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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너무 많은 정보가 찰나에 지나가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다시 보아도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매체다. 놓치고 지나갔던 누군가의 표정, 처음엔 보지 못했던 어느 구석의 그림자, 자신만의 존재감을 지닌 소품 하나. 그러나 영화를 몇번이고 다시 보면서도 배경처럼 흩어진 보조출연자들까지 눈여겨보기는 힘든 일이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그저 스치듯이 영화 속의 보조출연자도 그처럼 흘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면 영화는 세상 최후의 날에 홀로 떨어진 쓸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멜로영화의 연인이 정담을 나누는 카페에서, 형사영화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거리에서, 그들은 어떻게 영화를 찍고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몇몇 영화의 현장을 찾아 ‘보조출연자’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그들 한명 한명을 만났다.
새벽까지 잘 버티면, 9만원은 들어오려나
어느 4년차 보조출연자 K의 하루
새벽 여섯시로 맞추어둔 자명종이 “하나, 둘, 셋, 일어나세요!”라며 금
보조출연자 24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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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19/ 초고를 읽은 차승재 대표가 말했다. “돈 냄새가 나는 시나리오가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다. 기분 좋게, 한번 잘해보자. 노력하면 200만 못하겠냐.” 이런 말을 해주는 제작자라니, 감동이다. 그의 구두에 불광이라도 내주고 싶다.(이해영)
2005.8.11/ 역시 관건은 동구였다. 키 180cm 이상의 거대한 물살의 소유자. 우락부락한 외모이면서 어딘지 귀여움을 살짝 감추고 있을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섬세한 목소리. 게다가 춤과 노래도 수준급인, 고등학생을 연기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 어린 배우. 음, 첫 데뷔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이해준)
2005.10.4/ 아무 계획없이 보러간 <웰컴 투 동막골>에서 류덕환을 발견하다. 무엇보다 이 친구의 무표정이 좋다. 그저 가만히 있는 얼굴에,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 ‘진짜’가 있다. 간단한 오디션을 치르고 나니 더욱 확신이
발견! <천하장사 마돈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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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처럼 아버지를 한번 던져봤으면 했다”
-여고생 씨름부라는 소재에서 출발했다.
이해영=2003년 늦봄 아니면 초여름이었을 거다. 이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는 월세방에서 오후 3시쯤에 아침을 먹다가 TV에서 여고생 씨름부 이야길 봤다.
이해준=재밌겠다면서 같이 노가리를 깠는데 여고생보다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면 어떨까 싶었고 곧바로 1시간 정도 시놉시스를 썼다. 천하장사라고 대강 이름을 붙여놓고 썼던 시놉시스가 지금 영화의 얼개가 됐다.
-연출에 욕심을 낼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나.
이해준=좋은 이야기는 무엇보다 한궤로 짜맞춰지는 느낌이 있는데, <천하장사 마돈나>가 그랬다. 전엔 기획을 받거나 누가 쓴 걸 각색해야 해서 그런 경험을 해볼 수도 없었고.
이해영=우리 오리지널 아이템으로 영화화된 건 <안녕! 유에프오>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습작이거나 없어졌으니까. <천하장사 마돈나>는 첫눈에도 뭔가 메이킹의 가능성이 보이는
발견! <천하장사 마돈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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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1일 개봉하는 <천하장사 마돈나>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 이해영, 이해준의 감독 데뷔작이다. <신라의 달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에 녹아 있던 감성과 재기는 본인들이 직접 연출한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극대화해 있다. “단지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인” 뚱보 소년 오동구가 씨름을 통해 꿈을 이룬다는 독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뭣 때문에? <천하장사 마돈나> 영화평과 이해영, 이해준 감독 인터뷰, 그리고 제작기를 모아서 내놓는다.
