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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 미국/ 2003년/ 110분
소름끼치는 범죄영화에다 ‘그림형제’의 동화적인 모험담을 섞어놓은 <언더토우>는 찰스 로튼의 작품처럼 무시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만큼이나 유쾌하다. 특히나 <빌리 엘리어트>의 꼬마는 듬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청년 제이미 벨이 되어 스크린을 장악한다.
미국의 남부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세계다. 상처한 아버지 아래서 병약한 동생과 살아가는 크리스(제이미 벨)에게 그토록 단조로운 세계는 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날, 한번도 본 적 없던 삼촌이 크리스의 가족을 찾아오고, 모노톤의 세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숨겨진 금화를 노린 삼촌은 크리스의 아버지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크리스와 동생은 남부의 평원위에서 쫓기기 시작한다.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추격전의 긴박함을 군데군데 생략해버리고 형제의 발길이 닿은 남부의 삽화들을 느긋하게 담아내는 데
<언더토우> Undert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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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올리버 스톤/ 스페인, 프랑스/ 2004년/ 63분
피델 카스트로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 <지휘관>(Comandante, 2002)에 이은 올리버 스톤의 두 번째 쿠바 잠입기. 올리버 스톤이 200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지휘관>을 선보인 후, 쿠바 정부는 75명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구속하고, 미국으로 망명하려다 실패한 3명의 여객선 납치범을 사형시켰다. 이 전례없이 잔혹한 숙청의 바람앞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는 쿠바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려 잘게 썰어댔다. 이에 올리버 스톤은 여러가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쿠바로 날아갔다. 전작을 만든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급변해버린 쿠바의 상황을 다시한번 고찰하기 위해서였다.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는 <지휘관>과 다르다. <지휘관>이 쿠바혁명의 투쟁사에 대한 기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면,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날카로운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 Looking for Fi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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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단편의 선택, 그 두번째 카테고리 ‘우리시대 타자들’의 네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가장 먼저 소개된 다운증후군 소녀 버들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울타리 넓히기>(황선희)에는 엄마의 연출 데뷔작을 보러 극장에 온 버들이로 인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울타리 넓히기>는 만듦새가 탁월하지는 않지만, 짝사랑에 빠진 딸의 시름을 지켜보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어머니의 시선과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딸의 대변인 자격으로 참여한 장애인 미디어 교실에서 영상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주로 혼잣말을 하던 딸애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이 작업은 우리 모녀에게 많은 걸 주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하길 희망하는 베트남 처녀를 아버지와 맺어주려다 자신이 애틋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이미랑)는 ‘타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감독의 설명.
이미랑 감독은 부자와 베트남
한국 단편-우리시대 타자들 네 작품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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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감독의 액션 연출은 류승완 감독의 액션과는 또 다른 묘미를 가진다. 무술 감독에게 화려한 액션을 최대한 피해달라고 주문할 만큼 감독은 액션연출에 있어서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액션, 진짜 액션을 보여주려 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서 우리는 솔직한 액션을 만나 볼 수 있다. 와이어나 다른 어떠한 특수 장비도 사용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가 놀랍다. 그들은 악추위 속에서 눈밭을 뒹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생생한 무술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무술은 총 11개 종목이 나오는데, 배우들은 실지로 현재 챔피언 생활을 하고 있거나, 경력이 있는 프로들이다. 그만큼 무술액션은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도 풍부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다.
