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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는 피아노 앞에, 남자는 그 옆 조그만 보조 의자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최초의 음악은, 남자가 짚어주고 여자가 알아듣는 이국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남자의 ‘다’는 다 다른데 여자는 그 ‘다’가 어떤 ‘다’인지 안다. 소리를 좇는 여자의 표정엔 꾸밈이 없다. 그녀가 건반을 짚기 전에 하는 일은 하나다. 남자의 음(音)을 집중해 듣는 것이다. 그녀는 ‘잘 치는’ 사람이지만 그전에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가 무사히 끝날 것이라 예감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악기점 주인이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런 순간에 주어지는 쾌락을 고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환호’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없어도 좋을 더 많은 것들 역시 없다. 악기점 주인은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를 딱 한번 쳐다본다. 그것도 잠깐, 노인 특유의 완고한 표정으로 흘깃. 나는 악기점 주인이 고개 드는 순간 이 영
[냉정과 열정 사이] 짧지만 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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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허문영 평론가 사이에 마련된 정성일 평론가의 자리에 별안간 성은 같으나 이름이 다른 자가 등장한 것에 독자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가 숨겨놓은 필명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니 잠시 진정하시길 빈다. 소인, 잠시 지나가는 객일 뿐이다.
가끔 이견이 없지 않았으나 평소 정성일의 글에 취해 사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리에서 나의 소견을 쓰는 것이 과연 그의 통찰을 읽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가 잠시 이 자리를 맡아야만 하고 우연히 그게 나의 역할이 된 것이라면 한 가지 다짐은 하고 싶다. 김소영, 허문영 두 훌륭한 평론가가 사유의 숨을 더 깊게 쉴 수 있도록 한주의 시간을 벌어주는 징검다리로 혹은 덧붙여 가끔은 쓸모있는 보론과 이견도 제시할 줄 아는 첨언자로 노력하며 정성일 평론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자 한다. 갈수록 건기와 우기만 있다는 사계의 무딤 속에서 가을용 멜로 장르로 우리를 찾은 두편의 한국영화에
[전영객잔] 신파의 눈물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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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탄력적인 이야기가 전개됐다. 의문의 죽음, 내의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과학수사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단서들 그리고 죽음의 주위를 둘러싸고 모여드는 궁녀들의 비밀스러운 삶이 지닌 의문의 파편들. <궁녀>가 궁중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그 베일을 벗었다. 최근 유행하는 공간(궁, 병원 등)을 중심으로 한 역사추리 혹은 역사기담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 주체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타자들을 소환시킴으로써 영화 <궁녀>는 대중의 산뜻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권력을 중심으로 한 어전이 아니라 전문성의 영역인 궁녀들의 일상적 공간에 주목함으로써 전에는 몰랐던 궁의 은밀한 공간들이 드러났다. 카메라는 궁궐의 각 모서리와 숨은 방들과 지하를 누비며 미시적인 공간들을 조명했고, 더불어 조선시대 궁녀들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발견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물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
[영화읽기] 궁녀들의 억압된 핏빛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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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카핑 베토벤> 트로트 오케스트라의 거성, 악성 배토벤
[정훈이 만화] <카핑 베토벤> 트로트 오케스트라의 거성, 악성 배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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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거나 함께 온 가족이면 공짜로 입장할 수 있는 아트페어가 열린다. 1995년 ‘국제아트페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용했던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김 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란 타이틀로 미술애호가들을 유혹한다.
