울트라 코믹 엽기 황당 액션 야구영화, <지옥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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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사회는, 바닥을 쓸어 한줌의 긍지도 건지기 힘든 수렁이었다. 그 수렁이 오죽 어둡고 깊었으면 독일인들이 재건의 희망을 다시 움켜쥔 일을 가리켜 세상은 ‘기적’이라는 격앙된 표현을 썼다. <베른의 기적>은 독일이 경험한 첫 번째 ‘리바운드’의 순간을 포착한다. 1954년 스위스 베른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거둔 승리가 독일인들을 어떻게 위무했는가를, 축구에 반한 광산촌 소년 마티아스(루이스 클람로스)와 그 아버지(피터 로마이어)를 통해 들려준다.
11년간 러시아에 전쟁 포로로 억류되었다 귀향한 아버지와 올해 열한살 난 막내아들은 초면이다. 가장의 생환은 반갑지만 가족은 이미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 지 오래다. 전쟁 노이로제로 갱에도 적응 못하고, 자식들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울음 같은 분노를 터뜨린다. 막내 마티아스에게 아빠를 대신하는 ‘대장’은 지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축구선수 헬무트. 몇 차례의 어긋남 끝에 축구로 의기투합한 부
독일이 경험한 첫번째 ‘리바운드’의 순간, <베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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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좀 기이한 마블 코믹스 출신의 슈퍼히어로가 있다. 기껏해야 FBI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과 퇴직금을 쏟아부어 장만한 것에 틀림없는 총기들 정도가 유일한 그의 ‘히어로 아이템’이랄까. 전신착용의 섹시 커스튬과 초인간적 능력도 지니지 못한 퍼니셔가 동종업계 경쟁자들(스파이더 맨, 엑스맨, 슈퍼맨 등) 못지않은 인기를 북미지역에서 누려온 것은 바로 그 슈퍼히어로답지 않은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었을 테다.
퍼니셔라는 슈퍼히어로의 탄생비화는 가히 코믹스판 <복수는 나의 것>이라 할 만하다. FBI 요원 ‘프랭크 캐슬’(톰 제인)은 총기밀매조직 소탕작전 중에 사악한 거부 하워드 세인트(존 트래볼타)의 아들을 죽게 만들고, 분노한 하워드 세인트의 손에 프랭크의 가족은 처참하게 몰살당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복수에 불타는 퍼니셔(응징자)로 거듭난다. <배트맨>에서도 그러했듯이 ‘복수’란 원래 평범한 남자가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오랜 마블 코믹스의 법칙 중 하나였다.
그
가장 어두운 슈퍼히어로 복수극, <퍼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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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이상 장이모에게 예술가 운운하면서 시비를 거는 것은 시체를 붙잡고 대화를 거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적어도 <영웅>이나 <연인>과 같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상업영화에 있어서는 그렇다. 장이모를 놀리려는 말이 아니라, <영웅>을 제외하곤 장이모의 전작들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연인>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직 상업성을 목적으로 했으므로 그 상업적 퀄리티, 즉 얼마나 관객을 두 시간 동안 쾌감의 혼수상태로 몰아넣느냐를 질문할 필요만이 있어 보인다.
때는 당조, 서기 859년. 화려했던 시절을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세상. 난세를 맞아 곳곳에서 반란의 세력들이 일어난다. 그중 하나가 ‘비도문’이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사살되었어도 그들의 세력은 더욱더 강화된다. 관에서 일하는 진(금성무)과 리우(유덕화)는 인근 유곽에 새로 나타난 기녀가 비도문의 일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덫을 놓는다. 그렇게 그들은 아름다운,
이미지적 쾌감의 혼수 상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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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학교가 학문만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도 교육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을 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일진대 때로 아이들은 생존하고 군림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음모와 협잡도 불사한다. 너무 하드보일드하다고? 어느 사회가, 어느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십대 소녀들의 일상을 좌우하는 그 엄혹한 생존 법칙을 소개한, 매우 우습고도 신랄한 코미디다.
동물학자인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성장한 케이디(린제이 로한)는 미국으로 건너와 한 고등학교에 편입한다. 끼리끼리 패거리를 이룬 그곳에서 케이디는 아웃사이더 리지와 친구가 되고, 그의 제안에 따라 학교 퀸카 레지나(레이첼 맥애덤스)에게 접근해 약점을 캐내려 한다. 레지나의 옛 남자친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 케이디는 어느새 레지나를 능가하는 권모술수의 달인이 돼버리고, 권력 구도에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선의와 진심으로
십대 소녀들의 생존 법칙, <퀸카로 살아남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