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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영화의 시대극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갑옷 두르고 수염 기른 근엄한 장군들의 입에서 사투리와 욕지기가 터져나오고(<황산벌>), 정숙과 순결의 규방에서 불그스름한 욕정의 게임들이 버젓이 벌어지고(<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급기야 <천군>에선 성웅 이순신마저 물욕에 사로잡힌 방탕한 사내로 그려진다. “현대의 남북한 군인들이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이순신 장군 만들기에 동참한다”는 줄거리의 <천군>은 시치미 뚝 떼고 엉뚱한 상상력을 피워 올린 한국판 <백 투 더 퓨처>다.
북한장교 강민길(김승우)은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무기 비격진천뢰가 미국쪽에 양도되자 불만을 품고 비격진천뢰를 탈취한다. 남한 핵물리학자 김수연을 인질로 삼고 도주한 강민길을 잡기 위해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가 투입된다. 마침 433년 만에 한반도 상공에 거대한 혜성이 지나고, 압록강 유역에서 대치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남북한 군인들의 이순신 장군 만들기, <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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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는 뉴요커(New-Yorker: 뉴욕에 사는 사람)에 대한 영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없는 거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전형적 인물으로서의 뉴요커에 대한 영화다. 네 마리의 동물 캐릭터들,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기린 멜먼(데이비드 시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하릴없는 뉴욕의 예찬자들. 심지어 몇몇 대사들은 뉴욕중독증 환자들이 주연인 <섹스&시티>의 대사들(“누군가가 뉴욕을 떠나는 걸 볼 때마다 항상 놀라워. 내 말은, 대체 여기 말고 어디 가서 살 수 있냐고?”-사만사-)에서 따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뉴욕이 갑갑해지기 시작한다면?
<마다가스카>의 이야기가 그들의 탈출욕구에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우디 앨런조차도 일시적인 일탈을 꿈꾸지 않았는가. 결국 얼룩말 마티는 남극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이코 펭귄갱단에 감화되어 ‘야생’을 찾아
네 마리 뉴요커 동물들의 뉴욕 귀환 프로젝트, <마다가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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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시리즈는 괴담 아래에 애(愛)와 애(哀) 두 가지 정서를 포개어두었다. 점프컷으로 튀어오르는 원혼과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소녀의 눈동자를 헤치면, 기름 먹인 스트레싱 페이퍼 밑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글자와도 같던, 사랑과 슬픔이 새어나오곤 했다. 사자(死者)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어린 영혼들. 혼자서 죽어간 그 아이들은 생과 사를 가르는 심연을 거부하면서 그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있고 싶다고 아이다운 고집을 세운다. 그 고집은 산 자에겐 공포가 되고, 죽은 자에겐 올가미가 될 뿐이다. 죽은 이는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냉정한 목소리도 아이들이 울먹이면서 저승으로 떠나는 <여고괴담>의 끝자락에 성불이나 해피엔드라는 무심한 내레이션을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노래 연습을 하던 여고생 영언(김옥빈)은 누군가 자신의 노래에 화음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언은 그 목소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악보
소녀들의 절박한 목소리, <여고괴담4: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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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향후 수년 내에 중국에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중국영화를 미국 내에 소개하는 것은 물론, 중국어권 영화를 제작 투자하고, 중국 로케이션에 나서는 경향에 주목해, 미국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할리우드도 중국을 공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눈에 띄는 최근의 작업은 디즈니에서 진행하고 있는 <백설공주>의 무협 리메이크. 영국의 영향권에 있던 1880년대의 중국을 배경으로, 일곱 난쟁이 대신 소림사 승려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매트릭스> <킬 빌>로 잘 알려진 무술감독 원화평이 연출자로 내정돼 올 하반기부터 중국에서 촬영한다. 지난해에는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화이트 카운테스>를 중국에서 촬영한 바 있다. 소니의 컬럼비아트라이스타는 가장 먼저 중국 공략에 나선 스튜디오로, <집으로 가는 길> <와호장룡>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중국 투자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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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들의 극장 개봉 발걸음이 힘차다. 가장 먼저 박차고 나선 것은 지난 7월15일 개봉한 <목두기 비디오>(윤준형). 이 영화는 2003년 인터넷 상영 당시 유료관객 7천명을 모았고, 뒤이어 실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제작된 지 2년이 지난 뒤늦은 개봉이지만 한여름 새로운 형식의 공포영화를 찾는 관객의 성향을 겨냥하여 극장에 정식으로 걸리게 됐다. 7월22일 개봉하는 옴니버스영화 <삼인삼색>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일본의 쓰카모토 신야, 한국의 송일곤 등 비교적 유명 감독들이 참여하여 완성했다. 22일 서울 개봉 이후에는 8월12일부터 광주극장과 대구 동성아트홀에서도 상영을 시작한다.
