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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이레 펴냄
알랭 드 보통은 영민한 수다쟁이다. 그는 일상적인 화제를 도마에 올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언제나 무릎을 치게 하는 데가 있다. 일상이 낳은 작은 생각거리는 우리에 앞서 세상을 살고 간 사람들의 글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우리는 소소한 것의 즐거움과 권태를 발견하는 데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음을 알게 된다.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보다 덜 현학적이면서도 사랑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여행의 기술>은 남들에게 자랑하는 여행의 즐거움 이면에 도사린 귀찮음과 짜증까지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행복의 건축>은 제목 그대로 건축에 대한 이야기인데,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보통의 입담에만 기대 책을 끝까지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
건축에 관한 영민한 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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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의 여왕, 골디 혼이 새 영화 <애쉬스 투 애쉬스>를 통해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그라인드 하우스>에 출연한 남편 커트 러셀과 함께 칸영화제를 찾은 골디 혼은 새 영화에 커트 러셀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HOPE>를 포함한 몇 편의 TV영화를 통해 연출 겸 제작자로 경력을 쌓은 골디 혼은 그녀의 감독 데뷔작이 될 <애쉬스 투 애쉬스>의 각본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쉬스 투 애쉬스>의 각본은 워런 비티의 <불워스>의 시나리오 작가 제레미 피스커가 집필했다. 영화는 인도에서 카트만두까지 여행하는 한 미망인을 둘러싼 이야기로, 화장한 남편의 유골을 여행중 잃어버리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코미디 장르를 빌어 풀어낼 예정이다. 올해 가을 제작에 들어가며 뉴욕과 인도를 오가며 촬영한다.
골디 혼, <애쉬스 투 애쉬스>로 감독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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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스타 갤럭티카>
한국 Fox 채널 월~금 밤 11:50
자신이 SF 장르의 광적인 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스타트랙>을 흠모하는 이른바 ‘트레키’(Trekkie)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엉성한 TV용 세트 안에서 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와 영화에 비해서 너무나도 부족해 보이는 특수효과가 어우러져, SF 장르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에는 범접도 못할 수준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드디어 한국에서도 방영하기 시작한 미드 <배틀스타 갤럭티카>(이하 <배틀스타>)는 외견상으로만 보면 일부에서 그렇게 취급받는 <스타트랙>의 ‘짝퉁’ 정도로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정과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외견상 유사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맹이를 찬찬히 보면 <배틀스타>는 <스타워즈>와 더
[이철민의 미드나잇] 컬트 SF가 역사적 걸작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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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5월26일(토) 밤 11시
<올 댓 재즈>는 연극, 영화, 뮤지컬 연출가이자 안무가로 명성을 떨쳤던 밥 포시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과 종종 비교되는 <올 댓 재즈>에는 밥 포시의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뿐만 아니라, 그의 뛰어난 연출력이 곳곳에 묻어난다. 영화는 무대 위와 무대 뒤, 현실과 환상, 뮤지컬과 실제 삶을 자유자재로 가로지르며 천재적인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 쇼 비즈니스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영화답게, 영화 곳곳에 삽입된 다채로운 뮤지컬 공연 장면들에는 최근 나온 그 어떤 뮤지컬영화들도 범접할 수 없는 동작의 정밀한 합과 거기서 뿜어나오는 에너지가 있다. 카메라는 그처럼 관능적인 몸의 향연을 함께 춤을 추듯, 과감한 동선으로 잡아낸다. “화면을 안무할 수 있다”는 이 대가의 자신감이 그의 작품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조 기디언(로이 샤이더)은 브로드웨이의 인정받는 연
뮤지컬 대가의 황홀한 작별인사, <올 댓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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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0일자로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월요일 밤 11시대로 방송시간 이동을 명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방송가의 관심은 기존 ‘수다왕’이자 앙케트 토크쇼로 닮은꼴인 SBS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야심만만>(아래 <야심만만>)과 맞붙어 어떤 결과를 낼지에 기울었다.
