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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지 점유율 55% 돌파, 일각에선 상업적 대작주의 경계자국영화 시장점유율 55%!할리우드영화를 저주하는 프랑스영화인들의 기원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프랑스영화의 믿기 어려운 질주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프랑스영화제에 온 프랑스감독들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영화인들은 반할리우드 혹은 문화적 다양성의 열혈 전도사들이다. 국제영화제에서 할리우드영화의패권주의를 비난하거나 자유무역시대에도 문화의 예외성이 옹호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거나 한국의 스크린쿼터투쟁을 입이 마르게 칭송하는 사람들을보면 대부분이 프랑스영화인이다(유사 할리우드 키드인 뤽 베송조차 그랬다). 그러나 막상 프랑스관객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6년37%를 넘어섰던 자국 시장점유율이 28.5%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자마자 <늑대의 후예> 등을 필두로 프랑스영화들이엄청난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작품의 힘이 이룬 이유있는 흥행아멜리에지난 52주간의 흥행순위
프랑스영화 대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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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에 나오는 캐릭터에 얽힌 징크스가 있다. 1. 작은 역할로 나왔다가 다음에이름부르며 나오면 죽을 확률이 가장 높다. 2. 한참 안 나오다가 갑자기 비중있게 나오면 죽을 확률이 높다. 3. 말로만 언급하다가 실제로등장하면 죽을 확률이 높다. 극장판에서는 ‘잘 차려입은 남자’가 죽은 것으로 나왔고, 시즌 6에서는 권력협회가 한꺼번에 죽어버리고 스펜더 요원까지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이런 난관을 헤치고 시즌 7까지 나온 인물들은 가히 불굴의 캐릭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폭스 멀더별명 도깨비, 귀신잡는 멀더(Spooky Mulder). 본래 행동과학부의 유능한 요원이었지만 X파일을 발견한 뒤에는 납치된 동생 사만다를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헌신하고 있다. 외골수이고 냉소적인 면이 있지만 스컬리 앞에서는 유약한 면을 숨기지 않는다.데이나 스컬리멀더의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의지할 상대. 멀더의 의견을 반박하지만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인물이다. 분석적이며 냉철하지만 때로는
시즌 7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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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시즌의 에피소드는 총 22편이다. 국내 방영분의 제목은 아직 첫회를 제외하고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 이미29일 방송된 1회 부터 시즌 마지막회 <Requiem>까지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본다.1회 (The6th Extinction) 감독 킴 매너스6번째 시즌의 마지막편 <창세기의 비밀>에서 이어지는 작품.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수수께끼의 문서조각을 맞추는 과정에서괴이한 일이 연속해서 벌어지고, 이 문서의 탁본을 보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멀더를 구하기 위해 스컬리는 아프리카로 향한다. 아프리카에 도착한스컬리는 이 문서조각이 우주선의 파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비밀을 파헤치려 하지만 바닷물이 끓어오르며 핏빛으로 변하거나 엄청난 날벌레떼들의습격을 당하는 등 알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스컬리는 우주선 파편에 성경 구절을 포함해 코란, 고대의 전설 등이 뒤섞여 있고 심지어인간 DNA 구조의 비밀까지 숨겨져 있으며, 그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즌 7 에피소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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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오후 KBS 본관 4층의 녹음스튜디오는 유난히 들뜬 분위기였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스튜디오에 뭉친 <X파일>의 성우들은 동창회에서 오래된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양 반가운 인사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바로 주인공 폭스 멀더 역의 이규화, 데이너 스컬리 역의 서혜정씨였다. 지난 94년 10월 첫 에피소드를 방송한 이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이 FBI 특수요원들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그들이기에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너무 오랜만이다. 브라운관에서 듀코브니를 보니까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다. 정말 가슴이 설렌다”는 이규화씨에게나 “한 2년쯤 쉬다보니 그동안 허전했다. 오늘 이 녹음실에 들어오니까 이제야 내 자리에 되돌아온 느낌이다”는 서혜정씨에게나 <X파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둘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팬클럽까지 ‘거느리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또 멀더와
의 목소리 주인공 이규화 & 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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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찾아온 X파일 새 시리즈, 매주 금요일 밤 12시 KBS2TV서 방영2년전에 헤어진 상대가 아직도 그립다. 그래서 늘 만나던 시간엔 가슴이 떨리고, 어두운 밤이 되면 괜히 서성대며, 어딘가 한구석이 허전해서 TV리모컨만 이리저리 돌린다.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으면, 아주 많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드라마 <X파일>(TheX-Files) 새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창세기의 비밀>(Biogenesis)을 마지막회로 방송한 것이 1999년 10월11일,특집 프로그램인 X파일, 그 뒷이야기 (Inside the X-Files)가1999년 10월18일 방영되었으니, 2001년 6월29일 새 시리즈가 방영되기까지 거의 2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셈이다. 그 2년 동안 KBS 홈페이지와 외화부에는 늘 요청이 올라왔다. 도대체 <X파일>은 어디로 갔느냐, 언제 방영해 주느냐, 돌아오면월요일 11시에 제대로 해줄 것이냐 등등등. &l
