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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일본 최고의 화제작 <배틀로얄>이 4월5일 무삭제로 개봉한다. 폭력성 논쟁을 낳으며 빅히트를 기록한 이 영화는 지난해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지만 일본영화 수입제한규정 때문에 한동안 국내 관객과 만나기 어려웠다. 산세바스찬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개봉요건을 갖춰 곧 극장에 걸리는 <배틀로얄>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고 야쿠자영화의 대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망해본다. <씨네21> 통신원 사토 유가 직접 진행한 감독인터뷰까지 <배틀로얄>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았다. 편집자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총격전을 본 적 있는가?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울려퍼지는 학살극을 상상해보았는가? 지난해 봄 화창하게 개인 어느 날, “좋아하는 애 있니?”라고 묻던 친구가 눈앞에서 목이 잘려 쓰러져도 반항할 수 없었던, 겁먹은 소년의 창백한 눈동자를 들여다본
<배틀로얄>, 그 폭력과 피와 결핍의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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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필름누아르의 고전이자 원형으로 꼽히는 <말타의 매>를 만든 감독. 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동료영화인들이 줄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상황을 보다 못한 그는 캐서린 햅번, 제임스 캐그니 등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끔찍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미국을 떠났다. 험프리 보가트할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배우. 그가 없었다면 필름누아르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가 구축한 탐정의 이미지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존 휴스턴이 이끄는 국회 앞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출연작 <케인호의 반란>을 연출했던 에드워드 드미트릭처럼 애초의 태도를 바꾸었다. 조사위원회에서 그는 `공산당에 가까운 사람과는 앞으로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엘리야 카잔<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사회를 리얼하게 해부한 `사회파 감독`의 대표주자. 1999년 카잔은 논란 속에 아카데미 공로상
매카시즘 시대의 영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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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배틀로얄>의 화면을 보며 아름답다는 착각을 하는 건 분명 42명의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녀, 미소년들 때문이다. 냉혹한 세상과 교육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간담이 서늘해질 무렵 “사실… 나, 너 좋아했잖어” 같은 안타까운 고백을 남기고 죽어가는 소년, 소녀들의 사정을 듣고 있자면 마음 한켠이 싸해진다. <배틀로얄>은 아이돌 스타의 요람으로 시바사키 코우 같은 많은 아이돌 스타들을 배출해냈고 42명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따라하는 <배틀로얄> 코스프레는 큰 인기를 얻었다.남자 15번 나나하라 슈야 역 . 후지와라 타츠야 . 1982년생<배틀로얄>에서 여학생들의 흠모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슈야 역의 후지와라 타츠야는 TV광고나 드라마를 통해 성장한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연극계가 배출해낸 신성이다. 1997년 연극 <신도쿠마루>의 주연을 뽑는 오디션으로 데뷔하여 같은 해 10월 영국 런던공연에서 현지 신문과 매스컴의 극
<배틀로얄>의 아이돌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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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자면 현실적 소재,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점에서 영화의 장단점이 동시에 나온 것 같다. 그런 부정합이 박 감독이 원한 아우라였던 것도 같고. 이질적인 소재와 형식이 빚는 충돌 때문에 한번에 소화하기 힘들었다. 마틴 스코시즈는 미국 내 계급대결 구도와 베트남전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 <택시 드라이버>를 몽환적으로 풀어서 잊지 못할 영화로 만들었는데, <복수는 나의 것> 역시 그런 종류의 강렬함이 있다. 이런 소재를 현실적 시각으로 풀 때 더 섬뜩할까, 스코시즈나 린치처럼 부조리한 악몽으로 풀었을 때 더 섬뜩할 것인가. 대중적으로는 전자가 답일 테고 소수 마니아는 후자에 열광할 것 같은데 <복수…>의 개봉결과가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복수…>를 박 감독의 상업적인 실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박찬욱: 개봉을 앞두고 불안, 초조, 긴
제 2장 그 영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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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이나 걸렸다. 시간을 좀더 줘야 된다.” 울음을 삼키느라 목이 멘 할리 베리의 목소리에, 장내는 사뭇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미국 L.A. 현지시각 3월24일 저녁,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할리우드&하이랜드 컴플렉스의 코닥시어터. 단골 행사장이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을 떠나 42년 만에 아카데미가 시작된 ‘할리우드’ 거리로 돌아와 마련한 새 거처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아카데미 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사형수 남편을 잃고 백인 간수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을 통해 흑백문제의 깊은 골을 들여다보는 <몬스터스 볼>로 트로피를 거머쥔 할리 베리.“오, 마이 갓!”만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던 베리는, 역대 수상자 가운데 가장 긴 소감을 토해냈다. “도로시 댄드리지, 리나 혼, 다이앤 캐롤, 그리고 내 뒤의 제이다 핀켓, 안젤라 바셋, 비비카 폭스 같은 여성을 위한 순간이다. 이제는 이름 없고, 얼
