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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 8인방의 출사표, 그들의 첫 영화 미리보기영화의 역사는 늘 새로운 물결로 다음 장을 열어젖힌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할리우드의 아메리칸뉴시네마, 영국의 앵그리영맨, 독일의 뉴저먼시네마, 일본의 쇼치쿠누벨바그…. 영화사의 어떤 대목을 펼치던 주류의 흐름을 바꿔놓은 신인들의 데뷔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연 90년대 중반 이후 급물살을 탄 한국영화의 변화엔 어떤 이름이 붙을 것인가? 그 흐름은 올해도 변함없다. 낯선 영화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올 새로운 감독들, 그들을 미리 만나보는 자리는 언제나 조금 흥분된다.<씨네21>이 미리 만난 8명의 신인감독은 이미 촬영을 했거나 곧 크랭크인할 영화의 연출자들이다.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입봉을 눈앞에 둔 그들의 출사표, 거기엔 장강의 앞물결을 밀고 앞으로 나가려는 패기가 깃들어 있다. 신은경·정준호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이병헌·이미연 주연의 멜로드라마 <중독>, 한석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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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턱선이 조금만 더 단정했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생겼냐고?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이발소에 걸린 가족사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김명민-장진영, 배다른 남매의 아버지로 모든 비극의 출발이 되는 이 개망나니 같은 인간은 사진으로만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얼굴의 주인공이 박영훈이다. 원래 그의 꿈은 배우였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연기전공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선배 학생들의 단편영화들에 출연했다. 화면을 보니 정면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측면이 너무 안 좋았다. “이 얼굴로는 한계가 있겠다, 게다가 나는 발음까지 샌다.” 3학년 때 연기에서 연출로 바꿨다. 그때도 영화감독을 꿈꾸진 않았다.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것도 연극이다. 영화는, “가정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닌” 그에게 돈이 많이 들었다.취직시험을 조금만 더 잘 봤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방송사 PD 시험을 봤다. 1년 동안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서울텔레콤에
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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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모지은 감독은 대학교 3학년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배추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되는, 단순하지만 힘들었던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뭔가 다른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연극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 치열할 것도 없는 그 과정을 들어보면 이 여자, 너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스물여덟 어린 나이에 촬영현장을 휘어잡은 모지은 감독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곧바로 뛰어드는 편을 택하는 저돌적인 젊은이다. “영화를 만들어야지 생각하니까, 바로 감독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따라오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딴 길로 새지 않고 영화만 했다.그의 늦은 결정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만은 아니다. 모지은 감독 역시 영화감독들이 흔히 거친 어린 시절을 고만고만하
신인감독 8인 (3)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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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벽과 기둥은, 그가 품은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세상에 전해주기에는 너무 무뚝뚝했다. 그것이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반 시절 대한민국 건축대전에 입선하고 설계사무소에 취직해 건축가의 길을 걷던 김성호(32) 감독이 익숙한 건물들의 거리를 떠나 영화라는 이방으로 용감하게 유턴한 사연이다. 표현매체로서 건축이 지닌 운신의 한계를 카메라로 뛰어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16mm 워크숍으로 간단한 자가 적성검사를 치른 다음 1996년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2001년까지 뉴욕시립대와 뉴스쿨대학원에서 영화와 비디오, 컴퓨터애니메이션 제작을 공부했다.국내 독립단편영화제를 비롯해 영국, 미국의 여러 단편영화제에 초대받은 <아이 더 아이>(I the Eye), <케첩 스토리> 등 김성호 감독의 짧은 필름들은 뮤직비디오에서 클레이메이션에 이르는 다채로운 팔레트를 자랑하지만, 그 화사한 표면 아래에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관객의 지각(知覺)을 현혹하는
신인감독 8인 (4) -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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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이건 뭐지?” 손목시계 디자인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지 3개월. 제멋대로 빈둥거리며 살았던 백수생활이 이제 슬슬 지겨워질만 하던 때였다. 마침, 신문에 난 영상원 1기 모집 광고는 김은숙(33)의 녹슨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무작정 연출을 지망한 그는 시를 주고 콘티를 짜는 등 당시로서는 독특했던 시험문제를 대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험이 다 있군” 하며 퍼즐 풀 듯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 정작 합격증을 받아들게 된 사정은 자신도 모르겠다고.입학 당시엔 찾아볼 수 없던 연출욕이 급작스레 타오른 건, 영상원에서 <일요일> <거울> 등의 단편을 만들면서부터. 졸업 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던 이재용 감독을 곧장 찾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순애보>의 스크립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이재용 감독은 꼼꼼한 그에게 덥석 각색을 맡겼다. 결과가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정작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쿠