인디스토리가 배급하는 두편의 영화 <동백꽃>과 <빛나는 거짓>이 그뒤를 이을 예정이다. <동백꽃>은 그동안 <동백꽃 프로젝트-보길도에서 일어난
<목두기 비디오> <삼인삼색> 등 독립영화 줄줄이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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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 배우 니콜 키드먼이 역사상 가장 비싼 연설료를 받는다고 <IMDb.com>이 7월11일 전했다. 제5회 포브스 글로벌 CEO 연례 회의에 초청을 받은 키드먼은 25분동안 연설을 하는 대가로 43만5천달러를 받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 키드먼은 참석하지 않는다는 사실. 대신에 키드먼의 연설은 위성을 통해 전달될 예정이다. 참고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대만에서 한 차례 연설을 하는 대가로 25만달러를 받았다.
한 관계자는 영국신문<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의 돈을 받는다면 당연히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포브스 회의 주최측은 니콜 키드먼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설만 해준다면 환영하는 입장이다. 경영인들은 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4000달러를 지불하며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와 호주 총리 존 하워드같은 유명인의 연설을 듣고 싶어한다. 키드먼은 그만한 가치
니콜 키드먼, 단 25분 연설에 43만달러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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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아스팔트 정글에 갇힌 도시인들을 꿈을 꾼다. 이 지긋지긋한 ‘비명도시’를 빠져나갈 꿈을.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 꿈은 광활한 판타지의 세계로 팽창하는 ‘백일몽’일 경우도 있지만 미로와 같은 도시 속을 헤집고 돌고도는 ‘악몽’도 있다. 악몽을 꾸는 도시인들은 갖은 고생을 겪다가 결국 필사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큰맘 먹고 발을 내딛은 결과가, 온갖 고초를 겪은 보상이, 겨우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니 참 허망하기도 하다. ‘홈 스위트 홈,’ 또는 ‘노 웨이 아웃’(No Way Out).
부랑자들이 기거하는 버려진 화물 열차로, 그러곤 게토의 아파트로, 음습한 하수구로 죽음의 마수를 피해 달아나다 거의 죽기 일보 전까지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그린 <킬러 나이트>는 그런 도시 정글에서의 악몽을 재연하는 흔해빠진 액션 스릴러 영화다. 프랭크와 존 형제, 흑인 마초 마이크, 수완가인 레이, 이 네 젊은이는 권투 경기를 구경하러 모처럼 외출길에 나선
여기가 지옥이야, 스티븐 홉킨스의 <킬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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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녹음 일정 탓에, 난 집에도 못 들어가며 며칠째 작업실 앞의 여관 신세를 지고 있는 터였다. 난 이런 시기이면, 전화를 받을 때 처음부터 아주 피곤한 듯 목소리를 내리까는 버릇이 있다. 처음부터 잔뜩 피곤한 척을 해야, 다른 약속들을 피해갈 수 있다는 계산때문이다. 막 여관방을 나서려는 순간 휴대폰 소리가 울리고, 난 계산대로 잔뜩 피곤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씨네21>의 황 기자였다.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시네요… <플란다스의 개>는 다 끝나셨을 텐데….” 나의 대답은 “아…아니요. 괜히 그래 봤어요”였다. 나의 계산은 이렇게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난 아무 저항 없이 나흘 안에 원고를 써 넘기기로 했다. 사실 녹음을 눈앞에 두고 변심한 이유는, 내게 떠오르는 한편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내 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야기는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가끔씩 난 아버지, 형들
스텔라를 닮은 여인, <라스트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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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레스>는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스탭들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선 국내 최초의 극장 개봉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일종의 실험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동화와 원화 부분은 한국에서, 그리고 시나리오와 연출 등은 일본 스탭들이 담당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이치다.
<건드레스>는 제작과정이 복잡하다. 일본의 닛카쓰와 파나소닉 디지털 콘텐츠, 이너브레인 등의 회사가 동아수출공사와 공동으로 제작비를 댔다. 거대 프로젝트라 일컫어도 어색하지 않다. 국내 스탭이 기획 및 제작, 배급에 참여했고 각본과 캐릭터 설정 등 주요 부분은 주로 일본인 스탭의 손을 거쳤다. 스탭 진용은 쟁쟁한 편이다. 주목할 인물은 <애플시드>와 <공각기동대> 등의 SF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시로우 마사무네. 캐릭터 설정을 맡아 예의 날렵한 사이버펑크풍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연출자 야타베 가쓰요시는 &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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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땐 누구나 한번쯤 ‘난 혹시 미운 오리새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봤을 것이다. 나만 유별나다는 섣부른 자의식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고, 친구들로부터 외돌아졌다는 소외감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의 감옥’을 들락거리게 했다. 그 시절의 상처는, 무뎌지기는 해도 잊혀지지는 않아서, 지금도 기억 속에서 느닷없이 기어나와 그때의 나를 뼈아프게 각성시킨다. 조시 또한 그랬다. 유능하고 현명한 어른인 조시는 취재기자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시 고등학교로 뛰어들지만,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건 ‘특종거리’가 아니라 그녀의 옛날이다.
