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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비보이> Planet B-Boy
벤슨 리/ 미국/ 2006년/ 96분/월드판타스틱 시네마
지하철 역사의 만질만질한 바닥에서 춤추며 뒹구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 밥먹고 할 일 없이 왜 춤만 추는지 궁금했던 이라면 다큐멘터리 <플래닛 비보이>를 추천한다. 재미동포 감독인 벤슨 리는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 결승에 참가한 일본, 프랑스, 미국, 한국 비보이팀과 대화를 시도한다. 춤의 색깔이 저마다 다르듯 그들이 춤을 사랑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들에게 비보이는 하나의 문화이면서 예술이거나 자유를 향한 행동이자 살아 있다는 즐거움이다. 또한 <플래닛 비보이>는 이들이 춤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그치지 않고, 남들은 그저 생각없이 춤만 좋아하는 아이들로 바라보는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갈등을 풀어놓는다. 나라별 비보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처지와 꿈, 목표를 털어놓는다. 한국의 비
춤으로 살아가는 이유 <플래닛 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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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공주> Year of the Fish
데이비드 카플란/ 미국/ 2007년/ 96분/ 애니모어
서글픈 작은 소녀가 사랑을 찾아가는 한편의 동화. 아버지의 병원비를 벌러 미국에 불법 노동이민을 온 중국 소녀 예 시안은 자신이 인신매매단에 속아 안마시술소에 팔려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손님 받기를 거부한 시안은 여사장과 마사지숍 언니들의 구박 속에 허드렛일로 빚을 갚는 신세가 된다. 그녀에게 위안이라곤 기이한 점술가에게서 받은 한 마리의 물고기, 그리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아코디언 연주자 자니뿐. 스쳐간 자니와의 인연을 마음에 품고 하루하루 버텨보지만 사장 남동생의 음험한 시선은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지고, 시안을 괴롭히는 사장과 마사지걸들은 그녀의 소중한 물고기에게 손을 뻗친다. 상처입은 시안은 물고기를 준 점술가를 찾아 차이나타운을 헤매고, 도시가 중국 설날로 들썩이기 시작한 음력 새해 첫날, 점술가는 그녀를 위한 마지막 마법을 부려준다.
<물고기공주
사랑을 찾아가는 한편의 동화 <물고기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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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 영화의 흥망성쇠> Going to Pieces: The Rise and Fall of Slasher Film
레이첼 벨로프스키, 마이크 보후즈/ 미국/ 2006년/ 90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70년대 말과 80년대의 슬래셔영화 붐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종말을 맞이했는가. 지난 2001년 스크림페스트영화제를 창설한 레이첼 벨로프스키와 마이크 보후즈의 다큐멘터리 <슬래셔 영화의 흥망성쇠>는 슬래셔영화의 역사를 흥겹게 요약정리한 다큐멘터리다. 웨스 크레이븐, 숀 커닝엄, 스탠 윈스턴, 존 카펜터, 톰 사비니, <13일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의 엄마이자 기념비적인 살인마로 등장한 여배우 벳시 파머 등 등 80년대 슬래셔영화의 전성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등장해 당시의 흐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프롬 나이트> 등 당대의 걸작 슬래셔영화들의 주요 장면이 기똥찬 편
슬래셔영화의 역사 <슬래셔 영화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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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협영화의 액션 아이콘 신이치 ‘소니’ 치바가 액션 배우로서의 연기 인생을 정리했다. <버라이어티>의 보도에 따르면, 7월16일 월요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이치 치바’의 이름으로 활동한 그의 연기 인생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천식으로 앓아온 치바는 68세라는 노령에 무거운 의상을 입고 연기해야 하는 사극에 출연하는 데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다는 말로 은퇴의 결심을 밝혔으며, 출연중인 NHK의 시대극에서 그가 연기하는 장수 이타가키 노부카타의 극중 죽음을 들어 “이타가키의 죽음에 맞춰 ‘치바 신이치’도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은퇴는 치바의 액션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을 뿐, 연기자로서의 그의 인생과 후진을 양성하는 선배로서의 활동은 계속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그의 모교인 니혼체육대학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며, 다음 달 치바가 소유한 LA 연기 학원인 ‘사우전드 리브스 할리우드’(Thousand Leaves Hol
소니 치바, 액션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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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귀환한 <다이하드> 시리즈의 영웅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형사에게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액션 영웅 클럽의 상석은 CG와 한몸되어 날아다니는 만화 출신 슈퍼히어로들이 차지했고, 웬만한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은 컴퓨터 전문가다. 그의 장기였던 이죽거리는 구변도 애니메이션의 수다쟁이를 당할 수 없고, 그 시절 동지를 찾아본들, 캘리포니아 주지사 집무실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보일 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다이하드4.0>의 영리한 각본은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어물쩍 외면하거나 맥클레인에게 부랴부랴 정보통신 자격증을 따게 만드는 미봉책을 쓰지 않는다. 대신 시대의 변화와 주인공의 무력함을 이야기 핵심으로 대뜸 끌어들여 정면 돌파한다. 천재 해커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판트)이 이끄는 전문가 집단은, 잘나가는 개인 해커들의 경쟁심을 이용해 국가정보, 통신, 교통, 수도, 전기, 금융 인프라를 총체적으로 파괴하는 ‘파이어
