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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수환은 발터 베냐민(1892 ~1940)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이라는 동시대인을 겹쳐보기를 권한다.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은 어째서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일까?”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색 작업은 단순한 연결과 대질의 작업을 넘어서고자 한다. 외견상 결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주제 들을 다소간 ‘폭력적으로’ 연결시킨다. 그와 같은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 작업에 김수환은 “비교의 산파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이 공히 관여했던 세 가지 공통적 대상을 제시한다. “유리 집, 미키마우스(디즈니), 그리고 채플린.”
1장 ‘유리 집의 문화적 계보학’과 2장 ‘에이젠슈테인의 디즈니와 벤야민의 미키마우스’, 3장 ‘채플린 커넥션’으로 구성된 1부와 4장 ‘혁명과 소리’, 5장 ‘에이젠슈테인의 <자본&
씨네21 추천도서 - <비교의 산파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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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음악방송 무대를 준비하던 남자 아이돌이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죽었다. 아이돌 그룹 ROME의 메인보컬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아 예능과 광고를 종횡무진 누비던 생기 넘치던 건아의 피가 무대 바닥을 카펫처럼 물들인 기이한 현장. <아이돌 살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최정상 아이돌의 시체를 살펴보는 젊은 형사 리애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선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연쇄선행마’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건아에 대한 탐문을 시작하자 리애는 그에 대한 온갖 악평부터 듣게 된다. 같은 멤버들조차 그를 ‘이중인격자에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꼬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한다. 사건의 용의자 역시 아이돌이었던 일라, 세실, 맑음인데 인물들이 가수, 매니저, 소속사 대표 등과 같은 연예계 종사자들이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이 샅샅이 드러난다. 아이돌에 문외한인 주인공 리애와 달리 그의 파트너 경원은 오랜 세실의 팬으로 웬만한 연예 전문
씨네21 추천도서 - <아이돌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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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간만에 하루 정도 휴식이 주어지면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 한숨부터 나왔던 밀린 일들을 무사히 해내고 드디어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휴식! 그런데 그 휴식이 하루에서 이틀, 일주일이 되면 휴식의 단맛이 쓴맛으로 바뀌고 불안함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왜 일이 없지? 일이 있는데 내가 깜빡하고 놓친 건 아닐까? 이러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충분한 휴식을 누리면 되건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책감이 동반된다.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 완전히 잊히는 거 아니야? 그저 뒹굴뒹굴 놀기만 해도 불안감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마 대다수는 기약 없는 휴일을 받으면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자기계발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조니 선은 처음 집필한 그래픽노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g
씨네21 추천도서 -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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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일과 인간관계,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사람들은 흔히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며칠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삶을 ‘리셋’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식의 생활방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고들 말한다. 시골도, 깊은 산도 진정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기 때문일까. <나의 완벽한 무인도>가 바로 그 ‘모든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완벽한 로망을 펼치는 소설일 거라고 믿고 첫장을 펼쳤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함께 거론되는 <삼시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의 문구 역시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결론만 말하면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일군의 ‘떠나는 힐링’ 소설들과는 다르다.
