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리스크를 스탭들에게 전가하는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건 제일 싫다”는 영화인 신문고(filmunion.ivyro.net) 고병철 팀장의 직설적인 화법은 2001년 9월, 비둘기둥지 2기 시절과 변함이 없다. 아픈 아버지를 모시던 조명부가 있었다. 그는 병원비를 조금이라도 자기 손으로 보태고 싶었다. 체불된 70만원을 받기 위해 그는 제작사에 통사정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알았다, 알았다” 손만 내젓는 임금 체불자. 빈손으로 돌아온 그는 병원 앞에서 도저히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서 밤새 소주를 들이켜며 울분을 삼켰다. 비토리오 데 시카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이 스토리는 고 팀장의 실제 경험담이다. 2002년부터 조감독협회에서 영화인 신문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처음으로 단체사업을 지원하는 올해 4년간 애정을 쏟은 이곳을 떠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지점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영화계 노동문제 표면화 [2] - 고병철 인터뷰
-
고발합니다!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연봉 640만원, 평균 근로시간 13∼16시간, 4대 보험 절대 없음. 초과근무 수당 꿈도 꾸지 말 것.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 나오는 새우잡이배 선원 모집 광고나 불법외국인노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2년부터 국정감사 때마다 꾸준히 발표되는 한국영화 스탭의 평균연봉과 작업환경이 바로 이러하다. 저 수치에 기사급 스탭이 포함된 것을 고려하면 하부 스탭들이 체감하는 삶의 온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4월1일 충무로역 오!재미동에서는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가 “영화인 신문고 사례고발! 및 영화노동자 생존권 쟁취!”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고생 시집가기> <남남북녀> <별>, 세편의 영화가 임금체불로 발표되었고, 제작자의 실명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2004년 국정감사에 유포된 영화인 신문고 사례 요약본에 의하면 총 21건의 체불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인 신문고 게시판에
영화계 노동문제 표면화 [1] - 부당한 사례들
-
우아한 무협의 세계를 그리던 호금전 감독의 <방랑의 결투/대취협>. 그 속편으로 선보인 <심야의 결투/금연자>는 감독이 바뀐 덕분에 영화 스타일도 완전히 달라졌다. 호금전과 달리 장철은 마초적 성격이 강했고, 그 결과 전편의 주인공 정패패가 아닌 왕우를 간판으로 내세운다.
장철 영화 특유의 비장미와 유혈 낭자한 폭력으로 전편과는 사뭇 대조적인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물론 왕우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부록 가운데 장철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무협 팬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상이다.
<심야의 결투>
-
칠순 노장 오타르 이오셀리아니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프랑스로 망명한 1980년대부터였다. 우리에게도 영화제를 통해 두어 번 소개됐다고는 하지만 영화제용 귀한 손님 정도로 그를 대접하기엔 뭔가 아쉽다. 알렉산더 도브첸코로부터 영화를 배운 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와 함께 평가되는 이름이며, 우리가 지금 마지막으로 발견해야 할 살아 있는 거장이다.
그의 대표작 <안녕, 나의 집>은 한 부호의 가족과 도시에 흩어져 사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다. 근작 <월요일 아침>에 버나드 맬러무드의 <피들먼의 초상> 중 ‘베니스 편’이 녹아 있다면, <안녕, 나의 집>은 <톰 존스>처럼 유쾌한 악당이 등장하는 피카레스크 소설을 닮았다. 주인공과 주요 인물의 수는 대충 잡아도 스무 명이 넘는데, 영화는 결말에 도달할 즈음에도 여기저기 뿌려둔 에피소드와 각각의 삶들을 주워담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양 흘러간다.
일군의 구성
<안녕, 나의 집> 이오셀리아니, 자크 타티의 황홀한 재래
-
-
매주 월요일 저녁무렵이면 공개되는 씨네21 박스오피스 순위가 하루 정도 늦었다. 혹시라도 기다리셨던 분이 계셨다면 심심한 사과말씀 드린다.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씨네21은 각 배급사(영화사)에 개별 확인 전화를 해서 수치를 파악하고 있는데 배급사 담당자들이 장시간 자리를 비울 경우 확인 방법이 묘연해진다. 어제가 마침 그런 경우였다. 기타 영화들은 수치파악이 어느정도 되었는데 1, 2위를 다툴것이라 예상되는 <주먹이 운다>(배급 쇼이스트)와 <역전의 명수>(배급 시네마서비스)만 확인이 안됐다.
