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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하나의 공간에 신하균의 죽은 누나가 묻히고 송강호의 딸이 죽고 결국 그 자리에서 신하균도 송강호도 죽는다. 그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나.박찬욱: 그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반대의 지점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김지운: 그런데 문제의 강변은 극중 인물의 비밀이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오픈된 장소다.박찬욱: 대낮의 야외공간, 적나라하고 가혹한 일광이 꼭 필요했다.김지운: 어려서 산과 계곡을 많이 쏘다녔는데 은폐돼 있고 비밀스럽고 음습한 공간에서 어두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탁 터진 공간에서 오히려 다 벗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툭 터진 장소에 사람을 끌고와 죽이는 것이 어둠 속의 살인보다 훨씬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욕망의 발현이랄까.박찬욱: 영화 속 죽음의 강가는 한국의 소박하고 평범한 산하이며 신하균 남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 자연에는 어머니 품 같고 어쩌고 하는 상투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것
제 5장 이상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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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로 보는 성공 스필버그, 하룻밤에 백만장자? 요사이 기준으로 보면 주연배우 개런티에도 못 미치는 1010만달러를 들여 제작된 <E.T.>는 <조스> <미지와의 조우>에 이어 3번째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갈아치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다. <버라이어티> 통계에 따르면 재개봉 전까지 <E.T.>의 북미 박스오피스 수입은 4억달러로 <타이타닉> <스타워즈>(재개봉 포함),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협>에 이어 역대 4위이며 세계적으로는 7억48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가능한 한 많은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현대적 배급전략이 이미 도입됐던 1982년이지만, <E.T.>의 흥행 추이는 첫 주말에 결판을 내는 90년대 오락영화들의 박스오피스 곡선과는 판이해서, 개봉 첫주에 2200만 달러(이하 단위 생략), 2주차에 2200만, 3주 2600만, 4주 2400만, 5주 2300만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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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오스카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공로상을 수상한 스탠리 도넌 감독이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한 대목을 재연, 노래와 탭댄스를 펼쳐보인 무대였다.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마련한 자리?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은 비를 타고>가 52년 당시 오스카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오스카 주최쪽은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늦게나마 사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야, 미안해. 내 늦은 사과를 받아줘”라고.어떤 깊은 뜻이 있었든, 취향과 노선의 문제였든,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얻고도 오스카에서 외면당한 비운의 영화(인) 리스트도 영화제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레베카> <이창> <싸이코> 등으로 5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늘 후보에 그치는 등 오스카와 최악의 궁합을 보여온 영화인 중 하나. 오스카는 늘 들러리로 만족해야 했던 히
역대 아카데미 탈락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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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술자리에서 내가 스필버그를 존경한다는 것에 대해서 발끈하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내게 대체 스필버그 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고, 난 당차게도 <E.T.>에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노라고 대꾸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그뒤로 나는 그분의 가열찬 비웃음의 융단폭격을 받아내야 했지만, 지금도 이전의 그 생각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솔직히 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항상 15페이지 이상 발전시킨 적이 없었으며, 웬만한 영화과 학생들은 필독하고도 남았을 <영화의 이해> 같은 영화이론서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는 나도 안다. 그래서 요즘 반성중이며 열심히 독서하고자 노력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다.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들은 어떻게 보면 본능적인 작업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 같다. 어린
민동현 감독의 첫사랑에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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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를 갈구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내심 불안했다. 그러나 영화제가 시작된 뒤에 관객들은 이미 볼 준비가 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997년 서울여성영화제가 처음으로 그 꾸러미를 풀던 날,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단상 위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는 행사가 아니라 운동이었다. 여성운동은 처음으로 영화를 끌어안았고, 영화는 처음으로 여성운동을 끌어안았다. 반향은 컸다. 영화제는 그 사이 존폐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한해 걸러 한번씩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올해부터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성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운동’은 그래서 이제 더이상 생경하지 않다.제4회 서울여성영화제가 오는 4월4일부터 12일까지 9일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7개 부문에 걸쳐 21개국의 80여편을 소개할 예정.7개 부문 프로그램의 색깔은 크게 세