제74회 아카데미 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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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해외에서 지명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적도 없고 유럽이나 미국의 비평가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거나 논쟁의 대상이 된 적도 거의 없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 그 다음 세대의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 기타노 다케시 등 일본영화의 거장들을 나열해보면 후카사쿠 긴지의 이름이 들어갈 곳을 쉽게 찾을 수 없다. 회고전이 열린 것도 기껏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미이케 다카시나 구로사와 기요시에게도 주어진 영광이라면, 전후 일본영화사의 산증인 후카사쿠 긴지에게는 너무 늦은 회고전이다.흥행과 비평 모두 만족스럽게, 꾸준하게후카사쿠 긴지의 나이는 71살. 지금도 여전히 영화감독으로 ‘활동’중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스즈키 세이준도 요즘 신작을 내고 있지만, 후카사쿠 긴지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후카사쿠 긴지는 자의든 타의든 조
폭력미학의 거장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 감독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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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영화제가 열리는 할리우드의 3월은 `축제의 달`이다. 축제의 열기 속에서 영화인들은 함께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점검해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사색 속에는 이들은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상처, 혹은 오점과 마주친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몇 년 전 엘리야 카잔이 공로상을 수상할 때 아카데미 수상식장 청중의 반응은 이 사건이 여전히 `현존`함을 반증했는데, 곧 절반 정도의 참석자들이 대원로 선배의 수상을 싸늘하게 외면했던 것이다.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은 다방면으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지난 3월24일 아카데미영화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할리우드의 빨갱이와 블랙리스트: 영화산업에서 정치적 투쟁>이라는 전시회의 열어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사진, 오디오, 비디오 자료와 영화클립, 기록화면 등을 공개했다. `정치적 이념과 이력이 영화인 개인의 일생을 좌우한 당시 미국사회의 배경과 그 영향을 후세대도 기억해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반세기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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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 오후 <배틀로얄>의 제작사 도에이 사무실에서 70세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그의 아들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후카사쿠 겐타도 함께 했다. 우선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 <배틀로얄>에 대한 궁금증을 후카사쿠 감독으로부터 듣고 싶었다.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후카사쿠 긴지(이하 긴지) 70년대까지 내가 했던 일은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 같은 야쿠자영화였다. 이처럼 폭력이 주축을 이루는 작품들이 평판을 얻었지만, 일본영화가 점점 더 폭력과 에로티시즘이라는 두개의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상황에서 내 영화도 그중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80년대에는 여성 관객이 많아져서인지 그런 영화의 기획을 실현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80년대나 90년대에는 액션영화를 2편이나 3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조감독 일을 하고 있던 아들이 소설 <배틀로얄>을 들
후카사쿠 긴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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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전, 뉴욕의 아파트에서 아카데미 시상단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다. 내 오스카를 돌려받으려고 전화했나보다 했는데, (그걸 맡긴) 전당포도 망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니 내 영화들이 후보에 오르지 않아서 사과하려는 건지도, 전에 맨해튼 5번가에서 일할 때 한 노숙자가 점심을 사겠냐기에 50센트를 준 걸 알고 진 허숄트 박애상을 주려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중략) 뉴욕에서 찍은 영화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기에, 나보다 잘하는 다른 감독들이 50여명은 되니 마틴 스코시즈나 스파이크 리나 마이크 니콜스를 부르라고 했다. 그들은 다 바빠서 안 된다고 그래서 왔다.-우디 앨런 뉴욕에 대한 헌사를 위해 오스카에 처음 등장하면서동정은 원치 않는다. 우선, 아무것도 못 받았던 수년간 창피당할 기회를 너무나 많이 줬던 음악분과에 감사하고 싶다. (중략) 여기에 걸어나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제니퍼 로페즈)이 주는 상을 받다니, 천국에 가보진 않았지만 이런 기분에 가깝지 않을까.-랜디 뉴먼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장의 코멘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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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여담이지만 <복수…>에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 녹음하려고 1시간 반 차 타고 양수리 가서 2분 녹음하고 다시 1시간 반 차 타고 집에 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음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정말로 이상하다>의 주제곡 <정말로 이상하다>입니다.”라는 말 녹음하겠다고.박찬욱: (미안한 듯) 믹싱할 때는 들리게 했는데 극장이 이상해서 그래.김지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연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영화에서는 표현된 적 없는 인물의 기이한 행태가 기주봉 선배를 비롯한 76극단 멤버들의 조연을 중심으로 많이 보인다. <어둠의 자식들> 끝내고 영화를 안 했던 기주봉 형을 <조용한 가족>에 불렀는데 처음부터 다른 배우와 달랐다. 세트장에 나타나자마자 “내가 나그네 입장에서 저 밑에서부터 그냥 올라와봤어.” 하는데, 예전 76극단 선배들과 의사소통하던 특이한 방식이 되살아나면서, 이런 형한테 내가 연기주문을 한다는 것이 무참했