이야기는 주인공 지안이 이미 무인도에 정착해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슨 사연으로
씨네21 추천도서 - <나의 완벽한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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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아이돌 살인> - 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비교의 산파술> - 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 한여름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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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돌아왔다. 그의 복귀작은 재미와 감동은 물론 인도 사회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는 아미르 칸의 전매특허 코미디 <지상의 스타>다. 스페인영화 <챔피언스>를 리메이크한 <지상의 스타>는 스포츠 드라마로, 화가 많은 농구 코치 굴샨(아미르 칸)의 성장담을 다룬다. 전성기를 뒤로하고 슬럼프에 빠진 굴샨은 직장에서 정직 처분을 받고 급기야 음주 운전 사고까지 낸다. 굴샨은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으로 장애인 농구팀을 지도한다. 굴샨과 농구팀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미르 칸표 드라마가 다시 통할까? 3년 전 <달려라, 랄 싱 차다>의 실패 이후 긴 공백 기를 가졌던 그의 복귀에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또 지난 3년 사이 인도영화계 또한 여러 변화를 거쳤다. 영화는 보증된 아미르 칸표 맛집 레시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전반적으로 노골적이라는 인상도 강하다. 그간 아미르 칸이 부재한 발리우
[델리] 인도의 국민배우가 돌아오다, 아미르 칸의 신작 <지상의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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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여행 가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보는 것으로 충분한 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못 가는’ 사정도 다양하다. 그래서 여행 관련 콘텐츠는 여행을 (안)못 가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채널 A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인생에서 한번도 센터였던 적 없는 아이돌 출신 여행 리포터” 강여름(공승연)은 자신과 소속사의 ‘밥줄’ 프로그램인 ‘하루 여행’마저 폐지되자 절망에 빠진다. 그때 미국에 거주하는 여성이 보낸 고액 수표가 도착한다. 대리 여행을 해달라는 편지와 함께. 그렇게 여름은 난생처음 혼자 부여로 향한다. 이를 계기로 영화감독 지망생이자 방송국에서 영상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연석(김재영)과 여름의 소속사 오구엔터테인먼트가 손잡고 ‘썸머’라는 대리 여행 전문 여행사를 만든다.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내리막길’을 걷는 전직 아이돌의 성장담과 의뢰인의 사연을 담은 힐링
[오수경의 TVIEW]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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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시즌2
넷플릭스 / 8부작 / 연출 팀 버튼, 파코 카베사스, 앤절라 로빈슨 / 출연 제나 오르테가, 에마 마이어스, 스티브 부세미 / 공개 8월6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하드보일드 고스족 소녀의 귀환
하이드와 크랙스톤의 습격으로 예상보다 길어진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를 맞은 네버모어 아카데미와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에게는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방학 사이 훌쩍 큰 동생 퍽슬리가 입학하고, 새로 부임한 교장 배리 도트(스티브 부세미)가 제안한 학교 모금단체의 위원장직을 어머니가 수락한다. 그 일로 웬즈데이의 부모님도 네버모어에 상주하게 된 상황. 온 가족이 학교에 머무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지난 학기에 학교를 구한 일로 전교생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중이다. 음침한 스토커가 붙을 정도로 번거로운 학교생활 속에 설상가상으로 웬즈데이의 환영 능력이 더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환영 속에서 까마귀 떼에 둘러싸여 사망한 이니드(에마
[OTT리뷰] <웬즈데이 시즌2> <에이리언: 어스> <메리 킬즈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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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가 넓은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4K 리마스터링으로 관객을 찾는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의 원죄를 몸소 통과해가는 아시타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에게 분노한 원령공주 산, 살상과 훼손을 당연하게 여기는 에보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정립하는 과정을 담는다. 문명 발전과 생태주의, 자본과 양심, 총포와 햇살…. 비스듬히 반대편에 서 있는 단어들이 30여년 전을 가리키지만 바로 지금 기후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여전히 경종을 울린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완벽주의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작품이다. 14만4천장의 프레임 중 8만장을 수정했다는 일화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숲과 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파괴적 욕망을 저주받아 마땅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생태를 중요 가치로 여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념을 투명하게 비춘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셀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coming soon] 모노노케 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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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9일 오전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는 <킬러들의 수다>와 박정민 배우를 보기 위한 이들로 북적였다. 1년간 배우 활동을 쉬겠다고 말한 그가 <씨네21> 창간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씨네21>의 제안은 거절을 못하겠어요.” 박정민 배우는 관객과의 대화 초입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데뷔 때 배우로서 <씨네21>의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단 마음이 되게 컸어요. <씨네21> 스튜디오에 가면 옛날 선배님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데, 이분들이 사진을 찍었던 공간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그의 말처럼 박정민 배우는 데뷔 이래 수차례 <씨네21>과 만났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파수꾼>이 공개된 이후 지난 15년간 그에 관한 기사가 이 잡지에 실렸으니 30년 세월 중 절반을 동행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희 동네엔 <씨네21>