담당자들이 어디로 갔을까? 마침 어제는 문근영 주연의 배급시사가 있는 날이었다. 주요배급사 담당자들이 모두 참석했음은 당연지사. 따라서 어제 저녁 6시까지는 모든 언론사에 수치공개가 되지 않았다. A언론사는 이를 두고 “두 배급사가 신중을 기해 수치 발표를 하느라 오후 6시가 지나서 공개했다”고 적었고 B사이트는 “두 배급사의 공개가 늦어지기 때문에 <미트 페어
‘주먹’이 ‘명수’ 울렸네.
-
유독 무게가 부담되는 사람과 영화가 있다. 내부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자의식과 외부로부터 부여된 심각한 주제는 송일곤의 어깨에 종종 답답할 정도의 무게로 걸쳐있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선 그 어떤 희망도 비관처럼 들리곤 했다. <깃>은 가볍게 살랑댄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에 순수한 자유가 깃들어있는 가운데, 감독의 맑은 정신은 바람이 되어 깃의 육체를 움직이고 깃의 영혼이 조용히 자리잡게 한다.
<깃>은 작은 섬 우도를 10년 만에 찾은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10년 전의 약속을 기억했던 그에게 다시 1년 후의 약속이 주어진다. 나무 문지방을 갉아먹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 만난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로 진입하며, 돌로 담을 쌓듯 이야기의 천을 짜는 <깃>은 자기반영성이 짙은 영화다. 환경영화제를 위해 만들어진 이 작은 디지털 소품은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자의 진정으로 충만하다. 주변부에 머물던 부부가 재회하는 장면은 예술이
<깃> 예술이 삶보다 크게 느껴지는 순간
-
<러브 액츄얼리>에서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하던 남자를 기억하는지?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도 고백하던 그의 애타는 마음을. 그 남자가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어바웃 러브>는 친구의 아내를 너무 오래 사랑해온 한 남자가 그 마음을 우연한 계기로 고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로맨틱코미디로 풀어냈다.
밸런타인 데이가 되면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의 아내 앨리스(제니퍼 러브 휴이트)를 사랑하는 아치(더그레이 스콧)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 혼자 술에 취해 길을 걷던 그는 술김에 앨리스에게 익명으로 사랑 고백 엽서를 보내는데, 앨리스는 남편 샘(지미 미스트리)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익명으로 그에게 카드를 쓴다. 샘은 ‘미지의 여인’을 향해 열정을 품는다. 문제는, 샘이 카드를 보낸 사람이 오랜 정부 캐챠라고 생각한다는 사실. 장난처럼 시작한 익명의
로맨틱코미디의 예정된 해피엔딩, <어바웃 러브>
-
완벽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형이자, 남편인 한 사내(율리히 톰센)가 자신이 일군 화목한 가정을 떠나 전장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는 무사귀환하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 게릴라의 공격을 받고 그들의 포로가 된 이 사내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감행한다. 그 사이 그의 사망 통지를 받은 가족들은 가족의 중심을 잃고 슬픔에 휩싸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은 어찌됐건, 살게 마련이다. 가족들이 그의 부재에 적응해나갈 무렵, 그가 거짓말처럼 살아 돌아온다. 문제는 바로 여기,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2005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던 <브라더스>에는 제목 그대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형제가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형제애 혹은 형제의 갈등 자체보다도 전쟁과 가족애라는 두개의 대립축에 맞춰진다. 영화는 모든 것을 포용하던 단란한 가정이 자기 파괴적인 전쟁을 겪고 다시
평화로운 가정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 <브라더스>
-
브에나비스타에서 오는 4월 20일 출시하는 <인크레더블> DVD의 홍보를 위해, <인크레더블>의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엘라스티걸 복장을 한 홍보요원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이들 8명의 도우미들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시내 주요지역인 명동과 일산, 분당 등에서 길거리 이벤트를 펼쳤는데, 아이들에게 미아방지 자석손목 팔찌를 나눠주면서 행인들로부터 높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또한 출시일인 4월 20일을 기점으로 23일까지 서울과 일산, 분당의 주요 음반점 및 할인점에서도 동일한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인크레더블>은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명작을 탄생시킨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 CG 애니메이션으로 빼어난 기술력과 오락성으로 찬사를 받았던 작품. 지난 2월에 개최된 제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슈렉 2> <샤크> 등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
도심 한복판에 엘라스티걸 등장!
-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영화감독 무자파르(무자파르 우즈데미르)는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고향 마을에 온다. 그는 고향 사람들을 배우로 쓰고 촬영도 그곳에서 할 생각이다. 한적한 마을에는 무자파르의 부모와 번번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도 대도시로 나가려고만 하는 사촌 사펫(마흐멧 에민 토프락), 멜로디 시계를 갖고 싶어하는 아홉살 사촌동생 알리 등이 살고 있다. 무자파르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배우로 서게 하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십년 동안 주인없는 땅에서 키워온 포플러 나무가 정부 소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다.