시즌 7 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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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카>Francisca,1981년 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과거와 현재>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좌절된 사랑의 4부작’ 가운데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 소설가 카밀루 카스텔로 브랑쿠의 삶을영화화했는데, 그는 올리베이라가 이전에 만든 영화 <운명적 사랑>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19세기의 포르투갈. 유망한 젊은 소설가브랑쿠는 젊은 영국 여성 파니 오웬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브랑쿠의 친한 친구와 결혼한다. 장 마리 스트라우프의 미니멀리즘적인 테크닉과막스 오퓔스의 영적인 주제가 결합되어 있는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지배의 공허한 영광>Non,ou a Va Gloria de Mandar/ Non, or the Vain Glory of Command,1990년 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1974년, 일단의 포르투갈 병사들이 앙골라로 향한다. 앙골라를 종단하면서 그들은 포르투갈의 역사, 그 속에서의 애국심, 민족주의, 식민주의등에 대해 이야
포르투갈 영화제 | 상영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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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거의 소개가 된 적이 없지만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소수의 영화들은 유럽의 평론가들을 매혹시키는 원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현재 예술영화 최후의 보루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체 어떤 감독들이 포르투갈의 영화를 이끌어가는지 대표적인 감독 세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도록 한다.주앙 세자르 몬테이루(1939년생)는 올리베이라의 뒤를 잇는 세대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감독이다. 런던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그는 올리베이라의 <운명적 사랑>에 출연하기도 했고 또 60년대에 논쟁적인 기지가 넘치는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1972년에 <한 영화의 단편들: 은혜>라는 첫 장편을 만든 몬테이루는 <노란 집의 기억>(1989)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영화와 함께 <신의 코미디>(1996) 등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을 토해낸 그는 자기의 모든 영
포르투갈 영화제 | 주목받는 차세대 포르투갈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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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영화 <리스본 스토리>(1994)의 한 장면에서 우리는 현자처럼 보이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신을 닮을 수 있기에 예술가들은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는 그는 바로 포르투갈의 거장 영화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이다. 비록 잠깐동안이나마 그가 등장하는 이 장면을 통해 아마도 벤더스는 영화 속에서 올리베이라라는 이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슬쩍 언급하고 그럼으로써그에 대해 경외의 눈길을 보내고자 한 것 같다. <리스본 스토리>는 우선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답사하고 탐구하는 영화다. 그런 영화가올리베이라 같은 이를 외면하고 지나간다는 것은 불완전함을 자초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리베이라야말로 현재 포르투갈이 아주 떳떳하게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예술가일 테니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리스본 스토리>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것의 지난함과 무용성에대해 회의하고 고민하며 성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럴
포르투갈 영화제 | 신이 축복한 재능, 1백년의 영화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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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뇰 드 올리베이라.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 이 이름은 수십년동안 포르투칼 영화와 동의였으며,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영화의 올림포스”로 추앙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60대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90대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왕성해지고 깊어지는 불가사의한 이력의 소유자.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어떤 요동도 없이 오가는 기적같은 노감독 올리베이라를 만난다. 서울시네마테크는 그의 작품 4편을 현대 포르투칼 영화 4편을 아트선재센터에서 상영한다. -편집자■ 상영표1회2회3회4회7/5지상의 이곳(1:30)프란치스카(3:30)피(6:30)존 웨인의 히프(8:30)7/6존 웨인의 히프(1:30)애니메이션 모음(4:00)지배의 공허한 영광(6:30)지상의 이곳(8:30)7/7지배의 공허한 영광(1:00)애니메이션 모음(3:30)아브라함의 계곡(5:00)세상의 시초(8:30)7/8프란치스카(1:00)피(4:00)세상의 시초(6:30)불안(8:30)
