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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있으면 대망의 완결편을 선보이게 될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개봉일이 다가올수록 전작들을 극장에서 봤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는데, 앞의 두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클론의 습격>에서 ‘요다’가 광선검을 뽑는 씬이다.
3년 전 <클론의 습격> 개봉 첫날의 풍경이다. 스크린 속에서 아나킨과 오비완을 가볍게 제압한 악당 두쿠 백작. 아무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수백 년을 살아온 제다이 마스터 요다다. 왜소한 체구에 지팡이에 의지한 구부정한 몸을 갖고 뭘 어찌할까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어둠의 힘으로 강력해진 두쿠를 압도하더니만 ‘마침내’ 광선검을 뽑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극장 안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미국도 아닌 우리나라 극장에서 말이다.
요즘은 참 보기 드문 광경인데, 개봉 첫날 약속이나 한 듯 극장에 모인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그만큼 의미심장한 장면
<스타워즈 Ep2> 요다가 광선검을 뽑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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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모험 활극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큐티하니>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마징가Z>의 원작자 ‘나가이 고’의 작품이다. 마징가 시리즈 때문에 로봇 만화에 정통한 작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 이 분은 은근히 뇌쇄적인 작품 쪽으로 명성이 더 높다. 특히 여체의 아름다움을 한껏 감상할 수 있는 <큐티하니>가 비교적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편이다.
이번에 소개할 <RE:큐티하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안노 히데아키’의 최신작이다. 원래 안노 히데아키는 이런 장르의 작품을 대단히 좋아하는 열혈 매니아로 정평이 나있는데,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앞서 <큐티하니>를 실사영화로 만들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리해왔던 큐티하니의 모든 것을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풀어놓기로 한 것이다.
<Re:큐티하니>는 영화판과 상호 연동이자 댓글과도 같은 작품으로 영화
박창선의 애니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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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 얼굴이 무척 낯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뚜렷한 이목구미에 강조된 턱, 진지해지려면 얼마든지 진지해질 수 있지만, 망가지는 역할에서는 아주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이미지. 어디였더라. 결국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역시 샘 레이미 작품인 <다크맨>을 다시 보고서야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블 데드>의 주인공 얼굴은 이 영화의 결말에서, 얼굴을 잃고 햇빛 아래에서는 인공피부를 뒤집어써야 하는 비극의 히어로인 페이튼이 연인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뒤돌아볼 때의 얼굴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배우는 바로 샘 레이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브루스 캠벨로 레이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그의 영화적 대리자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크맨>에서 페이튼의 마지막 얼굴을 연기한 캠벨의 이 장면은 레이미의 팬들 사이에서 너무나 유명하며, 주로 망가지거나 코믹
<다크맨> 내가 누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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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예술인 애니메이션은 보통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창조활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2002년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작가를 접하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발표한 <별의 목소리>는 비록 러닝타임 25분의 단편 애니메이션이지만 콘티, 디자인, 원화, 동화, 미술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을 컴퓨터 한 대(G4 Mac-400MHz)를 이용해 혼자 힘으로 완성한 실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만 DVD가 6만장 이상 팔려나갔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6개국에도 출시가 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신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원작, 감독, 각본, 미술을 신카이 마코토가 맡고, 취약했던 캐릭터 디자인 및 작화의 보강을 위해 전문 애니메이터를 영입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덕분에 SF 장르로서 주로 영상 테크닉에 의존했던 <별의 목소리>에 비해, <구름의 저편, 약속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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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 그 자체의 인생을 살아온 잘 나가는 보험 회사 중역 슈미트. 이제 60대가 되어 정년퇴임을 하게 된 슈미트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여유를 즐겨야 할 시기에 갑자기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된다. 그것은 바로 평생을 함께해 왔던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사이가 소원해진 딸의 결혼. 탄탄대로에서 갑자기 험난하고 울퉁불퉁한 길로 내몰리게 된 한 남자가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어바웃 슈미트>다.
최근 <사이드웨이>로 평단의 절찬을 받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전작인 이 영화는 요즘 부쩍 나이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잭 니콜슨의 명연이 돋보이는 인간 드라마의 걸작이다.
