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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아이들이 부천의 붉은 카펫을 밟았다. 이 사건은 50년쯤 뒤 국사책에 두줄 정도로 나올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라고 말하면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겠지만, 우리 꼬맹이들에게는 너무도 흥분된 일이었다. 난 꼭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입고 나온 듯한 턱시도를 입고 붉은 양탄자를 밟으려 했건만 감독님께서 참으라고 하셨다.(참길 잘했다. 턱시도 입은 사람은 내 눈에도 안 보였다.) 어쨌든 대망의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신은 화려하고도 예술의 향기가 여기저기서 흩날리는 듯했다. 개막식 중 영호인들을 호명해서 무대로 나가 인사하는 순서였는데, 드럼 치는 상혁이가 자꾸 떨린다고 했다. 난 얼어서 말도 못했다. 옆에 부천 페스티벌 레이디인 장진영씨가 서 있었다. 검은 드레스르 입은 그냐와 빨간 양탄자는 정말 잘 어울렸다. 판타스틱했다. 개막작인 <레퀴엠>은 아주 강렬했고, 암울했다.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의 나이는 몇살일까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소녀,
영화배우 크라잉 너트의 부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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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들을 막을쏘냐. 역시 ‘판타스틱’영화제다운 ‘판타스틱’ 게스트들. 턱시도의 가식을 벗고 청바지와 반바지 혹은 스트리킹으로 무장한 이들은 부천의 열광적인 관객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망아지들 같았다.“누드, 니콜 키드먼과 싸우는 무기”<네이키드 어게인> 마르텐, 토르켈 너트슨 형제 감독“팬티 치우지 마세요, 그래야 다 벗었는지 알 거 아니에요?” 스웨덴에서 날아온 유쾌한 형제. <네이키드 어게인>의 형제감독 토르켈과 마르텐 너트슨은 “팬티는 입어도 된다”는 사진기자의 배려를 묵살하고 마지막 한장까지 과감히 벗어던졌다. 이미 자국인 스웨덴 개봉시 TV 모닝쇼에서, 또 올해 칸영화제에서 “니콜 키드먼이나 <반지전쟁> 같은 대형영화와 싸우는 유일한 무기”로 누드를 선택한 ‘전과 2범’의 형제는, 그리 유혹적인 몸매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홍보하기에는 더없이 휼륭한(?) 몸을 부천 관객 앞에 벗어보이면서 새로운
부천을 휘젓고 다닌 `유별난` 게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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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성공적으로 폐막, 지난해보다 관객 4천명 늘어, 부천 초이스 장편작품상 <뉴질랜드 이불 도난 사건>에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7월20일 닻을 내렸다. 판타스틱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느 해보다 넓게 펼쳐보인 35개국 140편의 장·단편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한 올해 부천영화제의 상영관을 찾은 관객은 7월20일 현재 3만8443명(야외상영 관람객 1만명 별도). 입석까지 매진된 20일 심야상영과 21일 심야상영 입장객을 더하면 총관객 수는 약 4만명에 이르러, 유료 일반관객의 수에서 4회 영화제를 4천명가량 웃도는 알찬 ‘흥행’을 기록했다. 개막 전부터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호금전 특별전은 예상을 넘어서는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 <용문객잔>과 <충렬도>가 1회씩 추가상영을 됐고, 지난해 신설된 제한구역 역시 섹션의 차별성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부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겨냥하는 관객의 고른 호응을 샀다.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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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제목감독주요 스탭수상경력1991년어머니,당신의 아들이상인촬영 김용균 연출부 김응수, 김인수, 김경실 조명 임성찬, 김용근 제작부 남궁균,이선미1992년흔들림없이정지우촬영 이두만조연출 강성구1993년 금관청소년영화제장려상1993년또 하나의 눈빛장기수5학년 2학기이철민장희선, 한승희, 엄소현등과 공동제작1994년사로정지우촬영 이두만이탈리아 몬테카니니영화제초청셔터맨박찬옥촬영 박찬옥원정김용균촬영정지우스무살 젊은이에게(비디오)정지우, 장기수, 이철민촬영 이두만, 최순열 조연출한승희, 장희선1995년그랜드파더김용균촬영 김용균 기획 김진상조명 정지우 조연출 김홍국제2회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캣우먼&맨박찬옥촬영 정지우 조명 김용균휴가김용균기획 이선미, 김진상 조감독장희선, 임필성 촬영 정지우 조명 최순열 녹음 김진상한강이와 샛강이(비디오)김진상한강 시민비디오축제 특선1996년생강정지우기획 김용균, 임필성 공동각본박찬옥 촬영 이두만, 김홍국 사운드디자인 김진상, 정윤철제3회 서울단편영화제
영화제작소 청년 · 청년필름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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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경희대, 한양대, 서울대, 서울예대 재학생 14명 영화제작소 청년 결성. 당시 주요 인물 이상인, 김용균, 김응수, 김인수, 김경실, 임성찬, 김용근, 남궁균, 이선미 등.1991년 - <어머니 당신의 아들>(연출 이상인) 상영.1992∼93년 - 정지우, 김광수, 이경희, 이철민, 장희선, 한승희 등 가입(이상인 유학, 김용균 군입대 등 <어머니…> 멤버 해산). <흔들림없이>(정지우), <또 하나의 눈빛>(장기수), (이철민) 제작.1994년 - 김용균, 정지우, 이선미, 장희선, 이철민, 이경희, 김인수, 한승희, 최순열, 우선경, 송광수 등 활동(김광수, 장기수 탈퇴), <사로>(정지우), <셔터맨>(박찬옥), <원정>(김용균), <스무살 젊은이에게>(정지우, 장기수, 이철민) 제작.1995년 - 김진상, 박찬옥, 임필성, 김홍국 가입(이철민, 이경희 탈퇴), <그랜드 파
