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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피터 잭슨과 아드만 스튜디오의 창시자 피터 로드와 데이빗 스프록스톤, 그리고 픽사 스튜디오의 <몬스터 주식회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들 모두 레이 해리하우젠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피터 잭슨이 학창시절인 1976년에 스톱모션 방식으로 만든 단편 <The Valley>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은 <신밧드의 7번째 모험>에서 등장하는 사이클롭스를 본 따 만든 것이었으며(이 단편의 클립은 <고무인간의 최후> DVD에 부록으로 담긴 <Good Taste made Bad Taste>에서 볼 수 있다), 피터 로드와 스프록스톤이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것도 해리하우젠의 작품들 때문이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귀여운 외눈박이 괴물 마이크의 외모 역시 사이클롭스에서 착안한 것이고, 마이크가 여자친구 셀리아와 함께 식사를 하던 음식점의 이름은 해리하우젠이었
조성효의 애니모션 <레이 해리하우젠 초기작품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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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저연령층을 공략하기 위한 3D애니메이션 <야채극장 베지테일> 시리즈.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것은 일체 볼 수 없으며, 매회 교훈적인 내용을 지닌 에피소드로 구성이 된다. 한마디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마토와 오이, 상추와 같은 야채들이 벌이는 버라이어티 쇼다. <래리보이와 뻥개비>에서는 늘어나는 거짓말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성인들도 여차하면 빠지기 십상이다. DVD는 국내 성우 음성 더빙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메이킹 필름 등을 수록했다.
교훈 가득한 어린이물, <야채극장 베지테일-래리보이와 뻥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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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터넷에서 공짜 영화를 다운로드받아 본다.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수시로 틈만 나면 그 짓을 하곤 했다. 개봉되기 전의 영화를 먼저 볼 수 있다는 유혹을 참아내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덧붙여 너무 편리하다. 이것저것 차리고 집을 나서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할 필요도 없고 그저,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을 기다리면 영화를 볼 수 있다. 그것도 공짜로! 얄팍하기 짝이 없는 나의 자본주의적 도덕성과 주머니로는 정말이지 이 모든 장점들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인터넷 덕분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들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향유되고 있다. 나는 여기에 무정부주의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이 수평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이다. 인터넷은 이제 광대한 시장일 뿐이다. 우린 가끔씩 인터넷이 얼마나 탐욕스러운 자본의 욕망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잊고 있다. 한때의 인터넷은 기왕에 구축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발빠른 도둑, 초고속통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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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단순히 생각만으로 부족하다면,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때를 아십니까>를 권한다. 비트윈에서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이 타이틀은 TV 방영분 그대로를 수록하고 있지만, 2장의 디스크에 적지 않은 분량이 수록돼 있어 이전에 조금씩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30∼40년 전에 찍은 영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화질을 논할 바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이 살아온 그 시절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다.
그때 그 시절을 아련히, <그때를 아십니까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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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통쾌한 조직적 범죄 행각을 성공적으로 이끈 오션 일당들. 하지만 쿨한 강도짓이 속편에선 그들의 목을 조여온다. 이들 일당을 잡은 테스는 강탈한 돈의 이자까지 원했고, 결국 오션 일당은 목숨 부지를 위해 다시 한번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계획한다. 일레븐에서 트웰브로 일당이 늘어난 덕분에 스타 파워는 한층 강해졌지만, 극장용 예고편 하나만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어 호화 캐스팅과는 정반대의 DVD 구성이다. 화질과 음향이 뛰어나며, 속편 발매로 인해 전편과 하나로 묶은 박스 세트를 함께 선보인다.
스타 파워만 빛난다, <오션스 트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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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입하는 행위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녀가 그의 트럭 안으로 대뜸 찾아가자, 무지렁이로 보이던 남자는 주간지에 글을 쓴다는 그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이야기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이브레이터>는 클레르 드니의 <금요일 저녁>을 기억하게 한다. 여류작가가 원작을 쓴 두 영화는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살을 나누는 이야기, 따스한 체온이 전달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바이브레이터>의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낸 뒤 트럭을 타고 같이 길을 떠난다. 도쿄에서 추운 나라 니가타로, 그리고 다시 도쿄로. <바이브레이터>를 그냥 로드무비가 아닌 서른한살 여자의 마음의 여행으로 만드는 것은 그녀의 모놀로그와 둘의 대화와 화면에 간혹 떠오르는 자막이다. 그녀의 고통이 언뜻 보이고, 둘의 감정이 빛날 즈음 <바이브레이터>는 거기서 문득 끝난다. 유한한 육체와 언젠가는 끝날 그 길과 둘의 관계처
O.S.T와 함께 영화의 여운을 만끽, <바이브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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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치>는 지난 1997년 감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제1회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 선정됐지만, 2004년이 돼서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완성된 독립영화다. 3천만원을 받아 15일 만에 디지털로 촬영을 마쳤다. 7년 만에,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만든 영화 <프락치>를 20일 개봉하게 된 황철민(45) 감독은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듯했다.
