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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4일 저녁, 용산CGV 극장의 전관을 빌려 치른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가 끝난 뒤 제작사인 MK픽쳐스의 이은 대표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심재명 사장, 임상수 감독, 그리고 백윤식과 한석규 등 20여명의 출연진과 스탭 그리고 송강호를 비롯한 명필름의 지인 등 40명이 대학로 카페 장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1월21일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1차 심리가 열린 직후였고 28일 2차 심리가 열리기 전이라서 그런지 25일 저녁의 그때 그 사람들 입가에선 영화 시사회를 마쳤다는 기쁨과 불안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영화상영 가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2월1일 이전에 나올 예정. 11개 극장을 차례로 돌며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질문의 포화에 갇혀 있던 탓인지 영화조차 보지 못한 백윤식과 한석규 등 출연진의 입가엔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혹시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 제작자와 감독에게는 보디가드가 따라붙었다.
처음엔 임상
<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시각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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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상 스캔들을 만들기도 하고 상영작 프로그래밍을 통해 잠재적인 문제작 한두개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기도 하는 것이 영화제다. 선댄스에서 데뷔작 <버팔로 66>으로 발견된 빈센트 갈로가 칸에서 <브라운 버니>로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칸영화제 사상 최악의 영화”라고 악평한 로저 에버트와의 설전으로 칸의 스캔들이 된 것이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음.)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모터사이클 레이서 버드는 여행 중 만난 여인들과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것이 상영시간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그동안 <브라운 버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데이지(클로에 셰비니)와의 격렬한 펠라치오 뒤 울먹이는 버드의 회상을 통해 그녀가 이미 유령이 되었으며 파티 중 <키즈>에서처럼 윤간당했음을 알게 된다(그녀가 마약으로 질식사한 건지 버드가 교살한 건지는 불명확하다).
그런데 막상 <브라운 버니&
[해외 타이틀] 빈센트 갈로의 칸 스캔들, <브라운 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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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을 소재로 한 근작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답게, DVD에 수록된 허진호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도 그러한 본편의 느낌과 무척 닮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독은 그렇게 달변도 아니고, 특별히 기술적인 언급이나 전문용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들과 특히 이 영화를 유작으로 남긴 유영길 촬영감독을 중심으로 현장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차분한 어조로 담겨진 오디오 코멘터리는 오히려 본편의 잔영을 흐려놓지 않는다. 너무 ‘까발리다’ 못해 감상 뒤의 환상을 몽땅 깨버리는 DVD들과는 정반대라고나 할까.
코멘터리는 작품이 그렇듯, 죽음에 관한 일화들이 많다. 취재진들에게 촬영현장이 공개되었을 때 어쩔 줄 몰라 헤매고 있던 감독에게 ‘빛이 좋지 않으니 나중에 찍을까’ 하고 여유있게 배려했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을 허 감독은 영화적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극중 영정을
[코멘터리] 죽음에 관한 담담한 현장일화,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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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경부터 시작된 셰익스피어의 비극시대는 엘리자베스 여왕 말기의 정치적 사건에 영향을 입은 바가 큰데, 구로사와 아키라가 컬러영화로 진입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어두운 모습으로 변화하던 그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 영화제작이 힘들어지면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상한 구로사와가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 1970년대는 그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시절이었다. 다행히 <카게무샤>와 <란>으로 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상처받은 그의 영혼은 두 작품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리어왕>의 글로스터가 ‘광인이 맹인의 손을 이끄는 것이 이 시대의 저주다’라고 말하고, <란>의 이치몬지 영주는 ‘모든 게 끝이다. 이 세상은 의리도 정도 없는 곳이다’라고 부르짖는다. <란>은 구로사와가 <거미집의 성>에 이어 다시 셰익스피어와 조우한 작품이다. 두 노쇠한 남자를 중심에 두고 이중구조로 전개되는 <리어왕>과
[명예의 전당] 구로사와 아키라의 고통과 절규,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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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 시절의 셀린느와 제시를 기억한다. 1994년, 열차에서 만난 그와 그녀, 비엔나, 철교, 두 연극배우, 전차, 진실게임, LP가게, 박물관, 묘지, 저녁 풍경, 키스와 포옹, 놀이기구, 손금쟁이, 카페, 교회, 부랑자 시인, 클럽, 길거리 공연, 식당과 전화놀이, 선상 카페, 돌계단, 포도주 한병, 풀밭, 섹스, 아침, 하프시코드, 눈으로 찍는 사진, 동상, 비엔나역, 약속과 헤어짐. 그리고 9년 뒤, 서른살을 지난 두 사람을 우린 안다. 파리, 셰익스피어 책방, 제시의 책 <이번에는>, 주름지고 마른 얼굴의 그, 모든 삶은 드라마다, 만남과 인연, 재회, 아름다운 미소의 그녀,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셀린느, 거리의 악사, 9년 전 약속, 골목, 카페, 담배, 현실 속 이상주의자, 산책, 그날 우리가 섹스를 했던가, 공원, 벤치, 제시의 결혼, 센강, 유람선, 노틀담성당, 책을 쓴 이유, 차 안에서의 고백, 꿈, 포옹, 고양이 ‘체’, 그녀의 집, 셀린느의 왈츠,
