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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종·횡·사·해, 장막을 걷어라!
2001년 확실히 한국영화는 활황이다. <친구> 덕에 시장점유율 39%를 기록한 파죽지세는 여름에도 꺾이지 않고 있다. <신라의 달밤>이 전국관객 4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다 <엽기적인 그녀> <소름> <세이예스> <무사> <베사메무쵸> <봄날은 간다>로 이어지는 하반기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시장점유율 40% 돌파가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닌 시점이기에 현장도 활기가 넘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한 작품들은 지금이 가장 바쁜 때다. 막 촬영준비를 끝내거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작품들이 6개월 레이스의 출발선상에 정렬해 있다. 과연 어떤 영화들이 내년 상반기 관객과 만날 것인가?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질투는 나의 힘>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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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팬들은 그동안 타이영화를 국제영화제 등을 통해서만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르네상스를 선언한 타이영화들이 속속 국내에 대중적으로 소개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올 하반기 개봉 대기작 명단에 오른 타이영화는 현재 4편. 이들 작품은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용유스 통큰턴 감독의 <철의 여인들>은 타이에서 1억 바트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올해 베를린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등에 출품돼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오직 한명을 제외하고 게이 또는 성전환자 등으로 구성된 한 지역의 배구팀이 전국대회에 출전한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했다. 허술한 구석도 다분히 엿보이지만 마이너리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엿보이는 넉넉한 작품.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내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유
국내 개봉 앞둔 타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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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라논지 니미부트르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작품. 아마도 2001년도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영화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966년에 출간된 동명의 원작소설은 타이의 젊은이들에게는 일종의 성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많은 감독들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자 했지만, 논지가 뜻을 이루었다.40년대의 방콕을 배경으로, 사랑과 성, 증오와 배신에 관한 이야기가 잔다라라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잔다라의 어머니는 잔다라를 낳다가 세상을 뜨고, 아버지는 그를 일생 동안 증오한다. 아버지의 후처가 된 이모가 그를 감싸주지만 그의 외로움과 반항은 점차 깊어만 간다. 그는 세명의 여인과 운명적 관계를 맺게 되는데,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동급생, 그리고 이웃집으로 이사온 아버지의 옛 연인 분루엥 부인,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사촌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잔다라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극적 긴장감이 증폭되며, 잔다라가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와
2001 하반기 타이영화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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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 지속적으로 실험영화를 만들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 바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다. 국내에는 지난 전주영화제를 통해 최근작 <정오의 낯선…>(2000)이 소개된 바 있다. 그는 ‘킥 더 머신’이란 개인 회사를 만들어 실험영화 제작은 물론, 워크숍, 강좌 등을 통해 실험영화 문화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킥 더 머신’은 어떤 회사인가.= 지난해 문을 열었는데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프로젝트가 있으면 프리랜서들이 합류해서 같이 일을 하고. 타이에서 실험영화는 타이 필름 파운데이션 등에서 부정기적으로 상영하고 있지만, 제작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킥 더 머신을 만들었다.+ 실험영화 제작 워크숍도 하는데, 강사이름에 펜엑, 옥사이드도 들어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주류 영화감독인데, 잘 도와주나.= 지난해 10월에 첫 워크숍을 했는데, 펜엑은 바빠서 약속을 못 지켰다. 당시 메이저회사 사람이나 저명한 영화평론가도 와서 강의했다. 아쉬운 점은 워크숍이 끝난 이후 완성된
실험영화 위해 ‘킥 더 머신’ 설립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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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뉴웨이브의 중심에는 늘 논지 니미부트르가 있다. 1997년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로 데뷔한 이후 <잔다라>에 이르기까지 단 3편만을 만들었지만, 국내시장뿐 아니라 전세계를 향해 타이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보인 최초의 감독이었고, 동료나 후배의 데뷔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는 메이저 회사인 ‘필름 방콕’에서 감독 겸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타이의 대표적인 여성제작자인 듀앙카몬 림차로엔과 함께 독립영화사 ‘시네마시아’를 차려 첫 작품 <잔다라>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먼저 한창 믹싱작업중인 <잔다라>에 대해 묻고 싶다. 10명이 넘는 감독이 원작소설이 있는 이 작품의 영화화를 원했지만 결국 당신이 하게 되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낭낙>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차기작이 무엇인지 물어왔고, 나 또한 심적 부담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성애소
