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astic Fantastic> KT 턴스톨/ EMI 발매
여기 끈 두개가 있다. 한쪽 끈에 적힌 이름은 OK 고, 릴리 앨런, 폴 포츠 등이다. 다른 쪽 끈에는 셰릴 크로, 앨라니스 모리셋, 폴라 콜, 사라 맥라클란, 리즈 페어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첫 번째 끈에 적힌 것들은 21세기에 인터넷을 통해 벼락 스타로 떠오른 이들의 이름이다. 다른 쪽 끈에 적힌 이름은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얼터너티브한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던 이들이다. 이 끈 두개를 날줄과 씨줄처럼 십자 모양으로 겹쳐놨더니 겹친 부분에서 이름이 하나 떠오른다. 노라 존스? 다이도? 아니다. KT 턴스톨(KT Tunstall)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뮤지션 KT 턴스톨의 성공 스토리는 휴대폰 외판원 출신 테너 폴 포츠와 더불어 다른 분야의 늦깎이들에게도 희망을 안겨준다. 1975년생으로 올해 서른셋이 된 그녀는 10대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해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고, 20
딸기 케이크 같은 멜로디의 향연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펴냄
가을은 책을 읽기에 최악의 계절이다. 지하철에서도 휴대폰으로 TV를 볼 수 있고, 집에서는 WOW를 할 수 있으며, 정 할 일이 없으면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만 해도 즐거운 계절이니. 하지만 올 가을만큼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멋진 한국 소설들이 최근 연달아 서점에 등장했다. 그중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서로 꽤나 닮지 않은 소설들이다. 전자는 89학번인 화자 ‘나’를 통해 그의 세대를 여러 개인사를 통해 복원한다. 후자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 그러니까 마리사와 토마스, 그리고 존이 등장하는 다소 이색적인 소설들을 ‘지금, 여기’를 그리는 소설들과 함께 묶어낸 소설집이다.
최근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화자
외로운 가을엔 유쾌한 소설을
-
영화 장르가 다양하게 나뉘는 것처럼 CF도 마찬가지다. 굳이 장르라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CF의 톤(Tone)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따라 감동 드라마냐 코미디냐 하는 것들이 결정되고, 이건 보통 광고하는 제품의 성격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과자나 음료, 패스트푸드의 경우 가볍고 재미있는 톤이 많고, 신뢰감이 중요한 금융권이나 기업 PR은 진중하거나 감동을 주는 것들이 많으며, 같은 차라도 중형 이상의 세단이면 세련되고 진지하게, 경차나 스포츠카는 기발하고 발랄한 CF들이 많다. 뭐, 이게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영화가 그렇듯이 정해진 CF의 틀을 벗어날 때도 기발한 광고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15초 혹은 30초라는 짧은 CF에서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라 진짜 감동을 주는 CF는 잘해야 1년에 두어편, 가뭄에 콩나듯 만나게 마련이지만 기업 PR이나 보험사를 중심으로 감동 CF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짧은 시간
[도마 위의 CF] 아비 좀 그만 팔아먹어라
-
캐치온 10월19일 오후 5시40분
1984년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에)는 극작가 드라이만의 일상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국가의 부름에 충직하게 따르는 비즐러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드라이만과 그의 부인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티나의 삶은 관찰과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된다. 그건 비즐러가 정치적인 신념 혹은 이성을 넘어서 이 타인들의 삶에 ‘마음’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호한 대답이겠지만, 아마도 그가 드라이만의 삶에서 본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티나에게서 비즐러는 자기 안의 ‘인간’을 본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일찍이 에드먼드 버크는 공감의 정념이 자기보존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타인의 불행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은 자신이 그 불행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감은 결국 타자를 거쳐
공감하는 자의 윤리, <타인의 삶>
-
-
<조강지처클럽>은 미니시리즈류가 주로 배정을 받아온 SBS 주말 밤 10시대에 무려 80부를 소화하라는 이례적인 명을 받고 지난 9월29일 출항의 팡파르를 울렸다. 10년 만(아니, 그렇게 오래됐더란 말인가?)에 돌아온 오현경의 주연작으로도 사전 주목률을 높인 이 드라마는 분량으로 따지면 ‘대하 생활드라마’라는 별칭도 붙여줄 만할 것이다. <장밋빛 인생> <소문난 칠공주> 등으로 어김없이 방송사를 함박 웃게 만든 문영남 작가가 펜을 들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장기 레이스를 연 주요 배경이다.