DVD에는 본편에서 볼 수 없었던 삭제 장면이 여럿 들어가 있는데, 많은 경우 삭제 장면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바웃 슈미트>의 삭제
<어바웃 슈미트> 인생 황혼기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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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인 픽사 스튜디오의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픽사 스튜디오가 어제(5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5천 380만 달러였던 매출이 올해는 그 3배에 달하는 1억 6,12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그 중 순이익만 8,190만 달러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출시되어 미국에서만 무려 1억 7천만장 이상 팔려나간 <인크레더블> DVD의 판매호조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픽사의 스티브 잡스 회장은 디즈니 측과의 계약에 대해 “월트 디즈니의 새 CEO인 로버트 아이거와 몇 차례 회의를 가졌으며 디즈니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혀, 계약 갱신의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양사는 지난해부터 관계가 악화되어 픽사의 차기작인 <자동차들>을 끝으로 제휴관계를 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픽사, <인크레더블> DVD로 떼돈 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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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낡은 목욕탕에서 깨어난 두 남자, 아담과 고든. 눈앞에는 자살한 시체가 한 구 놓여있고, 자신들의 발은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있다. 이윽고 그들은 경찰이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연쇄살인마의 살인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신예 제임스 완 감독이 주연으로 출연한 리 와넬과 함께 공동으로 집필한 각본으로 완성한 작품. 감금된 남자들의 공포와 절망, 잔혹한 살인 장면을 박력 있는 연출로 그려낸 스릴러 영화다.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븐> <유주얼 서스펙트>에 버금가는 놀라운 반전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DVD는 영화의 섬뜩한 사운드를 DTS-ES와 돌비 디지털 EX로 들려주고 있으며, 부록으로는 성공신화를 이룩한 제임스 완, 리 와넬의 음성해설을 비롯해 인터뷰 영상을 수록했다. 하드코어 밴드 피어팩토리의 살벌한 뮤직 비디오도 보너스로 담겨있다.
<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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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다이어리] <댄서의 순정> 문근영의 순정
[헌즈다이어리] <댄서의 순정> 문근영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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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담당 기자들은 김기덕 감독의 <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기자 시사회를 열지 않고 인터뷰도 전혀 안 하겠다고 하니 영화에 대해 쓸 말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보도자료도 없고 공개된 스틸사진도 달랑 한장이다. 이거야 원, 기자들 엿먹으라는 거야 뭐야,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씨네21>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번호 기획기사에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던 사진은 없다. 별 수 없이 우리는 제작진과 배우에게 <활> 제작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준비했다. 김기덕 감독은 <씨네21>의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1편 영화를 찍는 동안 너무나 많은 말을 했다. 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보기 힘들 만큼 많이. 그냥 영화 자체로 설명이 되지 않겠나? 나의 말로 규정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영화를 미리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 대체 무슨 배짱으로
[편집장이 독자에게] 김기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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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의 소문난 쌍둥이 감독 김곡김선의 영화는 어렵다. 니체와 메를로퐁티와 후설과 네그리와 마르크스의 사상을 영상으로 옮겼던 김곡김선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떠오른 단상은 이랬다. 차라리 그냥 2차 서적을 새로 쓰는 게 어때? 아직 학생이었을 때 영화제에서 접한 김곡김선의 <시간의식>과 <반변증법>은 어려운 데다가 지겹기까지 했다. 이론서적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듯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비유가 난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과의 대화에 나선 김곡김선은, 관객이야 머리가 깨질 것 같건 말건 그저 즐거워 보였다.
