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사와 시청자가 공유하는 ‘완전 소중한’ 캐릭터 군단에 애완의 대상도 세부 장르로 침투했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만만하게 부를 애칭 하나 획득하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처럼 여겨지는 게 요즘 방송가의 풍경. 하찮든지 허당이든지 유치하든지 뚜렷한 캐릭터를 가져야 시청자의 적극적인 관심권 아래 머물 수 있다. MBC <무한도전>의 수선스럽고 빈틈 많은 남성들이 국민의 프렌즈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요즘 KBS2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사람들도 먹고 자는 문제에 티격태격하는 유아적인 속성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올리고 있다. 숭배의 대상보다 같이 놀거나 잔소리를 건네고 싶은 존재를 발견해 우월한 시선을 맛보는 게 TV라는 가상의 세계를 유쾌하게 즐기는 한 자세다.
그런데 한술 더 떠 ‘1박2일’ 멤버들 곁을 맴도는 복슬복슬한 수컷견 ‘상근이’마저 그 사례에 곁들여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전지전능해지는 시청자의 눈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MBC
상근이와 경수씨의 공통점은?
-
영화의 시작은 시커먼 땅속이다. 은을 찾아 땅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반복하는 남자 다니엘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갑작스런 사고로 다리를 다친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료의 아들 H. W.(딜런 프리지어)와 함께 산다. 석유가 있는 곳을 찾아 미국의 서부를 오가는 그는 리틀 보스턴에 석유가 있다는 엘라이(폴 다노)의 제보에 아들과 함께 리틀 보스턴으로 향한다. 리틀 보스턴은 목사 엘라이를 중심으로 한 광신도적 교인들이 주민의 대부분이다. 다니엘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땅을 사고, 유정탑을 쌓으며, 배송관을 만들어 석유 발굴에 나선다. 사랑, 공동체 의식, 자연, 신앙, 가족 등 인간의 덕목이라 여겨지는 가치들은 석유와 돈을 향한 다니엘의 욕망 속에 자리를 감춘다.
땅속에서 유를 창출하고 좀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부를 불리는 다니엘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세를 불리기 위해 믿음을 전도하는 엘라이의 설교는 자본주의
성공을 꿈꾼 미국의 한 역사 <데어 윌 비 블러드>
-
“우리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 박은혜씨가 자기 몸 중에서 불만이 코라고 하더라.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카메라를 향해 돼지코를 해보인 거고, 나머지 두 사람도 따라서 흉내내본 거다.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 때문이지만 와인도 한잔씩 하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 얘기들도 좀 하고, 김영호 선배님은 팝송까지 한곡 불러주셨다. 잘 부르시더라. 파리 촬영 내내 민박집에 같이 묵어서인지 현주 역의 서민정(맨 오른쪽)씨를 포함해서 다들 친해져서 이런 게 나올 수 있었겠지. 아, 근데 왜 돼지코냐고? 그냥. 영화에 나오는 돼지 머리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음 선견지명이라고나 할까.”
[숨은 스틸 찾기] <밤과 낮> 여탕 훔쳐본 돼지코가 혹시…?
-
강영준(조한선)이 경찰대학을 나와 내사과에 들어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지대했다. 영준은 늘 뇌물을 받아먹고 불륜까지 저지르는 아버지 강민호(안성기)를 보면서 비리 경찰을 붙잡는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마약 조직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한 형사를 추적하던 중 부산의 마약 밀매조직이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사를 위해 부산의 한 경찰서로 파견나간 그는 그곳에서 풍속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민호와 8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파트너를 이뤄 좌충우돌하면서 거대한 범죄의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마이 뉴 파트너>는 거의 용도폐기되고 있던 형사 버디무비의 맥을 따르는 영화다. 이 영화가 참신할 수 있는 지점은 ‘투캅스’를 아버지와 아들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아들과 아버지라는 위치의 차이만큼이나 이 파트너십에서 두 사람의 목적은 다르다. 아들은 자신이 쫓는 범인을 빨리 붙잡아 증오해 마지않는 아버지
버디무비와 부자의 재회극 <마이 뉴 파트너>
-
-
실체를 확인하지 못해 우리에게 전설로 남은 영화가 있다. 가장 영향력있는 무성영화이자 공포영화인 <유령마차>도 그런 영화 중 한편으로, 잉마르 베리만이 “15살 때 처음 접한 뒤 여름마다 보았으며, 내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작품이다. 얼마 전 출시된 <유령마차>의 DVD로 그간 <산딸기>의 배우로 더 잘 알려진 빅토르 시외스트룀의 작품세계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유령마차>는 스외스트룀의 열렬한 팬이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셀마 라게를뢰프와 감독이 네 번째로 만난 결과물이다. 시외스트룀은 <잉게보리 홀름>(1913)부터 <바람>(1928)에 이르는 걸작시대의 가운데 위치한 <유령마차>에서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사실주의 멜로드라마와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결합시켰다. 12월31일 밤, 다비드는 옆의 주정뱅이들에게 전설을 들려준다. 전설인즉 그해의 마지막 날에 마지막으로 죽은 자가
[해외 타이틀] 90년 전 공포영화를 만나는 기쁨, <유령마차>
-