[씨네스코프] <씨네21> 창간 30주년 특별전 ‘지극히 사적인 영화관’ - 박정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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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했다. 오랜만에 밤을 새며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꺼내 봤다.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지 고를 순 없지만 어떤 영화를 여러 번 봤는지 묻는다면 몇편 꼽을 수 있다. 내겐 <이터널 선샤인>이 그중 한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익숙하면서도 고사이 살짝 낯설어진 영화는 주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좁은 방문을 두드린다. 이미 아는 내용, 정해진 운명이지만볼 때마다 미묘하게 새로운 기억이 덧씌워지는 기분이라 늘 반갑고 포근하다. 계속 손이 간다. 아마도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여러 번, 자주, 반복해서 만나는 것. 횟수에서 오는 애정. 함께해온 시간이 내겐 곧 사랑의 증거였다.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늘 마음의 빚이 있다. 내가 가진 마음의 크기는 그게 아닌데,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미안해진다. 솔직히 그건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피어난 자책의 무게일 것이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모든 형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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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디지털 복원판으로 개봉한 소마이 신지의 <이사>(1993)와 <여름정원>(1994)을 연이어 관람하면서, 원본의 저력에 다시금 감탄하고 말았다. 세상에 나온 지 30여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곳이 가장 싱싱한 원천이며, 그 사실이 쉽게 갱신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좋은 것일까. 감독들에게는 얼마간 좌절을 안길 일이겠지만, 적어도 평자에게는 그 원류로 부담 없이 돌아가 언제든 빠져 놀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다. 그런 흥분을 새삼 안겨준 몇몇 장면들을 면밀하게 되짚어보고 싶다.
아빠와 어린 딸이 화면을 누비며 친밀하게 몸을 부딪쳐 놀고 있다. 오늘은 아빠가 집을 떠나는 날. 저 멀리 이삿짐이 실린 트럭이 보이자 잘 지내라는 말을 뒤로한 채 아빠가 화면 후경으로 멀어져 차에 오른다. 숏의 말미,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딸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다음 장면에서 딸은 마치 도망가는 아빠의 숏을 붙잡으려 맨몸으로 그 숏에 뛰어든 사람처럼 트럭 꽁무니를 쫓아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혼자서 전진하는 아이에게 <이사> <여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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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가 사는 보광동 집 옥상에선 한남대교와 그 건너편 건물들이 한눈에 보였다. 해가 들지 않아 집 전체에 곰팡이가 코팅된 것 같다며 우는소리를 하던 비누는 이사 후로 줄곧 집 고치는 일에 중독돼 있었다. 어떤 날엔 침실에 벤자민 무어 페인트를 바르고, 어떤 날엔 욕실 전체에 조각 타일을 붙이면서.
비누의 집은 이슬람 사원과 도깨비시장을 지나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 안으로 한참 동안 들어가야 나왔다. 이태원역 인근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어둡고 조용한 보광동의 언덕. 나는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늘 대구의 외갓집을 떠올렸다. 작고 오래된 건물들이 퍼즐 조각처럼 다닥다닥 맞물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집인지, 또 무엇이 집의 대문이며 옥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던 도심 속 산동네. 집을 단번에 찾지 못해 엉엉 울고, 수세식 화장실 구멍에 빠져 엉엉 울고, 눈 쌓인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엉엉 울던, 엉엉 마을. 비누의 집에 도착할 무렵엔 그런 묵은 기억에 시달리느라 늘 진이 빠져 있었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그 속에 내 몸이 다 타도록, < Temp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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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영화는 어떤 능력을 묘사하며,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가. 영화 속 주인공이 소유한 능력에는 관객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오늘날 그 능력이 필요함을, 혹은 그와 같은 능력이 결핍되었음을 드러낸다. 능력에 있어 타고난 것을 노력보다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평탄한 삶을 산 천재는 그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영화는 가진 자는 잃어버리고, 없는 자는 갖게 되는 드라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편 타고난 것과 노력해서 얻은 것 사이에는 우연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상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우연을 남발하는 영화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겠지만, 능력의 관점에서 우연은 가진 것의 행운과 가지지 못한 것의 불운이라는 양자택일을 잠시 벗어나게 만든다.
타고난 과거
과거는 영화에서 중단될 수 없는 소재다. 시대를 실제 경험했는지와 관계없이 과거는 미래보다 더 구체적이며 그럴듯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과거를 향수의 대상으로 채색한 뒤
[비평] 한국영화가 (초)능력을 다루는 방식, 김소희 평론가의 <승부> <하이파이브> <바이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