두 프로그램의 성적은 시청률 10%대를 턱걸이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형국인데 결론은 외국인 미녀들의 어눌한 수다가 스타들의 노련한 수다를 눌렀다는 한줄로 성급히 간추려지는 것 같다. 방송 6개월차 새내기인 <미녀들의 수다>가 ‘뜨는 해’라면 방송 경력에서 네살 많은 고참 <야심만만>은 ‘지는 해’라는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다국적 미녀들한테 시선을 산뜻하게 ‘샤워’하고,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그들의 천진하고 날카로운 지적에 가끔 뜨끔해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또 미녀들의 올바르지 못한 우리말에서 그들이 교본으로 삼았을 우리네 언어문화가 얼
오래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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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체코어로 ‘노동’을 의미하는 ‘robota’에서 온 말로,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K. 차페크가 발표한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사용한 이후 널리 퍼졌다. 당초에는 현대와 같은 의미의 로봇이라기보다 사람의 모습을 한 인형 내부에 기계장치를 조립해 넣어 작동하도록 만든 자동인형, 즉 일종의 ‘인조인간’(人造人間)에 가까운 의미였다. 말하자면 로봇은 그 근원에서부터 ‘인형’, ‘자동인형’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80년대 일본 완구업체 다카라가 내놓은 장난감에서 시작하여 미국 완구회사가 제작한 TV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거쳐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의 손에 도착한 <트랜스포머>가 6월28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클립을 미리 본 이들은 <트랜스포머>가 단지 어린이영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예견한다. 현대 완구시장의 중요한 축이었던 로봇 완구는 스크린에서 어떻게
건프라, 나의 우주를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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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기간에 인천에서 찍은 <품행제로>의 한 장면. 관객은 모두 CG인 줄 알겠지만, 거듭되는 스턴트맨들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장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촬영 초반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삭막했다. 동네 어른들은 왜 남의 지붕에 널브러져 있냐고 촬영을 못하게 했다. 전봇대에 허리를 고이 접어놓은 무술 스탭들의 연기가 그분들 눈에는 망측하다 못해 기괴했을 것이다. 최근 광고에서 김태희가 선보인 철봉쇼는 이 장면을 참조한 게 아닐까. 테이크가 계속될 때마다 매번 붕∼ 하고 허공을 날아야 하는 연기자들의 고생을 녹여준 건 바로 류승범의 애드리브. 갑자기 구레나룻에 침 묻히고 달리는데, 찌는 듯한 여름에 고생하던 스탭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청량제였다.”
[숨은 스틸 찾기] <품행제로> 너는 달리고, 우리는 재주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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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찬가/아워 뮤직> Eloge de L’Amour/Notre Musique
<영화의 역사> Histoire(s) du Cinema
영화가 만들어진 지 100년하고 3년이 지난 1998년, 장 뤽 고다르는 10년에 걸쳐 진행한 <영화의 역사>의 작업을 마친다. 그리고 21세기의 시작점에서 두편의 장편영화 <사랑의 찬가>와 <아워 뮤직>을 발표한다. 영화 100년과 20세기 역사를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한 세기를 마감한 고다르는 진정한 영화의 시간으로 21세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런 게 있다면) 영화의 본질적 요건을 완벽히 따른 진정한 영화- 연극과 사진이 아닌, 소설, 회화, 오페라, 음악에서 자유로우나 조화를 이룬, 그러면서도 영화적 표현, 영화적 이미지, 영화적 내러티브, 영화적 속도, 영화적 호흡, 영화적 윤리, 영화적 시간, 영화적 기억, 영화적 목소리, 영화적 움직임, 영화적 비밀을 흠없이 갖추고
두 세기를 교차하는 고다르의 이미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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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기존의 지원제도를 통합 확대한 아시아영화펀드 (ASIAN CINEMA FUND)를 신설한다. 아시아 영화감독들의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새로운 창구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신설된 아시아영화펀드는 다수의 기업과 단체가 공동으로 조성한 매칭펀드의 개념을 도입하여 총 8억 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개발 단계, 제작 단계, 후반 작업 단계로 나누어 지원하며 각 단계별로 한국 프로젝트와 아시아 프로젝트를 구별하여 지원작을 선정할 예정. 후반 작업의 경우에는 한국의 후반 작업 회사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실질적인 아시아 연대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설명이다.
개발 단계의 프로젝트에는 편당 1천만원을 지원하며, 후반작업 펀드의 경우 최소 5천만원에서 최대 1억 5천만원까지 현물을 지원한다. 아시아영화펀드를 지원받으려면 신청서류를 갖추어 장편독립영화 개발비 지원은 7월 27일(금)까지, 장편독립영화 후반작업지원과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은 6월 29일(금)까지 영화제 사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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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축제, 제11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 2007)이 오는 5월23일(수)부터 27일(일)까지 5일간 열린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SICAF 2007 역시 영화제와 전시장을 나눠 진행하게 되는데, 전시는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애니메이션영화제는 CGV 용산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다.
