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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몇시간 앞둔 11월9일 1시,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기자, 평론가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프린트는 이미 완성돼 있었지만 영화제 쪽의 요청으로 개막일까지 시사를 미룬 것. 이날 시사회는 개막작 상영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도 객석은 가득 찼고 외국 기자들과 피에르 리시앙 등 해외영화제 관계자들도 눈에 띠었다. 아마도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날을 보내고 있을 배창호 감독을 현장에서 만났다.부산영화제 예매 개시 직후에 매진돼 화제가 됐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기분 좋지만, 좀 우려가 된다. ‘재미’만을 추구한 영화는 아닌데, 관객이 그것만 기대하는 건 아닐까 해서. 미스터리스릴러라는 장르적 운반수단을 통해서 조금 진지한 얘기를 전달하고자 했다.영화의 어떤 요인이 관객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하나.마케팅적인 요소겠지. 스타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볼거리가 화려하다는 것이 부각됐으니까.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종합문제를 푸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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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 선언과 함께 돌아온 배창호의 영화, 부산이 선택한 개막작. 두 요인이 상승효과를 내며 <흑수선>에 관한 기대와 호기심을 발효시켜왔다. “이건 <박하사탕>이 아니다. 감독이 거듭 밝혔듯 관객과 교감을 염두에 둔 영화다.” 첫 대면을 앞둔 이들에게 영화제 관계자들이 마지막으로 강조했듯이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와 전쟁 액션에 혈연을 댄 복합장르영화 <흑수선>은 배창호적 개성을 품이 넓은 대중성 속에 용해하려는 시도였다. 반응과 평가의 스펙트럼도 그만큼 넓었다.“배창호 감독의 역량이 결집된 영화다. 예술성도 있고, 재미도 있다. 사랑도 곁들인 배창호 스타일이다. 아주 좋다. 안 그랬으면 개막작으로 선정했겠나.”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극찬이다. 한국전쟁기를 드라마의 발원지로 삼겠다는 결단을 도와준 영화로 배 감독이 거명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작자 이은 감독은 “굉장히 열심히, 고생해서 찍은 것이 화면에 보여서 좋았다”고 감상
찬사에서 비난까지, 100인 1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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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이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대작영화 <흑수선>을 만든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렘을 불러일으켰었다. 90년대부터 급격한 세대 단절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80년대 한국영화 중흥의 기수였던 감독과 오늘날 영화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조직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 의미있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한동안 주류 영화계와 적조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최근작 <정>을 통해 무뎌지기는커녕 한결 농익은 연출력의 묘미와 함께 독립영화 정신에 가까운 근성마저 보여주었던 감독이, 풍부한 물적 조건과 시스템까지 얻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문구나 부산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초청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반영한다.<흑수선>이 첫 뚜껑을 연 부산 현장의 반응은 상당히 미묘하다. 그것은 ‘배창호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는 말로 요약됨직하다. 배창호적인 것의 실체를 이해하
카오스의 꽃이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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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김소영 교수와 김혜준 실장이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최소상영일수 보장 등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들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 <와이키키…> 하면서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문제가 최소상영일수 보장이다. <고양이…>도 같을 거다. 관객이 좋아하는데 보여주고 싶은 거다. 극장에 부탁하면서 3, 4주를 간신히 끌고 가는데 이 극장, 저 극장 끌고 다니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극장을 대관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어떤 영화든 상영일수를 보장해 영화만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김소영 교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별로 내가 기다린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가 있다면 일주일만 최소상영이 보장되어도 그 안에 정보를 전달하고 나름의 시장 경쟁력을 검증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최: 최소상영일수가 법제화되면 극장에서도 스크린쿼터처럼 지키긴 할 것이다.
