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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극장이 아닌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스크린이 걸렸다.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판 갤러리 벨벳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7시에 3층 테라스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작품은 박철수 감독이 총괄프로듀서로 참여한 최위안 감독의 <저녁의 게임>. 갤러리 벨벳은 “작품 자체보다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에 눈이 먼 요즘, 작품만을 순수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킹, 대안공간 미끌, 대안공간 헛 등 홍대 근처 3개의 갤러리도 참여했다. <저녁의 게임>은 백색 스크린이 아닌 설치작업 스크린 위에 상영되며, 설치작업은 전정현 작가가 영화의 컨셉과 느낌을 살려 완성했다. “야외상영을 비롯해서 이광모 감독님과도 상영 방식에 대해 많이 의논했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해본 방식인데 <시네마 천국>의 분위기도 나고 사람들 반응도 좋은 편이다.” 시나리오, 제작 등 영화쪽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갤러리 벨벳의 문철 대표는 “갤러리 바로 옆이 청와대
[인디스토리]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즐기는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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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DVD 시장은 유망한 분야로 보였다. 2003년 18%, 2004년 9%의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던 DVD 시장은 2005년 이후 급격하게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DVD 매출은 2005년 -35%, 2006년 -21%, 2007년 -36%의 매출 감소를 보였고, 올해는 -4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2004년 1085억원에 달하던 DVD 매출액은 지난해 35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비디오는 말할 것도 없다.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떨어져왔던 비디오 매출은 1천억원을 훌쩍 넘었던 전성기가 무색하게도 지난해에는 219억원을 기록했다.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불법복제 때문이다. 영진위는 비디오와 DVD를 총괄하는 홈비디오 시장의 전체 매출에서 불법복제로 인한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88%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사업자들의 사정도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소니픽처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직배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1990
[문석의 취재파일] 직배사, DVD 시장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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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감독 알렉스 콕스는 한때 국영 TV 프로그램에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미국 아카데미의 특별공로상을 거부한 적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미국 아카데미는 “자화자찬하는 엉터리 잔치”라는 이유로. 나 역시 아카데미상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자란 터에 시상식도 영국 TV에서 방영되지 않았으며, 중요한 (또는 영국과 관련된) 수상자들만 라디오나 TV 뉴스에 보도되었을 뿐이다. 시차 때문에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야 최고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한 전체 수상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아카데미상은 특별히 중요한 듯하다. 못 이룰 꿈이라서 그런 것인가? 대만 정부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상금을 주듯 아카데미상을 받아오는 대만 감독에게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준다. 여기에는 황당한 조건이 적용된다. 그 영화는 반드시 ‘대만적 가치’를 선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 즉 게이 카우보이 이야기(<브로크백 마운틴>)는 실격이지만 섹시함
[외신기자클럽] 아시아는 왜 아카데미상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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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한산했던 중국의 극장가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월1일 국경절 연휴를 맞은 요즘, 올림픽 기간과 유명 감독들의 대작영화들이 일제히 개봉하는 연말 성수기를 피하려는 중국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우선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판타지 사극영화인 <화피>(Painted Skin)다. 포송령의 소설 <요재지이>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화피’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제작비 1억위안이 들어간 대작으로, 견자단, 주신, 조미, 진곤, 손려 등 중국의 스타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제작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구미호와 두꺼비 요괴의 대결 등 원작 소설의 섬뜩하고 기괴한 내용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려고 했던 이 영화는 한때 중국 당국의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제작 중단 위기를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학위룡> 시리즈를 연출한 홍콩 출신의 진가상 감독이 중간에 공동 연출로 참여해 시
[베이징] 국경절 연휴 기간 주목받는 중국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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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와 파라마운트. 두 스튜디오가 3년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했다. 두 스튜디오의 동거는 드림웍스가 잇단 재정난을 겪던 2005년 12월, 비아콤의 파라마운트픽처스가 드림웍스 스튜디오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2006년 2월1일 파라마운트는 16억달러에 드림웍스를 인수했고, 그 뒤 드림웍스는 파라마운트와 <드림걸즈> <연을 쫓는 아이> <트랜스포머> 등을 공동제작했고, 애니메이션 <플러시> <꿀벌 대소동> <쿵푸팬더> 등을 파라마운트에서 독점적으로 배급했다.
