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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해리 포터’ 열풍이 11월 셋째 주말 미국 극장가에 휘몰아쳤다. <해리 포터>시리즈 중 네 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은 11월18일부터 20일까지 1억142만달러를 워너브러더스에게 안겨준 것으로 20일 잠정 집계됐다. 이는 시리즈 중 최고 기록일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슈렉2> 다음인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오프닝 성적이다. 전작들의 오프닝 성적을 살펴보면, 1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9000만달러, 2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8800만달러,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9400만달러였다.
두터운 팬층과 평단의 지지에다가 시리즈 중 최대 개봉 규모(3858개관)까지 갖춘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리 포터 열풍, 미국 박스오피스 휩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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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와 함께 일본 특촬 괴수영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꼽히는 가메라가 DVD 박스로 부활한다. 가메라의 판권사인 카도카와 영화는 2006년 8월 31일 지금까지 제작된 가메라 시리즈 전작을 묶은 DVD 박스 세트를 출시한다.
<가메라 40주년 기념 Z계획 DVD 박스>로 명명된 이 박스 세트는 1960~1980년대에 제작된 통칭 '쇼와 시리즈' 8편과 1990년대에 제작된 '헤이세이 시리즈' 3편을 모두 수록할 예정. 기타 특전이나 부록, 디스크 사양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정가는 47,500엔으로 책정되었다. 시리즈 제1편 <대괴수 가메라>의 개봉일인 11월 27일부터 예약에 들어간다.
가메라는 다이에이 영화사(현 카도카와 영화)가 제작한 괴수영화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수로, 거북과 같은 외형에 어린이를 특히 좋아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모았다. 첫 작품인 <대괴수 가메라>(유아사 노리아키 감독)가 공개된 것이 1965년으로, 올해 탄생 40주년
괴수 가메라, 새로운 DVD 박스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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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테리 길리엄은 나이를 모르는 악동이다. 테리 길리엄과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은, 영화의 개봉 직전까지 온 할리우드가 수근거릴 정도로 요란한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나 라운드 테이블에 마주앉아 끊임없이 너스레를 떨어대는 길리엄은 정작, 그건 별것 아닌 문제였다며 시치미를 뗀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그와의, 수다스런 인터뷰의 일부를 전한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접한 게 언젠가.
=2002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그 시나리오는 뭐랄까 너무 유행에 편승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컨셉 자체는 꽤 괜찮았다.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인데다, 동화를 바탕으로 특정한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해볼 만했다. 그래서 <타이드랜드>의 작가 토니 그리조니와 함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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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스타인 형제 vs 테리 길리엄, 승리는?
현실과 맞서는 판타지, 환상을 굳게 믿는 주인공이 등장한다면, 이것은 누가 봐도 테리 길리엄의 프로젝트다. 그러나 맷 데이먼과 히스 레저, 모니카 벨루치를 아우르는 캐스팅에 판타지 액션 모험이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포장된 <그림형제>는 누구나 확신하는 기대작이 아니었다. 1975년 애니메이션 <몬티 파이손과 성배>로 데뷔한 이래 30년 동안 열편의 영화를 만든 테리 길리엄의 신중한 작업 편수를 고려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영화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이후 7년이란 공백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00년 가을. 길리엄이 10년을 준비했고 죠니 뎁까지 끌어들인 필생의 역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세트장을 물바다로 만든 폭우와 스탭간의 불화, 주연배우인 장 로수포르의 건강 악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앙을 차례로 겪으며 좌초됐다. 테리 길리엄은, “언제나 나의 첫번째 선택”이라 부르며 아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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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험악한 늑대와 흉악한 마녀가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을 유혹하던 시절. 그리고 그 아이들이 사랑과 지혜와 용기를 무기삼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무렵. 현실 세계와 마법의 세계가 그처럼 완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여년 전 막을 내렸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그림형제는 점차 힘을 잃어가던 그 마법의 흔적을 기록한 이들이다. 그들이 남긴 동화는 지금까지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누군가, 아직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마법의 세계를 영화로 만든다면. 떠오르는 이름은 그리 많지 않다. 꿈이나 환각으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야성, 혹은 본능을 계기로 여지껏 알던 것과는 달라진 세계와 대면하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던 테리 길리엄. 그런 그가 그림형제를 주인공으로, 현실과 환상이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어떤 시대를 영화에 옮긴다는 소식은 길리엄과 그림형제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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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신사의 우물을 통해 500년 전 일본 전국시대로 가게 된 소녀 카고메.