포르투갈영화의 아버지, 마뇰 드 올리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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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호금전에 대해 말하자면 꼭 얘기해야 할 사람이 있다. 그는 70년대에 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대구 시민극장, 오스카극장 등을돌아다니며 홍콩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압도하는 스펙터클, 누추하고 갑갑한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상의 세계, 영웅의 세계. 그는 실현할수 없는 이상을 사진과 포스터를 모으는 것으로 대신하려 했다. 어느날, 그가 모아온 수백점의 사진과 영화포스터(그 얇은 지질이란!)가 모조리불살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아들의 이상한 취미 때문에 쌓여가는 종이더미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그가 어른이 되고 직업을갖게 되는 20여년 동안의 과정에서 비디오가 보급되었고, 그는 이제 비디오 수집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홍콩, 싱가포르를 여행하며 사모은자료들로 그는 불법 사설 쇼브라더스 라이브러리를 완성하였다.나 의 영 웅, 호 금전호금전은 무협영화의 아버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파(新派)무협영화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완성
호금전 | 황홀했던 추억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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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 | 감독 나는 젊은 시절, 그가 감독한 <대지아녀>에서 엑스트라로일본 병사 노릇을 하면서 그의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곤 곧바로 그를 찬미하고 존경하게 됐다. 그는 큰 스튜디오를 완벽하게 장악하면서도 철저히이타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를 중국 민담 속의 검객 같다고들 하는데, 나도동의한다. 그는 영화의 시인이요 영화의 화가이며 영화 철학자다.운린웬 | 영화업자 호금전은 영화를 만들 때마다 두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하나는 늘 예산을 초과하는 것, 다른 하나는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용문객잔>의 성공 이후 그의 프로듀서는 영화를 연휴시즌에 맞춰개봉하려 했지만 호금전은 늘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한번 일한 프로듀서는 다시 그와 작업하려 하지 않았다. 오랜 친구였던 레이먼드 초우조차도<영춘각의 풍파>와 <충렬도>를 하고는 다시 그와 손잡지 않았다. <협녀>
호금전 | 호금전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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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영화의 무술은 아주 새롭다. 이전의 무협영화와는 공통점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무술장면을 만들어냈나.그건 내 무술감독인 한영걸의 공이다. 무술감독이란 용어 자체가 내가 한영걸을 그렇게 부르면서 태어났다. <대취협>을 만들 때 내게액션이란 아주 힘든 것이었다. 난 무협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꾸미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지만 무술은 해본 적도 없고싸울 줄도 몰랐다. 그래서 경극 배우를 하던 한영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그의 무술 동작을 공부했고 그중에서 최고의 것을 뽑아냈다. 무협이야기엔 익숙했으니까 거기에 딱 맞는 동작을 골라낸 것이다. 나 이전엔 무술감독이란 존재 자체가 없었다. 한영걸을 위해 무술감독이란 조어가태어난 것이다.+ 무술 동작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당신 이전에 따로 없었단 말인가.음, 물론 있긴 했다. 그러나 차원이 달랐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안무를 담당했다. 연극에서처럼.+ <화루혈루사>라는 당신의 새 프
호금전 | 호금전의 마지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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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門客棧<용문객잔>1968년간신들의 모함으로 충신은 살해되고, 그의 자식들도 간신들이 파견한 자객들에게 쫓긴다. 무고한 충신의 자식을 보호하려는 협객들과 황궁의 자객들이주점 ‘용문객잔’에서 마주친다. 1967년의 <대취협>과 함께 호금전 스타일의 확립을 알려주는 초기 걸작. 두 작품은 일본 사무라이영화의뒤쫓기에 급급하던 홍콩영화계를 뒤흔들었다. 사실적이고 자극적인 액션 대신 경극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동선과 빠르면서도 시적인 리듬의 세련된편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호금전은 무술 지도를 맡은 한영걸뿐만 아니라 출연진에도 경극 배우들을 대거 참여시켜 무협의 톤을 완전히바꿔놓았다. 여 검객의 등장도 기존 무협의 관습을 깨며 호금전 영화의 시적인 결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개봉 당시 홍콩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전역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한국에도 <용문의 결투>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서극의 <신용문객잔>은 코믹멜로 버전.俠女<
호금전 | 부천영화제 회고전 초청작 5편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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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영화평론가아직도읽히고 있는 <영화에 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에서 홍콩 무협영화 <협녀>가 영화사상 ‘아흔한편의 고전’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31위에등극하였다. 그건 심지어 펠리니의 , 막스 오퓔스의 <롤라 몽떼>, 자크 타티의 <플레이 타임>, 베리만의 <페르소나>마저 뒤로따돌리고 뛰어넘은 것이다. 이 선정은 영화 미학에 관한 고전주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구회영(이라고알려진 김홍준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되자 첫 번째 오마주를 호금전에 바치기로 작정하면서,결코 자신의 선택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도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생각이다.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호금전이 70년대 아시아영화에서 해낸 역할은 마치 50년대에 오즈가, 60년대에 샤트야지트 레이가, 또는 80년
호금전 | 호금전 감독의 작품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