<25살의 키스>는 이렇듯 어른을 주인공으로 한 10대 코미디 영화. 조시의 시선으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을 유머스럽게 스케치한다. 조시가 잠입한 학교는 더이상 꽉 막힌 공간이 아니다. 무엇도 아이들을 가두지 않으며 아이들은 경쾌하고 풍요롭다. 그럼에도 친구 만들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으며, 그곳에서 조시는 ‘또다른 조시’를 발견하고 분노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 <25살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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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를 표방한 <인코그니토>는 <토요일 밤의 열기> <블루썬더> <니나> <고공침투> <닉 오브 타임> 등을 연출했던 존 바담 감독의 최신작. 렘브란트의 그림 한점을 그려주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브로커들의 덫에 걸려든 해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렘브란트 작품을 모조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품(?)을 훔쳤다는 누명. 체포되어 법정에 선 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위작을 또 한번 그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해리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두장의 그림 사이에 <인코그니토>는 익숙한 스릴러 장르의 복선과 장치들을 채워놓았다.
자신의 재능을 확인할 때라곤 남의 그림을 베낄 때 뿐인 해리와, 생계를 위해 당대 유럽의 최고 화가였던 루벤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던 렘브란트. 사전 정보를 조금 챙겨보면 그렇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인코그니토>의 해리
결백한 도망자, <인코그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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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인 홍콩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컬트가 된 주성치 영화는 품위와 상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버릴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희한한 종류의 코미디다. ZAZ 사단의 패러디 정신과, 인분이나 정액을 과감히 등장시키는 패럴리 형제의 악취미가, <주성치의 007> <홍콩레옹> <홍콩 마스크> <식신> 등으로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에 고루 깃들어 있다. <희극지왕>은 그의 영화치고 좀 점잖은 축에 속해서 주성치를 섬기는 교파에 입문하기에는 비교적 적당한 코스다.
진지함을 뒤집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주성치가 <희극지왕>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007>이나 <마스크>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현장 자체다. 홍콩에서 최고 몸값을 받는 배우인 그는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는 경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대신한다. 영화에서 무능력한 사내가 현실에서 백마탄 기사가 된다는 <희극지왕>
주성치의 낭만과 낙관이 넘실대는 무대, <희극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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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흔두살인데, 일년 안에 죽을 것이다. 물론 난 아직 그걸 모르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불치병에 걸린 걸까. 사고를 당하나. 자살한다는 건가. 죽는다 해도 이 말은 누가 언제 하고 있는 걸까. <아메리칸 뷰티>는 첫 내레이션에서부터 시점(時點)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슬쩍 지우며 시작한다. 목소리의 주인공 버냄은 중년의 미국 화이트 칼라다. 대도시 근교의 멀쩡한 집에서 아주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 아니, 말하는 걸 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외양은 매끈하기 짝이 없다. 집도 근사하고, 미인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다니는 딸도 몹시 예쁘다. 그런데도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진다. “난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른다. 내 아내와 딸은 내가 엄청난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의 뜻은 ‘①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②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③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라
병든 가족, 벌레먹은 꿈,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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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 콤비의 블록버스터 <우주전쟁>이 국내에 수입, 개봉된 외화가 보유한 기록을 깨뜨리며 지난 주말 국내 극장가를 압도했다. 주말 이틀간의 서울관객수는 29만, 전국관객수는 91만이며, 7월 7일 전야제 관객까지 합쳐 370개의 스크린에서 개봉 이후 불러들인 총 관객수는 무려 143만 명이다.
이는 2003년 개봉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가지고 있던 역대 외화 주말 전국 관객수 기록인 86만을 앞서는 기록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봉된 스필버그의 영화와 톰 크루즈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성적이다. 관객들은 다소 힘 빠지는 결말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공포영화 뺨 치는 긴박감과 스필버그가 선보이는 새로운 스펙터클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적할 만한 영화가 단 한편도 없었던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한편, 개봉 첫 주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밀려 2위로 데뷔했던 <분홍신>은 개봉 2주차에 <미스터
<우주전쟁> 단숨에 143만 관객, 국내 극장가 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