청년 활동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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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어머니, 당신의 아들>시놉: 대학 교지 편집위원인 인영은 친구의 분신자살을 접한 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전선에 나선다.당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청년학생운동을 역사적으로 다룬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대학 4학년생 입장에서 제도언론이 묘사하는 운동권과 학생의 모습이 너무 왜곡돼 있다고 느낀 점도 영향을 끼쳤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지나치게 과잉돼 있더라. 하지만 영화란 것은 저렇게 ‘무식’하게, 심플하게 찍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 때문에 뜻하지 않게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80년대를 다룰 생각인 내게 이 영화는 중심점 구실을 하는 것 같다.정지우 <생강>시놉: 가사와 생계, 육아까지 모두 책임지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아내와 노동운동가인 남편의 이야기.꽤 오랫
감독이 말하는 청년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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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필성/ 단편 <소년기> <베이비> 연출·장편데뷔 준비중“정말 독한 사람들이었지”“서울단편영화제에서 지우 형의 <사로>를 보고 들어갔다. 94년이었는데 처음에는 준회원이었다. 한달 동안 무슨 소림사처럼 청소만 시키던 선배들은 회의만 하면 상대방이 울기 전까지 씹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다들 독한 사람들이었다. 영화이야기만 나오면 말이다. 삼겹살 한번 못 먹고 촬영장에서 소보루 빵으로 연명하면서도, 다들 최고급 기자재만을 구입한 것 보면 알 수 있다. 내게 청년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후배 입장에선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물론 그게 내가 아마추어 수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장희선/ <고추말리기> 연출“결과물? 작품+@”“청년에서 비디오로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 본 사람들이 그러더라. 너랑 너무 다르네. 그동안 몰랐던 내가 거기 있다는 얘기였는데, 하긴 그런 ‘나’는 나 스스로도 그제야 발견한 거였다. 나를 찾기, 그러
나의 청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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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약한 시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첫 작품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매캐한 최루탄을 뚫고서 나왔을 때 그들은 오직 젊다는 이유로 세상에 맞설 수 있었다. 그때 영화제작소 청년은 이념 성향이 강한 학생들이 만든 또 하나의 장산곶매였다. 그들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총과 칼이라고 믿었다. 혈기방장한 대학생들에겐 당연한 일이었지만 세상이, 영화가 그처럼 만만한 건 아니었다. 한차례 겁없는 도전에 대해 세상은 코웃음을 쳤다. 장산곶매가 사라진 것처럼 청년도 그때 증발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좌절 대신 지혜를 배웠다. 그들은 변혁 대신 영화를 택했고 아마추어리즘 대신 근성을 길렀다. 이후 청년은 매번 주위 변화를 한 템포 빨리 포착한 뒤 자신들만의 돌파구를 마련해갔다.무엇보다 그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자신들만의 영화만들기였다. 그들은 자생적으로 만든 시스템 하에서 풋내기를 어엿한 감독으로, 열악한 16mm 단편영화를 성실함의 미덕이 가득한 작품으로 만
영화제작소 청년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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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소 빵집의 소녀La Boulangere de Monceau 1963년, 26분, 흑백10년에 걸쳐서 만든 여섯편의 ‘도덕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도덕 이야기’ 시리즈의 기본 패턴인,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남자 이야기가 첫선을 보인다. 대학생인 슈뢰더는 거리에서 한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매혹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는 갑작스레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녀를 찾으러 거리를 돌아다니던 슈뢰더는 몽소 빵집을 드나들게 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점원 아가씨를 유혹하려 한다. 빵집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려는 날 그만 슈뢰더가 찾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슈뢰더는 고민에 빠진다.수잔느의 경력La Carriere de Suzanne 1963년, 52분, 흑백‘도덕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수잔느의 경력>은 첫 번째 작품인 <몽소 빵집의 소녀>보다 좀더 길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영화는 서로 친구 사이인 두 남자가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미리 보는 상영작 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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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 히치콕에 대한 연구서를 썼고 57년부터 63년까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던 에릭 로메르는 동료 누벨바그 멤버들 가운데 지적으로 가장 깊이있는 글을 쓴 평론가였다. 그가 48년에 쓴 ‘영화, 공간의 예술’이란 글은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이란 글과 함께 누벨바그적 사고에 원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뛰어난 평론가이기도 했던 로메르가 다른 몇몇 위대한 시네아스트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 일단이나마 들어보도록 하자. 로베르토 로셀리니 나는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기 전에 실존주의 시기를 거쳤는데, 그것은 첫 영화를 만들 때에도 내게 영향을 주었다. 나를 실존주의로부터 멀리 하게 한 사람이 바로 로셀리니이다. <스트롬볼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그 영화를 몇분 정도 보자 나는 사르트르적인 리얼리즘의 한계를 느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스트롬볼리>가 위
