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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씨네21> 566호에 실린 허문영의 평을 보면, 자살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사람의 자살을 말리기 위해 달려온 등장인물들이 영화 후반부에 재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괴물>의 시나리오를 보면 초반에 강두가 낮잠에서 깨어나기까지 실제로 더 많은 신이 있다. 프롤로그가 긴 것이다. 우리가 본 버전은 타협한 버전이다. 프롤로그를 다 찍든지 혹은 다 버리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난 결과, 관객은 프롤로그에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있다. 만약 이 프롤로그없이 괴물의 공격으로 영화가 바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 프롤로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허문영: 그 점이 봉준호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하다. 나에게 선택하라고 했으면 초반의 세신은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미군이 독극물을 방류했다는 설정은 나중에 미국의 바이러스 운운하는 내용과 직접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 설정이 없어도 뒷부분이 말이 된다. 자살하는 사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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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괴물>은 어찌되었건 대중적인 폭탄이 됐다. 충무로의 이른바 선수들조차 망연자실할 정도로 성공했는데, 2006년 7월 지금 대중에게 <괴물>이라는 영화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소영: 두편 모두 개봉시기가 기획된 영화다. <한반도>는 월드컵 이후 영화로 민족적 감정이 최고조일 때 터뜨렸다. <괴물>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없는 시즌에 나왔고, CG로 잘 만들어진 괴물을 열대야에 가족끼리 피서용으로 보는 멀티플렉스 영화라는 게 핵심적 역할인 것 같다. 덧붙이면 믿을 만한 배우들 정도? 영화적으로 보자면 <괴물>은 장르영화치고 파토스(감정의 격앙·격정)를 지나치게 아낀다.
허문영: 파토스를 단절한다. 흥행된 영화를 놓고 왜 됐느냐라는 말을 하는 것만큼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굳이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한다면, 그럴듯한 괴물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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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김소영씨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처럼, <괴물>을 둘러싸고 괴물적 현상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태극기 휘날리며> 때와 다른 느낌이다. <괴물>이 어떻게 흥행했는지(이 대담이 이뤄질 시점에 <괴물>의 관객 수는 전국 700만명을 넘어섰다)는 마케팅 담당자들이 논할 일이다. 다만 이런 성공 속에 만들어진 담론과 관련해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그중 하나는 <괴물>을 영화 안에 가두려는 담론이고, 또 하나는 <괴물>을 ‘2006년 한국’이라 불리는 상황에 대한 정치적 판본의 하나로 읽으려는 담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둘 사이의 중재라고나 할까, 대중이란 무엇일까란 방식으로 좌표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매우 복합적인 담론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왕의 남자>의 성공요인 분석 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이 번져나가고 있다. 언론이 만들어낸 문화담론의 헤게모니 장 안으로
전영객잔 3인, <괴물>과 <한반도>를 논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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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역설이다. 가볍고 쿨한 연애는 없다. 영화의 주제는 이를 분명히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가장 공상적이고 이념적인 ‘중혼’의 형태라면, <연애참>은 가장 현실적인 ‘중혼’의 형태를 보여준다. 캐릭터도 현실세계에서 훨씬 흔한 인물들이고, 서사도 대단히 개연성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 관계가 불평등한 이유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산업예비군의 존재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 관계가 불평등한 이유는 재산권의 편중과 성매매라는 애정예비군의 존재 때문이다. 영화 중에 "네 자식은 아들이면, 두 집 살림, 딸이면 10대 가출"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운같은 남자는 두 집 살림하며 살 수 있지만, 연아같은 여자는 성매매의 현장을 전전하는 것 외엔 삶의 방법이 없다. 아직까지 남자 살기 좋은 세상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
[전문가 100자평]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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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걸작 20편이 서울에 이어 부산을 찾는다. 시네마테크 부산과 동숭아트센터가 공동개최하는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이 9월1일부터 9월17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 회고전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초기작 4편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여류 음악작가인 어머니,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 그리고 헌신적인 아버지의 첩 사이에 흐르는 심리 변화를 그린 <아내여 장미처럼>(1935),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 동산>을 토대로 사려 깊은 딸의 모습을 담은 <소문난 처녀>(1935), 샤미센 연주자 츠루하치와 그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츠루지로의 관계를 다룬 <츠루하치 츠루지로>(1938), 한 소녀가 친구의 아버지와 자신의 어머니가 과거 연인 사이였음을 알게 된 후 느끼는 감정을 옮긴 <진심>(1939)이 그것들이다. 그중 <소문난 처녀> <진심>은 상영본이 없어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걸작 20편, 부산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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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용산CGV에서 시작되는 2006년 CJ 중국영화제가 김희선을 영화제 홍보대사로 선정했다. 영화제쪽은 김희선이 성룡과 함께 <신화-진시황릉의 비밀>에 출연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중 문화교류의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영화제에 따르면 김희선 또한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의 장이 될 뜻깊은 중국영화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김희선은 한국에 방문한 중국 인사들과 9월1일 CGV용산에서 있을 개막식에 참석해 테이프 커팅식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 영화 100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2006년 CJ 중국영화제>는 9월 1일부터 서울 CGV용산에서, 9월 4일부터는 부산 CGV 서면에서 열린다.