국내외 작가 130여명의 작품 2천여점이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아트페어는 ‘군집개인전’ 형식이다. 각 부스에서 초대작가들이 직접 관람객을 맞이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현장에서 작가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또한 작은 소품 몇점이 아닌 최소 10여점이 넘는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는 데도 수월하다. 그리고 아트페어 관람은 곧 한국 미술시장의 분위기와 가격지수를 알게 해준다. 전시된 모든 작품은 빠짐없이 가격표가 붙어 있는 가격정찰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미술시장의 큰 활기는 예전과는 매우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그림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
“과장님, 전시장 가실래요?”, 2007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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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라고 불렸던 그녀, 아테나의 죽음 뒤, 한 사람이 그녀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그녀에 대한 증언을 받는다. 아테나는 셰린 칼릴이었고, 루마니아 집시의 딸이었고, 레바논 사업가의 양녀였고,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고, 한 아이의 어머니였고… 마녀라고 불렸다. 완전하고 끝없는 쾌락을 모색하는 길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는 인물, 마녀.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아테나의 죽음 뒤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아테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의 삶은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방황하고 사랑하는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고아였다가, 독실한 믿음을 가졌던 성당에서 영성체를 모실 수 없는 이혼녀가 되었다가, 가난을 딛고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다가, 마침내는 영적 지도자로 거듭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과 지
마녀 혹은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포르토벨로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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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하우스> SBS 금·토 밤 12시5분
<하우스> 시즌3 OCN 월·화 오전 10시·오후 7시50분
주인공 엔트워스 밀러의 인기에 힘입어 지상파 방송을 탄 <프리즌 브레이크>의 후속작으로 <하우스>가 방영 중이다. 그 소식에 상당수 미드팬들의 반응은 “아니 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를 방영하지 않는 거지?”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시즌3가 9월17일부터 방영이 시작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즌2를 방영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상황에서 끝나기 때문에 팬들의 이런 불만 섞인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러나 반대로 CATV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하우스>를 탐닉한 이들은 그 뉴스에 환호성을 올렸다. <하우스>가 일반 시청자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드이지만, <그레이 아나토미>와 함께 의학 미드의 양
[이철민의 미드나잇] 너무나 미국적인 괴짜 영국 중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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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온 10월25일(목) 밤 11시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죽음을 성찰하는 작품, <씨 인사이드>는 논쟁적이다. 안락사가 금지된 스페인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자유’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확고해 보인다. 28년 전 전신마비가 된 뒤, 형과 형수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라몬 삼페드로(하비에르 바르뎀). 꿈속에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죽을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를 변호해주기 위해 찾아온 줄리아(벨렌 루에다) 역시 퇴행성 질환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둘은 죽음 앞에서 공감하고 그 절박함은 사랑으로 변하지만, 그럴수록 라몬의 죽음에 대한 욕망은 깊어진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논쟁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은 거의 일제히 감동을 표했다. 대부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
죽음의 윤리를 묻다, <씨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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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 무형식, 무스타 등 3무(無)을 표방하며 MBC <무한도전>의 대항마로 지난 9월22일 출격한 SBS 토요버라이어티프로그램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은 언뜻 ‘눈에는 눈’의 맞불 전략을 구사 중인 것처럼 보이며 예능프로그램의 최신 경향을 따끈하게 대변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일본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움직이는 벽’까지 수입(?)해 준비된 아이디어와 잘 짜인 형식의 힘을 발휘하려 했지만 실패한 전례(<작렬! 정신통일>)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식 ‘리얼리티’와 ‘빈틈 많은’ 캐릭터들의 단체 플레이를 한층 강도높게 사냥하고 있다. 이번에도 일본 TBS <링컨> 등 옆나라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료를 차용한 흔적이 다분하다. 그러나 더블 MC인 이경규와 김용만을 비롯해 김구라, 신정환, 윤정수, 김경민 등 출연진이 매주 어디에서 어떻게 톡톡 튀는 아이템을 소화하느냐보다 얼마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