신인감독 8인 (5) - <빙우>의 김은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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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감독이 된 까닭은김종현 어린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만화광이었다. 극장에선 <로보트 태권V>에 열광했고, TV에선 <마징가Z>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미친 정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심했다. 이게 싹수였다. 명동의 외국서적 파는 곳을 두리번거리며 ‘로봇 백과사전’처럼 비싼 책을 사모으는 남다른 짓을 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 마징가Z나 그레이트 마징가 같은 캐릭터가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불현듯 애국심이 불끈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한국만화는 한국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그는 결심했다, 만화영화 감독이 되겠고. 그래서 스케치북이나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미래를 준비했다.그런데 6학년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표지판을 뚫고 극장에서 본 <엑스칼리버>는 그의 삶에 새로운 동기를 불어넣었다. 그때야 ‘아, 칼싸움이 어찌 저리 멋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 즈음부터 만화의 세계를 넘어 신화적인 세계를 동경하기
신인감독 8인 (6) - <동정없는 세상>의 김종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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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그림을 그리는 것, 사진 찍는 것,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이혜영 감독은 “세상만물에 관심은 넘쳐나지만 뭐 하나 꼬집어 잘하는 게 없었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종합예술’ 하는 게 맞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 만들기는 그 많은 것을 녹여낼 수 있는 일이다. 다행스럽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온 것이고.” 정지우, 김용균 감독 등과 한양대 연극영화과 동기였던 이혜영 감독은 졸업 직후엔 영화기획실에 들어갔다. “기획실 일은 내부작업이 많았는데 역시 나는 바깥에 나가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결국 학교선배였던(당시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었던) 김상진 감독에게 부탁해서 <투캅스>의 스크립터로 처음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부터 <나쁜 영화>까지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으로 감독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밟아나갔다.그는 왜 <첫눈>을 연출하는가지난
신인감독 8인 (7) - <첫눈>의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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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군대에서 병장이 꿰어차는 ‘TV채널 선택권’ 덕분에 어느 날 병장 김태균은 텔레비전에서 단편영화 한편을 보게 된다. 무릇 군인이라면 채널을 고정시키곤 하는 쇼·오락프로가 아닌 EBS의 단편영화극장이 그날 병장 김태균이 선택한 프로그램. 거기서는 마침 스스로를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남자에 관한 장준환 감독의 단편 이 나오고 있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김태균은 내무반 TV 앞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발견했다.입대 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그당시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를 위한 한 소통방식으로서 영화가 적합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 “저런 단편은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보태져서 제대 뒤 김태균은 <씨네21>에 난 광고를 보고 한겨레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를 들어갔다. 복학생이 별거 다한다는 얘기까지 들으며 학교에 영화제작동아리도 만들었고, <이방인의 꿈> <줄서기> 등 단편을 만들었다. 상업
신인감독 8인 (8) - <크랙>의 김태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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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우.” 10여명의 배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무대를 횡단한다. 오순택씨를 인터뷰하기 앞서 찾아간 연극원 연기실습실 마루엔 아직 오전 11시도 안 됐는데 땀이 배어 있다. “어째서, 누구를 위해서 그 애를 희생시켰지…. 하데스가 그 자들 애의 살보다 내 애의 살을 더 먹고 싶어했단 말이냐?” 무대 중앙에 선 여배우의 목소리가 관객 하나 없는 실습실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퍼지자, 오순택씨와 그의 대학원 제자들이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연습하는 작품이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엘렉트라>임이 드러난다.연극원장 김광림씨의 권유로 강의를 맡은 오순택씨는 <엘렉트라> 공연을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수업의 과정일 뿐이라며 그리스 비극을 연습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연기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죠. 우리 학생들 경우엔 대체로 사실적인 연기, 실제적인 삶을 모방하는 연기에 집중하는 편인데 연기의 깊이를 쌓아가는 데는 이런 작품이 도움이 됩니다. 실생활에서 볼 수 없는 특
