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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낯선 노래다. 한국말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은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했다. 지난 4월22일 밤 일본 도쿄 유락초의 한 극장에서 강산에가 <라구요>를 부르자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들도 보였다. 23일 도쿄에서 개봉한 영화 <샤우트 오브 아시아>의 전야제 이벤트였다.
<샤우트 오브 아시아>는 북녘 땅에 고향을 두고 평생을 그리워했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라구요>에 담아 노래했던 한국의 록가수 강산에가, 아시아 각국의 가수들을 찾아가 함께 이야기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노래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현진행(겐 마사유키) 감독은 영화의 내레이터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이미 방송계에선 휴먼 다큐물 작가로 유명한 그지만, 극장개봉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도 서툰 재일동포 2세인 그는 영화에서 <샤우트 오브 아시아>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나 자신의 정체성
[도쿄] 강산에의 여정 담은 다큐멘터리 <샤우트 오브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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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대체로 백인 주인공의 적이었다. 잔인하고, 더럽고 낙후된 종족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현존하는 미국 인디언족들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할리우드 투자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릭 슈로더 감독의 <검은 구름>(2004)이 한 예다. 미국 올림픽 복싱팀 소속 나바호족 인디언 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검은 구름>의 제작비 100만달러는 미국 전역 12개 인디언 부족이 결합하여 내놓은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 <미국춤의 세계>는 뉴욕 오네이다 인디언족이 <NBC>와 협력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미국 인디언 춤의 세계>는 최초로 인디언족이 제작비 전액(35만달러)을 투자하여 네트워크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가 됐다.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인디언족의 문화를 왜곡해온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오네이다족의 대변인 레이 할브리터는 “우리는 사업을
[What's Up] 미국 인디언족의 인디언영화 제작 투자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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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필름은 이제 무엇을 먹고사나? 5월19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의 개봉을 앞두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결 이후 루카스 필름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 가운데, 지난 4월23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팬 집회 ‘셀레브레이션 III’에 참석한 조지 루카스가 영화 <스타워즈>를 모태로 한 두 가지 TV시리즈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그 하나는 카툰 네트워크에 이미 두 시즌 분량이 공급된 <클론 전쟁>을 확장한 3D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싱가포르에 루카스 필름이 설립한 새로운 CGI 애니메이션 제작소가 산실이 될 예정이다. <버라이어티>는 루카스 필름이 이 작품을 위해 <이온 플럭스>의 작가 피터 정과 교섭 중이라는 소식이 있다고 보도했다. <클론 전쟁>을 확장한 시리즈를 방영할 케이블 채널로는 <카툰 네트워크>나 <사이파이(Sci Fi) 채널>이 유력하게 거론되
완결된 <스타워즈>, TV로 공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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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인터넷 예고편이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미국 영화산업전문지<버라이어티>가 5월1일 보도했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다가오면서 여러 영화사이트의 예고편을 보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무명의 기묘한 한국영화<지구를 지켜라!>가 특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는 “<지구를 지켜라!>가 웹을 침공하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 ‘컬트영화’의 예고편이 다양한 장르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전했다.
공식 홈페이지(www.savethegreenplanetmovie.com)에서 볼 수 있는 이 예고편은 4월20일 뉴욕 개봉을 앞두고 약 3주전부터 공개됐다. 해외 관객을 위해 제작된 이 예고편은 장면 중간 중간에 “이 남자는 사장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아마 이 남자가 옳을지도 모른다/이것은 호러가 아니다/이것은 SF도 아니다/이것은 코미디도 아니다/이 영화는 당신이
<지구를 지켜라!>예고편 해외에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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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시간이 남아 돌 때 무엇을 하는가? 여기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를 주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비정상적으로 하얀 얼굴과 시커먼 긴 생머리를 하고 온종일 현학적 대사를 읊는 기괴한 여자. 이 주인공의 기괴함은 영화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 전체 분위기를 대표한다. 그동안 주류 영화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분위기의 스릴러인 이 영화는 분명 디지털 독립 영화만이 꿈꿀 수 있는 창조적 개성의 완전한 발현물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비주류적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킬킬댄다. 영화를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매체라고 할 때, 영화 쪽에 소통의 주도권이 넘어가 있지 않은 영화가 대체 얼마만인지. <이나중 탁구부>같은 만화를 좋아한다는 감독의 B급 감수성이 참 반갑다.