<무한도전> 인기 비결에 대한 잘못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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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박이로 카메라를 들고 있다보면, 남들은 모르는 배우들의 습관이나 버릇을 훔쳐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국경의 남쪽> 때는 차승원씨가 지루할 때면 손톱을 문다는 것과 굉장한 애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위 사진의 탈북장면 같은 경우에 차승원씨는 계속 다른 배우들과 함께 차 안에 있어야 했던 터라 테이크 중간에 짬이 나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본인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반면 스탭들은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으니 얼마나 흡연 욕구가 간절했을까. 애연가라면 누구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결국 뒷문 열고 욕구 해결하는 차승원씨를 보게 됐는데, 탈북 앞두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극중 선호의 심정이 전해졌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숨은 스틸 찾기] <국경의 남쪽> 어느 애연가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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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 중국전영자료관에서 발굴, 수집한 1930, 40년대 극영화들은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역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그간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된 여러 작품 중 네편이 <발굴된 과거>라는 이름의 DVD 박스 세트로 선보인다. 네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말기에 만들어진 것들인데, 당시는 1940년 1월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영화령을 공포하고 조선영화인협회가 설립된 데 이어 1942년 9월에 조선영화주식회사가 발족할 때다. 영화인들의 생존권이 박탈당하고 기존 영화사의 재산이 모조리 빼앗긴 ‘신체제’하에서 조선영화는 일본의 전쟁수행을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했다. 1930년 전후 조선영화의 민족저항주의나 ‘카프’가 강령으로 내건 ‘무기로서의 예술’ 같은 에너지라곤 찾을 길이 없는 네편 영화를 대하는 마음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최인규의 1941년작 <집 없는 천사>는 거리 부랑아들의 생생한 삶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남자의 가상한 노력을
슬픈 웰메이드, <발굴된 과거: 일제시기 극영화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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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활동 중인 감독 중 데카당스 미학의 계승자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돋보인다. 죽은 비스콘티가 부활한 듯 그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질병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몽상과 유령, 질병과 죽음의 검은 세상에서 그의 미학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모아 상영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이 10월3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문의: www.cinemathequeseoul.org).
러시아의 무명감독이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서방에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컸다. 타르코프스키는 소쿠로프가 70년대에 국립영화학교(VGIK)에 다닐 때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소쿠로프라는 젊은 감독이 있다. 거장이 될 재목이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 정상적인 활동을 못한다. 서방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입을 통해 재목으로 지목된 젊은 감독 소쿠로프(1951~)는 서방 영화인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
미술, 죽음, 그리고 데카당스의 미학, 소쿠로프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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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양해훈이 누구기에?”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양해훈 감독과 그의 장편 데뷔작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10월까지 잊을 만하면 되새겨지는 이름이었다.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에서 화제작으로 떠오른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올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영화평론가상’을 받았고, 지난 10월12일에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와이드 비전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게다가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편집하던 도중에 만든 단편 <친애하는 로제타>는 한국영화로는 6년 만에 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제 순방의 해로 보낸 지난 시간이 양해훈 감독에게는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영화제가 별로 재밌지는 않다. 나는 그냥 관객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더라. 그외 다른 건… 글쎄… 축제가 끝나고 생기는 허망함이 오히려 짙은 것
[양해훈] “당분간은 현실에 발을 붙인 판타지를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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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투명인간이다. 부풀린 환대와 호들갑이 오가는 술자리에서조차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미약한 몸짓. 그녀는 입가에 작은 점을 하나 그려 넣는다. 진정한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듯 스멀스멀 영역을 넓혀가던 점들은 어느새 온몸을 집어삼키고, 건조하던 일상은 끈적한 환각의 미로로 탈바꿈한다. 소외와 고립을 공포의 키워드로 사용하는 것은 낯설지 않지만, 점이라는 범상한 소재가 거대한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시각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바짝 소름을 돋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공포를 촉발하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감각과 리듬이 돋보이는 <점>은 이정행씨의 첫 번째 연출작이다.
“어느 날 몸을 보니 전에 없던 점이 생겼더라. 이 점이 늘어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본 것이 발상의 출발이었다.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가 넓어졌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것 같다는 회의도 있었고. 그런 생각들로부터 영화가
[이달의 단편 18] 이정행 감독의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