당혹스럽다. 1986년 4월28일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당혹스럽다. 인터뷰를 행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흡사 죽은 자를 대신한 심문처럼 들려서 불편하고 또 당혹스럽다. 20여년 전에 대학생이었던 인물들이 급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대목 또한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낱낱이 듣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집요함 또한 당혹스럽다. 김응수 감독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당혹스러운 다큐멘터리다.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민족생존 위협하는 핵무기를 철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이재호, 김세진 두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이지만,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0년대를 다루는 후일담의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노무현을 이야기해도, 이한열 열사를 말할 때도, 광주를 떠올릴 때도 똑같은 풍경들이 나온다. 뒤따라 항상 같은 음악들이 붙는다. 지겹다. 모든 과거를 신화로 그리는 건 싫다.” 김응수 감독은 사건에 대해서도, 정황에
1980년대와 마주하기 <과거는 낯선 나라다>
-
쾅! 한발의 대포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중국 공산당 제2야전군 139연대 9중대장인 구지디(장한위)는 그 때문에 퇴각 명령을 알리는 집결호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집결호는 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지디는 울렸는데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퇴각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품고 있던 47명의 중대원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대원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혼자 살아남은 구지디는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형제’들의 죽음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시체들을 옮겨다놓았던 광산의 토굴은 전쟁 뒤에도 발견되지 않고, 결국 용감히 싸우다 죽은 구지디의 부하들은 비석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만다.
<집결호>는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다. 온갖 후회와 자책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구지디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모습은 분명 죄를 용서받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
순국선열을 향한 묵념 <집결호>
-
찰리 채플린은 뛰어난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이자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음악가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천재영화인 찰리 채플린은 75편의 연출작 가운데 17편의 영화음악을 직접 작곡했다. 즉 오케스트라를 직접 다뤘고, 때론 로맨틱하고(<시티 라이트>) 때로는 괴이한 듯 경쾌하며(<황금광 시대>) 때론 섬뜩한 오프닝을 선사하기도 했던(<모던 타임즈>) 선율의 관현악 악보를 직접 썼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황금광 시대>(1925),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살인광 시대>(1947), <라임 라이트>(1952)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걸작 장편들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모두 채플린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권위나 영향력에 있어 요즘 시대만큼의 척도가
채플린의 영화와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기회
-
결혼은 그녀의 꿈이자 희망이요, 인생의 전부다. 택시 뒷좌석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하루에 두탕의 결혼식을 뛸 만큼 제인(캐서린 헤이글)은 결혼 그 자체와 황홀한 사랑에 빠져 있다. 청첩장, 웨딩케이크, 드레스 준비에 이르기까지 웨딩 플래너를 자처해 친구들의 결혼식을 부랴부랴 뒷바라지하는 그녀는 그러나, 정작 자신의 연애에서만큼은 소심하기 짝이 없다. 직장 상사 조지(에드워드 번즈)를 열렬히 짝사랑하던 중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하지만, 미모의 모델인 동생 테스(말린 애커먼)가 눈앞에서 그를 채가버린다. 한편 결혼식 칼럼을 쓰는 기자 케빈(제임스 마스덴)은 들러리 역할에 열을 올리는 제인을 흥미로운 소잿거리로 생각해 그녀에게 접근하고, 제인은 애타는 마음을 감춘 채 조지와 테스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연애만큼은 영 불운한 그녀와 금발의 미모로 손쉽게 남자의 심장을 사로잡아버리는 그녀.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
결혼이 인생의 전부? <27번의 결혼 리허설>
-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ACF 쇼케이스’가 시네마테크 부산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부산에서는 3월4일(화)부터 13일(목), 서울에서는 3월7일(금)부터 13일(목)까지다. 아시아영화펀드(ACF)란 아시아 다큐멘터리 네트워크(AND) 부문을 포함하여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영화의 지원과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 영화인들의 연대를 도모”해온 사업이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져온 작품들이 이 펀드의 지원을 통해 완성되어왔다. 그중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와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자가 여행의 동료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처음 만난 사람들>, 아무 꿈도 없던 20살 청년이 우연히 단편영화에 배우로 참여하면서 마침내 자기의 꿈을 찾아 노력하게 된다는 <나의 노래는>, 감독이 직접 택시 운전을 하며 서울의 승객들을 관찰한 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혼합으로 찍어낸 서울의 소야곡 <택시 블루스>, 감독 본인이