SICAF 2007은 <별의 목소리>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지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초속 5cm>를 개막작으로 시작해 SF계의 거장 뫼비우스(장 지로)가 직접 감독을 맡은 <아르작 랩소디>, 지난해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의 화제작과 르네 랄루 감독의 <타임 마스터>, 최첨단 CG의 현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시그라프 2006 베스트 3D 섹션 등 여느 때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게다가 뫼
초속 5m로 달려온 애니메이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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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의 현재적 지평을 열어줄 EU영화제가 오는 5월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젊은 영화작가들이 그려낸 동시대의 유럽영화를 대체적으로 아우르는 것은 환상보다는 현실, 슬픈 표상들에 압도된 온기없는 리얼리즘의 경향이다. 다양한 연합국의 문화적 차이는, 유로화라는 화폐 보편성을 기반으로 실직과 중독, 부채와 저당, 불운과 고독이라는 보편성의 전체를 구성한다. 이들의 삶을 위무하는 것은 달콤하고 낙관적인 환상이 아니다. 알코올과 항우울제, 마약, 혹은 이유없는 우발적 살인이 영화적 현실의 요소로 편입되었다. 오랜 유럽 불황의 그림자가 배어 있는 영화들의 페이소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적 자의식 없이 명랑함으로 충만한 영화 <얄라 얄라>(스웨덴)를 추천한다. 사랑마저 행복한 전망을 전해주지 못하는 동시대 유럽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욕망을 긍정하는 ‘케세라세라’의 천진난만함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따스한 시선의 개막작 <꿈의 동지들>(독
유럽영화의 현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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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전설의 고향>. 얼마 만이던가. 충무로에 정통 사극 공포영화가 나온 것이 말이다. 70, 80년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일명 ‘처녀귀신’ 영화들.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으스스한 곡성을 일갈한 뒤 힐끗 노려만 봐도 오금이 저리던 그때 그 시절의 영화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처녀귀신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이 이제 추억으로만 자리잡은 때, 정통 사극공포영화를 표방한 <전설의 고향>이 등장했다. 매년 충무로에서 5편 내외의 공포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지만, 사극공포영화는 공포영화 제작 붐이 일어난 뒤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전설의 고향>은 소멸되다시피 한 사극공포영화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끌지만, 김지환 감독이 그간 공포영화 애호가로서 유명했기에 더 주목받았다. 그는 1997년 영화진흥위원회 상반기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한 <좋은 친구들>로 당선된 뒤, 한 영화주간지에서 약 4년
<콩쥐 팥쥐>의 팥쥐가 겪었을 남모를 고민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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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음악 한 소절이 열 마디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될 때가 종종 있다.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음악이 그렇다. 내일을 찾고 싶어하는 두 청년의 불안하고 희망없는 오늘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음악은 주인공들의 삶을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더 많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타 한대의 나지막한 멜로디, 피치카토와 오보에가 단출히 어우러진 화음으로 텅 빈 듯 영화를 채워가는 이 오리지널 스코어는 노동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도 함께했던 권세영 음악감독의 솜씨다.
79년생. 두편의 영화에서 그의 음악이 보여준 절제와 여백의 내공에 비교하면 만 스물여덟살은 많은 나이가 아니다. 권세영 음악감독은 “그냥,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복잡하게 이것저것 소리를 많이 쓰는 게 내 취향이 아니라서”라고 설명한다. 겉치장없이 겸손한 그의 성격이 음악과 서로 닮았다. 권세영 음악감독은 수원대 연
그의 음악엔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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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캄캄한 무대에 핀 조명이 켜지면 배우 양금석, 무대 위에 홀로 앉아 있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얼굴이 드러난다. 천천히 객석의 관객을 바라보다가 한곳에 시선이 멈춘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관객과 눈을 맞추고 싶지 않다는 표정. 잠시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객석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이미 나는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어. 까칠하고 기센 여자로만 알고 있겠지. 나도 별 수 없다는 거 알아. 툭하면 쏘아보고, 욕하고, 머리채 붙잡고 싸우기나 했으니까. 갖고 있는 상처가 너무나 커서 더 다치지 않으려고 자기가 먼저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여자였지. 당신들은 그런 이미지가 싫지 않냐고 묻고 싶은 거 아냐? 아니, 싫은 거 없어. 아무렴 어때? 이건 일이잖아. 항상 뽀사시하게만 나와서 남자 품에서 눈물만 짜려는 애들은 촌스러워. 배우라면 다 해야 하는 거 아냐? 하나만 하려고 하면 그건 배우가 아니고 모델이지. 그런 여자들만 연기해
천생 배우의 모놀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