김희선, CJ중국영화제 홍보대사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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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가장 어중간한 앵글이 예뻐 보인다”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그러나 속깊은 인터뷰어 역할을 잘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말하면, <해변의 여인>에 대한 대화는 왠지 그래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3년 전 박찬욱 감독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영화평론가 변성찬씨에게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을 만나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영화 어떻게 봤냐”는 홍 감독의 물음과 “전작들에 비해 훨씬 풀어져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는 변성찬씨의 감상이 오가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변성찬: 오늘은 <해변의 여인>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과 홍상수의 영화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다. 언제부턴가 당신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변화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물론, 어떤 변화가 언급될 때, 거기에는 일정한 오해와 이해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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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게, 차갑도록 명징하게, 그녀를 이해한다
사랑은 종종 오독(誤讀)에서 비롯된다. 희고 어린 진돗개의 이름은 ‘돌이’다. 강아지의 목줄을 틀어쥔 채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바닷가를 산책하던 주인은, 국도변에 돌연 녀석을 버리고 사라진다. 녀석을 거둔 새 주인은 ‘바다’라는 새 이름을 붙인다. ‘돌이’를 기억하던 누군가가 ‘바다’와 재회했을 때, 그 희고 어린 강아지는 ‘돌이’인가, ‘바다’인가. 그러나 해변의 그 여인, 문숙은 반가이 외친다. “똘이야!”
‘ㄷ’과 ‘ㄸ’ 사이, 그 사소하고 위대한 착각이 아니라면 유사 이래 어떤 사랑도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6년 8월.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그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조우한 지 십년 만이다. 십년 동안 나는 레티놀이 듬뿍 함유된 아이크림을 눈 밑에 바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과 투자신탁거래통장을 가지게 되었다. 싫은 사람 앞에서도 방긋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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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들
영화감독이다. 시나리오가 안 풀린단다. 그래서 후배와 함께 지방으로 떠난다. 제작자에게 진행비도 받았겠다, 다리 긴 여자도 하나 끼어 있다. 이제 바람 좋은 곳에 가서 소주나 마시며 연애 좀 하는 거다. 하긴 서울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어차피 중앙이 내 것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2006년의 선비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언제나 그랬듯이….
멀리 삼류소설가에서 출발해 대학 강사와 화가, 영화감독 지망생 등 문화예술계 언저리를 배회하던 홍상수의 고백적 자아는 일곱 번째 영화를 통해 드디어 자신의 본래 직업인 감독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맨 얼굴을 드러낸 셈이지만 소주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건 여전하고 엇박자 대사와 뒤틀린 자의식도 영락없는 홍상수표 영화의 주인공답다.