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깨트린 사혼의 구슬 조각을 모으기 위해 반인간 반요괴인 이누야샤와 함께 요괴들과 싸우는 모험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던 와중, 이누야샤의 아버지에 의해 봉인되어 있던 대륙 요괴의 우두머리 메노우마루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오랜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이누야샤가 가지고 있는 검 ‘철쇄아’의 힘을 빌려 최강의 요괴로 거듭난다. 카고메와 이누야샤는 과연 세상을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메존일각> <란마 1/2> 등으로 유명한 코믹 만화의 대가 다카하시 루미코. <이누야샤>는 그런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서 1996년 첫 연재 이래 지금껏 40권이 넘는 단행본을 내놓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그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TV 애니메이션도 꾸준한 호응을 얻으며 160여 편이 넘게 방영되었으며, 겨울방학 특수를 노린 장편 극장용
<이누야샤 - 시대를 초월한 마음> 일본 상업 애니메이션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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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냉소 사이
<만지>(卍)
출연 와카오 아야코, 기시다 교코 | 1964년 | 컬러 | 90분
삶의 방식 혹은 목표로서의 욕망을 자주 다뤘다는 점에서 마스무라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런 일처럼 보인다. <만지>는 <문신>(1966), <치인의 사랑>(1967)과 함께 다니자키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로 마스무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목으로 쓰인 ‘卍’의 모양이 암시하듯이 영화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한데 엮일 수밖에 없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변호사의 아내인 소노코는 취미 삼아 다니던 미술학교에서 미츠코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에 미츠코의 애인이 개입하고 나중에는 소노코의 남편마저 미츠코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이들 사이에는 복잡한 정열의 미로가 만들어진다. <만지>는 소노코와 미츠코 둘로 시작된 관계의 망이
일본 누벨바그의 반항아, 마스무라 야스조 걸작선 [3] -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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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발점은 개인에게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마스무라의 영화들에서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눌린 삶의 부조리함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사회 문제를 다루는 (리얼리즘) 영화감독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란 환경이 낳은 비극적 운명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을 체념의 상태로 더욱 몰고 갈 뿐이라며 그런 유의 영화들을 거부했다. 그것들의 기저에 놓인 믿음과 달리 마스무라는 환경이 아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출발점 역시 개인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따라서 시스템에 대한 마스무라의 반발은 아마도 짓밟힌 개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0년대 초반에 그는 로마의 영화실험센터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체험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아름답고 강한) ‘인간의 발견’을 꼽는다. “박물관에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힘을 체현한 회화와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리에는 당당한 시선, 확신에 찬 걸음걸이,
일본 누벨바그의 반항아, 마스무라 야스조 걸작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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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의 대표적인 반항아 오시마 나기사조차 “와, 당신 반항 한번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감탄하게 만든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스무라 야스조다. 마스무라 야스조는 일본영화의 전통을 맹렬하게 거부한 일본 누벨바그의 대표적 악동이다. 그의 영화세계는 팽팽한 속도감, 우여곡절 많은 스토리 그리고 개인과 자유를 중시한 점 등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욕망 추구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여, 욕망의 예술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이렇듯 에너지 넘치는 영화들을 무수히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에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11월2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마스무라 야스조 걸작선’ 상영회는 최근에야 일본 영화계의 뒤늦은 주목을 받은 음울한 거장,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호기가 되어줄 것이다.
한창때의 혈기방장한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영화 전체에 대한 증오심을 거론할 때 거기에는 자기 영화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
일본 누벨바그의 반항아, 마스무라 야스조 걸작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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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그 정재형. 10년 전, 혼성그룹 베이시스의 일원으로 <내가 날 버린 이유>라는 히트곡을 남겼던 가수. 1999년 솔로앨범을 내놓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가 <오로라 공주>로 돌아왔다. 이번엔 음악감독이다. 애초 그는 방은진 감독이 <오로라 공주> 이전에 데뷔작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첼로>의 음악을 맡기로 했었다. 그러다 방 감독이 <오로라 공주>로 배를 바꿔 탔고, 그도 자연스레 동승했다. “그때는 <입질>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였는데, 방 감독이 파리에 놀러와서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이거 내가 해도 되겠느냐고 물으면서.”