엉뚱한 비유 같지만, <천하장사 마돈나>는 <미션 임파서블>과 비슷한 시나리오 작법을 구사한다. 남자 고교생 동구(류덕환)의 미션은 여자, 그것도 관능적인 개성이 흘러넘치는 마돈나처럼 되는 것이다. 이 미션이 만만치 않은 또 하나의 설정, 동구는 자신의 발이 하이힐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비대한 몸집의 소유자다. 소년
발견! <천하장사 마돈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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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품을 수 없는 단편의 매력
까다로운 롱테이크를 선택한 것이 독특한 비주얼을 선호하는 촬영감독 출신 감독의 도전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인 라이브즈>는 롱테이크의 대단함을 관객에게 웅변하지 않는다. 별도의 설명이 없다면 이 영화가 원신 원컷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의 영화 속 클라이맥스는 지극히 담백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그녀를…>의 모든 주인공은 점성술사, 부랑자, 가르치는 아이 등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에 치부를 가격당한다. 무안하고 슬프지만 진심을 드러낼 수 없는 맨 얼굴을, 가르시아의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응시했다. <나인 라이브즈>는 한발 더 나아간다. 유방절제 수술을 앞둔 긴장감, 묵묵히 곁을 지키는 남편을 향한 이유없는 애증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 카밀의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정밀묘사한 단편 <카밀>. 시종일관 짜증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표정은 마취약에 취해
<나인 라이브즈>의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영화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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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화를 꿈꾸는 아시아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지난해에 이어 부산영화제와 한국영화아카데미, 동서대학교가 공동주최하는 영화교육 프로젝트, 아시아 영화아카데미(AFA)가 최종선발자를 발표했다. 20개국 143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선발된 19개국 24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가자들 간의 실력편차가 컸던 지난해와 달리 모두들 일정 수준 이상을 겸비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단편 영화 한 편 이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올해 참가자들이 지닌 다양한 경력은 지난해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AFA는 법대 졸업반 학생인 아프가니스탄의 로야 사다트(여, 25세), 영문학 석사 출신인 인도의 탕겔라 마하비(여, 29), 경영학도 출신인 말레이시아의 찬푸이 총(남, 34세), 연극인 출신인 필리핀의 크리스토퍼 고줌(남, 30세) 등은 독특한 배경과 함께 자신의 영화가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상영 및 수상한 경력을 지
AFA2006 참가자 명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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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햇살 속, 한적한 교외 묘지에 두 모녀가 찾아든다. 대단할 것 없는 이들의 소풍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감돈다. 그 슬픔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설명하는 반전 아닌 반전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드라, 다이애나, 홀리, 소니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녀들의 이름 아홉개를 제목 삼아 아홉개의 짧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삶과 세상을 말하는 영화 <나인 라이브즈>의 마지막 단편 <매기>의 내용이다. 일찍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통해 차분히 인물을 응시하는 섬세함으로 나른한 일상을 마법처럼 빛나게 만들었던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화법을 한층 밀어붙였다. 촬영감독에서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에서 TV 연출자, 그리고 다시 작가 겸 감독으로 수시로 정체성을 바꾸어온 그는, 인간을 우주로 바라보는 진심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을, 그의 삶과 영화를 전한다. 그
<나인 라이브즈>의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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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끔 학교나 길에서 믿음 없이는 건널 수 없는 어떤 절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이 건네는 작은 수첩 크기의 그 팸플릿에는 우리의 인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는데, 맨 끝부분엔 인간의 힘으로 절대 건널 수 없는 절벽이 있다. 인간이 그것을 건너려면 자만심을 버리고 신(그들이 말하는 신은 기독교적 유일신이다)에게 존재를 의탁하며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나는 <유레루>에서 타케루와 미노루 형제가 건넜던 그 낡고 흔들리는 다리를 보며 그 그림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되거나, 보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반대로 자신이 한 행동을 부정하거나, 본 것이 사실임을 시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영화 안에서 ‘사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지만 실제로 감독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이며, 무엇에 의해 사실이 인정되거나 거부되는가의 문제이다
인간의 기억과 믿음은 진실일까? <유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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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리버>는 무엇보다 먼저 <천국보다 낯선>과 <파리, 텍사스>를 떠올리게 하는 로드무비이다. 후나하시 아쓰시 감독은 짐 자무시 감독을 가장 좋아한다고 공언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연상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짐 자무시는 빔 벤더스가 <사물의 상태>를 찍고 남은 필름 일부를 얻어 <천국보다 낯선>을 찍었으니 이러한 기억의 연쇄 고리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후나하시는 후나하시이고 자무시는 자무시이다. 지금부터는 자무시도 벤더스도 잠시 제쳐두고 후나하시 아쓰시의 <빅 리버>를 자유롭게 유영하고자 한다.
균질적 공간 vs 이질적 공간
유클리트 기하학의 공간은 절대적인 공준에 의해 동일하고 불변하는 공간을 상정하지만 현대의 물리학은 이러한 전통적인 공간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관점들의 수만큼 서로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비단 과학적 논증에 의해 밝혀지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 시각
모호함의 공간 시학, <빅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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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혹한 얼굴
작가 밀란 쿤테라는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책 <화가의 잔인한 손>의 서문을 썼다.