그로부터 몇년 뒤. 일본 시부야에서 김선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선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김선은 상영작 <자본당 선언>의 감독으로 초청됐다. 나는 관객이 아닌 기자로 김선을 인터뷰했다. 변한 것은 나의 위치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김곡김선의 영화 역시 달라져 있었다. <공산당 선언>을
[오픈칼럼] 김곡김선 감독, 당신들이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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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다시 설거지통 앞이다. 나를 자생적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던 바로 그 공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부엌으로 원위치한지 벌써 반년째다. 한평 남짓한 부엌에 하루 서너 시간 갇혀 있다보면, 꼭 바람 피우는 남편 없어도, 문학과 삶의 괴리에 대한 피 토할 고통 없어도, 가끔은 오븐 안에 머리를 밀어넣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
가령, 물 젖은 고무장갑이 잘 벗겨지지 않을 때, 냉장고에서 국물 많은 반찬그릇을 꺼내다가 떨어뜨려 바닥이 난장판됐을 때, 다듬고 씻고 무치느라 한 시간은 족히 허비했던 나물이 채 반도 먹지 않았는데 쉬어버렸을 때, 점심은 어찌어찌 해결했는데 저녁상엔 도대체 뭘 차려야 좋을지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뭘 먹어야 하지? 라는 고민을 시도때도 없이 하다보니, 어느 순간 밥 먹는 일이 두려워졌다. 하루 세끼 밥하고 반찬 만드는 일이 너무 징글징글해서, 밥에 대한 거부감이
[숏컷]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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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대로>는 한 남자가 풀장에 떠 있는 그 유명한 장면으로 시작해 무시무시한 얼굴의 늙은 여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끝난다. 죽은 남자는 삼류작가인 조(윌리엄 홀덴)이고, 늙은 여배우는 과거의 빅스타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다. 그런데 다시 본 <선셋대로>에서 주인공 노마만큼 눈에 띄는 사람은 조가 아닌 집사 역을 맡은 맥스(에리히 폰 스트로하임)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생각도 극중 <여왕 켈리>(1929)가 화면을 채우던 부분으로 바뀌었다. 짜임새 없는 영화를 만들고 가짜 귀족 행세나 하는 허풍선이로 취급받던 스트로하임은 당시 B급영화 등에 배우로 얼굴을 내밀 때였다. <여왕 켈리>는 <탐욕>(1924)에서 이미 예견된 스트로하임의 몰락을 정점으로 이끈 작품이며, 그 영화에서 켈리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젊은 글로리아 스완슨이다. 스트로하임이 <여왕 켈리>의 필름이 담긴 영사기를
[명예의 전당] 고전의 힘을 느끼다, <선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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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다시 노친네 타령을 하련다. <더티 댄싱2>가 나에게 ‘역시 늙으면 죽어야 돼’라는 나이 파시스트적 신념을 부추긴 다음 본 <미트 페어런츠2>는 ‘에구 저 귀여운 노인네들’이라는 여유와 관용의 미덕을 가르치며 나의 그릇된 신념을 철회시켰다. 두 가지 평가 모두 노인을 대상화하고 객체화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직도 노인은 나에게 나를 투사시키거나 감정이입할 수 없는 객체인걸. <더티 댄싱2>에 대한 혹평의 배경이 어릴 적 봤던 <더티 댄싱>의 아름다운 기억 때문이었다고 말했듯이 <미트 페어런츠2>에 대한 나의 ‘과찬’의 배경에도 ‘한국적 정서와 동떨어진 유머’ 또는 ‘싸구려 재미’에 열광하는 나의 저질 취향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미트 페어런츠2>는 전편과 아주 다른 영화다. 1편의 주인공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그렉(벤 스틸러)이었다면 2편의 주인공은 결혼시키고 싶은 두 남자
[투덜군 투덜양] <미트 페어런츠2> 이 귀여운 노친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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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와 감독 퍼시 애들런이 참여한 <바그다드 카페>의 코멘터리는 청자에 따라 호오가 분명하게 엇갈릴 법하다. 애들런이 촬영과정 이야기를 할라치면 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가 잽싸게 화제를 가로채 삼천포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절반 정도는 화면과 관련이 있지만 나머지는 자신의 인생 철학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이를테면 ‘예전엔 배역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좀 알겠어. 그런 것들을 초월해서 세상의 음과 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어’라든가 ‘안 되는 것은 안 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장면에서 떠오른 관념적인 영감에 대해 몇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작품에 대해 날카로운 해석을 던져주기도 한다. 잭 팔란스를 두고 촬영장에서 ‘당신 안엔 여자가 있어요’라고 말해 노배우를 기겁하게 했던 일화는 배역에 앞서 그 안의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노련한 연기자답다. 뒷이야기가 궁
[코멘터리] 배우들이 들려주는 영화 분석, <바그다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