그러나 영화는 구석자리에서 마냥 킬킬대며 넘기기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속 기묘한 주인공
[관객평론]반갑다, B급 감수성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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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심사위원을 맡긴 것은 참 흥미로운 발상이에요.” 현재 미술계에서 작가 겸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온 박찬경씨는 디지털 스펙트럼 부문 심사위원을 맡게 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미술인’인 그가 ‘영화제’에 발을 들인 것은 어색한 일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스펙트럼 부문이 디지털 매체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섹션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적절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술계에서 활동했다지만, 회화, 사진, 영상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활동 이력을 보면 그에게서 뭔가 다른 시각을 기대하게 된다. 동시에 영화와 관련된 작업이나 글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친동생이라는 점은 그 새로운 시각이 영화에 대한 이해에 기반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우선 한편의 영화로서 완성도와 의미를 따져봐야겠지요. ‘디지털’이라는 것을 어떻게 활용했느냐도 중요하구요.” 하지만 그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애초 이 섹션에서 기대했던 것
디지털 스펙트럼 심사위원 맡은 미술인, 박찬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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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Lost In Translation)이다.” 검게 염색한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눈썹에 피어싱을 한 이 총각은 전주가 낯설고 신기해서 재미있단다. 자신의 유일한 영화 출연작인 <내 마음의 구멍>으로 전주를 방문한 비욘 알무로쓰는 스웨덴 북부의 작은 도시 키루나 출신. “여행하는데 진력이 나 있다”는 루카스 무디손 감독을 대신해서 보도듣도 못한 장소로 날아온 19살의 모험가다.
<쇼 미 러브>와 <천상의 릴리아>같은 영화로 주목받은 루카스 무디손 감독의 신작 <내 마음의 구멍>은 ‘무서운’ 영화다. 아마추어 포르노를 제작하는 아버지와 친구와 여배우, 방안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들의 하루를 그리는 이 작품은, 넋이 나갈정도로 정신없는 편집에 극단적인 이미지들(마약흡입, 성기노출, 배뇨, 구토 장면)이 관객의 망막을 할퀸다. 놀랍게도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비욘 알무로쓰는 이 작품의 각본이 “매우 시적
<내 마음의 구멍>의 배우 비욘 알무로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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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기우다 코지/일본/2004년/82분
도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샐러리맨 하루오는 “나, 결혼하게 됐어”라고 적힌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고향에 온다. 어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하루오를 키웠다. 사랑에 빠진 어머니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하루오. 그는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8년 전에 고향을 떠난 친구 미유키를 만난다. 미유키는 하루오와 섹스를 하고난 다음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었다. 하루오는 자기 딸 치하루를 만나러 오라는 미유키의 초대에 설레이지만, 다음날 찾아간 아파트엔, 치하루만 혼자 있다. 하루오는 치하루의 손을 잡고 하루종일 미유키를 찾아다닌다.
<귀향>은 평범하고 조그만 사건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사건 안에 섬세한 감정이 녹아있어 잔물결을 일으키곤 하는 영화다. 어찌보면 하루오는 고아나 다름없다. 고향집엔 낯선 아저씨가 있어 들어가기 서먹하고 도쿄의 작은 아파트는 온기라곤 없이 싸늘하다. 그때문에 치하루가 자기 딸일지도 모
<귀향> Going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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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에테-림 데 크룬/네덜란드/2003년/94분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이라면 어렴풋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빛으로 가득찬 실내, 파랗게 두드러지지만 결코 원색은 아닌 하늘, 엷게 반짝이는 듯한 대기. 유럽의 예술가들은 네덜란드에만 있는 무엇인가가 그런 그림을 만들었으리라 믿고 그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하곤 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제목 <네덜란드의 빛>이다.
조명과 다큐멘터리 연출을 전공한 감독 피에테-림 데 크룬은 자신의 두가지 전공을 살려 ‘네덜란드의 빛’이 과연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발단은 1970년대 독일화가 요제프 보이스가 제공했다. 보이스는 네덜란드는 물이 많아 햇빛을 반사하고, 그때문에 대기 중의 물방울 또한 반사를 거들었지만,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인해 그 현상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진실인가, 혹은 ‘네덜란드의 빛’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가. 데 크룬은 화가와 미술사가, 과학자들
<네덜란드의 빛> Dutch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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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듣고는 도저히 어떤 영화인지 짐작할 수 없는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가 5월3일 전주 메가박스에서 첫번째 상영과 GV를 가졌다. 디지털 영화 <책을 읽거나…>는 폭설로 길이 끊긴 산장에서 사흘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고등학교 친구 영미와 지혜는 둘쨋날 아침 산장 문앞에 알몸으로 버려진 남자를 방으로 들인다. 지혜의 죽은 애인과 꼭닮은 그는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한다. 옆방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표정한 여인과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거친 남자가 묵고 있다. 남자는 지혜의 발밑에서 핏자국을 발견한다. 그들 모두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분절된 플래시백과 몇번의 반전으로 구성된 <책을 읽거나…>는 끝까지 보고 나서도 궁금해지기만 하는 영화. 그때문인지 관객 대부분이 극장에 남아 정강우 감독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2002년 단편 <돼지멱따기>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온 적이 있는 정강우 감독은 제목의 의미를 묻는 관객
<책을 읽거나 비둘기 모이주기>의 정강우 감독, 관객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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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루카스 무디손/ 스웨덴/ 2004년/ 98분
스웨덴에서 날아온 젊은 감독 루카스 무디손은 시인이기도 하다. 17세에 첫 시집을 출간한 그의 영화 데뷔작은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초청되었던 <쇼우 미 러브>(Fucking Amal). 사춘기의 소녀가 첫사랑에 눈을 뜨는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다룬 이 레즈비언 로맨스는 "활력있고 재미있는 청춘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구멍>에서 그런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내 마음의 구멍>은 충격적인 이미지의 난동으로,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이보다 더 변태적인 영화를 보기는 힘들 지도 모른다.