제 3장 그 배우, 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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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영화에서 결정적인 모티브로 작용하는 누나와 보배의 죽음이 너무 느닷없이 개연성 없이 들이닥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박찬욱: 누나의 죽음은 느닷없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개연성은 잠깐 생각해보면 납득할 정도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다 묘사할 수는 없으니까. 누나는 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격이라기보다는 기계장치 같은 존재, 던져진 인물이다.김지운: 신하균이 누나를 닦아주는 장면은 경험이 있나?박찬욱: (흠칫 놀라며) 경험? 그런 것은 없고 근친상간의 뉘앙스를 의도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변태엽기영화가 될 거라 안 그런 척하려고 했다. 신하균이 몸을 닦는 연기를 할 때 나의 주문은 “더 깊숙이 닦아라”였다. 신하균이 클로즈업에서 목욕탕 때밀이처럼 수건을 탕탕 치며 웃는데 약간 음탕한 표정이 잘 살아 마음에 들었다.김지운: 그 밖에도 섹슈얼리티를 의도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나?박찬욱: 송강호가 전기고문을 하며 배두나의 귀에 침을 바르는 장면이 상징적인
제 4장 리얼리즘, 그것도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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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뉴욕의 유대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노르마 바르즈만 여사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남편 벤 바르즈만과 함께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 소용돌이를 몸소 겪은 이제 몇 남지 않은 역사의 증인이다. 81살의 할머니는 조금도 피곤함을 내보이지 않은 채 파란만장했던 경험을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올 봄에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에도 실릴 거라는 정보와 함께.할리우드에는 언제 들어갔는가.1941년 대학을 졸업한 뒤 시나리오 수업을 받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할리우드는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던 조카 헨리 미어스를 통해 가까워졌다. 공산당원이었던 조카는 할리우드의 노조를 설립한 사람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그를 따라 할리우드 어딘가에서 상영하는 소련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거기엔 350명에 가까운 할리우드의 진보주의자들이 다 와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언니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노르마 바르즈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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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스카상 수상자는…”(and the Oscar goes to…)이란 프롤로그에 쉼표가 따라붙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후보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상을 받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누구나 얘기하지만, 후보에 올랐는데 상을 마다할 후보가 또 있을까.여기 유력한 후보였지만 아쉽게도 아카데미와 연이 닿지 않은 이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또 뺐기다니...리들리 스콧과 피터 잭슨< 리들리 스콧은 올해도 웃지 못했다. 1992년의 <델마와 루이스>, 지난해의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3번째 감독상 후보 지명. <글래디에이터>가 5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동안 수상자들의 경의어린 소감에 거듭 거명됐지만, 정작 감독상에 호명되지 못했던 지난해의 악몽을 과연 떨칠 수 있을까. 지난해 오스카에서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감독상을 빼앗긴 뒤 작품상을 받고도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던 스콧은, 올해 시상식 카메라에도 몇 차례 건조한 표정으로 담겼다. 기대도 실망도 않겠다는 듯
오스카의 불행아 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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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의 자전거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년 전, 외화가 느지막이 수입되던 시절의 한국 관객에게는 꼭 18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10살 소년 엘리엇은 서른의 청년이 됐고, 흥행성 약하다는 이유로 콜럼비아 영화사로부터 <E.T.> 기획을 퇴짜맞았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공동대표가 됐다. 20년이 지나고 재회한 영화 <E.T.>는 예전 그대로이면서 또한 다르다. 요즘 10대 관객의 입맛에도 달라붙는 일급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E.T.>는 여전하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완결되는 모멘트가 셀룰로이드 표면이 아닌 관객의 지각 속에 있다는 믿음을 가진 관객에게 <E.T.>는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감정의 박동을 전해온다. 하늘을 나는 희열과 이별에 눈물 흘렸던 소년·소녀들은 이제, 상실감의 그늘이 드리운 가정의 어린 남매 사이에 피어나는 묘한 긴장과 위로, 엄마의 외로움을 읽어낼 것이다. 정확한 연출 리듬에 감탄하
빅히트 그리고 재개봉 를 이해하는 11개의 키워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