전복의 매혹, 신나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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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귀엽고 온순하고 참해야 하는가. 낡은 여성성에 대한 도발 그리고 전복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돼야 한다.제비꽃 향기: 아무도 믿지 않는다 Violet Perfume:Nobody Hears You 감독 매리스 시스타치 . 멕시코 . 2001년 . 90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개막작)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주체로서 인정도 보호도 받기 어려운 위치다. 특히 성폭력과 매춘은 이들이 접하게 되는 새로운 문제.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취약한 위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난한 아이들이라면 성폭력을 당해도 더욱 무시당하기 일쑤다. 멕시코시티에서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강간을 다룬 이 작품은 성폭력의 문제를 계급적 차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15살 중학생 소녀 제시카는 씩씩한 톰보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반항적이기도 하다. 제시카는 의붓오빠의 농간으로 강간을 당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새로운 물결·한국영화회고전·딥 포커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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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남 Anam감독 뷰켓 알라쿠스 . 독일 . 2001년 . 86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독일에서 청소부로 살아가는 터키여성 아남은 아들이 마약에 빠져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남은 아들을 찾아내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한다. 전통을 고수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여성의 추락과 그 극복과정을 통해 여성의 힘과 자긍심을 일깨우고 있다.나만의 스타가 되어줘 Be My Star 감독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 오스트리아,독일 . 2001년 . 65분 . 극영화 . 새로운 물결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에 대한 혼란을 잘 포착해낸 영화. 열네살 소녀가 동네의 스타인 동갑내기 소년과 연애를 시작하는데, 이들은 밤마다 부모의 눈을 피해 부부놀이를 한다. 10대들의 눈에 비친 부부의 성과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축복 Blessed 감독 다카시 토시꼬 . 일본 . 2001년 . 78분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감독의 애인인 스트립댄서 사쿠라의 시점으로 전개한 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그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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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왕국 발리우드의 그늘에서 피어난 인도여성독립영화들과 아시아 각지 여성들의 자기 보고서 역할을 한 단편영화들.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2중의 굴레를 쓴 여성감독들은 올곧은 현실인식과 정직한 자기 응시를 통해 다시 '태양'이 되기를 꿈꾼다. 소외된 자들의 벅찬 날갯짓. 여성영화의 힘에 주목할 일이다.봄베이 유너크 Bombay Eunuch 감독 알렉산드라 시바,미셸 구곱스키 . 인도 .2001년 . 71분 . 다큐멘터리 . 아시아특별전 우르두어로 “중요한 사람들”을 뜻하는 히즈라는 오랫동안 고대 인도와 파키스탄의 궁정에서 일하는 내시(거세남)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힌두교적 전통으로부터 신비스런 분위기를 풍기며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던 히즈라는, 그러나 식민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몰락한다. 영국인 식민통치자들은 그들의 문화를 탈신비화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성스러움을 도착이라는 새로운 근대적 병명으로 대체한 것이다.오늘날 세속적인 인도 카스트의 상류층은 히즈라를 경멸 어린 시선으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 - 아시아 특별전·단편경선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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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DINE 감독 안지영. 한국 . 2001년 . 15분 . 극영화 . 아시아단편경선20대 중반의 회사원인 주인공에겐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천대당하기 일쑤. 그러던 그녀의 수중에 더러운 재떨이 캔이 들어온다. 그 속에서 벌레가 기어나와, 그녀의 묵은 원한과 분노를 풀어주겠다고 말한 뒤로, 그녀의 일상엔 예기치 않은 피바람이 몰아친다. 현대판 알라딘의 램프를 통해 우리의 음습한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미끼감독 김경희 . 한국 . 2001년 . 3분40초 . 애니메이션 . 아시아단편경선그로테스크한 캐릭터와 분위기가 돋보이는, 짧지만 충격적인 반전이 담긴 애니메이션. 한 여자가 정성껏 요리를 하고 애완용 고양이에게 먹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상대의 호의를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일 순 없다.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신고 감독 박남원 . 한국 . 2001년 . 18분 . 극영화 . 아시아단편경선임신한 아내는 가
