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는 지금 또다른 르네상스를 꿈꾼다
인디컴이 이번엔 <아시아영화기행>을 만든다. 1995년 <세계영화기행>을 내놓으며 주목받았던 인디컴은 전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아시아영화로 포커스를 좁히는 대신 좀더 심도있는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이란, 인도, 타이, 홍콩, 중국, 중앙아시아 등 아시아 9개국과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까지 모두 10개국이 대상. 올해 10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열돌을 맞은 <씨네21>이 후원하며, CJ미디어가 협찬하는 이 대장정의 기록은 현재 방영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과 협의 중이다. <씨네21>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인디컴의 취재과정에 동행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영화의 이해를 위한 첫 번째 디딤돌로 타이 편을 내놓는다. 전주국제영화제 3인3색 프로그램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 현장 방문기,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1]
-
<리어왕>에서 광야를 헤매는 전성환의 목소리는 질풍노도 같다. 천둥치는 듯한 박력과 우렁찬 성량, 끊어서 관객의 폐부를 치는 듯한 명확한 발음은 리어왕의 분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악기 같다. 그는 낮에는 부산 MBC의 PD로 일했고 밤에는 연극을 했다. 40년 연극 생활 동안 그는 리어왕이거나 윌리 로먼(<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무대 위를 통치했다. 흰 구레나룻과 이국적인 눈매, 압도적인 성량은 무대 위의 왕에게 잘 어울리는 외투였다. 영화 데뷔는 늦었다. <오구>와 <청풍명월>에서 잠깐 얼굴을 내비치긴 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활>은 전성환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맡겨진 영화 배역이다. 부산 연극계의 얼굴로 이해랑연극상을 받기도 한 이 배우의 크기에 비로소 맞는 역할이 아주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데이브 브뤼벡의 <테이크 파이브> 선율에 맞춘, ‘교수인 줄 알았는데 학생이더라’는 내용의 그가 찍은 이동통신 CF는 나이는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3] - 주연배우 전성환 인터뷰
-
올리버 스톤 감독, 콜린 파렐 주연의 시대극 <알렉산더>가 미국에서 8월 2일 출시된다. 워너 홈 비디오에서 내놓을 <알렉산더>는 극장판과 감독판의 두 가지 버전이 별도로 출시될 예정인데, 175분짜리 극장판과는 달리 감독판은 167분으로 오히려 상영시간이 짧다.
두 버전 모두 2.4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영상과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가 지원되며, 메이킹 다큐멘터리, 반젤리스의 음악에 관한 영상 클립 등의 부록 외에 극장판에는 올리버 스톤 감독과 역사학자 로빈 레인 폭스의 음성해설도 수록된다. 정가는 각각 29.95달러.
한편, 국내에서는 이보다 한참 앞선 5월 27일 우성 시네마를 통해 DVD가 출시될 예정이다.
<알렉산더> 8월 두 버전으로 출시
-
활
<활>의 활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쏘는 활이며, 또 하나는 김기덕 감독이 쏘는 활에 소리통을 붙여서 만든 개량 악기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무기), 남의 상처를 위로하기도 하는(악기) 두겹의 의미인 것이다. <수취인불명>에 활을 등장시켰던 김 감독은 그 활을 다른 뜻으로 다시 들고 나온다. 치명적인 무기로 쓰여 눈을 다치게 했던 화살은, 이 작품에선 운명을 읽는 점괘가 된다. 노인은 활점을 볼 때(노인이 활을 쏘면, 활이 맞은 지점을 보고 소녀가 점괘를 본다. 아무에게나 봐주는 것은 아니고 단골 낚시꾼만 그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는 없는 점술이지만 매우 그럴듯하다고 한다), 그리고 외지인(노인의 배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온 낚시꾼)이 소녀에게 수작을 부릴 때 경계용으로 활을 쏜다. 전성환은 사직공원 근처의 활터인 황학정에서 촬영 시작 전날 집중적으로 국궁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연습은 촬영 기간 틈틈이 했다. 무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2]
-
-
바다와 하늘 사이, 심원한 사랑의 구원을 찾아서
김기덕 감독의 12번째 작품 <활>이 시위를 당겼다. 5월12일 강남의 씨너스G극장과 부산의 부산극장 두 군데서 비밀리에 찍은 <활>을 공개한다. 시사회나 프리뷰 기사 하나없이 바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개봉 2주차엔 스크린 수가 6개로 늘어난다고 한다. 영화는 훨씬 더 깊고 부드러워졌으며 단순한 이야기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칼바람 부는 1월 서해에서 20일도 안 돼 완성한 <활>의 제작과정을 스탭들에게 들어보았다. 그리고 리어왕으로 잘 알려진 뛰어난 연극배우 출신으로 <활>의 60대 노인 역을 맡은 전성환을 만났다. 김기덕 감독은 인터뷰를 사양했다(당분간 국내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 감독이 ‘이미지의 과다 노출’을 꺼리는 바람에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 한장의 스틸과 포스터가 전부였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받은 김 감독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1]
-
감독만 주목하지 말라!