평론가 에릭 로메르가 말하는 시네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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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는 10년이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여섯편의 도덕이야기 시리즈를 완결짓고 나서는 전작들과는 다른 세계 속으로 진입을 감행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을 충실하게 각색한 이었는데, 로메르는 고전적 기품과 균제의 아름다움을 갖춘 이 시대극을 만든다는 게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앞으로 자신의 창조적 노력을 오로지 이런 영역에만 바치겠다고 단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건만 허락되었다면 과연 로메르는 그렇게 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여하튼 더 많은 제작비가 필요하고 그렇다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지도 못하는 이런 프로젝트에 그는 실제로는 더이상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매우 혁신적인 또다른 시대극 <갈로아인 페르스발>을 끝으로 로메르의 영화는 친숙한 동시대 이야기로 되돌아왔고 그리고는 다시는 과도한 ‘일탈’을 시도하지 않았다.과 <갈로아인 페르스발>을 만들었던 7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는 아마도 로
에릭로메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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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제작진은 판권을 반드시 확인하고, 판권에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보류한다. 김기영, 신상옥 감독의 작품 가운데도 실제로 그런 문제가 걸려 방영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주)시네라인 코리아(대표 정진향) 등 배급업체 몇 군데가 판권자 확인, 계약 등의 과정을 전담하고 있다. 개인이 계약문제를 처리하기엔 세금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시네라인 코리아의 경우 교육방송과 1년 정도 함께 일을 하기로 약속했고, 지금까지 약 30여편을 계약했다. 먼저 이승훈 PD와 어떤 영화를 방영할 것인지 이야기한 뒤, 충무로 원로 영화인들을 통해 판권자를 확인한다. 그걸 ‘구전’ 확인이라 부른다. 그리고 영상자료원에서 필름 존재여부와 네거필름 입고자 이름을 확인한다. 그 두 가지가 일치하면 곧바로 판권자에게 연락한다. 직접 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호남권 배급업자 출신 한정희씨나 길박사라 불리는 길창익씨 등의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취한다. 계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판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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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1958년, 감독 김소동 출연 김승호, 최은희감독이자 직접 배우로 출연하기도 하는 김소동씨의 연기는 일품이다. 숏 등에서 프랑스 작가영화 느낌이 많이 난다. 이런 맥이 끊기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어졌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아트영화의 계보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대사가 별로 없이 화면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구성이 탁월하다.<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년, 감독 김수용 출연 김진규, 남정임, 허장강초반 40분은 장 뤽 고다르의 <경멸>이 떠오를 정도로 훌륭하다. 한계라면 나중에 신파로 빠진다는 것. 충무로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다.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배우들이 모두 실명으로 출연한다. 김진규의 “제작자는 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란 말이요!”라는 대사는 인상적이다. 당시 영화인들의 고민이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과 똑같다는 데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십년세도>1964년, 감독 임권택 출연 신영균, 김동원, 전계현, 허장
<한국영화 걸작선>이 발굴한 영화,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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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70년대 한국영화 방송하는 EBS 프로그램 <한국영화 걸작선>이 궁금하다● 일요일 밤 10시10분. 채널13으로 가보자. ‘한국영화 걸작선’ 두툼하고 육중한 고딕체 타이틀이 떴다가 사라지면, 중년 남자가 극장 객석 사이 통로를 걸어내려오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가 영화, 혹은 영화라는 이름의 추억 여행 가이드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 남자, 김홍준 감독은 객석에서, 영사기 옆에서, 그날의 영화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요리를 선택한 시청자들을 위한 전채인 셈이다. 그리고 메인 디시인 영화가 시작되고, 끝난다. 여기서 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끈다면, 그는 ‘초짜’ <한국영화 걸작선> 시청자다. ‘진득한’ 마니아들은 2, 3초 동안의 검은 자막을 지켜보며 한숨 돌린다. 달콤한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주 방영작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듣는 영화이야기나 김홍준 감독이
<한국영화 걸작선>을 만드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