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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영화불모지가 아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최초의 유성영화와 컬러영화는 뉴질랜드에서 탄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 잭슨이 95년 만든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는 뉴질랜드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콜린 매켄지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있다. <포가튼 실버>에서 밝혀지는 매켄지의 업적은 한둘이 아니다. 유성영화와 컬러영화의 시작은 물론 전성기의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거대한 세트장을 세웠고, 몰래카메라 기법을 발견했는가 하면, 매켄지의 친구는 라이트 형제보다도 빨리 비행기를 공중에 띄웠다고 한다. 그게 정말일까?
물론 사실이 아니다. <포가튼 실버>는 가짜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다. 가짜 밴드의 기록을 담은 것처럼 위장한 로브 라이너의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처럼, 콜린 매켄지라는 가상 인물의 업적을 희극적으로 조작한 영화다. 그러니까 <포가튼 실버>는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피터 잭슨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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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 이 순간은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습관처럼 사무실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고, 비워진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다가 무심코 창가를 훑는 시야로 파고든 하얀 솜털눈의 군무에도 무감하게 망연자실할 뿐인 남우처럼. 눈 오는 거리를 이유없는 설렘으로 헤매던 기억이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꿈 같은 건 가물가물,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감정의 진공상태로 식은 커피처럼 텁텁한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말이다. <마리이야기>는 그 무심한 시간의 창가를 조용히 두드리며 가슴의 진공관을 슬쩍 건드려오는 기억의 동화다.함박눈을 뿌리는 잿빛 하늘을 날아 한강변에 줄지어선 도심의 콘크리트 숲 사이로 사뿐히 내려앉는 오프닝 장면의 갈매기처럼, 난데없이 일상의 틈새로 파고들며 잊고 있던 꿈의 체온을 전하는. 이제는 성인이 된 남우는 사무실 창 밖 나뭇가지에 앉은 갈매기를 보던 날 옛 친구 준호를 만나고, 잊혀졌던 어린 날의 추억을 다시 만난다.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어촌의 일상과
미리 보는 <마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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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30) 감독은 커밍아웃한 게이다. 2년 전부터는 어머니의 성을 따서 부모 성을 함께 쓰고 있기도 하다. 사정 모르는 이들은 그래서, 이름이 ‘송희일’이냐고 묻는다. 한술 더 떠 자기 추측대로 ‘이송희’ 감독이라고 잘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본인은 그런 반응에 외려 무덤덤하다. 99년 한 방송사의 토론회에 나가 전국적인 ‘커밍아웃’을 하고서 고향인 익산의 전주 이씨 문중으로부터 ‘죽일 놈’ 소리까지 들었는데, 그 정도가 무슨 대수랴. 당시 동성애자 인권연대 모임인 ‘친구사이’의 회장이었던 그는 그 사건으로 “서울가서 못된 짓만 배운 증손을 잡아들이기 위한” 체포결사대까지 조직됐었다고 웃는다.‘젊은영화’ 차리고, 접고, 낙향하고그는 독립영화계에선 몇 안 되는 스타 감독으로 꼽힌다. 이런 분류에는 그런 개인적인 이력이 작용하기도 했다. 또 최근 2년 동안 내놓은 <슈가 힐>과 <굿 로맨스>가 경쟁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지면에 오르내렸기 때문이기도 하
퀴어, 섹스, 그리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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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4년전, 김정구라는 사람은 여기서 모자관계를 가지고 발칙한 장난을 했었다. 아들은 엄마 앞에서, 엄마는 아들 앞에서 벗고 섹스하고 자해하는 이 영화는, 수면 아래에 있던 한 작가에게는 신데렐라 같은 데뷔를 안겨줬고, 독립영화계는 ‘드디어 뭔가가’하는 충격과 흥분에 휩싸였었다. 처음부터 그는 이 바닥에서 스타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샴쌍둥이 남매간의 멜로(<샴·하드 로맨스>)라니. 김정구 감독은, 여전히 놀랍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영화와 살아가는 일에 대해, 그는 마치 “침대 밑에 시체가 있다”라고 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는 약간은 자폐적일 수도 있을 만큼 자기 자신 안의 소통에 익숙한 사람이다. 영화도 혼자 놀듯,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보고 싶다는 갈증”에서 시작했고, 창작을 위한 영감도 주로 그 자신의 예전 일기장에서 찾는다. 스스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스스로와의 대화에 능통한 사람, 그는
“독립영화계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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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키워드는 ‘테러’였던가. 허나, 한국독립영화의 키워드는 ‘로맨스’였다.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파상을 받은 김정구 감독의 <샴·하드 로맨스>, 그리고 얼마 전 폐막한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 그야말로 ‘로맨스’의 물결이 이어졌다. ‘소프트’한 것에 대해서 ‘하드’하다고, ‘나쁘다’고 말해지는 것에 대해서 ‘좋다’고, 사회와 관계에 대한 관념에 이들은 작은 딴죽을 걸었다.가장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도, 어딘지 삐딱한 독립영화계의 이단아, 이송희일 감독과 김정구 감독. 이들이 앞으로 한국독립영화를 끌고 갈 ‘쌍두마차’라는 사실은 이미 지난 1997년과 99년에 한 차례 예고됐다. 97년, 지하창작집단 ‘파적’을 이끌고 나타난 김정구 감독은 그해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라는 파격적인 설정의 단편영화로 지리멸렬해진 독립영화를 열렬히 자극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걸레질하는 엄마를 곁에 두고 천연덕스럽게