방 감독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전했던, 그는 잠깐 귀국한 사이 우연히 승선자 한 사람을 더 구하게 됐다. 바로 친우 엄정화였다. “정화 집에 놀러갔다가 소파에서 잠깐 잠들었는데, 그때 내가 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정화가 몰래 봤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결혼은 미친
좋은 영화 있으면 소개시켜줘, <오로라 공주> 음악감독 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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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많은 한국팬들을 거느린 무라카미 류(53)가 영화감독으로 한국을 찾았다. 12월2일 개봉을 앞둔 <도쿄 데카당스>는 자신의 소설 <토파즈>를 91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으로 지금까지 그가 감독한 5편의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봉되는 영화다. 에스엠(가학피학적 성관계)클럽에서 일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노골적인 가학피학적 성묘사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한번의 수입추천불가 판정과 3차에 걸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가 6분8초를 삭제한 다음 18살이상 관람가로 개봉이 가능하게 됐다.
노골적 성묘사 등 368초 삭제, “인생 짜증나는 분이라면…”
한국에서 시사회가 열리던 17일 오후 만난 그는 “극장을 잡기 힘들어 도쿄 긴자의 한 극장에서 심야상영으로 개봉했던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사정이 나은 것같기도 하다”면서 “일본과 뉴욕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렸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같다”고 말했다.
주인
영화 <도쿄 데카당스> 들고 온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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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 김동현 감독의 <상어>로 확정되었다. <상어>는 영화진흥위원회 독립디지털장편영화 지원작으로, 섬에 살고 있는 어부 영철이 친구 준구에게 상어를 보여주기 위해 도시에 오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다. 주목할만한 것은 김동현 감독이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이었던 단편 <배고픈 하루>의 감독이라는 점. 성공적인 단편을 거쳐 장편으로 약진해가는 모양새가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의 슬로건인 ‘일취월장’과도 많이 닮아 있다.
개막작 <상어> 외에 총 54편의 본선 진출작을 확정한 ‘서울독립영화제 2005’는 오는 12월 9일부터 16일까지 상암 CGV에서 열릴 예정이며 폐막작은 올해 대상으로 선정되는 작품을 상영한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김동현 감독의 <상어>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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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기생은 창녀야, 예인이야?
대체로 요즘 연구자들이 관심사로 한정짓고 있는 기생은 일패 기생들로 소리와 춤의 기능을 보유한 예기들이다. 보통 매춘을 주업으로 하는 기생들은 삼패라고 하여 일패들과 엄격하게 분리되었으며, 조선시대 관기조차 ‘조’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상대방이 높은 관직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초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기생은 게이샤와 차원이 다르다?
2002년 일본인 학자 가와무라 미나토의 <말하는 꽃, 기생>(소담출판사 펴냄)이 번역, 출판되면서 1927년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이후 기생에 대한 본격 연구서가 최초로 등장했다. 말하는 꽃은 ‘해어화’(解語花)의 풀이말로 기생을 뜻하는데, 가와무라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인 사회학자의 일본 <게이샤> 연구서를 미국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를 술회하며 “본서를 손에 든 한국인 독자도, 역시 그때의 나와 같은 수치심과 가벼운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
기생, 21세기로 걸어나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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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보름달 같이 둥근 얼굴에 백지장 같이 새하얀 피부, 앵두 같이 작은 입술을 가진 나긋나긋한 미인들이었을까? 아쉽게도 이런 이미지는 단지 우리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기생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사대부와 정치를 논하는 논객에다가, 소리와 춤에 능한 예능인이요, 당당하게 연애를 즐기던 신여성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 기생에 대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6가지 진실들을 공개한다.
첫째, 기생은 다소곳한 미인이었다?
반만년 한민족 역사 이래 기생들을 몽땅 무덤에서 불러내어 일렬로 세워놓고 평균을 따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미인이 기생의 기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기 황진이라고 딱히 미인은 아니었다. 대단한 미인들이야 구중궁궐로 불려 들어갔을 테고, 저잣거리의 기생들은 서화에 능했고 소리와 춤이 반할 만했지 박색 기생이 허다했다. 또한 여성스럽고
기생, 21세기로 걸어나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