<낭낙> <잔다라> 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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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영화평론가 돔 숙봉은 타이영화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프린트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듬해부터 필름 아카이브 설립 운동을 시작하였다. 초창기에는 정부로부터도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언론을 통해 겨우 모금운동을 펼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민의 후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부를 끌어들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우연히 1897년 유럽을 방문하였던 출랄롱코른 왕의 모습이 담긴 필름이 스웨덴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 1983년 스웨덴 필름 아카이브 주최로 열린 세계 필름 아카이브 연맹 총회에 참가하여 스웨덴 필름 아카이브가 보관하고 있던 그 문제의 필름을 찾아내기에 이르른다. 타이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영주로 꼽히는 출랄롱코른 왕(<왕과 나>의 황태자가 바로 어린 시절의 그이다)에 대한 타이 국민들의 존경심은 대단한데, 바로 그
돔 숙봉의 외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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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영화 연일 흥행기록 경신, 150억짜리 영화 만들며 산업화 시동도대체 타이영화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1997년 세명의 신인감독이 동시에 데뷔를 하였다. 당시 타이는 금융위기의 와중에 있었고 영화산업 역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해에 100여편을 만들던 규모에서 20편 미만으로 뚝 떨어진, 그야말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들 세명의 감독이 내놓은 데뷔작들은 종래의 타이영화와는 전혀 새로운 작품들이었고, 2001년의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타이영화의 부활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논지 니미부트르의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과 옥사이드 팡의 <달리는 사나이>, 그리고 펜엑 라타나루앙의 <펀 바 카라오케>(이들 3편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등은 비록 평단의 논란은 있었지만, <댕 버럴리와 그 일당들>이 당시까지의 모든 타이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움으로써 최소한 산업적 가능성은 입증해
타이영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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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적이고 어처구니없는 판타지 <…따뜻한 물>“그럼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이 노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어떻게 여자의 몸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외설적이고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통쾌하기 짝이 없는 판타지가 75살 감독의 것이 될 수 있었을까. 젊은 시절보다 어떻게 더 발칙하고 자유분방할 수 있을까(이 시점에서 이마무라에게 먼저 고백을 했다. 칸영화제에 가지 않았던 질문자는 아직 <…따뜻한 물>을 보지 못했음을. 그러나 그 영화를 소개한 글들만 봐도 궁금함을 참기 힘들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하게 됐음을. 이마무라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에 대해 물어본다고? 그래, 그럼 어디 무리해서 질문을 해보시오.” 가벼운 잽인데, 맞는 사람은 아찔하다. 식은땀 나는 한방이다).그런 초현실적인 묘사를 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습니까.“처음엔 고민을 했지. 이게 오버는 아닐까 하
어떤 거장의 초상, 75살의 푸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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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애들 손좀 봐야겠습니다.”오즈 야스지로가 <도쿄 이야기>(1953)를 찍을 때, 이마무라 쇼헤이는 조감독이었다. 이마무라가 손봐야겠다고 한 건 초등학생 무리로 출연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오즈 영화의 출연자답게 앞만 보고 너무도 질서정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마무라의 생각은 이랬다. ‘애들이 뭐 저래. 내가 저 나이 땐 저러지 않았어. 저건 애들이 아니야. 군대지.’ 이마무라는 오즈의 마지못한 허락을 얻어 아이들을 흔들었다. “야,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난리법석을 피웠다. 대열에서 이탈해 엉뚱한 데 가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촬영중에 오줌 싸는 아이까지 있었다. 물끄러미 이를 보던 오즈가 말했다. “이마무라군. 안 되겠네. 내 방식대로 해야겠어.”이마무라는 이것이 사부인 오즈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마무라는 오즈를 떠났다. 오즈의 평생의 영화적 거처인 쇼치쿠를 떠나