이번에도 결혼한 뒤 배우자의 바람과 배신으로 속이 시커멓게 탄 언니들의 역정이 그려진다. ‘복수’(김혜선)와 ‘화신’(오현경)이라는, 친구이자 시누이-올케 사이인 두 조강지처는 일단 울며불며 악을 쓰다 ‘멍’하고 ‘퀭’한 정신의 공동화 현상도 겪은 다음, 조강지처클럽을 결성해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날 참이다. <장밋빛 인생>에서 조강지처를 버린 ‘반
이번에도 욕하면서 보게 될까
-
“<행복>의 찜질방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뒷부분에 나오지만, 실제 촬영은 초반에 이뤄졌다. 내 입장에서는 허 감독님이나 황정민씨의 작업 방식을 전혀 몰랐던 때다. 누워서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를 정작 사진 찍을 때는 몰랐던 셈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감독님은 디렉션대로 나오지 않으면 배우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해 보인다. 이 자세가 불편한 건가 하고. 안 되는 걸 배우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다.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소통 방식 때문이 아닐까. 뒤늦게 털어놓자면, 감독과 배우의 내밀한 대화를 다가가 찍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이 장면보다 곧 이어진 다음 촬영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알몸으로 황정민씨가 피를 토하는 장면이었는데, 온통 머릿속엔 그 걱정이었다.”
[숨은 스틸 찾기] <행복> 감독님, 무슨 얘기 하세요
-
가족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올해 첫 출범하는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SIFFF)는 그 이름에서부터 일단 선입견을 갖기가 쉽다. 하지만 ‘가족영화=따뜻한 영화’라는 기존의 공식을 섣불리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속단이 될 공산이 크다. 가족이라는 화두 자체가 낡은 것으로 느껴진다면, 역으로 SIFFF는 당신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늘, 가족을 본다’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제1회 SIFFF는 가족에 대한 판타지보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총 7개의 섹션을 통해 만나는 100편의 영화들은 대다수 해체되고 분열하는 오늘날 가족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조명하거나 대안적 가족의 가능성을 사려 깊게 고찰하는 작품들이다. 시네마 정동, 미로스페이스, 경희궁 등 광화문·정동 일대를 주무대로 하는 영화제는 광진청소년수련관, 은평문화예술회관, 중랑구민회관, 종로구민회관 등 서울시 4개 권역에서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개막작 <내 동생의 결혼식>은 스위스
지금,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
제8회 메가박스유럽영화제가 10월17일(수)부터 21일(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다. 베를린, 칸,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 화제작들을 중심으로 그해 주목할 만한 유럽영화들을 선별해 소개하는 메가박스유럽영화제는 그 주요 라인업이 종종 10월 부산국제영화제와도 겹쳐서 부산을 놓친 관객에게는 일종의 ‘패자부활전’이 되어주기도 하는 행사다. 올해 행사에서는 총 28편의 상영작이 6개 섹션을 통해 선보일 예정. 섹션은 거장과 신성, 멜로와 코미디, 드라마와 심야상영 부문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개막작 <포미니츠>(2006)는 독일의 한 교도소에서 60년 동안 피아노 레슨을 해왔던 실존여성 거트루드 크루거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크루거는 그곳에 살인죄로 수감된 10대 소녀 제니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고 그녀를 콩쿠르에 보내고자 한다. 제니에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고, 크루거는 젊은 날에 연인을 잃은 상처가 있다. 슈만의 피아노
유럽영화가 춤추는 가을, 제8회 메가박스유럽영화제
-
선댄스 관객상 수상 이후 올해의 인디영화로 꼽힐 정도의 흥행을 기록한 음악영화 <원스>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20일 국내 개봉하여 3주 만에 6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고, 10개관이었던 개봉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 지난 10월11일에는 17개에 이르렀다. 거리의 악사와 그의 음악을 알아본 이민자 소녀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음악. 이 성공담의 진짜 주인공을 존 카니 감독이 아닌, 두 주연배우 글렌 한사드(남자)와 마르케타 이글로바(소녀)로 꼽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유명 밴드 ‘더 프레임즈’(The Frames)에 몸담았던 카니 감독은 자신의 초저예산 장편이 성공하기 위해 실제 뮤지션이 배우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밴드의 리더이자 감독의 오랜 친구 글렌 한사드가 합류했고, 한사드는 체코 순회공연 때 만난 마르케타 이글로바를 끌어들였다. 영화보다는 음악을, 대중적 성
[글렌 한사드, 마르케타 이글로바] “관객도 보는 내내 우리의 우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