소멸해가는 주체의 형상이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서 밀란 쿤테라는 우리가 연인을 연인으로 알아보게 만드는 기호적 최소 단위에 의문을 던진다. 그 의문을 <시간>이라는 영화에 맞춘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연인을 연인으로 알아보게 되는 최소 단위는 무엇일까? 얼굴이라면 구체적으로 얼굴의 어떤 선, 주름 아니면 윤곽! 입술의 색, 눈빛이나 위를 향한 아니면 아래를 향한 눈 꼬리…. 얼굴이 아니라면 함께 지낸 시간만큼 누적된 공유된 기억. 몸이나 냄새, 소리? 손을 잡았을 때의 느낌은. 이 연쇄적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 단위로 <시간>은 얼굴을 설정한다. 그러나 <시간>의 서사의 화살은 예컨대 성형으로 얼굴이 바뀌었을 때 나는 그 변화의 경과를 알고 있지만, 그 경과를 알지 못하는 내 연인은 나를 어떻게
세희의 의식이 빚어낸 판타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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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목표는 영화였다.” <예의없는 것들>의 윤지혜는 말했다.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눈매, 오똑한 콧날은 차갑고 이국적인 느낌. 말투나 태도는 아주 털털하다. 고등학교 때 <어린 왕자>로 처음 무대에 오르고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영화를 향했다. 윤지혜는 “영화연기를 배울 곳이 따로 없고, 연기를 제대로 배우는 공간은 무대라 생각해서 연극과에 갔다”고 한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성스러운 피>에 열광했던 대학생 윤지혜가 <여고괴담>에 탑승한 과정은 흥미롭다.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과 오기민 PD는 “오디션 없이 사진 한장만으로 윤지혜의 출연을 결정”한다. 본인도 “이미지로만 캐스팅됐다. 갑자기 불려간 탓에 연기력이 있을 리 없었다. 째려보며 분위기만 잡는 게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 상상도 못했던” <여고괴담>의 정숙 역은 그녀를 단박에 호
고양이과 배우의 가능한 변화들, <예의없는 것들>의 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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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공백기 이후 <아파트>로 복귀한 고소영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언니가 간다>(감독 김창래, 제작 시오필름)가 화려한 조연진을 발표했다. 서른살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본 여자 나정주(고소영)와 그녀가 12년 만에 만난 성공한 동창생 오태훈(이범수)의 조력자로 선택된 이들은 김정민, 이중문, 오미희, 오달수, 윤종신, 그리고 옥지영. 나정주와 오태훈의 고교시절 모습으로 조안과 유건은 일찌감치 캐스팅된 상태였다.
<언니가 간다>는 첫 남자가 남겨준 아픈 기억으로 자신의 인생이 꼬였다고 믿는 ‘언니’ 나정주가 12년 전 고교시절로 돌아가 열여덟살의 자신에게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코치하는 과정을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연기를 선보인 가수 김정민은 12년 전 나정주를 배신한 뒤 현재 잘나가는 톱스타가 되어 매일같이 정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인물 조하늬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김정민은 “영혼까지
<언니가 간다>의 조연군단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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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 중복? 말복 지나고 입추도 지나갔다. 이 지긋지긋한 천연 찜질방도 조금만 더 견디면 가을이다. 다들 산으로 바다로 산소 충전을 하고 오셨는지. 아니면 태평양, 대서양 넘어 스펙터클한 원정을 다녀오셨는지. 그나저나 휴가 끝물에 여행자 10계명이라니, 웬 뒷북이냐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극장가에는 여름 휴가의 기운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이해해주시길. 그중에서도 배낭여행의 므흣한 판타지를 와르르 무너뜨린 놈이 하나 나왔으니, 바로 그 이름도 정직한 <호스텔>이다. 하여 낭만 찾으러 갔다가 비명횡사한 미소년들을 기리는 차원에서, 소심한 A씨를 모셔 영화에서 얻은 안전여행 10계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동남아 순회여행을 다녀온 A씨는, 오늘의 태양보다 내일 뜰 태양을 더 걱정하고, 로마에 가도 꿋꿋하게 서울법을 고수하는 소심+우아+안전제일주의자. 당신이 오지 탐험가보다는 A씨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 스타일에 더 가깝다면, 기억해뒀다가 다음 휴가 때 다시
믿거나 말거나! 소심한 여행자를 위한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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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여전히 ‘괴물’이었다. 8월 3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를 지켜낸 <괴물>이 지난 8월20일 개봉 25일만에 전국 관객 1100만을 넘어섰다.(배급사집계) 이는 지난 8월16일 개봉영화 사상 최단기간인 21일 만에 전국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한지 4일만의 일이다. <왕의 남자>와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가 각각 54일, 57일, 61일 만에 1100만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실로 놀라운 속도다. 또한 제작사 청어람은 이날 <괴물>이 전국 1천112만9천652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하여, 이로써 <괴물>은 <실미도>의 1천108만을 넘어서 역대 흥행 3위에 등극했다. 역대 흥행 1,2위인 <왕의 남자>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각각 1천230만명과 1천174만명의 관객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개봉 2주차의 <각설탕>이 가족물에 어울리는 소재와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 <괴물> 1100만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