“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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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고양이를 부탁해> 제작이은 명필름 이사·<와이키키 브라더스> 제작·영화진흥위원회 위원최용배 시네마서비스 이사·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 위원장장소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일시 11월7일 오후 4시과연 비주류 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없는가?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의 흥행참패에 이어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라이방>이 거둔 흥행성적이 냉혹한 시장의 논리를 다시 확인시킨 가운데 <씨네21>은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김소영(영상원 교수)씨와 김혜준(영진위 정책실장)씨의 제언을 연재했다. 긴급제언을 통해 김소영 교수는 한국영화 최소상영일수 보장을, 김혜준 실장은 전용관 설립 등 각종 저예산영화 지원책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극장의 이해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메이저 영화사의 배급 담당자는 어떤
“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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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에 대해: <WR…>에서 우리가 시도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자유롭게 하는 함정(a liberating trap)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를 따라가고, 그 자신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식으로 일련의 숏들과 사건들과 감정들을 조직한다면, 그 영화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코 가지 않는 지점에 사람들을 데려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해방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빌헬름 라이히에 대해: 그는 정신분석학이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20세기의 드문 사회주의적 몽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게 그는 위대한 예언자요 또 위대한 과학자이다. 그는 세상에서 과학적 행위, 인간적인 행위, 사랑의 행위, 그리고 시적인 행위를 분리해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사회주의적 이상에 대해: 젊었을 때 나
자유롭게 하는 함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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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작 <WR: 유기체의 신비>, 그리고 급강하 마카베예프적 세계의 와해의 조짐은 대략 그의 최고작이랄 수 있는 <WR…> 발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빌헬름 라이히를 빌려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을 꿈꾸는 이 영화는 섹스와 관련된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도 장면이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사회를 보는 ‘불순한’ 시각 때문에 더 유고 정부로부터 미움을 산 것으로 보인다. 라이히에 대한 기록 필름과 미국의 대담한 성문화를 그린 단면들 사이로 유고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허구적 멜로드라마가 단편적(斷片的)으로 전개된다. “프리섹스 없는 공산주의는 무덤”이라고 부르짖는 유고 여성 밀레나는 잘생긴 소련인 스케이트 선수인 블라디미르 일리치를 유혹하려 한다. 그러나 라이히식으로 말하면 ‘성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자신의 욕망에 대해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인물인 블라디미르는 밀레나의 유혹을 자꾸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성적인 합
“나는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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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섹스 없는 공산주의는 무덤이다”. 극중 인물의 입을 빌어 이렇게 외친 인물. 결국 성도착자,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조국 유고로부터 축출당한 풍운아, 한때 고다르를 뛰어넘은 유일한 고다르 후계자로 불린 ‘실패한’ 거장 두샨 마카베예프가 일흔의 나이에 드디어 한국을 찾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과 그의 방한을 계기로 전설적인 괴감독 마카베예프의 도발적인 영화세상을 살펴본다.-편집자“당신은 섹스에 관심이 있습니까?” 두샨 마카베예프의 두 번째 장편영화 <정사, 또는 전화 교환원 실종 사건>은 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성 과학자(sexologist)가 등장해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 그는 인간이 여전히 성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이란 것은 드러내놓고 이야기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그저 낮게 속삭여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영화 속 과학자의 이런 언급은 아마도 감독인 마카베예프 자신의 영화적 탐구의 출발점이라고
“나는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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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가 뒷수발 다 해줬지. 그래서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천치가 된 거라니까.”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김해곤과 김승우는 서로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장군의 아들> 오디션을 통과했던 시절. 김해곤의 몸이 지금보다 날렵했고, 김승우의 몸이 지금보다 육중했던 그때. 처음 만난 순간부터 ‘형제 같은 핏줄 땡김’을 느꼈다던 두 사람은 그래서, 동료 혹은 선후배라면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관계를 징하게도 오래 이어갔다. 연일 이어지는 <예스터데이>의 바쁜 촬영일정에도 불구하고 김해곤에 관련된 기사라는 말에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김승우는 수면으로 올라온 김해곤의 성장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즐거워했고, 그 달뜬 마음은 휴대폰 넘어 들려오는 그의 격앙된 목소리를 통해 충분히 느껴졌다. 얼굴 맞대고 낯간지러운 칭찬을 하라면 할 리 만무한 이들이지만, 김해곤이 “승우에게 진 빚이 많다”더라 전했더니 “그거 순∼ 오바예요. 오바. 내가