비디오 게임방식으로 인물들을 소개하고 공간 설정을 자연으로 한 점은 흡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 하다. 캐릭터에 대한 정성 또한 그것을 뛰어넘어, 영화가 끝난 뒤에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의 닉네임을 부르며 추종하거나, 얼굴이 그려
[관객평론] 디지털의 재발견, <거칠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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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일 오후2시 메가박스 8관에서는 ‘식민지 시대 한국영화를 해부한다’ 세미나가 열렸다. 김종원 청주대 겸임교수와 영화평론가 강성률에 의해 각각 ‘일제 말기의 군국주의 어용영화’와 ‘최근 발굴된 친일 영화의 내적 논리’라는 주제로 발제되었으며, 이어 메이지학원대학교수 요모타 이누히코와 복환포 호남대 교수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잊혀진)한국영화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특별상영을 통해 서광제 감독의 <군용열차> 등 총 4편의 식민지시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군용열차> 등 식민지시대 영화 4편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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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독립영화인들이 모여서 운영하는 공간 인디 라운지가 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대한서점 3층에서 운영된다. 독립영화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독립영화인들이 소통하는 장소. ID카드 소지자는 입장이 가능하다.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문의는 전주독립영화협회 063-282-3176
올 전주에서 인디 라운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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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0일 <다섯 개의 시선>의 GV(관객과의 대화)에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의 주인공 정은혜 양이 참석했다. <미소>의 박경희 감독이 연출한 <언니가…>는 다운증후군인 은혜의 생활을 재구성한 단편. 실명으로 출연한 은혜는 여배우로서 사인을 해주기 위해 필통을 챙겨와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상영 도중 마지막 단편인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은 몇분 동안 화면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영어 자막이 보이지 않았다.
<다섯 개의 시선>의 은혜양 무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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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전주국제영화제는 뜨거운 얘매열기로 시작해 시원한 빗줄기와 함께 앞으로의 여정을 기약했다. 4월30일 아침부터 관객을 맞이한 것은 불타는 현장구매 열풍. 관객들은 대부분의 예매분이 동난 30일자 프로그램들의 현장판매분이라도 구해보기 위해 아침일찍부터 티켓 부스에 장사진을 이루었고, 티켓 벼룩시장의 게시판 역시 티켓을 구하려는 관객들의 메모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뜨거워진 현장판매율은 토요일을 맞아 전주로 내려온 타지방 관객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 CGV앞 티켓 부스에서 자원봉사중인 홍성경씨는 “두작품 빼고는 모두 매진이며, 어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오후 1시30분에 메가박스 앞에서 열린 <마법사(들)>의 감독과 주연배우 팬사인회는 몰려든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오후 한때 29도까지 치솟았던 전주의 기온은 오후 4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와 함께 조금 소강상태를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굵
전주는 ‘티켓 전쟁’중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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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무술의 달인들을 만나고 장소 헌팅을 하고, 후배들이 모아준 3천5백만원으로 2주만에 촬영을 끝냈다. 후반작업은 함께 각본을 쓴 아내 변원미 작가의 수입에서 비용을 충당하며 2년이 더 걸렸고, 올 초 영화사에서 마케팅과 배급을 맡아 주기로 하면서 재촬영을 통해 거칠게 완성했던 <거칠마루>는 다른 ‘때깔’을 띠게 되었다.
4월30일 오후 3시경 메가박스 3관에서는 열띤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전설적인 고수를 찾아나서는 무술인들의 이야기 <거칠마루>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앉아, 김진성 감독에게 앞다퉈 질문을 던지고, 장태식 등 배우들이 팬서비스로 선보인 무술 시범에 환호를 보냈다. 지난 겨울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로, 촬영과 후반 작업 등을 보충해 업데이트한 <거칠마루>가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순간이다.