사실 두 스튜디오의 결별은 2008년 6월부터 초읽기에 들어갔다. 드림웍스의 창립자 중 한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계약이 끝나는 2008년 독립할 것을 공공연하게 밝혀오기도 했고, 드림웍스에 흥미를 보인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타임> 등 외신은 7월경부터 인도 기업 릴라이언스 빅엔터테인먼트가 드림웍스의
이 정도면 3년 동안 함께 잘 산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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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는 찰리가 됐고, ‘그녀’는 조던이 됐다. 곽재용 감독의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2001)가 태평양을 건너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니 그렇다. 조던(엘리샤 쿠스버트)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만취 상태로 지하철 역에서 찰리(제시 브래드퍼드)와 만난다. 견우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찰리와 조던도 투닥거리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예고편만 봐도 원작의 흔적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한 송이씩 늘어가는 장미꽃과 ‘피아노 치는 그녀 장면’ 그리고 ‘지하철 싸대기 장면’도 볼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오래전부터 예정되었고, 일본에서는 TV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리메이크 소식이 오래된 만큼 국내 포털의 <마이 쎄시걸> 게시판에는 개봉이 언제냐는 성토가 이어진다. 대부분 엘리샤 쿠스버트 팬들의 간곡한 읍소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극장개봉 없이 DVD로 직행했다. 그래도 IMDb 게시판에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팽팽하게 맞선다. “
[what’s up] 태평양을 건너간 엽기적인 그녀, 다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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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흠뻑 젖은 맥스 페인을 보여줘
미국영화협회(MPAA)가 <맥스 페인>의 등급을 재심사해서 최초 판정인 R등급을 보류하고 관객 몰이에 용이한 PG-13등급으로 결정했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한 <맥스 페인>의 등급 재심사를 위해서 감독 존 무어는 몇몇 장면을 삭제해야 했는데,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다크 나이트>와 폭력의 강도가 유사함을 들어, MPAA의 등급 심사 기준이 불공정하다고 불평했다. 무어는 투덜거림에서 그치지 않고, 등급 심사를 위해 잘려나간 장면들을 DVD 출시할 때 꼭 되살려 넣겠다며 “게임 골수 팬들은 피에 흠뻑 젖은” <맥스 페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리얼DVD는 도둑질 DVD?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리얼네트웍스가 내놓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리얼DVD’가 논란에 휩싸였다. 출시 전부터 문제가 되던 이 소프트웨어는 DVD 타이틀을 파일로 변환해 하드웨어에 저장할 수 있게 하는
[해외단신] 피에 흠뻑 젖은 맥스 페인을 보여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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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영화감독
영화에 관해 알고 싶은 것 두세 가지 이상의 것, 시네마테크에 다 있습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시네마테크에서 다 배울 수 있습니다. 대개의 영화인들은, 국내파, 해외 유학파, 그리고 시네마테크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중 다시 국내파이자 시네마테크파, 해외파이자 시네마테크파. 시네마테크파이자 시네마테크파…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 세 부류 중 으뜸은 시네마테크파입니다. 농담 같은 사실입니다. 전세계에 시네마테크가 있는 나라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이용하고 사랑해주고, 보존해야 할 이유가 명백합니다.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 135] 영화감독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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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비탄에 잠겼다. 지난 9월26일, 폴 뉴먼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배우이자 감독이고 제작자이면서 운동가, 성공한 사업가이며 레이싱 경주를 즐기던 스크린의 전설은 향년 83살로 오랜 암투병 끝에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에 함께 출연했던 뉴먼의 지기 로버트 레드퍼드는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슬퍼했고, 케빈 스페이시는 "위대하고 겸손한 거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역시 "관대하며 온화한 박애주의자"로 뉴먼을 기억했으며,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아이콘, 박애주의자, 아이들의 우상"을 잃었다고 성명을 밝혀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192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폴 뉴먼은 무대와 TV를 거쳐 영화계로 진출했다. 젊은 시절 푸른 눈과 조각같은 외모로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자리를 꿰차기도 했지만, 인상적인 외모로 거친 반항아 또는 패
스크린의 전설, 폴 뉴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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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입주가정교사로 전전하다 클럽 가수의 매니저가 된 페티그루.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중년의 페티그루가 겪는 하루 동안의 판타스틱한 모험극이다. 출판 당시 파격을 불러일으킨 원작의 반향, 영화 속 스크루볼코미디의 전통, 화려한 런던 사교계의 과거를 재현한 영화의 비주얼 등을 통해 페티그루의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지 살펴본다.