시리즈의 적절한 업그레이드 <다이하드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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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남자도 그땐 단지 하고 싶었을 뿐이야.” 29살의 준코가 15살 중학생 시절 담임과 섹스에 탐닉하던 과거를 남자 동창에게 들려준다. 플래시백 속의 담임은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와 준코를 번갈아 베어문다. 29살의 준코가 그 못지않게 복숭아를 에로틱하게 베어물 때, 다섯 옴니버스가 펼칠 색깔이 예감된다. 마쓰오 스즈키 감독은 <밤의 혀끝>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순정을 ‘무자비하게’ 배반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머리카락을 태우고 잠들면 꿈에서 원하는 걸 맘껏 할 수 있다는 신비스러운 향로를 얻게 된 마사코 이야기다. 직장의 연하남 머리카락으로 꿈에서 오르가슴에 오르던 그녀는 아예 꿈에서 깨어나지 않겠다는 비장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이 격한 에로스는 쓰카모토 신야의 <비단벌레>로 이어진다. 늙은 남자의 정부가 그 남자의 젊은 부하와 눈이, 아니 몸이 맞는다. <유레루>의 니시카와 미와는 <여신의 발 뒤꿈치>
불균질의 에로스 옴니버스 <그녀의 은밀한 사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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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촬영 작가(미쓰이시 겐)의 1인칭 시점과 내레이션이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유다(혼다 카주마)를 따라붙는다. 유다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미스터리적 인물이다. 호기심이 애정으로 바뀔 무렵 유다가 캠코더를 가지고 사라졌다. 페이크다큐가 픽션적 장면과 마구 섞이는 건 문득 화자를 찾아온 미치(오카모토 유키코)라는 여자의 방문 이후다. 그녀는 유다가 가져간 캠코더의 테이프를 가져왔고, 거기에는 그녀와 유다의 미스터리한 여행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는 이 영화 자체의 성격이다. 유다와 미치 사이를 오가는 회상과 16살 소녀들을 둘러싼 끔찍한 사건을 자꾸 혼합하면서 이야기는 매듭짓기를 방기한다. 그게 무엇이냐, 보다는 이러한 것들이 실은 네 주변에 있다, 고 봐주기 원한다. 젊은이들이 마주하거나 만들어가는 세상이 미스터리이니 이를 담는 에피소드가 매번 명쾌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적 연출은 픽션을 픽션 아니게 혼동하게 만든다. 페이크다큐의 목적은 믿기 싫고 보기
미스터리한 성(性)과 미스터리한 연출 <비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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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끼리의 여행은 간혹 관계의 분기점이 된다. “우리는 지금 최고로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도 스트레스지만,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얼굴을 발견하고 질겁하는 일도 있다. 35살 동갑내기 커플 마리옹(줄리 델피)과 잭(애덤 골드버그)의 유럽 여행도 위기로 비화된다. 베니스에서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파리에 들러 마리옹의 가족과 함께 이틀을 보내게 된 잭은 문화적 차이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비엔나 소시지같이 줄줄이 출현하는 마리옹의 옛 남자들은, “과연 내가 그녀를 아는 걸까?”라는 회의까지 부른다.
<비포 선셋>의 각본에도 참여한 바 있는 줄리 델피 감독은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에서 익숙한 지도를 따라 걷는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사색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여자와 남자가 거리를 소요하며 대화로 줄거리를 진전시킨다. 그러나 잭은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처럼 꿈꾸지 않고, 마리옹은 <비포 선라이즈> 연작의
수다만발 코미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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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셔터> 효과는 대단했다. 핏빛 원혼을 포착한 이 공포영화는 1억1천만바트(30여억원)를 벌어들였고, 그해 타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으며, 할리우드 뉴리전시사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일 정도로 주목을 끌었다. 광고계에서 출발해 이력을 쌓았던 선배들과 달리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한 팍품 웡품과 반종 피산타나쿤은 데뷔작 <셔터>로 타이영화를 이끌 기대주로 각광받았다. <샴>은 <셔터> 이후 따로 차기작을 준비 중이던 두 사람이 다시 손잡고 만든 공포영화다. 영화 속 샴쌍둥이의 비극적인 운명과 달리 다시 하나의 메가폰을 나눠 잡은 두 감독의 선택은 결과로 보면 나쁘지 않다. 타이의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GTH가 전주로 나선 이 영화는 아직 공식적인 흥행 기록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수입사쪽에 따르면 “<셔터>를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죄책감이 불러들인 원혼의 이야기로 공
기본기가 충실한 호러물 <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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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 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사비나(야나 팔라스케)는 어머니에게 연인이 생기면서 쫓겨나듯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그에게 에디(프랑크 드뢰제)가 도움을 주고,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사비나는 살인 현장에서 도망치는 에디의 친구 미샤(토니 블루메)를 목격하고, 미샤는 에디에게 사비나를 제거할 것을 종용한다.