그림 같은 풍경, 연인의 속삭임,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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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이 보고 싶어하는 오리엔탈리즘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장이모는 이제 드러내놓고 역사의식도 없고 독창성이나 알맹이도 없는 서구 취향의 영화 두편을 연달아 내놓았다. 왜 이런 영화를 장이모가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없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연인>을 찾게 되는 것은 <영웅>에 이어 다시 한번 보여주는 색과 사운드의 향연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DVD 컬렉터들은 <연인> DVD가 과연 얼마만큼 극장에서의 색감과 사운드를 재현해줄지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으로 기다려왔다. <연인>의 화질은 <영웅> DVD의 수준을 상회하는, 극장에서의 영상에 가까운 재현력을 보여준다. 섬세한 표현력에는 아쉬움도 있으나 색감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사운드의 경우 모란방에서의 ‘선인지로’ 놀음에서 이제까지 듣기 힘들었던 두툼한 양감과 북소리의 후방이동이 일품이다. 단 전방음과 중저음 표현이 약하다는 흠이
매염방을 기억하며,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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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7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가 일찌감치 앞질러 나가고 그 뒤를 <말아톤>이 바짝 따라가면서 시작된 설 극장가 흥행경쟁이 2월3일 개봉영화들이 합세하면서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개봉 영화 가운데 최초로 부분상영금지 판정을 받은 <그때 그사람들>을 비롯해 <클로저>,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 등 예전 같으면 코미디나 액션 일색이던 연휴 극장가를 다채롭게 채워줄 영화들이 개봉한다. 극장가의 상차림을 입맛별로 소개한다.
명절 스트레스 한방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정작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 됐지만 코미디 섞인 ‘액션활극’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특히 궁정동 안가에서 ‘거사’의 모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김재규가 궁정동을 떠날 때까지의 긴박감과 카메라의 솜씨좋은 움직임은 장르 영화로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다. 짐 캐리의 1인3역
설날 긴 연휴 극장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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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천 한장을 제외하면 무대장치가 없고 음향장비도 없다. 배우들의 육체와 목소리가 전부다. 생소하게만 들리는 장르 아카펠라 뮤지컬. 그러나 <거울공주…>는 가끔은 학예회 같기도 한 치기마저도 못 본 척 넘어가게 만드는 귀여운 뮤지컬이다. 몸으로 동굴과 의자를 만들고, 나란히 붙어앉은 배우들이 음계를 나누어 맡아 스스로 악기가 된다. 젊은 탄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거울공주…>는 고정된 틀을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듯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바보 온달이 전쟁영웅으로 등극한 고구려, 허영심 강한 평강공주의 시녀 연이는 상전의 옷과 장신구와 거울을 훔쳐 숲속 동굴에 감춘다. 그것들을 걸치고 거울을 볼 때만은 그녀도 공주가 되는 듯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숲속에서 잠이 들고만 연이. 숲에서 혼자 살아 말도 할 줄 모르는 소년은 연이를 발견하고, 연이 마음대로, 연이의 온달이 된다. 그 숲에선 온달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후주국
젊음의 탄력이 느껴지는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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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과 구직활동, 살인병기와 코알라, 필사의 대결과 BGM, 기억조작과 녹차밭…. 이들의 공통점은? 눈을 열개쯤 뜨고 보아도 서로의 공통점이라곤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공통점이겠지. 그렇지만 SF판타지만화의 한 외곽에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우주경찰이 일급범죄자를 쫓아다니고 지옥 너머의 괴수가 소환되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그 열혈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구차한 일상의 냄새들이다. <니아 언더 세븐>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의 우주물질 나노 청국장이 그리운 분들이라면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경제 불황 속에 취업 전선에 나섰다가 낙오된 20살 청년 스즈오는 길거리에서 만난 소녀 우주인으로부터 변신 벨트의 모니터 요원이 되기를 요청받는다. 단지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한 벨트.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은하연방 경찰의 신형 장비 후보인 ‘특수 범용 파워드 슈트 돗코이다’
황당하고 일상적인 나노 청국장의 맛,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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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액션스타 키아누 리브스(41)가 어둠이 위협하는 세계의 구원자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엑소시즘을 다룬 새 영화 <콘스탄틴>에서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마와 싸우는 퇴마사로 등장한다.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와 함께 3일 오전 홍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도착한 그는 영화 속 콘스탄틴처럼 검은 양복이 멋지게 어울렸다.