한국 독립영화계의 두 이단아 김정구,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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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우리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심어놓고 우리 가슴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제공한 영화들은 어떤 작품이었나? 우리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고 함께 울고 웃으며 애태우게 했던 스크린 속 남녀는 누구였던가?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이 50%에 육박한 올해 영화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한해를 마무리하며 <씨네21>은 우리 곁을 스쳐간 영화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여 본다. <씨네21> 기자들과 필진이 뽑은 올해의 영화는 <소름>이다. <고양이를 부탁해> <봄날은 간다> <파이란> <와이키키 브라더스> <수취인불명>이 순서대로 2위부터 5위를 차지했고 안타깝게 5위권 밖으로 밀린 작품으로 <나비> <친구> <라이방> 등이 있었다. 윤종찬, 정재은 두 신인감독의 데뷔작이 1,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2001년 한국영화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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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소름>
2001년 한국영화 결산 [2] -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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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진호
“작은 이야기인데, 평가해줘서 고맙다.”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를 통해 찰랑거리며 흘러가는 사랑의 오로라를 슬며시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은 <씨네21>이 뽑은 올해의 감독이 됐다는 소식에 평소처럼 나직한 반응만을 보였다. “삶을 차분하게 바라볼 줄 아는 인생내공이 더 무서운 감독”(심영섭), “두 작품밖에 만들지 않았지만 탄탄한 연출력, 감독의 뚜렷한 스타일 등을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점을 평가한다”(김의찬) 등의 칭찬에 대해서도 그는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나 때문에 많이들 고생했다. 지태는 많이 힘들었을 거다. 자신과 극중 상우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 영애씨의 경우 테이크마다 연기가 달라지고 내용이 계속 바뀔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둘 다 감독을 신뢰해준 것 같아 고맙다.” 완결된 시나리오보다는 현장의 상황과 스탭, 배우의 의견에 따라 장면을 구성해나가는 그의 연출법도 배우가
2001년 한국영화 결산 [3] - 올해의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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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영화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뿐 아니라 일반관객이 뽑은 네티즌 설문까지 2001년 최고의 남자·여자배우 1순위를 평정한 최민식과 이영애.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최민식을 ‘날것의 비애를 체화하는 통곡의 연기’로 평하며 그의 이름을 첫 번째 줄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영화평론가 김의찬은 “이영애라는 배우는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배우다. 그 빛이 <봄날은 간다>에서는 깊이까지 껴안게 되었다”며 자신도 그 빛의 수혜자였음을 기꺼이 드러냈다.
2001년 관객은 <파이란>의 강재가 방파제에 퍼질러 앉아 쏟아내던 회한의 눈물과 함께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았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남자를 뒤로 하고 냉정히 돌아서던 <봄날은 간다>의 은수와 함께 겨울이 다가옴을 느꼈다. 이 두 배우가 올해 한국영화계에서 차지했던 공간은 누군가 떠난 자리를 메움이 아니었고, 온전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겸손하기도 한
2001년 올해의 배우 이영애, 최민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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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게 왔구나 했던 그날, 3월 태흥영화사
<파이란> 촬영 후반쯤, 임권택 감독님으로부터 <취화선>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어요. 앞뒤 잴 것 없이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 전에 함께 작품했던 감독들은 대부분 또래거나 후배였거든요. 형, 아우하면서 일하는 현장에서의 장점도 분명히 있었지만, 어떤 때는 시건방을 떨 때가 있었다고요. 그런 건 배우생활 하는 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거거든. 물론 지금이 개구리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올챙이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거장 의사에게 종합검진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자세로 시작하니까 허, 그나름의 편안함이 있데요. 내 것을 다 비우고, 다 없애고 나니까 내 안에 있는 진짜가 나오더라고요. 버린다고 손해가 아니구나. 계산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다가선 순간들이었어요.