전작, <극장전>에서 선배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투정을 부리던 그 어설픈 충무로의 낭인이 이제는 알아보는 팬도 있고 그의 영화를 좋아해서 같이 자주는 여자도 있는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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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과 진실의 경계에서 유쾌하게 방황하자
소설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나는 말한다. 소설은 갈등구조야. 갈등은 긴장을 조성해. 그 긴장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만드는 유인요소가 되지. 긴장감이 있어야 가독성(可讀性)이 높아지거든. 근데 말야. 누워서 떡먹기 식의 긴장감 조성방식이 무언지 알아? 젊은 남녀 두명을 떡하니 소설에 등장시켜 봐. 저절로 텐션이 생겨….
그런데 <해변의 여인>에서는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를 끼워넣었다. 그러니 긴장감이 배가 될 수밖에. 문숙(고현정)은 원래 창욱(김태우)의 ‘이른바’ 애인이라는데, 배역의 중요도로 따져볼 때 아무래도 문숙은 중래(김승우)와 무슨 일인가를 저지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첫날밤부터 자버린다. 창욱이 알았다면 기분이 더러워질 수밖에. 하여튼 그렇고 그런 삼각관계.
얼마 뒤 어럽쇼, 요상한 구조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된다. 중래를 가운데 두고 문숙과 선희(송선미)가 배치된다.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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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홍상수는 전진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더 많은 선분과 꼭지점으로 이어진다. 이건 7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의 주인공인 영화감독 중래의 설명에 빚진 것이다. 한편으로, 그 인물 중래를 만든 홍상수가 언젠가는 단단하고 둥그런 ‘구형’에 영화적으로 이르고 싶다고 말한 것에 또한 빚진 것이다.
그 구형에 다다르는 길목에 지금 상투성이 있다. 제목도 <해변의 여인>이다. 이보다 더 어떻게 상투적일 수 있나. 그런데 홍상수는 그 뻔해 보이는 상투성이 도리어 마음에 든다고 흡족해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혹은 <강원도의 힘>이라는 비범한 제목을 선보였던 게 그다. 그런데 상투성은 지금 제목으로 있을 뿐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에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
홍상수는 연애담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상투적인 것 중에 가장 널리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사이로 그가 뽑아내려는 세상의 실마리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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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괴물>의 성공 요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스크린 위에 실감나게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의 이야기에 따르면, 괴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CG 기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100억원짜리 <괴물> 프로젝트는 아예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괴물>의 성패에 있어 핵심적이었던 CG 작업의 중심부에는 케빈 래퍼티가 있었다. 1982년 컴퓨터그래픽 업계에 뛰어든 이래 그는 PDI(Pacific Data Images),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 등 CG 업체에서 일하며 <배트맨 리턴즈> <클리프 행어> <고인돌 가족> <캐스퍼> <드래곤 하트>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 <맨 인 블랙2> 등에 참여해왔다. 2001년에는
<괴물> CG 총괄한 오퍼니지의 케빈 래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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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에도 9편(<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면)의 한국 호러영화가 관객을 찾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제작편수와 더불어 OCN과 SBS 등 TV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06 한국 호러영화를 진단하는 글을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슬래셔·좀비영화의 출연을 반가워하며서도 올해의 공포영화 중 무려 7편에서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몇몇 영화들의 노골적인 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공포영화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올해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귀찮은 부분은 여전히 사다코와 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즌에 개봉되고 방영된 9편의 호러영화들(<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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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는 광대하다
물론 의문표는 남아 있다. 과연 유튜브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도 현재의 자유로운 영상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혹여나 거대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인해 또 다른 억만장자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론을 유추할 단계는 아니다. 우량아 유튜브는 이제 겨우 1살도 먹지 않은 신생아다. 그것은 젊은 이용자들이 대기업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시작한 인터넷 미디어의 혁명이다. 냅스터와 구글이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소프트와 애플마저) 더벅머리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였듯이, 유튜브 또한 가난한 천재들의 창고에서 태어났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계는 할리우드와 화려한 힙합 뮤지션들의 자동차와 어설픈 홈비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거대 언론의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현장들이 유튜브의 튜브를 타고 전세계 이용자들의 컴퓨터로 전송된다. <CNN>은 최근 유튜브에서 찾아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보도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