어떤 거장의 초상, 75살의 푸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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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숨결이 교감하는 애니메이션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조물주,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을 찾았다.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7월21일 일본에서 개봉돼 흥행의 순풍을 타는 틈을 빌어 국내 애니메이션업체 DR무비의 초청으로 서울을 다녀간 것. 일본애니메이션 외주제작으로 명성을 다져온 DR무비는 <원령공주>에서 일부, <센과…>에서 본격적으로 지브리의 외주를 받아 작업에 참여했다. 마침 <이웃집 토토로>의 국내 개봉도 코앞에 둔 25일, 미야자키는 신라호텔에서 1시간여의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백발에 눈썹이 짙고 검은 뿔테안경을 낀 점잖은 인상에, 뜻밖에 이따금 아이 같은 미소를 띄우며, 간명하고도 빈틈없는 대답을 들려줬다.+ 한국에 온 것이 처음인데, 어떻게 오게 됐나.=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면서, 지브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외주를 맡겼다. 그 일을 해준 DR무비에 감사차 오게 됐다. DR무비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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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이 말하는 `나를 움직인 미야자키 하야오`움직이는 그림으로 살아난 그의 판타지가 얼마나 많은 꿈을 피워냈던가. 코난과 토토로의 아버지, 인간과 자연의 숨결이 교감하는 애니메이션의 소우주를 창조해온 조물주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을 방문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 같은 TV시리즈부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의 장편까지, 인간과 문명, 자연의 충돌과 공존을 담은 애니메이션 상상화를 펼쳐온 일본 아니메의 거장이다. 그간 공들여온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7월21일 일본에서 개봉돼 흥행의 순풍을 타면서 한숨을 돌린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마침 국내에 개봉하는 <이웃집 토토로>로 미야자키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려는 찰나, 때맞춰 온 이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그의 영토에서 새로운 꿈을 만났다는 박재동 감독의 환영사와 함께.편집자 미야자키
토토로의 아버지, 서울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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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떻게 오래 지속되는가. 이는 영화에 있어서도 무수한 대답이 가능한 질문일 것이다. 올해 부천영화제가 성사시킨 숙원사업 ‘호금전 회고전’에 초대된 캐나다 콩코디아대 영화과 피터 리스트 교수와 <홍콩 영화: 또다른 차원>(Hong Kong Cinema: The Extra Dimensions)의 저자 스티븐 테오에게 그 사랑의 방식은 탐구와 전파. 80년대부터 홍콩영화제 일을 하며 호금전을 직접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졌던 스티븐 테오는 1997년 홍콩영화제가 마련한 호금전 회고전의 자료집을 집필했다. 호금전에게 받은 친필 편지 복사본- 원본은 그의 연구실 은제 액자에 들어 있다- 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그를 학교로 초청했으나 퍼스트클래스 항공표를 구하기엔 예산이 부족해 좌절됐다”며 묵은 아쉬움을 들추는 피터 리스트 교수는, 1979년 호금전 영화에 처음 반한 이후 전세계를 뒤져 구한 호금전 영화의 비디오를 수업 교재로 틀면서 ‘간과된
PiFan 대담2 - 무협영화의 신, 호금전의 ‘빅팬’ 피터 리스트 vs 스티븐 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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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화끈한 섹스영화로 각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줄리엣은 레즈비언이고 로미오는 자위에 심취한 사내라면? 콘돔이 남성 성기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 것은 어떤가? 방 안에 널브러진 남성 성기를 단서로 콘돔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형사가 얼마나 고생할지 상상이 가는가?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된 지 오래되지 않은 두편의 영화 <트로미오와 줄리엣>과 <킬러 콘돔>은 트로마 영화의 실체를 ‘살며시’ 보여준다. ‘살며시’라고 말하는 이유는 두 영화가 트로마 영화 중에 약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장을 꺼내고 머리가 터지고 똥으로 범벅을 하는,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더러운 장면들이 트로마 영화에선 빈번히 등장한다. 한눈에 싸구려 티가 철철 넘치는 특수분장과 진지한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연기도 트로마 영화에선 흠이 아니다. 어느 모로 봐도 허술하고 어색하기에 트로마 영화는 일단 맛을 들인 관객에겐 유쾌한 경험이다. 양동이
트로마 프로덕션과 로이드 카우프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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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카우프먼, 부천에 나타난 그는 마치 ‘약장수’ 같았다. ‘엽기, 섹시, 코믹, 호러’ 영화의 대명사, 트로마 프로덕션에 관한 자료가 담긴 커다란 노란 종이봉투와 이미 손잡이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하얀 비닐봉지를 가는 곳마다 들고 다니면서, 모든 대화를 “30년을 이어온 우리 트로마 프로덕션은…”으로 시작하는 그는, 마치 왕진가방을 들고 동분서주하며 모든 병을 ‘간염’이라고 진단하던 ‘간장선생’ 같기도 했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문턱높은 의사들과 달리 ‘돌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간염박멸’에 인생을 걸었던 아카키처럼, ‘3류’에 ‘저급하다’는 혹평을 달고 다니지만 섹스와 폭력에 피가 낭자한 영화에 30년을 바친 이 뉴욕의 ‘간장선생’은 1천편이 넘는 영화를 직접 제작, 혹은 감독하면서 터득한 자신만의 비법에 대해, 그 약의 효능과 가치에 대해 더없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여 그 약효의 진위와 상관없이 그의 존재는 ‘약장수 비스니스’계에서 타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선례
PiFan 대담1 - 한국의 단편영화감독 민동현 vs 트로마 프로덕션 대표 로이드 카우프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