연극원 연기실습실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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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한국인 배우 오순택, 현재 연극원 초빙교수로 한국에 와 있는 그를 만나 이국땅에서 이국의 언어로 연기해야 했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카메라의 중심에 있지 못했지만 인생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어떤 노배우의 삶을 돌아본다.편집자주오순택씨는 이방인이다. 지난 40여년간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배우를, 그의 조국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오순택씨는 이방인이다. 1959년 단돈 15달러를 들고 LA공항에 도착한 그에게 할리우드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조명이 비치지 않는 구석자리밖에 없었다.그래도 그는 자기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그건 오순택이라는 한국 이름을 기억해달라는 무언의 시위이자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연극원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나이는 올해 일흔이다.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나온 에서 오순택씨는 007을 돕는 영국 정보부의 홍콩
할리우드의 한국인 배우 오순택의 연기인생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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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 영화제는 유례없이 화려한 라인업으로 '칸의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 힘은 극장 밖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 최고의 스타들의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을 수가 있는 영화제는 아마도 칸이 유일할 것이다.(아카데미영화제 빼고). 어둠 속 스크린에서 진중한 거장과 재기 넘치는 신인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색을 권하는 동안, 극장 밖에서는 무수한 스타들이 온세상 시네필들을 향해 미소를 보내고 악수를 건넸다.이들이 없었다면 칸의 해변은 조금은 썰렁했을지 모른다.(아니면 더 고상했을까?)칸=사진·글 이혜정 기자 사진설명01. 프랑스의 국민배우 두 사람. 장 르노와 줄리엣 비노쉬.02. 샤론 스톤은 언제 어디서든 사진기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등장할 때면 10분씩 메인 포토콜이 지체되곤 했다. 참고로 <원초적 본능>이 1992년 개막작으로 선저오딘 뒤 스톤은 칸의 연인이 됐다. 놀랍게도 이번엔 심사위원까지!03. 니콜 가르시아의 영화 <적>에서
사진으로 보는 칸의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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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머스 앤더슨의 전 작품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제인 셀러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둘러싼 의심스런 눈초리와 수없이 마주쳤다고 기억한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1시간30분짜리 영화를 만든다구? 근데 그게 로맨틱코미디란 말이지? 주인공이 애덤 샌들러야?”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등 어둡고 격렬한 애증의 연대기를 즐겨 다뤘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그러나, 그의 관심 영역과 재능의 스펙트럼이 그 이상임을 증명해 보였다. 사랑에 관한 동화적인 소품 <펀치 드렁크 러브>로 그를 둘러싼 선입견을 녹다운시킨 셈이다.폴 토머스 앤더슨의 분신은 여전히 결함투성이고 애정 결핍이다. 그리고 가족은 여전히 그의 굴레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사랑으로 새로운 희망을 말하려 한다. 주인공 배리 이건은 노총각이다. 7명이나 되는 누이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그는 여자와 변변히 데이트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비행 마일리지를 경품으로 준다는 푸딩을 사모으는 것이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4)-폴 토머스 앤더슨(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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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이제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컬트감독계’를 떠나야 할 모양이다. 물론 그의 영화가 미국의 메이저영화사를 통해 와이드 릴리스되는 기적은 이번에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올 칸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과거없는 남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환대와 지지를 받았다. 무뚝뚝한 인물들, 천연덕스러운 유머, 신랄한 풍자가 어우러진, 북구의 기이한 희비극이 칸에서만큼은 대중적으로도 어필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 칸이 사랑한 카우리스마키 특유의 예측불허 블랙유머는 시상식장까지 이어져,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황당한 소감을 말한 이로 꼽히게 됐다. “가장 먼저, 내 자신에게 고맙다. 그 다음은 심사위원들. 그럼 이만 안녕.”<과거없는 남자>는 기억을 잃은 남자가 다시금 세상에 뛰어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헬싱키로 떠나온 남자는 밤길에 불량배들을 만나 돈을 빼앗기고 죽도록 얻어맞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3) - 아키 카우리스마키(심사위원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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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로 오랜 숙원을 풀었다. 지난 1986년 경쟁부문에 올린 작품 <해적>이 ‘재난’으로 판명된 뒤, 그는 배우 아니면 심사위원 자격으로나 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반전을 준비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은 고행과 치유의 지난한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폴란스키는 필생의 작업 <피아니스트>를 위해 40년 만에 모국 폴란드로 돌아갔고, 16년 만에 레드카펫을 밟았고, 그리고 생애 처음 황금종려상까지 안았다.유대계 폴란드인인 로만 폴란스키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 <피아니스트>를 들고 칸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화제의 초점은 폴란스키가 자신의 경험을 어떤 모양새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영화화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폴란드 크라코우의 유대인 거류지에서 성장한 로만 폴란스키는 나치 캠프의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 제의를 고사했을 때 그는 조국 폴란드를 떠나면서 봉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2) - 로만 폴란스키(황금종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