“탄광 들어간다는 걸 네가 뜯어말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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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곤. 이 남자를 알고 계신지. 올해로 충무로 경력 12년째를 맞는 어엿한 ‘중견 영화인’ 김해곤의 얼굴과 이름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 아닌 듯 가물가물하다. 그렇다면 잠깐, 이건 어떤가. “야이 시발년아! 네가 정신이 머리에 박힌 년이냐, 젖통에 박힌 년이냐?”, “아 시발, 안 그래도 대가리 쥐나는데 어떤 년은 말이야, 내내 숨어있다가 송장으로 나타나서 나를 또 박터지게 해요”. 올해 초 개봉한 <파이란>에 수시로 등장하는 이들 ‘상스런’ 대사는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최근 개봉한 <라이방>에서도 그의 흔적은 수시로 살펴볼 수 있다. 극중에서도 해곤 역을 맡은 그가 송옥숙과 함께 닭백숙을 뜯어먹으며 나눴던 살색 짙은 농지거리나, 동료 학락과 준형을 살살 ‘골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그의 ‘출신성분’을 의심케 된다. 퉁퉁한 얼굴윤곽에 반듯함과는 별 관계없는 듯한 인상, 볼록한 배를 정점으로 한 넉넉한 살집 등을 갖췄고, 세상에 큰 원수를 진 것
“쌈마이 인생 실감나지? 내가 그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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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학교 다니다가 연극 시작“어릴 적부터 가출을 취미로 삼아 살았죠. 그러니까 학교 이야기는 할말이 없는 거야. 집안 얘기는 한번도 들어준 적이 없어. 아, 불량배였다기보다는 돌아이라고. 학교 앞까진 딱 가요. 그 앞에서 친구들하고 만나 같이 목욕탕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그랬지.”1964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여기저기 옮겨다녔던 김해곤은 고등학생 시절 이를테면 문제아였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집안사정”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자주 이사를 다닌 데다 집 밖에서 보낸 나날이 숱하게 많았던 탓에 그는 학교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만사에 게으르고,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려 하지 않으며, 어려운 일이 닥쳐도 뭔가 뚫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의 ‘낙천성’도 그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는 “놀러다닌”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학교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다리를 만들어줄 줄은 그도 알지 못했다. 교내에서 사고나
“쌈마이 인생 실감나지? 내가 그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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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 마르 청년들의 리더격. 마르를 희생시키려는 에코반 수뇌부의 음모에 맞서 인공지능 델로스를 파괴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에코반에 산 기억과 제이에 대한 추억이 있다.제이 에코반의 자위대 블루스카이의 대원. 에코반에 침입한 수하가 어린 날의 행복한 한때를 함께한 소년임을 알아본 뒤, 자신의 입장과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시몬 에코반의 자위대 블루스카이의 대장. 비교적 냉정을 잃지 않는 성격이지만 제이에 관해서만큼은 초연하지 못한다. 수하를 만나고 흔들리는 제이 때문에 갈등한다.감독 김문생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와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한 뒤 15년간 광고와 무대영상을 연출해온 베테랑. 클레이와 오브제, 미니어처,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과 같은 갖가지 기법 실험으로 ‘하벤’ ‘치토스’ ‘코카콜라’ 등 25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작해왔다. <원더풀 데이즈>로 영화의 수렁(?)에 빠져들었으며, 다시 빠져나갈 생각은 없는 듯.프로듀서 황경선·이경학·김성용김문
등장인물과 스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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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소망한다. 비를 뿌리거나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에 서서히 구름이 걷히는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처럼, 청명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을.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에서 사라진 아름다운 날들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SF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의 ‘원더풀 데이’를 기다리는 이들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겠다는 ‘양철집’ 식구들의 한결같은 꿈 말이다. 인류의 유일한 터전으로 남은 남태평양의 시실섬, 인공 돔 안의 에코반과 그 외곽에 버려진 야성의 공간 마르의 대립 속에서 엇갈리는 젊은이들의 운명의 행방은 내년 여름이 돼야 알 수 있겠지만, 제작사 양철집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는 있었다.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입구에 위치한 양철집은, 이름 그대로 은색으로 빛나는 양철로 된 집이다. 시내 한가운데보다는, 인공도시 에코
원더풀 디스토피아! 아름다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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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 갓 사춘기에 접어든 말수 적은 소년. 아버지는 바다에서 돌아가셨고 횟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할머니와 살고 있다. 우연히 마리를 만나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마리 남우에게 찾아온 아름다운 환상 속 소녀. 하얀 털로 가득한 커다란 개 ‘큰 개’와 함께 남우 앞에 나타난 마리는 남우의 일상에 한 토막 아스라한 꿈을 심는다.준호 남우의 유일한 친구. 남우의 환상에 동참하게 되며 바닷가마을을 떠나 서울로 전학을 간다. 남우와 달리 밝고 장난스런 성격. 준호의 아버지 역시 뱃사람이다.감독 이성강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가. <넋> <우산> <연인> 등 많은 단편을 통해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그만의 작품세계를 펼쳐왔고, 한국인 최초로 그의 작품 <덤불 속의 재>가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1999년)에 진출했다. <마리이야기>는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850컷에 달하는 이 작품으로, 그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이게 된다.제작사 씨즈
등장인물과 스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