<프락치>는 정체가 드러나 은신중인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는 기관원이 한 여관방에 머물며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다. 여관방은 프락치의 인권을 억압하는 감옥을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둘은 방안에 있던 유일한 책인 『죄와 벌』을, 자신들이 연기하면서 비디오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 그 책이 『죄와 벌』이라는 사실은 “프락치도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락치 활동의 죄는 남고 벌도 받아야 한다”는 감독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하다. 실제로 프락치는 죽임을 당
영화 <프락치> 황철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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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는 눈이 크다’라는 말은 ‘김혜수의 성은 김이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20년 가까이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그저 당연할 뿐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분홍신>(청년필름 제작)의 촬영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선 그의 눈이 진짜 커 보였다. 4일 마포의 한 오피스텔 복도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김혜수는 자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딸을 찾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는 눈망울에 온 몸의 신경이 모두 모여버린 듯 그의 눈은 크게 떨고 있었다.
<와니와 준하>를 만들었던 김용균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인 <분홍신>은 분홍신을 신고 끝없이 춤을 추다가 스스로 발목을 자른 소녀의 이야기인 안델센의 동화를 모티브로 가져온 공포영화다. 18년째 연기를 해왔고 중편 <메모리스>에서 으스스한 연기를 한 적이 있지만 본격 공포연기는 처음이다. “공포영화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얼굴없는
<분홍신> 촬영현장의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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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천사인가? 때 묻지 않은 영혼이며 순진무구의 표상? 이 세상 더러움에 행여 물들까 어린 자녀 양육에 노심초사 올인하는 전국의 부모님들, 기억 한번 더듬어보시라. 먼 옛날 얘기도 아니다. 기껏해야 20~30년 전, 당신은 어떤 어린이였는가? 때 묻지 않은 영혼? 순진무구의 표상? 오호, 정말 그러셨는가? 물론 기억만큼 왜곡이 쉽고 빈번한 영역도 없을 테니, 당신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옛날 그 시절의 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착했는지. 거기 비하면 요즘 애들이 되바라지고 발랑 까지긴 했어. 다 삭막하게 변해버린 세상 탓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맑고 순수하지.” 아, 예.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본인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셨나 보다. 참고로,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내 모교는, 일명 콩나물시루 교실에 3학년까지 2부제 수업을 실시하던, 1980년대 당시 기준에서 몹시 평범한 공립학교였다.
그 시절 우리는 다 친구였다고
[정이현의 해석남녀] <파송송 계란탁>의 인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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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철지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spoiler). 망치는 사람, 흥을 깨는 사람 등을 일컫는 영어 단어다. 영화판에선 ‘영화의 결말이나 반전에 관한 정보를 미리 흘려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깨는 사람 또는 글’을 뜻하는 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기자가 최근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바로 “<혈의 누> 범인이 ○○○가 맞냐?”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우연히 “범인은 ○○○”라는 덧글을 봤단다. 물어보면서 반드시 덧붙이는 말도 있다. “범인은 얘기하지 말고 덧글이 맞는지 안맞는지만 알려줘.” 사실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으면 이미 밟아버린 지뢰의 피해를 원상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여기에는 “글쎄…”라며 어물쩡 넘기는 게 상책이다.
지난 4일 개봉한 <혈의 누>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범인을 포함한 영화 내용이 미리 알려지길 꺼린 제작사가 예외적으로 언론·배급시사회만 하고 일반시사회를 하지 않았음에도 개봉 몇주 전부터 인터넷상에
[팝콘&콜라] <혈의 누> 범인은 ○○○! 영화계 골칫거리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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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 및 특수효과 제작회사 디지스팟(DG Spot)이 미국만화<마스터마인드>(MasterMinds)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고 <버라이어티>가 5월4일자로 보도했다. <마스터마인드>는 LA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마스터마인드 언리미티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국회사가 미국 창작물의 판권을 매입해서 각색, 제작하는 경우는 이번이 최초라고 <버라이어티>가 지적했다.