아시아 영화인들의 연대,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겉보기에 부족할 게 없는 누군가가 솔로라고 하면, 다들 묻는다. “너 같은 애가 왜 애인이 없니?” 글쎄. 그 이유는 본인도 모른다. 얼굴 예쁘지, 몸매 착하지, 성격 밝고 귀엽지, 직업 근사하지, 덤으로 탱고까지 잘 추지. 서른살의 그레이(헤더 그레이엄)도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미스터리다. 뉴욕에서 함께 사는 외과의사 오빠 샘(톰 카바나)도 마찬가지로 솔로. 애인 대신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Chick To Chick>에 맞춰 탱고를 추던 두 남매는 서로에게 애인을 찾아주기로 한다. 먼저 애인을 찾은 건 오빠. 샘은 밝고 매력적인 여성 찰리(브리짓 모나한)와 눈이 맞아 사귄 지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하고 일주일 뒤 결혼식을 올린다. 들러리를 서게 된 그레이는 그들의 결혼식 전날 밤, 자신이 왜 근사한 남자친구를 가질 수 없는지 깨닫게 된다.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었던 걸까? 그녀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삼십년 만에 자신의 성
금기시된 사랑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화양연화>도, <해피투게더>도 아닌 13년 전쯤 보았던 <중경삼림>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영화다. 풋풋한 왕정문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틀어놓고 짝사랑하는 양조위를 물끄러미 쳐다볼 때, 금성무가 파인애플을 사모으며 애인을 기다릴 때, 자기 세계 안에서 점점 부푸는 이들의 사랑에는 감상적인 면이 적잖았지만 거기에는 매혹되고픈 고독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보면서 새삼 그 당시의 감정을 떠올린다. ‘현실이 너무 빠르게 변한 걸까, 왕가위의 세계가 멈춘 걸까.’ <중경삼림> 때보다도 노골적인 감상주의자의 길을 걷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의 필모그래프 중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일 뿐이라고 애써 위안하고 싶은 영화다.
2007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가 주드 로, 노라 존스, 레이첼 바이스
의아할 정도로 가볍고 퇴행적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첫 문단은 스포일러입니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에서 라자레스쿠씨는 죽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영화가 끝난 이후의 문제다. 영화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은 뇌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눕혀지고 머리가 빡빡 깎인 상태다. 힘없이 그가 고개를 돌려 얼핏 카메라쪽으로 시선을 두는가 싶을 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라자레스쿠씨는 영화에서 죽지 않았는데 왜 모두가 그의 죽음을 말하는가. 그러나 영화의 저편 혹은 그 이후의 일을 믿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힘이다.
분명 라자레스쿠씨(이온 피스큐테누)는 아침부터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저녁이 되자 신물이 넘어와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죄다 토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지나친 애주가이며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며 되는 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자립심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인간미 넘치는 호남형도 아니다. 성질도 까탈스럽다. 그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응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루마니아영화의 새 바람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
흔히 사람들은 숭례문을 두고 다른 이름으로 남대문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이는 일제가 숭례문을 비하해 부르는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태조 1년 도성 성곽을 완성하고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이니 이는 거짓이다.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보내었다.…정남(正南)은 숭례문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남대문은 그 창건 때부터 숭례문의 속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가뭄과 수해가 큰 재해였던 옛날에 숭례문은 특이한 기능을 하였다. 일종의 풍수상의 비보책으로도 쓰였던 것인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뭄이 들면 숭례문을 닫고 비가 많이 오면 숭례문을 열었다는 기록이 숱하게 나온다. 그리고 가뭄과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건립 때부터 숭례문 밖에 큰 못을 팠다. 성종 9년에 이미 숭례문은 낡을 대로 낡았던 모양이다. “숭례문이 아주 기울어져서 허물어질 지경이라면 고쳐서 짓지 않을 수 없으나, 그렇지 않으면 요사이 공역(工役)이 너무 잦으니, 내 생각에는 그냥 두었으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숭례문 행장(行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