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인 홍콩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컬트가 된 주성치 영화는 품위와 상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버릴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희한한 종류의 코미디다. ZAZ 사단의 패러디 정신과, 인분이나 정액을 과감히 등장시키는 패럴리 형제의 악취미가, <주성치의 007> <홍콩레옹> <홍콩 마스크> <식신> 등으로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에 고루 깃들어 있다. <희극지왕>은 그의 영화치고 좀 점잖은 축에 속해서 주성치를 섬기는 교파에 입문하기에는 비교적 적당한 코스다.
진지함을 뒤집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주성치가 <희극지왕>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007>이나 <마스크>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현장 자체다. 홍콩에서 최고 몸값을 받는 배우인 그는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는 경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대신한다. 영화에서 무능력한 사내가 현실에서 백마탄 기사가 된다는 <희극지왕>의 이야기 구조는, 사회의 열등생이 영화에서 영웅이 되는 일반적 구도를 역전시킨다. 열정은 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던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 놓인다. 그의 품엔 ‘여대생의 첫날 밤’ 클럽에서 교복입고 술시중 드는 여인이 있고, 그가 꿈꾸는 영화엔 감독도 통제 못하는 스타 여배우가 있다. 현장에선 한마디 대사도 주어지지 않지만 우연히 특수임무를 맡게 된 현실에선 예기치 못한 상황이 꼬리를 문다. 뒤바뀐 세상에서 주성치는 낭만과 낙관이 넘실대는 무대를 꾸민다. 주인공은 카메라 앞에서 피지 못한 열정과 재능을 십분발휘, 악당을 물리치고 미녀를 얻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뜯어보면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주성치식 웃음은 곳곳에 게릴라처럼 잠복해 있다. 특히 주성치가 막문위를 품에 안고 울먹일 때 콧물이 길게 늘어져 그녀의 입술에 닿을락말락 하는 장면의 엄청난 클로즈업은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정액무스(?)만큼 파괴력이 크다. 장백지의 상큼한 매력도 돋보이는데, 서 있는 주성치에게 깡총 올라타 안기는 장면은 반복과 생략을 통해 삶을 맑고 건강하게 바라보는 에너지를 샘솟게 한다. 군데군데 황당한 비약이 있긴 해도, 역시 주성치는 위안을 구하는 백성들의 궁휼함을 돌본다는 점에서 ‘코미디의 왕’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