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영구 형사는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라고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신의 직업윤리를 고백한다. 상기 네 가지 직업 중 유일하게 ‘일하는’ 사(事)자를 쓰는 업종이 바로 형사(刑事)다. <강력3반>은 그런 형사라는 ‘직업’의 고단함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범인을 ‘무조건 잡더라도’ 수많은 서류를 구비하느라 밤을 지새다보면 여자친구, 자식들, 아내는 이미 그들을 떠나간 지 오래다. 경찰헌장의 문구처럼 ‘사회의 안녕과 질서는 유지’되지만, 정작 형사 개인과 가정은 파탄나기 십상이다.
수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형사 홍주(김민준)는 여자친구 태희 때문에 경찰복을 벗으려 한다. 그러던 중 대형 마약사건이 배후를 드러내고, 고과점수 올리기에 급급하던 강력3반은 본격적인 수사 체제로 돌입한다. 그들은 재철(김태욱)이 부상당하는 어려움 끝에 마약밀매단의 핵심인 서태두(윤태영)를 포착한다
형사라는 ‘직업’의 고단함, <강력3반>
-
복권과 더불어 TV 퀴즈쇼는 자본주의가 인색하게나마 베푸는 이상한 소득 재분배 방식이다. TV는 보통 사람이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환상을 부풀리고, 보통 사람은 퀴즈쇼로 ‘누구나 일생에 15분쯤은 유명해질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환상에 동참한다. TV가 부풀린 이런 환상의 무대 뒤편을 조명하는 <퀴즈쇼>, 또는 퀴즈쇼에 매달리는 보통 사람의 집착을 보여준 <매그놀리아>의 에피소드는 퀴즈쇼가 갖는 두 얼굴에 대한 예리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주부퀴즈왕>은 퀴즈쇼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여/남의 역할 교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더한 영화다. 남편 한석규는 전업주부가 되고 TV 리포터인 아내 신은경은 가정도 잊은 채 일에 몰두한다.
퀴즈쇼에 대한 성찰이 없다고 해서 나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역할 교체에 대한 시대상의 반영이 날카롭지 못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퀴즈쇼에 대해서도 설렁설렁 넘어가고, 성역
최상의 재료로 만든 매력없는 음식, <미스터 주부퀴즈왕>
-
“난 매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가졌어요. 우리가 함께 다니려면 당신이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난 인생은 끔찍한 삶과 비참한 삶으로 나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 두 범주로 말입니다. 끔찍한 삶이란 말하자면, 모르겠어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경우랄까요…. 장님이거나 불구이거나….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견뎌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나에겐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삶에 속합니다. 그게 전부죠.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당신이 비참한 쪽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이… 비참하다는 건 운이 좋다는 거거든요….” 우디 앨런이 몸의 우스꽝스러운 전시를 뒤로 하고 철학적 억견의 세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애니홀>(1977)이 있었다. 그 자신조차 전환점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앨비는 이렇게 삶을 불운하거나 덜 불운한 양편으로 나누는 것 이외에는 몰랐다.
25년이 지난 뒤(<헐리우드 엔딩>은 2002년 제작된 영
순진한 희망으로의 역전, <헐리우드 엔딩>
-
세상에는 비슷한 외모나 느낌을 주는 상대하고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그 외모 또는 느낌의 원형은 대개 첫사랑에서 비롯된다. 잘 나가는 대입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이 수강생인 이석(이태성)을 사랑하게 된 상황 또한 비슷하다. 인영은 이석이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열세살 터울인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주위의 시선은 따가워지지만, 인영은 “누구랑 키스하고 싶은 게 나쁜 일이야?”라며 당당하게 사랑을 지켜나가려 한다.
<사랑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이 같은 여러 인물들과 독특한 시간배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서른살 조인영과 열일곱 이석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와중, 우리는 간간이 끼어드는 열일곱 조인영(정유미)과 열일곱 이석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다. 명백히 서른살 조인영의 회상으로 보이던 이 대목은 열일곱 조인영이 이석을 만나기 위해 서른살 조인영의
영화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 환상성의 실체, <사랑니>
-
-
다음달 6일 개막하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벌써부터 암표와 매진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영화제 티켓교환 게시판과 일부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는 영화제 상영작 암표가 적게는 2배부터 많게는 20배까지 오른 값에 거래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 인원이 늘면서 인기가 올라 올해는 23일 오전 9시 일반 상영작 예매를 시작한 지 단 하루 만에 20편이 매진됐다. 26일 오전 10시 현재 631회 상영편 가운데 213회나 모두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개막작 <쓰리 타임즈>와 폐막작 <나의 결혼원정기>,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의 미남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한 <봄의 눈>, 올해 칸 영화제 진출작인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그리고 ‘욘사마’ 배용준씨가 나오는 <외출> 등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이들 영화 가운데에서도 영화 상영 직후 감독과 출연 배우가 직접 무대에 올
부산국제영화제 암표 ‘몸살’
-
검객에게 검은 신체와 에너지의 연장과도 같다. 내부에서 뻗어나온 기는 손끝을 거쳐 검으로 이어지며 직선을 완성하고, 그 선은 다른 검과 맞부딪치기 위해 대기를 가르는 곡선을 그린다. 영혼과 금속이 일체가 되어 빚어내는 검광(劍光). 서극이 18반의 무기 중에서도 굳이 검을 택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극은 양우생의 <칠검하천산>을 각색하면서, 천산에서 내려온 검객들이 아닌, 일곱 자루의 검에게 더 많은 애정을 주었고, 사막의 먼지 속에서도 빛을 뿜는 검의 신화를 완성했다.