“염세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차가우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감을 버리지 못하는 콘스탄틴 배역에 끌렸다”고 캐릭터의 매력을 설명한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전보다 없어졌다는 게 개인적으로 변한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직접 퇴마사를 만나 그들의 행동습관이나 손동작들을 배우기도 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컬트만화를 영화로 옮긴 <콘스탄틴>은 천국과 지옥의 대리인들이 활보하는 인간세계를 배경으로 지옥에 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콘스탄틴이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악마와 벌이는 사투를
영화 <콘스탄틴>서 퇴마사 주연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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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막고 눈 가리면 정권의 안위가 지속되리라 판단했던 <그때 그사람들> 속의 등장인물들과 무엇이 다른가.” 문화연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예총,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우리만화연대, 전국언론노조, 한국영화감독협회 등 7개 단체는 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법원의 ‘조건부 상영 결정’은 소재선택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퇴행적 정치판단의 결과”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그때 그사람들>의 3분50초가 검은 화면으로 처리된 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며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시대에 걸맞지 않은 명령으로 가두고 시민의 눈을 가리려는 시대착오적 판단에 대해, 모든 시민단체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영화가 허구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라면서도 삭제를 명령한 법원의 논리는 모순”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법적 절차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그때 그사람들> 인물들과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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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만들 때였다. 한겨울에 제작비가 없어 중단되었던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촬영을 시작했지만, 문제는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갑자기 눈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만희 감독은 대사 한마디를 넣었다. “이 전쟁터에도 봄이 왔구나.”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우리 영화의 대표적인 편집기사였던 김희수의 증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출간한 두권의 책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사 공부: 1960-1979>는 한국영화사 연구에 봄을 왔음을 알리고 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은 변하고 있다. 자료원 로고도 변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변신했고, 매달 그저 의무적으로 상영되던 영화들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선”으로 탈바꿈하여 좀더 다양한 테마전과 기록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지난해부터 자료원 내부에 “연구팀”이 신설된 것이다. 이 두권의
한국영화사 재구성,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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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비치 보이스(Beach Boys)는 ‘한철 밴드’에 가깝다. 여름이면 배경음악으로 지겹게 나오는 ‘<Surfin’ USA>의 서프 밴드’ 이상은 아니기 때문. 1960년대 ‘본토’에서 미국 밴드로는 거의 유일하게 비틀스와 맞장 뜰 수 있었던 밴드라거나 그 ‘맞장’에 인기 외에 예술적 측면도 포함된다는 얘기를 한다면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비틀스의 <Rubber Soul>에 자극받은 이 밴드가 희대의 걸작 <Pet Sounds>(1966)를 만들어냈고, 반대로 이에 자극받은 비틀스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는 명작을 분만할 수 있었다는 ‘공인된 상호영향설’ 역시 해박한 소수 음악고수의 지식에 머물 수밖에.
비치 보이스에게는 ‘팝 음악사에서 발매되지 않은 가장 유명한 음반’이 있다. 유산(流産)되지 않았다면 <Sgt. Pepper’s Lonely Hearts
전설의 음반이 현세로 오다, 브라이언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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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일본이 잿더미에서 시작해 후일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전쟁으로 인한 군수산업의 활황이 결정적 계기였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전쟁 기간을 포함하여 20년(1950∼70) 동안 미국은 매년 평균 5억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일본에 퍼부었다. 아시아에 있어 미국의 적자로서 패전 일본은 그렇게 키워졌던 것이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5억달러의 원조를 챙기던 그 어느 해였던 1965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달러라는 거금(?)을 받아들게 되는 협정에 조인하게 된다. 식민지 지배 36년의 치욕과 고통에 대한 금전적 대가였다. 13년4개월의 길다면 긴 협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쿠데타로 이제 갓 권력을 잡은 박정희였다. 이 첫 번째 빅딜은 시골 장날의 장돌뱅이도 차마 엄두를 내기 힘든 기막힌 장사였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들어가 가장 큰 곤욕을 치러야 했던 필리핀과 베트남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뒤 각각 5억달러와 4억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우리 안의 괴물을 청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