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 새벽 3시마다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는 에밀리 로즈가 겪는 기이한 일들. 엑소시즘을 행한 소녀가 죽으면서 전통적인 오컬트와 진실 여부를 가리는 법정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적 결합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DVD 타이틀에는 감독에게 들어보는 영화 제작 동기와 실제 사건에 대한 짧은 이야기, 또 다른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시각효과 디자인과 삭제장면을 수록했다. 다만 감독 음성해설이 한글자막을 지원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오컬트와 스릴러의 장르적 결합,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
알랭 레네는 <내 미국 삼촌>과 관련해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껏 영화를 만들며 매 단계 모든 장면에서 ‘이해 가능성’을 놓고 다짐해왔다”라고 했다(어렵기만 한 레네의 영화가 과연?). 그리고 한술 더 떠 “<내 미국 삼촌>은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이며, 사람들이 분명 크게 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내 미국 삼촌>에는 그의 그런 노력이 많이 엿보인다. 레네는 생물학자 앙리 라보리가 쓴, 인간 행동에 관한 책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아예 라보리 교수를 출연시켰다. 세 주인공이 등장해 그들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고통에 대해 스스로 발언할 기회를 주는 사이사이에 라보리 교수가 나와 ‘동물행동학’에 관한 강의를 들려준다. 동물행동학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레네의 행동이 그렇게 생뚱맞은 것도 아닌 것이, ‘뇌와 행동과 기억과 자유연상, 기억의 조합’은 레네가 그간 익숙하게 다뤄온 주제가 아니던가. 레네의 혁신적 면모는 영
인간 행동에 관한 알랭 레네식 이론과 실험, <내 미국 삼촌>
-
EBS 7월22일(토) 밤 11시
짐 자무시의 인물들에게는 ‘집’이 없다. 그들은 늘 어딘가로 떠나고 또 떠난다. 그것은 마치 목적지없는 여행, 목적없는 여행과 같다. 이 이상한 여행의 과정에서 인물들은 우연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그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교차한다. 짐 자무시는 이 모든 과정들을 그저 보여준다. 그는 한 인물의 에피소드를 보여준 뒤 그와 동일한 시간에 벌어진 몇개의 다른 에피소드들을 다시 보여준다.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이처럼 반복되지만, 그 반복은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같은 시간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이 하나둘 덧붙여질 때마다 삶은 고정된 진리와 진지함으로부터 멀어진다.
<미스테리 트레인>은 멤피스의 작은 마을에서 동일한 시각에 벌어지는 세 가지 이야기들을 다룬다. 이 영화는 엘비스를 찾아 멤피스로 여행 온 일본인 커플의 이야기와 비행기 문제로 멤피스에서 하루를 묵게 된 이탈리아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두명의 백인 남자와
어긋남과 부조화의 여행, <미스테리 트레인>
-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야구팀의 경기를 보다가 날아가는 타구를 보고 이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박민규는 TV에서 마이크 타이슨이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을 보고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지단이 박치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중대한 결심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냥 박치기를 하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파워풀한 박치기였다. 영웅다운 마지막 무대를 기대했는데, 어머나 박치기라니, 한동안 멍하더니 이번주 내내 머리 속에서 박치기 장면이 리플레이됐다. 아마 지난주에 지단을 현대의 신화라고 부른 글을 썼던 터라 더 그랬을 것이다. 내 멋대로 규정한 신화를 지단이 머리로 박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7월13일 지단이 입을 열면서 진실게임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사람들마다 누구 잘못이 더 큰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했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박치기
-
-
급히 복사를 하거나 팩스를 보내는 잡무로 집 앞 동사무소에서 삐댈 일이 좀 있었다. ‘그래, 나 사람 아니다’,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공익들은 컨디션 좋으면 이런 민원도 군말없이 처리해준다. 요즘 동사무소 좋아졌다. 행정홍보물도 상태가 좋아져서 냄비 받침이나 부채로 취향껏 골라 쓸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한-미 FTA가 뭐길래?’, ‘한-미 FTA를 말한다’, ‘한-미 FTA 대한민국 경제의 날개가 될 것입니다!’ 같은 제목의 빳빳한 고급 광택지 홍보물들이다. 맨 뒷장에 ‘2006년 5월 대한민국 정부’라고 찍혀 있다. 같은 시기에 쏟아낸 셈인데 속보인다(이거 봐, 조사하면 다 나와). 본격적인 협상도 하기 전에 아예 축포를 쏘는 내용이었다. 70~80%에 이르던 찬성 여론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친 이유는 이런 막무가내 선전의 악효과도 있지 않을까.