<마스터마인드>는 기존 슈퍼히어로 만화와 달리 악당들의 시각을 담은 ‘슈퍼악당 만화’라는 점이 독특하다. 오로지 세계 정복을 꿈꾸는 다섯 명의 괴짜 악당들이 그 주인공이다. 올여름부터 제작에 들어갈 이번 애니메이션에는 마블 코믹스의 대부 스탠 리도 목소리 출연을 할 예정이다.
<마스터마인드>를 만든 팀의 일원인 아론 소우드는 이 만화를 만들기 전까지 스탠 리 미디어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타이탄 A.E.>와 <아나스타샤>
국내회사 디지스팟이 미국만화를 장편애니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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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필성 감독이 <남극일기>를 낳기까진 무려 6년이 걸렸다. 1999년, 무보급 남극 횡단에 도전했다 좌절한 허영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접한 뒤 임 감독의 뇌수에 수정된 <남극일기>가 극지(極地)에서 자신의 욕망과 대면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 태어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거대한 외양을 처음으로 내보이는 <남극일기>를 맛보기에 앞서, 임 감독이 직접 쓴 고통의 촬영일지 일부를 뜯어와 싣는다.
‘Kiwi’-과일 아님. 뉴질랜드 스탭을 부르는 말.
“도대체 영화를 찍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키위들에게 한마디 했더니 통역을 맡았던 (정)원조가 말을 전하지 못하고 훌쩍인다. 6월25일, 마운틴 라이포드. 도달불능점에 다가서는 대원들의 심리적, 육체적 한계가 극에 달하는 듀피크 정상 장면을 찍기 위해 찜 해놓은 곳인데 마지막 헌팅때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설산이었던 라이포드는 이젠 눈이 녹아
임필성 감독이 쓴 고통의 <남극일기> 촬영일지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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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희, 권오성, 5인프로젝트팀, 이애림, 이성강, 박재동 /한국 | 2005년 | 73분
감독들은 애니메이션이 지닌 강점을 적극 이용하여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기법으로 여섯 개의 단편을 만들어 냈다. 실사 영화인 <다섯 개의 시선>이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인권 침해의 문제를 리얼리즘적 시각에 기초하여 풀어 나갔다면 애니메이션인 <별별 이야기>는 보다 기발하고 시적인 연출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한 단계 승화시켜 펼쳐 보인다.
시인은 시적인 언어로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작고 하찮은 존재에게서도 생의 진리를 유추해낸다. <별별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감독들의 세심한 시선은 바로 그러한 시인의 시선과 일맥상통하며 그 섬세한 붓 터치는 시적 언어의 절묘한 배치에 다름 아니다. 미니멀한 공간 연출이 돋보이는 <낮잠>은 장애아가 처한 현실적 장벽을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배합 속에서 따뜻하게 묘사한
[관객평론] <별별 이야기>, 영롱한 한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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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6일 오후 7시 전북대 문화관에서 폐막식을 하고 8박9일에 걸친 여정을 마감한다. 영화배우 공형진과 윤지혜가 사회를 맡는 오늘 폐막식에는 영화제 홍보대사 김동완과 폐막작인 <남극일기>의 제작자 차승재 대표, 임필성 감독, 주연배우 송강호와 유지태 등이 참석해서 축제를 마감하는 자리에 함께할 예정이다. 폐막식이 끝난 뒤에는 남극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남극일기>가 국내 최초로 상영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한산했던 예년과 달리 높은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을 보였고, 마술과 콘서트, 마임 등 다양한 공연을 준비해 축제의 분위기를 더했다. 영화제측이 중간집계한 예매율은 60%고 좌석점유율은 74%. 가장 높은 호응을 얻은 프로그램은 디지털 독립장편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한국영화의 흐름’과 세번에 걸친 심야상영, 일본 독립영화의 거장인 ‘소마이 신지 회고전’ 등이었다. 시민들과의 친밀도를 높이겠다는 영화제의 의지에 응답하듯 비교적 대중성이 강
2005 전주국제영화제 결산-디지털 독립 장편의 재발견(+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