작은 아파트에는 아버지 리카르드와 자폐적인 성격의 아들 에릭이 산다. 에릭은 검게 머리를 염색하고 록음악에 열중하며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 고스족이고, 아버지는 친구인 게코와 함께 아마추어 포르노를 만드는 인간 말종이다. 성기에 모종의 수술을 한 여배우 테스가 아파트에 오자, 세 사람
<내 마음의 구멍> A Hole 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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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트래비스 클로스/ 미국/ 2004년/ 85분
카메라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인간 아라키 노부요시는 과장된 쇼맨십과 대담한 남성성이 결합된 하나의 괴물과도 같다. 영화는 어떠한 과감도 거치지 않은 채로 아라키 노부요시의 현재와 과거를 경쾌하게 넘나든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일본 출신의 사진작가다. 사실 그의 명성은 ’악명’에 가깝다. 그가 탐미하는 대상은 주로 ’킨바쿠(묶기:Bondage)’를 이용해 피학적으로 능멸당한 여성의 신체이며, 그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남성의 시선은 바라보기 불편하다. 2만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내한 전시회를 성공리에 마친, 세계적인 모델들이 늘 함께 작업하기를 바라 마지않는 노년의 사진작가에게 "성적인 불쾌감과 수치심만을 자극하는 포르노 작가"라는 비난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미국의 감독 트래비스 클로스는 <아라키멘타리>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소재로 가학적인 사진들을
<아라키멘타리> Araki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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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모토 신야 영화 봤어요? 기괴하다구요? 그렇겠죠. 그래야 그의 영화니까.” 인디비젼 상영작 <이노센스>를 들고 프랑스에서 날아온 뤼실 하지할릴러비치가 오랜 비행과 시차로 인한 피로를 잊으려 커피를 들이키면서 제일 먼저 건넨 말이었다. 공식 일정 막간에 상영작을 챙겨볼 욕심을 비치며, 좋은 한국영화를 추천해달라고도 했다.
뤼실 하지할릴러비치는 1990년대 후반 중단편 작업을 시작했고, 동지이자 연인인 가스파르 노에(<돌이킬 수 없는>)의 98년작 <아이 스탠드 얼론>의 편집과 제작을 맡기도 했다. <이노센스>는 뤼실 하지할릴러비치의 장편 데뷔작. <이노센스>에서 그는 외부와 단절된 채 숲 속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성장’은 그가 즐겨 다루는 테마. 동화 <빨간 모자>의 상징을 끌어온 중편 <미미: 장 피에르의 입>은 고모네 얹혀 사는 소녀의 심리적 억압을 그렸
[인터뷰] <이노센스>의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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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왱거리는 벌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라는 의미를 가진 전주‘왱이’콩나물국밥. 그 이름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뜨겁지 않은’ 콩나물국밥이 비결이다. 너무 차갑거나 너무 뜨거우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왱이집의 논리다. 국밥이 거의 완성된 후 넣는 왱이집의 콩나물은 적당히 따뜻한 육수에서 생생하게 맛을 전한다. 이 애매한 온도를 어떻게 맞추나 했더니 답은 찬밥에 있단다. 어쩐지, 국물과 밥이 술술 넘어간다 했다.
그릇에 따로 나오는 계란은 콩나물 국밥을 먹기 전에 속을 달래주고 콩나물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준다는 일종의 에피타이저. 구운 김을 잘 조각내 넣고, 국물을 부어 섞어 먹으면 된다. ‘어머님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모주’도 이때 함께 나온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만든 것이라는 데,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황홀한 맛이다. 콩나물국밥의 국물 한번 다시 들이키니, 얼큰한 맛이 입안을 뜨겁게 만든다. 어쩌면 국밥의 진짜 맛은 ‘뜨겁도록 얼큰한’ 이 맛에
[오늘의 맛집] 왱이집의 콩나물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