아시아 여성영화의 힘 - 그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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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세상 속으로 돌진하는 여성들과 만난다.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 그들의 현실과 이상을 빼어 닮은 이즈음의 여성 영화들.감각원격조정장치Romote Sensing 감독 우르술라 비이만 . 스위스 . 2001년 . 53분 . 비디오에세이 . 여성영상공동체<욕망을 쓰기>(Writing Desire)에서 네트상으로 떠도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추적했던 우르술라 비이만이 이번에는 <감각원격조정장치>를 통해서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전 지구적 이주 과정을 나사(NASA)의 위성추적장치로 뒤쫓는다. 매매춘은 독일과 체코의 경계에서부터 동남아의 미군주둔지대까지 전 세계를 망라한 채 벌어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그 전 지구적 몸의 유통회로를 작동하게 하는 교환물이 되어 유령처럼 지구 곳곳을 떠돈다. 이 작품은 로라의 집을 탈출한 여성을 제국의 이름으로 다시 감금시키는 탈식민지 시대의 신식민지적 여성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비이만은 이전 작품인 <욕망을 쓰기&
액티비즘 영화·비디오 - 여성영상공동체·타흐미네 밀라니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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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감독 김미례 . 한국 . 2001년 . 38분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골프 캐디, 학원강사, 구성작가, 청소미화원, 식당조리사, 파견근무자. 이들의 공통점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 그리고 종사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비정규직여성권리찾기 운동본부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생활실태와 투쟁을 담아내고 있다.여성주의 딴따라가 노래를 한다감독 한천지영(이다) . 한국 . 2001년 . 15분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음악과 춤 속에도 여성주의는 있다.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의 콘서트 기획에 참여하던 감독은 영상물을 통해 여성주의 뮤지션들의 계보를 그려 보기로 결심한다. 전국의 대학, 언더그라운드, 여성운동 방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뮤지션들의 공연과 인터뷰를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세계의 여성 노동자들Working Women of the World 감독 마리 프랑스 꼴라르 . 벨기에 . 2001년 . 53분
액티비즘 영화·비디오 - 그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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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은 아직도 꿈을 꾸는 사람이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그는 푸른 기운 서린 안개 속에 뿌리없는 산봉우리를 세우고,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웅들의 수천년 무용담을 한번의 숨결로 풀어놓는다. “여자에게 꽃을 꺾어주는 낭만은 모르지만 내겐 기억이 곧 로맨티시즘”이라고 말하는 그의 마음속에선 아직도 장대하고 낭만적인 신화가 굳건한 벽처럼 버티고 서 있다.
그 때문에 <촉산전>은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와 쉬어갈 줄 모르고 강렬하기만 한 영상이 뒤얽힌 실패작이면서, 그의 대표작이다. <촉산>으로 첫마디를 뗐다고 할 수 있는 <촉산전>은 <소오강호>와 <동방불패> <선학신침> <청사> 등 중국신화의 흔적이 꾸준히 박혀 있는 서극 영화세계의 정점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촉산전>을 마주한 우리가 부당하게 박대받아온 서극의 이십년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무모한 용기가 빚어낸, 꿈같은
서극과 <촉산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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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극이 태어난 곳은 홍콩이 아니라, 베트남이다.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함락하기 전, 서극은 13살의 나이로 홍콩에 왔다. 그 경험은 <영웅본색3>에서 그려진다. 이제 곧 사라질 도시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던 소년은 진정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가 자라서 <영웅본색>의 소마가 된다. 싸움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청년은, 서서 죽을지언정 결코 무릎 꿇지 않겠다는 누아르의 용장(勇將)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무협지의 영웅들이기도 하다. 홍콩 역시 사이공과 어딘가 닮아 있는 곳이다. 1997년 이후의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 대륙의 어딘가에서 떠나왔고, 또 어디론가 떠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곳. “홍콩은 늘 거품 위에서 살아간다. 홍콩사람들은 끊임없이 트렌드에 빠지고, 도박에 빠진다. 모두 이민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품 위에서 미끈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간의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원한다. 심각하게 그
서극과 <촉산전> [2] - 서극의 영화적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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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부르스 上解之夜 1984년, 감독 서극 출연 장애가, 엽청문, 종진도
서극은 무협과 액션 전문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서극은 코미디와 멜로 연출에도 능하다. 능숙한 멜로 감각을 입증한 영화가 초기의 걸작인 <상하이 브루스>다. 1937년 중일전쟁이 한창일 때, 젊은 아가씨 슈와 병사 퉁은 슈초우 다리 밑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의 와중에서 서로 헤어진다. 10년이 지난 뒤 작가인 통과 나이트클럽의 쇼걸인 슈는 같은 아파트에서 만나고 살아가지만, 과거를 떠올리지는 못한다. 상하이라는 도시와 50년대에 만들어진 홍콩 뮤지컬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의 고전적 멜로영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
도마단 刀馬旦 1986년, 감독 서극 출연 임청하, 종초홍, 엽청문
한때 서극은 <영웅본색>을 여성 버전으로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꽤 구체적으로 했다. 그건 현실로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
서극과 <촉산전> [3] - 서극영화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