이 영화의 원작 <칠검하천산>은 김용과 함께 무협소설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양우생의 초기대표작이다. 양우생은 <백발마녀전>과 <칠검하천산>의 인물들을 엮어 느슨한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영화 <칠검>은 그 관계를 무시하고 서부영화와도 같은 짧은 드라마만을 남겨두었다. 아직은 복명(復明)운동의 기운이 남아 있는 청조 초기, 황제는 무예수련을 금하는 ‘금무령
사막의 먼지 속에서도 빛을 뿜는 검의 신화, <칠검>
-
추석 연휴는 전통적인 극장가 대목. 그러나 이 시기 개봉한 세편의 독립영화엔 그러한 통념도 남의 일이다. CJ-CGV 인디영화관 3개관과 필름포럼에서 지난 9월16일 개봉한 <동백꽃>은 개봉 5일째인 지난 9월20일까지 3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동백꽃>과 함께 필름포럼에서 단관개봉한 <빛나는 거짓>은 같은 기간 90여명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다. 두 영화에 비해, 보기 드물게 대중성을 겸비한 독립영화로 평가받았던 <거칠마루>는 조금(?) 나은 상황. 지난 9월15일 아트플러스체인의 6개관과 CJ-CGV 인디영화관 3개관에서 개봉한 이 작품은 개봉 1주일 동안 2천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CGV는 개봉 2주째부터 하루 2회만 상영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동백꽃>과 <빛나는 거짓>을 배급한 인디스토리는 이런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을, 가혹한 교차상영 일정이라고 말한다. 필름포럼은 간만에 관객을 끌어모은 &l
[충무로는 통화중] 독립영화를 두 번 죽이는 교차상영
-
강우석 감독과 장진 감독이 손을 맞잡고 영화사를 만든다.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따 ‘K&J엔터테인먼트’라 이름지어진 이 영화사는 강우석, 장진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새로 발굴되는 신인급 감독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K&J는 현재 법인등록을 마친 상태이며, 이르면 9월 말쯤 공식적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1000만의 <실미도>’와 ‘700만+∝의 <웰컴 투 동막골>’의 결합에 다름아닌 탓에 충무로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강우석 감독은 “장진 감독은 오래전부터 영화적 동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함께하게 됐고, 시네마서비스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독립적인 제작사를 차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서는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기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작사 필름있수다의 대표이기도 한 장진 감독은 “K&J는 필름있수다가 할
강우석·장진의 K&J엔터테인먼트 출범, <한반도>로 스타트
-
<대부>3부작과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66)가 오랜만에 다시 감독으로 복귀한다고 <버라이어티> 등 외신들이 9월23일 보도했다. <레인메이커>(1997)를 만든지 8년만이고 크레딧엔 이름을 올리지 않은 공동연출작<슈퍼노바>(2000) 이후로 5년만이다.