<거칠마루>는 인터넷 사이트 무림지존에서 최고의 고수로 통하던
김진성 감독의 <거칠마루> 2년간의 악전고투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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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뤼실 하지할릴러비치/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일본/ 2004년/115분
한적한 숲 속에 흰 옷을 입은 소녀들이 살고 있다. 서로 다른 나이대의 소녀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발레 레슨을 받는데, 그들을 둘러싼 담 너머의 세상으로 나가는 건 금지돼 있다. 갓 들어온 막내는 맏언니격인 비앙카가 밤마다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그녀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돌아오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탈출을 시도하는 소녀들은 죽음을 맞거나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죽은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이 곳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영원히 이 곳에 갇혀 어린 소녀들의 시중을 들며 늙어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노센스>는 소녀의 성장(혹은 성장의 공포)에 관한 동화다. 성장이 이뤄지는 숲은 평화롭거나 안온하다기 보다는 <빌리지>의 숲이나 <도그빌>의 마을처럼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
<이노센스> Inno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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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갈비탕’하면 주저없이 손꼽히는 곳이 바로 효자문식당이다. 손님들이 극찬하는 갈비탕 국물이 바로 맛의 비결이다. 갈비탕의 국물이 우족탕의 그것처럼 뽀얗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그릇에 폭 담긴 음식을 보는 순간 좀 당황할 수도 있겠다. 효자문의 갈비탕은 간장 양념을 한 소고기를 우려서 만들어낸 국물이기 때문이다. 걸쭉하지 않고 맑은 국물이 칼칼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그래서 색깔도 맛도 독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거부감이 아닌 환상적인 국물 맛에 기인한 독특함이다. 그렇다. 30여년간을 이어왔다는 맛이 남들과 같을 리 없었다. 의자가 놓인 홀 안쪽으로 한옥집을 개조한 좌석들이 있다. 기왕 온 김에 진한 나무빛깔의 한옥집 방에 앉아서 갈비탕을 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옛날 플러스마이너스 건물을 등지고 모퉁이 편의점이 있는 쪽으로 30여미터만 가면 된다. 갈비탕은 7,000원, 갈비찜은 12,000원이고, 다른 인기메뉴인 불갈비는 14,000원이다(063-284-423
[맛집] 효자문식당의 갈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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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터뷰하려는 사람이 있다길래 깜짝 놀랬다”. 브라이언 맥캔들리는 낯선 곳, 낯선 매체로부터의 인터뷰 요청에 조금은 황송한 모습이었다. 시카고언더그라운드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이 수줍은 청년은 시카고국제영화제에서 얻은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이 인상적이어서 전주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전주영화제측이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애 첫 아시아 여행지를 향해 선뜻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시카고언더그라운드영화제는 미국 제3의 도시와 주변지역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영화인들의 산실. 상영을 원하는 수백편의 영화들 중에서 단 35편을 솎아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고통스런 일이 브라이언 맥캔들리의 직업이다. 그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의 최근 경향을 묻는 기자에게 “조나단 코예트의 <타네이션>처럼 개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에세이 필름’이 유행이며, 지난 10년간의 디지털 혁명으로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설
시카고언더그라운드영화제 프로그래머, 브라이언 맥캔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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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우지 벤사이디 /모로코 / 2003년 / 124분
모로코의 감독 파우지 벤사이디의 <천월>은 어린 베흐디를 중심으로, 그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의 일상과 미묘한 변화들을 담는다. 정부에 반발하는 데모를 한 죄로 감옥에 가있는 베흐디의 아빠는 보다 나은 삶의 변화를 추구했던 셈이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들에게 현실의 고민을 안겨주게 된다. 할아버지는 생활을 위해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구들을 하나씩 팔아가고, 엄마는 갑갑한 현실에 대한 방책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일상은, 그리고 일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그들에게 점차 미묘한 변화를 불러온다.
의자에 교사의 권위를 부여하는 메흐디의 선생님, 사회 규범에 반발하는 멜리카 등도 이런 단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틈새에서 메흐디 역시 조용한 변화를 겪는다. 선생님의 의자를 소중하게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때로는 그 의자에 앉아 때로는 그 의자에
<천월> A Thousand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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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50주년을 앞에 두고 실사영화로 부활한 <철인 28호>의 토가시 신 감독과 주연 이케마츠 소스케가 전주영화제를 찾아왔다. 카페에서 “여보세요, 코라(콜라)를 주세요”라고 직접 주문을 하던 토가시 신은 이번이 세번째 전주방문. <오프-밸런스>와 <미안해>로 전주를 찾아왔던 그는 <클래식>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을 좋아해서 그런 순애보 영화를 만들어 한국에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이십대 초반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삼각관계 러브스토리. 그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던 이케마츠 소스케는 <철인 28호>를 찍고서 키가 20cm나 자랐다. 더이상 톰 크루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라스트 사무라이>의 히겐이나 로봇을 조종하는 리모콘도 버거워보이던 <철인 28호>의 작은 소년 쇼타로가 아닌 것이다. 웬만한 남자 주먹보다도 작은 얼굴을 가진 이 과묵한 미소년은 한번 웃을 때마다 통역과
<철인 28호>의 토가시 신 감독과 이케마츠 소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