정부는 무슨무슨 경제연구소 박사들의 논리를 동원하나, ‘우파 신자유주의’ 언론에 천둥벌거숭이 취급받던 정태인 전 청와대
[이슈] 조사하면 다 나와
-
4년 만에 돌아온 캡틴 스패로우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 7월7일 북미에서 개봉한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이하 <망자의 함>)이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주말 3일간 <망자의 함>이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1억3200만달러로, 이는 지난 2002년 <스파이더 맨>이 세운 주말 기록 1억1480만달러를 가뿐하게 능가하는 수치다. 또한 <망자의 함>은 이틀 만에 1억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으며, 최단기간 1억달러 돌파기록, 1일 최고 흥행기록을 모두 새로 쓰는 기염을 토했다.
박스오피스 승전보에는 불운한 전리품도 함께 걸려드는 법이다. 시나리오 작가 로이스 매튜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자신의 프로젝트 <슈퍼내추럴 해적영화>의 각본과 삽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제작사 월트 디즈니를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을 통해 극중 캐릭터의 이름인 윌 터너와 해적선의 이름 블랙펄 역시
[What's Up] 인기도 많고 탈도 많고
-
<괴물>에 출연한 배우들 사이에서 박해일은 ‘박 서방’으로 통한다. 결혼한 뒤 술을 많이 안 하는데다 어쩌다 술을 해도 전화기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는 웃음 섞인 타박의 대상이 된 그는, 촬영 중인 <극락도 살인사건> 때문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나타났다. 개봉을 앞둔 <괴물>에서 박해일이 맡은 역은 대졸 백수 남일. 남일은 비딱하고 말만 많은 캐릭터에서 시작, 비장하고 행동력있는 인물로 변화해간다. 봉준호 감독의, 그의 반듯한 이미지가 아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는 영화 속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실제 생활에서의 ‘박 서방’은 배우들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뜨는 것으로 애처가라는 동료들의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결혼해서 좋은가.
=결혼? 뭐, 오래 사귀고 결혼한 거라서. 동거하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밖에서 따로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르다는 정도다. 아직까지는 결혼 전과 크게 다른 건 없다. 연애할 때부터 영화 촬영 들어가
<괴물>의 박해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배두나는 <괴물>의 남주가 “나중에는 게릴라 같은 모습으로” 괴물을 쫓아다닌다고 표현했다. 모습만 게릴라 같은 게 아니라, 촬영현장에서도 남자배우들이 많다보니 스스로 너무 거칠어진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양궁을 배우느라 생긴 어깨 통증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괴물>이 흥행에 성공하면 <괴물>은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영화로 기억되겠지만, 배두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완성된 영화의 흥행 여부보다는 새로 찍을 작품에 대한 설렘이다. 배두나는 런던에서 찍은 사진에 글을 쓴 책 발간을 앞두고 있고, 가을 즈음에는 새 영화도 찍을 생각이다.
-눈물 연기를 할 때 티어스틱을 사용해서 인공적으로 눈물을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괴물>의 합동장례식장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감정적으로도 격앙된 느낌인데다 꽤 길어서 매번 감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일인가 5일 동
<괴물>의 배두나, 나의 본질은 유체이탈
-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표정관리가 안 된다는. 다소 심각한 얼굴로 촬영장을 찾았던 송강호는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연신 트레이드 마크인 ‘으하하하하하∼’ 하는 웃음을 날리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카메오 역과 <마다가스카>의 목소리 연기를 제외하면, <남극일기> 이후 1년2개월 만에 대중 앞에 나서는 그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굳이 묻지 않아도 <괴물>이 연기에 대해 욕심 많기로 소문난 그의 기대를 채워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연기보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어하는 것도 ‘어차피 영화를 보면 다 알 텐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하는 탓이리라.
-들리는 얘기도 그렇고, 현장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괴물>을 하면서는 유달리 의욕을 불태웠던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 어떤 작품이든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지금 찍고 있는 <우아한 세계>도 그렇고, 그 이전에 찍었
<괴물>의 송강호, 폼나지 않아도 괜찮아~
-
“어이구, 우리 아성이 벌써 숙녀가 됐네.”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들이 던진 말은 사실이다. 고아성 스스로도 “내가 크는 게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니까. 물론 그동안 이 중학교 2학년생 ‘꼬마 숙녀’의 몸만 쑥 자란 건 아닐 것이다. 똑 부러지는 연기를 선보이는 영화 데뷔작 <괴물>을 통해 고아성은 덧니가 귀여운 아역에서 한명의 배우로 자리매김한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첫 영화를 보니까 어땠나.