조연배우와 스탭에게 상대적 박탈감 안기는 <씨네21>의 균형감각을 비판한다
<씨네21>은 건강한 잡지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한국 영화시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사명의식을 밑에 깔고 나아가고 있다. 흥미를 추구하면서도, 선정주의보다는 영화 판도 전체를 뜯어보면서 하는, 그러면서 충무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지다. 다만 맹점은 있다.
먼저 영화예술 지향이 너무 크다는 것. 영화가 지니는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두루 균형있게 아울러야 하나 문화쪽에 20%가량 치우쳐 있다. 예술영화를 우상화한달까. 그리고 너무 감독 중심으로 가는 나머지 지나치게 감독을 미화한다는 느낌도 있다.
영화예술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감독의 철학과 감각을 디테일하게 다뤄보고 대변하는 순기능도 있으나 이런 와중에 과대평가된 감독도 적지 않게 만들어냈다. 감독 말고도 함께하는 스탭이 많고, 그들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명해야 한다. 이를
<씨네21>을 비판한다 [7] - 이준익
-
코미디 장르가 무슨 죄인가?
코미디 감독의 고뇌를 무시하는 <씨네21>을 비판한다
‘관객이 웃는다! 행복하다’
위 문장은 내가 <두사부일체>로 입봉하여 첫 번째 가진 <씨네21>과의 인터뷰 기사에 나온 헤드라인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이 기뻐서 웃는 그 모습을 극장 구석에서 훔쳐보며, 감독이란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직업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씨네21>에서는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해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혹평으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한동안 <씨네21>이란 잡지를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자부심이 <씨네21>을 만나면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라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배웠고
<씨네21>을 비판한다 [6] - 윤제균
-
무뎌진 날을 다시 세워라
초심의 기개를 잃어버린 <씨네21>을 비판한다
한때 대한민국에 영화 주간지가 다섯개나 서식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세계를 탈탈 털어 영화 주간지가 발행되고 시장에서의 입지 또한 굳건한 나라는 라식수술을 두번 했대도 찾을 수 없으니, 그들의 번성은 자체로도 경이였다. 그때 ‘생각있는’ 자들에게 <씨네21>만큼 강박적인 텍스트도 없었다. 온갖 문화적 레시피를 곁들인 이 매체를 통과하지 않고는 동시대의 ‘앞선 벗’도 온전한 ‘시민’도 될 수 없었다.
<씨네21>의 10년은 권세가로서의 시간이기도 했다. 창간 즈음과 한국 영화산업의 고속 성장이 같은 좌표를 그리고, 영화산업의 영역들이 <씨네21>을 주요 저널로 인식하면서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좌파적 문화잡지가 진보적 무엇인 영화와 융합되자 단숨에 문화권력자의 면류관을 쓴 것이다. 일개 잡지가 영화정보의 매개체 역할뿐 아니라 ‘저널’로서의 방향성과 표표함까지 보
<씨네21>을 비판한다 [5] - 이충걸
-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을!
영화산업을 다루는 방식에서 구태의연한 <씨네21>을 비판한다
만만하게 보인 죄로 며칠 전부터 담당 기자의 원고 독촉 전화가 계속이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씨네21>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달라는 부탁인데 사실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 비판할 만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반성하면 될 일이지 당사자가 굳이 쓰기 싫다는데 억지로 떠맡길 건 뭐란 말인가? 더욱이 창간 10주년이라는 잔칫상을 받아들고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부탁하는 건 아무래도 진심이라기보다 구색맞추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똘똘한 처신이 아닐까 싶다. 이제 분위기 파악은 끝났는데 문제는 파악된 분위기에 맞게 언뜻 보면 예리한 비판 같으면서도 잔칫집 체면은 거스르지 않을 만한 비판의 내용이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개인적 감상이나 끼적이기로 결심했다.
<씨네21>? <씨네21>! <씨네21>?… 무지하게 촌
<씨네21>을 비판한다 [4] - 오기민
-
주드 로가 정말 미남이야?
증명해야 할 것을 당연한 사실인냥 써놓는 <씨네21>을 비판한다
나 열살 됐어.
정말? 정말이야? 이야, 축하해. 근데 음, 정말 열살밖에 안 됐니? 난 니가 마흔은 된 줄 알았어.
(<씨네21>, 미소를 잃지 않으며) 무슨 뜻이지?
아니, 난 그냥 니가 항상 있었던 거 같아서, 어디에나 있었던 건가? 지하철 타러 가면 항상 가판대에 걸려 있어서 만날 니 표지를 보다가 차를 타곤 했는데 음… 너의 옴니프레즌스가 근데 자가용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더라.