영화 <궁녀>는 지엄한 경고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궁녀로 궐에 들어오면 살아선 궁을 나가지 못한다”, “궁녀가 정절을 지키지 못하면 참형에 처한다”. 영화 속의 궁녀와 영화 밖의 관객에게 궁녀의 삶이 가진 비통함을 일러주는 이 목소리는 배우 김성령의 것이다.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 뒤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녀에게 <궁녀>는 자신의 두 번째 영화였던 <숲속의 방> 이후 15년 만의 영화계 복귀작이다. “정말 너무하지 않나? 왜들 그렇게 안 찾아주시던지… 내가 그 15년을 울면서 보냈다니까. (웃음)” 그녀의 말대로 극중에서 감찰상궁으로 분한 그녀의 연기는 지금껏 좋은 배우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게을렀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궁녀들의 잘못을 단속하고 궁궐의 소란을 막는 한편, 그 자신도 권력에 기대려는 욕망을 품은 감찰상궁은 ‘쥐불이글려’라는 궁녀들만의 입단속 행사를 주관
[김성령] “어느 순간 나도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
-
“그는 경이롭게 강한 동시에, 완벽하게 무력하다. 그가 눈을 열면, 그 영혼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폴 해기스)
“그는 제임스 딘과 같다. 유연하고, 아름다운.”(존 싱글턴)
“그는 강하고, 육체적인 동시에 당신의 가슴을 섬세함으로 찢어놓을 수 있는 남자다.”(닐 조던)
그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는 몰라도 행복한 남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적어도 최근 2년 동안 테렌스 하워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남자였다. <크래쉬>와 <허슬 앤 플로우>. 두편의 영화로 돌풍처럼 들이닥친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삶을 온통 장밋빛으로 바꾸어놓았다. 점심 식사 중에 조지 클루니가 다가와 “영화 잘 봤다”며 인사를 건네고, 언론은 “새로운 덴젤 워싱턴”에 앞다투어 헤드라인을 할애했다. 그리고 열기에 기름을 끼얹듯 조디 포스터가 다가왔다. “내가 지난해 본 최고의 영화 두편에 당신이 모두 나왔어요. <크래쉬>와 <허슬 앤 플로우>.
[테렌스 하워드] 너무 늦게 발견된 남자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마지막은 어떤 숭고미를 다룬다. 이 영화는 알려진 대로 소설가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70년대부터 명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로 활동하는 하명중이 연출이다. 작가 최호는 실버타운에 있는 자신의 처소를 뛰쳐나와, 뉴타운 개발이 진행 중인 구파발로 달려간다. 그의 돌발 행동을 이끄는 코드는 ‘알라뷰’라는 삐뚤삐뚤한 글자로, 곧 우리는 플래시백에 의해 최호의 유년기로 이끌려가는데, 거기에는 막내아들 최호가 개성댁으로 부르는 어머니(한혜숙)가 있다. 꼬마 최호는 귀엽고 다정한 소년이다. 병상의 아버지에게 신문 소설을 읽어주고, 발 마사지를 해준다. 글을 곧잘 읽는 이 소년은 나중에 어머니가 대문호가 될 최 작가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젊은이로 성장한다. 소년 최호가 대학생으로 성장하면서 개성댁이라는 칭호는 이 여사로 바뀌는데, 어머니를 어머니로 부르지 않는 이런 별칭만큼이나 둘의 관계는 별다르다. 아버지에게 바쳤던 예의 서비스를 최호는 충실하게
어머니의 두 가지 유산
-
지난해 여름, <씨네21>은 <어깨너머의 연인> 촬영을 앞둔 이미연을 만난 적 있다(<씨네21> 557호). <중독> 이후 4년이라는 긴 시간의 공백이 궁금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당시 인터뷰 기사를 더듬어보면, 지난 침묵의 이유보다 앞으로의 대화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희수 역의 이태란을 직접 섭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에피소드를 보자. 이미연이 <어깨너머의 연인>에 대해 얼마만큼 애착을 갖고 있는지를 단박에 보여준다. “연애하면 결혼해야 한다”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이미연은 “섹스는 단지 영양제일 뿐”이라고 여기는 정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본인도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봉이 미뤄지면서 결과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정확한 내막이야 모르죠. 일본에서 투자를 받은 작품이라서 그런가. 영화를 오래했어도 배급쪽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어서….” 정완이라는 캐릭터를 벗은 지
[이미연] 언니가 돌아왔다
-
이 영화에 대한 세간의 평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입 닥치고 즐기기나 해”다. 맞는 말이다. 산문으로 이 영화가 주는 쾌감의 속도와 강도를 쫓아가려는 건 혹은 그것과 대결하려는 건 언감생심. 말해지는 순간 말은 백전백패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는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달콤한 패배인가. 혹은 부끄럼없는 패배인가. 질문의 각도를 바꾸면, 어떤 영화는 윤리적인 질문을 요구받고, 어떤 영화는 요구받지 않는가. 패배할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유독 이 영화에 질문을 멈추는가.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영화광들 사이에 화질 나쁜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선댄스를 경악케 한 <저수지의 개들>(1992)이 은밀히 유통됐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는 새로운 시대의 영웅적 전사였다. 인물들은 시체를 앞에 두고 낄낄거렸으며, 붉은 페인트는 프레임을 흘러 넘쳤다. 자유분방하고 수다스럽고 외설적이고 잔혹한 그의 영화는 죄의식과 계몽에 질식했으며 상상력과 취향
영화의 선정적 자질을 숨기는데 성공함으로써 윤리적으로 실패한 <데쓰 프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