=보기 전에는 내가 출연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보려 했는데 결국엔 떨쳐낼 수 없더라. 내가 처음 한 영화니까 그런 부분에만 계속 감동받게 되더라. (웃음)
-본인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잘했다, 못했다, 이런 게 아니라,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창피하기도 하다. 모든 게 아쉽긴 한데, 다시 촬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하면 저런 감정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괴물>에는
<괴물>의 고아성, 꼬마 숙녀의 떨리는 가슴
-
송강호부터 고아성까지 <괴물>의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지만, 변희봉이야말로 진정한 발견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어수룩하거나 비딱한 성품의 인물을 연기해왔던 변희봉은 <괴물>에서 인상적인 한순간을 보여준다. 자식들과 손녀를 위해서 정의롭고 강인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은 기존의 허허실실 이미지를 뒤집어버린다. 예순이 다 되어가던 2000년,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재발견’된 그의 연기는 <괴물>을 통해 다시금 한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모든 공은 감독에게 있다”면서 자신을 낮추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넓은 등을 가진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괴물>이 그동안 연기생활에서 가장 좋고 흐뭇하다고 말했었는데.
=그건 이번에 봉준호 감독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고, 그로써 그의 영화 세편에 모두 출연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로서 정말로 흐뭇하고 좋다는
<괴물>의 변희봉, 아버지는 언제나 변신 중
-
표지사진을 찍기 위해 <괴물>의 다섯 배우들,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의 막내 고아성의 생일파티라는 사진 촬영 컨셉을 들은 배우들은 영화에서 연기하지 못했던 ‘한데 모인 따뜻한 한때’를 연출해달라는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면서도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다섯 사람은, 놀랍고도 당연하게도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살가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무리 CG가 발달해도 만들어낼 수 없는 생생하고 절절한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준 다섯 배우들과 함께한 즐거운 오후의 초상.
<괴물>의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
-
지난해 출범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오는 8월 9일부터 14일까지 2회 행사를 연다. 올해 상영작 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늘어난, 5개 부문 50여편이며, 조성우 영화음악 감독이 올해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 ‘음악영화제’의 특성을 더 살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지난해 반응이 좋았던 라이브 콘서트는 ‘원 서머 나이트’ 외에 ‘제천 라이브 초이스’를 추가하고 공연 수도 늘렸다.
음악이 중요한 모티브가 된 영화들을 상영하는 ‘뮤직 인사이트’ 부문에서는 밥 딜런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두 편을 만날 수 있다. 〈밥 딜런의 전설: 루빈 허리케인 카터〉는 살인 혐의로 20년간 복역한 뒤 무죄 석방된 흑인 권투선수 허리케인 카터를 소재로 한 밥 딜런의 노래 ‘허리케인’을 가교 삼아, 카터의 불운한 과거와 미국 인종차별의 어두운 그림자를 더듬는다. 영국 제인 프라이스 감독의 2005년작이다. 〈매드 하우스의 밥 딜런〉(영국, 앤서니 윌 감독, 2005)은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가 처음 전파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영화를 들으며 음악을 본다
-
내 뇌 속 100조개의 뇌세포 가운데 ‘영화배우 최민식’에 대한 정보를 담은 뇌세포가 ‘스크린쿼터’ 뇌세포와 최초로 정보를 교환한 건 지난 2월7일이었다. 그날 최민식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울분을 토하며 〈올드보이〉 때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했고, “스크린쿼터가 없으면 〈올드보이〉도 없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다. 속으로 ‘오…민식 오빠 무지 다혈질이시구만, 멋지셔!’ 했지만, ‘저러다 말겠지’ 했던 것도 (정말 미안하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경솔한 의구심에 한 방 먹이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그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스크린쿼터 원상회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의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최민식의 투쟁이 나날이 더 옹골차질수록, ‘의구심’이 있던 자리에 또 ‘우려’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저러다 완전히 ‘반정부 투쟁의 전사’로 낙인찍혀 인기 다 떨어지는 거 아냐?’같은 노골적인 우려도 있었고, ‘너
[팝콘&콜라] 행동으로 말하는 최민식 멋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