1. 숨겨진 제인 오스틴, 위니프레드 왓슨
1938년 위니프레드 왓슨이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의 초고를 보냈을 때 메튠 출판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시 여성들이 즐겨 읽던 소설은 한적한 전원소설이 주류였다. 그런데 왓슨의 소설은 런던의 웨스트엔드 사교계의 화려한 배경, 입주가정교사라는 여성 직업의 변화, 화려한 클럽이 등장하는 전혀 새로운 영역이었다. 더군다나 소설 속 여성들은 사랑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거나 자유연애를 일삼는 등 대담하고 파격적인 연애관을 설파하고 있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왓
[알고 봅시다] 중년 여성이 하룻동안 겪는 판타스틱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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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인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되는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한 남자가 절망에 빠진 듯 쭈그려 앉아 담뱃불을 바닥에 비벼 끈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긴박함. 과연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상적인 영화의 오프닝이 지나고 나면 대문 앞에 쭈그려 앉은 남자, 형석의 추레한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형석은 어젯밤 친구들과 과음했고 필름이 끊겼다. 날아가버린 기억을 애써 찾아주는 친구의 전화. “근데 왜 그랬냐? 너 어제 서연이한테 고백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짝사랑해왔던 서연에게 그런 식으로 고백해버리다니. 형석은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서연에게 전화를 걸지만 상황은 꼬여간다. 감정 잡고 녹음한 메시지는 버튼을 잘못 눌러 날아가버리고, 마음 가다듬고 건 두 번째 전화에선 민망한 말들이 녹음된 채 배터리 부족으로 전원이 꺼진다. KT&G 상상마당의 ‘이달의 단편영화’ 5월 우수작 중 한편으로 선정된 백종현 감독의
[이달의 단편] 사랑 고백, 버튼 잘못 눌러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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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1-1> 각본에 참여했던 한 작가는 요즘 글쓰기에 골몰하고 있다. 새로운 시나리오냐고? 아니다. 그가 집필 중인 것은 소설이다. 언젠가는 시나리오를 쓰려고 염두에 두고 있었던 아이템을 소설로 써서 책을 내려는 것이다. 소설가로 전업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소설이 완성되고, 그것이 무사히 출간돼 시장에서 주목을 끌게 되면 그는 다시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훗날 영화화될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각색자가 될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영화화될) 책의 아이템을 검토하고 개발비를 지원하겠다는 외부 제안을 몇번 받았다고 말한다. 책 출판과 영화화를 동시에 염두에 두는 사람들이 제작과 출판업쪽에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시나리오작가가 훗날 영화화 작업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외 장르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창작하는 경우는 또 있다. 시나리오작가집단 ‘스토리즘’은 국
[포커스] 시나리오 전에 소설부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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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예민했다. 지난 9월4일 공개된 신동일 감독의 영화 <반두비>의 촬영현장은 충무로의 한 지하노래방이었다. 촬영팀은 배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단체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섰고, 제작부는 아주 작은 소리도 왕왕 울리는 노래방의 특성상 주변 건물에 양해를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 이날은 주연배우 네명이 ‘유일무이하게’ 한자리에 모이는 날. 엄마와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던 여고생 딸이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하는 날이기도 하다. 노래방 카운터를 보던 엄마(이일화)는 딸(백진희)과 손을 맞잡은 남자(마붑 알엄)의 ‘다른’ 얼굴색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지고, 딸은 그녀의 새아빠가 되고 싶다며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있는 한량(박혁권)의 존재가 마뜩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들은 살벌한 분위기를 전환해보려는 듯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카림이라고 합니다.” “…잘생겼네.”
지난 2005년 <방문자>로 주목받았던 신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반두비>
여고생 딸, 엄마에게 이주노동자 남친을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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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차도, 발전차도, 웅성거리는 스탭도 보이지 않는다. 8월29일. 제주도 한림읍 귀덕리에 자리잡은 강요배 화백 작업실은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도록 평온하다. 평상에 모여 홍상수 감독이 난산 중인 오늘치 대본을 기다리고 있는 열서너명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스탭 전부다. 고사에는 출연배우 매니저들이 스탭보다 머릿수가 많았다는 말이 그럴듯하다. 홍상수 작품 번호 9번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에 너나없이 노 개런티로 합류한 배우는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을 비롯해 유준상, 공형진, 문창길, 하정우, 정유미 등 호명하기가 숨차다. 인물도 많고 대사도 많다. 줄곧 관객을 이끄는 영화의 구심점은 김태우가 분하는 영화감독 구경남. 하지만 그 또한 명실상부 구경하는 남자다. 구경남은 어떤 식으로든 ‘새 삶’을 시작한 과거의 지인들을 순방한다. 제천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 공연희(엄지원)를 만난 경남은 제주도로 와 선배 양천수 화백(문창길)과 그의 젊은
구경하는 남자, 구경남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