<5월의 구름>은 지난해 개봉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화다. 같은 배우 두명이 도시와 시골에 사는 사촌형제를 연기하는 이 두 영화는 모두 연출과 스탭을 도맡아하며 혼자 영화를 만들어온 세일란에게는 반쯤은 자화상과도 같다. 그러나 금이 간 유리컵처럼 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우작>에 비해 아직
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잔잔한 정서, <5월의 구름>
-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제 엄마세요.” 입학심사 중인 프린스턴대 관계자가 읽어내려가는 자기 소개서로 <스팽글리쉬>는 시작한다. 이후 계속되는 내레이션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모레노(셀비 브루스). 대학에서 문화적 차이를 연구하고 싶다는 그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꿋꿋이 살아왔던 엄마 플로르(파즈 베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러한 도입부와 스페인식 영어를 의미하는 제목 ‘스팽글리쉬’에는 영화의 주제가 드러낸다. 그것은 백인 중산층과 이민자들 사이의 문화적 갈등, 미국사회에 적응하면서 딸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슬픔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취직한 플로르는 처음으로 미국인들의 상식과 일상을 접하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경험한다. 최고급 음식점의 요리사인 존(애덤 샌들러), 아침마다 맹렬하게 조깅을 즐기는 그의 아내 데보라(테아 레오니), 유쾌한 알코올중독자 장모 에블린(클로리스 리츠먼), 그리고 따뜻한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돌과 이해, <스팽글리쉬>
-
현하의 국제정세를 고려해 생각해볼 때, 유엔, 그러니까 국제연합의 본부가 미국 뉴욕에 자리잡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의 결의와 무관하게, 때로 이를 어기고서라도 팽창주의적 전쟁을 자행하는 미국의 영토 안에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한다는 이 기구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할 세계 곳곳의 문제보다 자국의 이익만을 신경쓰기에 바쁜 미국 안의 유엔은 환락가 속의 성스런 교회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정치스릴러 <인터프리터>의 기본 줄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기반한다. 아프리카의 마토보라는 국가에서는 잔혹한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이 마토보의 대통령 주와니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목청을 드높이고 있는 와중, 주와니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설득을 벌이겠다며 유엔 방문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이때 유엔 통역사인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은 유엔 회의장에서
씨도 먹히지 않는 이상론, <인터프리터>
-
‘어린이의 죽음은 신의 죽음’이라는 엘리 위젤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채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 국경을 떠돌면서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쿠르드족 어린이를 보노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당장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 전쟁을 일으킨 사악한 어른들의 목을 조르고 싶다.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아이들의 국적은 관객의 국적이 되고, 아이들이 쓰는 쿠르드어는 관객의 언어가 된다. 아니, 정녕 그렇게 부담스럽고 진지한 영화란 말입니까?
아니다. 이 영화는 지하철 앵벌이 소년소녀를 이라크로 데려가 찍은 최루성 영화가 아니다. 여러 가지 독법으로 즐길 수 있는 열린 작품이다. 물론 바닥엔 영화 내내 아이들의 발목을 적시는 더러운 진창 같은 현실이 있지만 말이다. 첫 번째 독법은 소년이 소녀를 사랑한다는 기둥 줄거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다. 무대는 2003년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한 이라크 국경지대 쿠르디스탄. 전쟁이 벌어진다는 흉흉한 소식은 암울한 공기가 되
가파른 현실에도 활기찬 어린이들의 움직임, <거북이도 난다>
-
기억이 담긴 머릿속 다락방을 여는 열쇠는 참으로 다양하다. 소리, 냄새, 하찮은 물건, 거리, 사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을 기억 뭉치들은 다락방 문이 한번 열릴 때마다 용케도 한 줄기씩 잘도 뽑혀 나온다. 어디선가 오스트리아 작곡가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 흘러나오면 난 금세 학창시절로 돌아가 체육복을 입고 친구들과 음악에 맞춰 운동장을 행진하고 있다. 교복을 입고 까르륵대는 여학생들을 거리에서 만났을 때, 여학교 시절 내 친구 이름을 부를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어떤 청년을 보고서는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놀라 가슴이 쿵쾅, 뛴 적도 있다. 모습이 누구랑 닮았구나, 라고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세월을 건너뛰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기억이 튀어나올 때는 그처럼 순식간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의식 자체는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인지 모르겠다.
영화. 영화 역시 기억의 다락방을 여는 열쇠로서는 독보적이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하던 대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카사블랑카> 험브리 보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