이번에 코폴라가 연출할 작품은 <청춘 없는 청춘>(Youth Without Youth). 루마니아 종교학자이자 작가인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중편소설을 코폴라가 직접 각색했고 그의 영화사 조트로프에서 제작한다. 2차대전 직전 암흑기에 큰 사건을 겪으면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루마니아와 스위스, 인도 등을 떠도는 한 교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출연진은 팀 로스와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나, 브루노 간츠 등 이며 10월3일부터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코폴라 감독은 “엘리아데의 소설에서 시간과 의식 그리고 현실의 허상이라는 주요
<대부>의 코폴라 감독 다시 메가폰 잡는다
-
“커져가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더 큰 부담”
<어제>의 촬영지 쓰훼이교 입체교차로에서 만난 장양
장양의 차를 따라 도착한 곳은 쓰훼이교 입체교차로였다. 자전거를 탄 행인들과 고가도로 위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가던 길을 멈춰선다. 잔디밭에 들어선 취재진과 긴 머리의 장양 감독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 열몇개의 다리들이 늘어선 광경이 보이는 이 입체교차로는 장양이 2001년 만든 <어제>에서 부자간의 교감을 보여주는 장소로 쓰였다. 장양은 베이징의 독특한 공간인 사합원, 후통, 동네 목욕탕, 100여개가 넘는 입체교차로 등을 자신의 영화 속에 즐겨 끌어들였다. 그의 작품 <샤워>에서는 좁고 후미진 베이징의 세부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생활상이 담겨져 있다. 장양은 영화감독 장화순의 외아들이다. “성장배경 때문인지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많이 찍었다. 현실에서는 예술의 견해차나 생활문제로 아버지와 오히려 자주 싸웠다. 어렸을 때 말썽을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4] - 중국감독열전 ③
-
“문화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
라이브 카페에서 만난 <색을 보여드립니다>의 최건
육교 아래 위치한 베이징 CD 재즈 카페. 한적한 오후에 문을 열자마자 때아닌 록음악의 굉음이 쏟아진다. 평평한 무대에 원형으로 둘러서서 ‘베이징 록의 대부’ 최건과 그의 멤버들이 신나게 리허설을 하는 중이다. 장위안 감독은 “중국 록의 기억은 최건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살육당한 시위대의 주제가로 쓰였던 <일무소유>(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는 최건을 천안문 세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로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그는 “음악영화이며, 한 가지 노래로 세 인물의 이야기가 묶일 것”이라고 새 영화를 전망했다. 여기서 인물이 의미하는 세 가지 색은 각각의 음악과 연결된다. “파란색은 전자음악, 빨간색은 록, 노란색은 팝”을 뜻한다. 그는 “경제 발전은 매우 빠르지만 중국의 문화나 정치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현실을 평했다.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3] - 중국감독열전 ②
-
“나는 지아장커의 영화적 선배가 아니다”
<무극> 온라임게임 선보인 조어대에서 만난 첸카이거
<패왕별희>의 첸카이거 감독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조어대로 향했다. 타고 온 차량은 가까운 호텔에 세우고 주최쪽 차로 갈아타고 조어대에 들어간다. 북핵을 위한 6자회담 장소로 잘 알려진 조어대는 총리 윈자바오의 업무공간이며 청와대 영빈관과 유사한 장소이다. 오늘은 첸카이거의 신작 <무극>의 온라임게임 사업설명회가 열린다. 신작 <무극>과 관련한 사업발표가 조어대에서 열리고 구름처럼 몰려든 중국 언론의 태도만 봐도 첸카이거의 현재 위상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첸카이거는 중국 영화계의 최고 실력자 한상핑 총경비와 동석하여 기자들의 답변에 응했다. 그의 신작 <무극>은 중국 인민에게 유명한 또 한명의 감독 펑샤오강의 신작 <예앤>과 오는 12월 극장가에서 맞대결한다. 행사가 끝나고 첸카이거와 단독 인터뷰를 나눴다.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2] - 중국감독열전 ①
-
타이, 인도, 이란을 경유한 아시아영화의 네 번째 기착지는 중국이다. 이것은 인디컴시네마가 기획하는 12부작 다큐멘터리 <아시아영화기행>의 중국 1편 촬영팀과의 동행기다. <씨네21>과 부산국제영화제가 후원하고 CJ미디어가 공동제공하는 <아시아영화기행>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12편의 각 작품을 1편으로 모아 편집한 버전을 상영하고, 10월3일부터 12일까지는 SBS에서 연속 방영할 예정이다. 이번 기획에서 한국과 더불어 중국은 유일하게 두편의 다큐멘터리로 방영된다. 100년을 맞이한 또 하나의 영화종주국, 세계 영화시장의 마지막 엘도라도, 화권 영화라는 이름으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영화사적 지위를 유지해온 아시아영화의 본가 중국을 찾아갔다. 1952년생 첸카이거부터 1971년생 루추안에 이르기까지 중국영화의 명운을 결정지을 대륙감독 12인과 베이징에서 차례로 조우했다. 세계 영화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황사는
아시아 영화 기행: 중국 [1]
-
<너는 내 운명>이 추석 극장가를 코미디 열풍으로 뜨겁게 달군 <가문의 위기>를 밀어내고 가을 극장가에 멜로 바람을 일으키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너는 내 운명>의 성적은 개봉 첫 주말 서울 관객 17만 7천명, 전국관객은 62만명 (유료시사 및 전야제 관객 포함 91만명)이다.
<너는 내 운명>은 꾸준한 관객들의 호평과 배급을 맡은 CJ 엔터테인먼트의 멜로 영화 사상 최대 스크린 개봉(서울 85개, 전국 440개) , 주말부터 시작되는 연휴에 힘입어 이번주도 인기몰이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너는 내 운명>에게 아쉽게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가문의 위기>의 인기도 여전하다. <가문의 위기>는 개봉3주차 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주말 관객이 <너는 내 운명>에 약2만명이 모자라 2위로 밀려났다. 23~25일 서울 주말 15만9천여명으로 개봉 첫주 스코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흥행력을
가을 멜로의 시작 <너는 내 운명> 개봉 첫주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