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영화감독 피터 쿠벨카는 실험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독한 과작(寡作)의 영화작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재작년에 26년 만의 신작 <시와 진실>을 내놓아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13분짜리 컬러영화는 텔레비전 광고를 위해 촬영되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필름들을 쿠벨카가 직접 찾아내 모은 것으로, 운율적 반복과 리듬감, 그리고 필름이라는 매체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 등등, 그야말로 ‘쿠벨카적’이라고 불릴만한 것의 진수들이 모두 담겨있는 작품이다. 쿠벨카 스스로가 “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인정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 영화박물관 - 쿠벨카는 이 기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 의 알렉산더 호바트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일련의 ‘운율적 영화’들과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1966)으로 대표되는 ‘은유적 영화’들의 단계를 거쳐, 쿠벨카는 이제 ‘형이상학적 영화’라고 불릴 수 있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시와 진실>을 발표하기 이전에 쿠벨카가 만든 영화들은 고작 6편에 지나지 않으며, 전작을 다 합쳐도 상영시간이 채 60분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상영시간이 1~2분에 지나지 않는 ‘초’단편영화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력의 쿠벨카가 실험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자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쿠벨카의 중요성은 그의 영향력에서가 아니라 그의 영화작업 자체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의 본질’(essence of cinema)을 파헤치기 위한 그의 집요한 노력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일련의 테제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영화는 실재의 직접적인 흔적인 동시에 ‘언어’이기도 하다는 것, 이러한 영화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에이젠슈타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믿어왔던 것처럼) ‘숏’이 아니라 개개의 ‘프레임’이라는 것, 결국 영화적 기호작용의 ‘본질’은 숏과 숏 사이가 아니라 프레임들 사이에 놓여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테제의 실천은 우선 리듬과 매체의 물질성이 강조된 일련의 ‘운율적’(metric) 영화들 - <아데바> <슈베하터> <아르눌프 라이너> -을 통해 이루어졌고, 지시적 속성을 지닌 사진적 이미지의 병치 및 충돌에 의해 풍부한 함의를 띠게 되는 ‘은유적’(metaphoric) 영화 -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 - 들이 그 뒤를 잇게 된다.
피터 쿠벨카는 유럽출신의 영화작가이기는 하지만 요나스 메카스, 스탠 브래키지 등의 도움을 얻어 미국에서 활동 - 주로 강연 - 하기 시작하면서 북미권의 실험영화 작가들에게 서서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60년대 이후 아방가르드 영화계의 이슈로 떠오른 유물론적 ‘구조영화’(structural film)의 선구자로서의 쿠벨카의 위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쿠벨카가 꼭 과거의 영화작가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영화작업을 거의 그만둔 이후에도 차세대의 영화작가들을 가르치고 영화상영 및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영화작업’을 계속해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영화작가 가운데 하나이자 쿠벨카가 매우 재능 있는 필름메이커로 꼽고 있는 마틴 아놀드는 쿠벨카 특유의 차이 나는 반복을 보다 미시적이고 미분화된 수준에서 수행함으로써 운율적 반복과 리듬을 통한 정서의 창출이라고 하는 쿠벨카적 기획을 잇고 있다. 쿠벨카의 신작 <시와 진실>을 어떤 점에선 마틴 아놀드와 같은 젊은 세대의 작업들에 대한 노장의 현재적 응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편 오늘날의 쿠벨카는 영화감독이라고 하는 특정한 영역에 자신을 가두기를 거부하며 -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탈전문화’(de-specialization) - 음악,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이때 우리는 비단 한 명의 시네아스트가 아닌 거대한 교양으로 무장한 르네상스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