올해 가장 행복했던 그날, 6월 이종상 선생자택
<취화선> 촬영 들어가기 전, 서울대 동양화과
2001년 올해의 배우 이영애, 최민식 [2] -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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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얻은 것과 잃은 것
얼마 전 <봄날은 간다>가 홍콩 개봉해서 홍콩에, 도쿄영화제에 출품되서 도쿄에 다녀온 것말고는 휴식시간이에요. 집에서 지내면서 자고, 먹고, TV보고. 얼마만의 휴식인지. 11월부터 쉬었나? 거의 3년 만에 쉬는 거예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선물> <봄날은 간다>, TV드라마 <불꽃> <초대> <파도> 등등. 작품 욕심이 많아서 그동안은 작품을 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쉬는 거라고 말해왔는데, 이젠 힘들다는 걸 느끼겠어요. 2001년에 얻은 것이라면 모든 걸 버리고 영화에 뿌리를 내리려 했던 소망을 어느 정도 이룬 것, 잃은 것은 체력이랄까.
2002년, 바라는 것은 단지…
탤런트나 연예인이라기보다 배우로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시작이라면 올해는 제가 원하는 만큼 배우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2002년에는 새로운
2001년 올해의 배우 이영애, 최민식 [3] -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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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한국영화, 극장의 절반 관객점유율 50%시대 개막
정말 스크린쿼터가 필요없는 시대에 들어선 것일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타이타닉>의 기록을 깰지 두고 봐야겠지만 <두사부일체>와 <화산고>가 선전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이 50%에 육박할 것은 확실하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은 46%로 지난해 35.1%를 10% 이상 추월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이 예측한 12월까지 관객점유율은 49.5%. 점유율도 점유율이지만 전체 영화산업과 관련, 주목할 것은 관객 수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영화관람객 수는 지난해보다 1500만명 이상 늘어난 8천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럴 경우 1인당 평균 관람횟수는 1.4회에서 1.7회로 증가하게 된다. 한국영화가 급성장한 만큼 직배영화의 관객점유율은 떨어졌다. 지난해 36.3%에서 올해 30% 미만이 될 것이라는 전망. 11월까지 직배영화의 관객점
2001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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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친구> 흥행 신기록 전국 818만명 동원
“한국영화 모든 기록에 도전한다.” 개봉 첫 주말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말 이틀간 흥행기록을 뛰어넘자 <친구>의 신문광고 전면에 내걸린 카피였다. 당시엔 누구나 ‘과장이 아닐까’ 여겼지만 <친구>의 도전은 성공했다. 3월31일 개봉해 장장 9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134일간 상영된 <친구>가 불러모은 관객 수는 서울 266만6414, 전국 818만1377명. 종전 기록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전국 579만5820명이었다. 코리아픽처스가 전국 직배로 배급한 <친구>는 특히 지방관객의 호응이 대단했다. 이는 서울관객 수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250만9320명으로 <친구>와 15만명쯤 벌어지는 반면 전국관객에서 240만명가량 차이나는 데서 입증된다.
<친구>는 극장에서 배급사로 보낸 부금만 212억원.
2001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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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_태흥영화 대표
“지금은 추락하지 않는 게 발전보다 중요하다”
1. 무엇보다 <친구>의 성공이다. 800만 관객이란 것은 경이적인 스코어다. 예전 한국영화 시장에선 상상도 못할 수치다. 한국영화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준 사건이라고 본다.
2. 역시 <친구>의 성공이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제도에 의해 금기시됐던 영화라는 점을 주목한다. 사람을 수십번이나 찔러죽이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 아닌가.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확대됐다고 본다. 사전심의에 대한 위헌판결 등이 영향을 줬으리라 본다. 우리 역시 앞으로 경우에 따라선 넓어진 표현의 자유를 활용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3. 남의 영화를 잘 안 봐서 뭐라고 말을 못한다. 하긴 그동안엔 남들 영화를 잘 안 봤는데, 요즘 들어서 <두사부일체>와 <화산고>를 봤다. 다 잘 만들었더라. 그리고 <친구>를 잘 봤다. 리얼하다고 해야 할까. 연기도 훌륭하다. 비판
10인의 제작. 투자자가 말하는 2001년 [5] - 이태원, 차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