베를린 외곽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알래스카>는 영화 제목인 지명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파이프라인을 짚으며 “알래스카에서는 길을 잃으면 이걸 따라간대”라는 대사로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방향을 상실한, 알래스카와 같이 서늘한 삶의 자리를 일컫는다. 도시 하층민에 속하는 <알래스카>의 아이들은 거리의 법에 종속되어 있다. 학교 담장 밑에서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고, 소년은 밥값을 충당하기 위해 구걸과 절도를 일삼는다. 학교폭력에 관한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은 10
10대들의 초상 <알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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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성을 잠식한다? 엔젤(세르기 로페즈)은 이상한 수컷이다. 결혼식날 입장을 미뤄가면서 신부의 남성 편력을 따진다. 열명 밑인지 그 위인지, 11명인지 12명인지 분명히 알아야겠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엄마와 함께 추궁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관계의 안정과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키우는 아이의 수를 늘려나간다. 하나, 둘, 셋, 넷. 뭐가 그리 불안할까. 그러고는 비서와 바람 피운다. 엔젤의 수상쩍은 바깥생활을 의심한 아내 안나(아이타나 산체스 기욘)가 친구에게 남편 미행을 부탁하는데, 그 둘이 침대 위에서 딱 붙어버렸다.
흥분한 아내의 반격이 시작된다. 결별 선언과 동시에 남편의 남동생이랑 동거를 시작한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인물의 파격적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유랄지 배경을 알기 힘들게 좌충우돌이다. 엔젤은 마초와 담쌓은 인물 같은데 여자의 성에 대해선 마초 종마 같다. 무기제조상인 엔젤의 동생이야말로 마초스러워야 어울릴 듯한데, 유약하고 어수
그의 성은 무조건반사 <해피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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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처는 악마의 유혹으로 돌변한다? 영화사 화인웍스와 케이블 채널 OCN이 함께 만든 4부작 옴니버스 <이브의 유혹>은 팜므파탈을 공통된 요소로 사용한다. 그중 한편인 <키스>는 이웃집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과거 남편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효진(윤미경)은 권위적인 남편과 다른 느낌의 이웃집 남자 영훈(김경익)과 잠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영훈의 아내 정임(이자경)이 이를 눈치채고 네 남녀 사이에 숨겨졌던 비밀이 드러난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의 남기웅 감독은 효진을 바라보는 영훈, 영훈을 바라보는 효진의 시선을 공포영화의 리듬으로 처리한다. 파국으로 이어질 남녀의 관계가 불안한 분위기 속에 암시된다. 하지만 영화는 90분이라는 다소 짧은 러닝타임에도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긴장감이 없다. 효진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도 나태하다. 마지막 한방의 반전을 위해 효진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일
사랑의 상처 악마의 유혹으로 돌변 <이브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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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을 다니다보면 가끔 언제 이렇게 변했지, 싶을 때가 있다. 주로 강북에서 생활하다보니 종로, 신촌, 홍대 앞 등을 자주 들르게 되는데 얼마 전 홍대 앞에 고깃집이 밀집했던 지역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야외에 불판을 내놓고 고기를 굽던 집들이 거의 없어져서다. 삼겹살 집이 없어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이자카야라 불리는 일식 주점들이다. 한집 건너 하나씩 비슷한 메뉴를 파는 이자카야가 빼곡히 들어섰다. 예전에 신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돼지갈비로 유명했던 골목이 어느 순간 모조리 닭꼬치집으로 변하더니 몇년 뒤엔 조개구이집으로, 다시 이듬해엔 찜닭집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물론 홍대 앞과 마찬가지로 이자카야가 우세종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을 고집하는 음식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행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는 식당들을 보노라면 사람들 입맛이 정말 그렇게 바뀌는지 의심스럽다. 지지난해엔 돼지갈비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지난해엔 찜닭만 찾고 올해는 이자카야를 선호하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름 극장가 숨은 영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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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플라이셔는 할리우드의 거룩한 장인 중 한명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리처드 플라이셔는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를 감독하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42년에 실사 단편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1946년에 첫 장편 데뷔작을 내놓았고, 초창기에는 <The Clay Pigeon>(1949), <Follow Me Quietly>(1949), <Armored Car Robbery>(1950) 등 주로 필름 누아르 영화들에 장기를 보였다. 플라이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주요 고용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월트 디즈니로 건너가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를 완성하면서부터다. 가장 특수효과를 잘 이해하는 당대의 메이저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마이크로 결사대>(1966), <닥터 돌리틀>(1967), 그리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도라! 도라! 도라!>(1970) 등 특수효과를 활용한 당대의 대작들을 연이어
대중영화로 우뚝선 할리우드의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