자주 보이면 오래된 건가 보구나. 근데 나를 비판해줄 사람이 많은데 하필 네게….
그래, 그래. 자, 비판을 시작하자. 우선 비판받겠다는 건 참 훌륭한 생각이야. 근데 너 정말 비판받고 싶은 거 맞지, 응? 왜냐하면 전에 “맘에 안 드는 거 있음 말해줘요. 다 고칠게요” 그러는 애들을 간혹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 생각이 나서 좀 겁나. 하지만
<씨네21>을 비판한다 [3] - 신재인
-
창조적 소수로 남을 수 있을까
다시, <씨네21>에 대해 말하고 싶은 열두 가지 것들
1. 정확히 9년 전, <씨네21> 창간 1주년을 맞아 나는 위 제목의 글을 ‘특별기고’했다(<씨네21> 100호 특별기고, 내가 <씨네21>에 대해 말하고 싶은 열두 가지 것들). 그리고 이제 10주년 기념호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축하나 덕담에 앞서서, 더이상 내가 9년 전처럼 열심히(!) <씨네21>을 읽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우편으로 배달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정기구독을 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정기구독을 하기 때문에 그나마 <씨네21>을 매주 만나고 있는 형편이다.
2. 그렇다면 왜? 물론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종이에 씌어진 글씨보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글씨를 읽는 데 훨
<씨네21>을 비판한다 [2] - 김홍준
-
피가되고 살이되는 批判 6言
창간 10주년을 맞아 감독, 제작자, 기자 여러분께 쓴소리를 듣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는 분이 없었다. 깊은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힘들 일이고, 애정이 깊다고 하더라도 그걸 글로 쓴다는 건 별개의 일이다. 일개 독자인 내가 왜 그런 걱정도 모자라 글을 쓰는 수고를 끼쳐야 하느냐는 것이 많은 분들의 푸념이었다. 주제넘게 바쁜 분들을 책상에 앉히고 채근하고 잔소리하는 악역을 기꺼이 맡았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씨네21>의 근거다. 이분들의 걱정과 질책은 우리가 가장 먼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이라고 믿는다. 구색맞추기 아니냐는 귀여운 힐난도 있었지만, 창조적 소수로 남을 날이 오리라는 것도 각오하라(김홍준), 산업과 관련한 문제의식이 지난 10년간 영화계에 비해 가장 뒤처져 있다(오기민)는 값진 충고를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실패한 영화의 미덕도 볼 줄 알라(이준익), 단 한번이라도 감독의 마음을 이해하는 문장을
<씨네21>을 비판한다 [1]
-
여기서 소개할 영화는 실상 라는 영화가 아니다. 그건 이 영화를 '극장용'으로 편집한 또 다른 영화일 뿐이다. 물론 200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이 극장용 는 그 자체로도 좋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DVD 타이틀에 수록된 또 다른 버전, 이름하여 '언타이틀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또 다른 편집판은 영화에서 편집이 얼마나 영화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지, 심지어는 감독이 말하고자했던 것마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만하다.
영화관에서 보여준 는 매우 따뜻한 성장영화였다. 지나칠 정도로 극성인 어머니 때문에 남들보다 몇 살이나 어린 나이에 입학한 윌리엄은 누나가 집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음악을 듣고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고, 그의 눈을 눈여겨본 롤링스톤즈의 제안을 받아 당시 한창 뜨기 시작한 밴드 '스틸워터'의 투어에 동행하게 된다.
스틸워터와 함께하면서 그는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음악 산업의 이면을 목격할 뿐만 아니라, 스틸워터의 그루피
강명석의 Shuffle! <올모스트 페이머스>
-
승리의 영화로 치환되는 패전의 역사
이같이 제3세대형 전쟁영화 <로렐라이>는 노스탤지어 영화로서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향수를, 가상역사영화로서 점령기를 겪은 전후세대에게는 자부심을,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인 신세대에게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의 쾌감을 주며 국가주의를 주입 및 재교육시킨다.
과거의 전쟁영화와 비교해볼 때 <로렐라이>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부터 지킨다는 슬로건이다. 진주만 공습은 빼먹고 히로시마 원폭에서부터 스토리를 풀어가는 이 영화에서 일본 제국군의 이미지는 일본 헌법 9조에 의해 군수방위만 허락되는 자위대의 그것과 자연스레 겹친다. 마사미 함장의 캐릭터도 가부장적인 상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리더로 설정되어 있고 휘하의 군인들도 전체로 취급되기보다는 개성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구일본군은 꽤나 자유 민주주의적인 단체로 그려진다.
또 다른 변화는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보통사람들
일본 극우영화 <로렐라이> [2] - 전쟁영화 라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