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호장룡> 이전에도 트렌드는 있었다
최근 중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무협블록버스터의 세계를 얘기하면서 언제나 그 전환점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와호장룡>이다. 이처럼 <와호장룡>은 홍콩 무협영화라는 도저한 흐름 속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지만 그 이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흐름은 물론 있었다. 실내 스튜디오를 벗어나 산수의 풍경화 속에 놓인 호금전의 영화들이 그 오랜 원조라면, 서극과 호금전의 다소 불완전한 결합으로 완성된 <소오강호>(1990) 이후 <동방불패>(1991)를 그 정점으로 무수한 무협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신용문객잔>(1992), <절대쌍교>(1992), <신유성호접검>(1993), <동사서독>(1994) 등에 이르기까지 정장을 차려입고 총을 든 홍콩 누아르의 세계와 단절한 일련의 무협영화들이 홍콩영화계를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이인항 감독은 “나도 <동방불패> 이후 홍콩영화계에서 한창 무협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독벽신도>(1994)라는 무협영화로 데뷔했다. 그때는 그런 영화들이 하도 붐을 이뤄서 신인감독들이 쉽게 데뷔할 수 있었다”며 “내가 볼 때 최근의 이런 무협블록버스터 붐은 <와호장룡> 이후의 특별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유행이 늘 돌고 돈다는 점에서 홍콩영화계의 1990년대 분위기나 트렌드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 빌 콩이 <와호장룡>을 두고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던 것과 궤를 함께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와호장룡>의 영향은 적지 않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의 개방화 물결과 맞물린 원활한 중국 로케이션, 무협영화라는 로컬시네마에 외국자본을 유치했다는 사실, 그리고 ‘무협’과는 전혀 동떨어진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대만계 리안 감독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와호장룡>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점은 <와호장룡>이 일궈낸 어떤 ‘혁신’적 지점보다, 이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오던 홍콩 무협영화의 노하우가 성공적으로 접목됐다는 기존의 흐름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와호장룡>의 리안이 아시아 관객층을 넘어서기 위해 무협 장르의 컨벤션을 따르지 않고 무협을 보여주는 전략, 그리고 중국이라는 지엽적 국가성을 지우고 ‘강호’라는 상상적 개념을 택한 것은 무척 흥미롭고 신선한 시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실제로 <와호장룡>은 중화권 국가들에서 신통치 못한 흥행성적을 거뒀다. 아무튼 <와호장룡>이 이전 무협블록버스터들과 달리 할리우드를 등에 업은 초국가적 프로젝트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007 네버 다이>(1997)로 대역없는 액션연기가 가능함을 알렸던 여자배우 양자경의 존재, 이미 <매트릭스>(1999) 시리즈로 할리우드 진출을 성공적으로 일궈낸 원화평 무술감독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홍콩 출신 제작자 빌 콩이 할리우드 메이저 컬럼비아의 자본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리안의 신작’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원화평이 참여하는 다음 영화’가 바로 <와호장룡>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와호장룡>은 무협영화라는 홍콩영화계 고유 장르를 홍콩이라는 특정 지역의 경계를 넘어 확장시킨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장이모 감독이 <영웅>(2002)으로 홍콩영화계의 인력들과 조우한 뒤 나온 일련의 영화들은 딱히 홍콩영화나 중국영화로 지칭하기 힘들 만큼, 거의 ‘홍중 합작’ 혹은 ‘아시아 합작’ 영화에 가깝다. 그것은 분명 <와호장룡>이 성공적으로 보여준 중국과 홍콩의 경계 지우기와 자본의 다변화를 따르는 것이며, 여타 국가의 자본을 끌어왔음에도 100% 중국 본토에서 촬영된다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안에는 중국, 홍콩, 한국 사이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의 위치가 다르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가령 홍콩의 서극 감독이 만들고 한국의 보람영화사가 투자한 <칠검>(2005)은 홍콩의 필름워크숍이, 중국의 펑샤오강 감독이 만든 <야연>(2006)은 한국의 MK픽처스와 <집결호>(2007)를 만들기도 했던 중국의 화이브러더스가, 홍콩의 이인항 감독이 만든 <삼국지: 용의 부활>은 한국의 태원엔터테인먼트와 중국 최대 영화 제작·배급사인 차이나필름그룹이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떠오르는 영화는 바로 정소동 감독의 <진용>(1990)과 <모험왕>(1995)이다. 정소동은 당시 홍콩 반환 이전 줄기차게 중국 로케이션을 수반한 대작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특히 <진용>은 당시 홍콩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상하이의 청명상하도 세트장에서 중국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해 촬영됐으며 주인공이 바로 ‘배우 장이모’였다. 어쩌면 모처럼 메가폰을 잡아 <연의 황후>로 돌아온 정소동 감독은 현재 <영웅> <연인> <황후花> 등으로 최근 무협블록버스터 경향을 주도하고 있는 장이모 감독의 스승이자, 이러한 경향의 오랜 산파나 다름없다. 장이모가 연출한 위 세편의 무술감독 역시 정소동이 맡았으며, <진용>의 피터 파우 촬영감독은 이후 <와호장룡>을 촬영하게 된다. <진용>에 출연한 또 다른 무술배우 우영광은 이를 통해 홍콩에 진출했고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는 물론 <삼국지: 용의 부활>에 아들을 모두 잃은 위나라 장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진용>과 달리 근현대물이었던 <모험왕> 역시 이연걸 주연으로 중국 올 로케이션을 시도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과 대결을 펼친 예성은 이후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 세라프로 출연했으며, 곧 개봉할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에서는 성룡과 이연걸 모두를 노리는 악의 화신으로 출연한다. 기존의 홍콩 무협영화에서 보기 힘들던 스펙터클을 보여준 <진용>과 <모험왕>은 아쉽게도 흥행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와호장룡> 이전 지금의 길을 열어준 중요한 ‘합작’영화들임은 틀림없다.
“견자단의 새로운 액션을 기대하라”
<화피>를 제작 중인 세기가영 영화사 부사장 캐서린 란
올해 초 크랭크인한 <화피>는 1억2천만위안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작이라는 것 외에도 조미, 주신, 진곤, 견자단, 손려 등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것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조미, 주신, 진곤의 삼각관계에 견자단이 걸쳐 있는 설정으로 조미는 극중 남편 진곤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뺏기고, 견자단은 제수이기도 한 조미를 위로하며 멀리서 지켜본다. 여기서 주신은 그림 속의 귀신이다. <화피>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과 더불어 중국 팔대기서 중 하나로, 온갖 중국산 토박이 귀신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고전이다. <천녀유혼>의 원작인 <섭소천>도 여기 실려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견자단이 어떤 액션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 많은 팬들의 현재 관심사다.
-<화피>는 중국쪽 인력과 자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진가상 감독과 배우 견자단을 빼면 거의 중국쪽 자본으로 완성된다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 본토에서 장쯔이를 포함해 ‘여배우 4대천왕’이라 불리는 나머지 세명인 주신, 조미, 손려가 출연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진가상은 <데이지>(2006)에서 각색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했던 감독이라 그를 믿고 캐스팅했다.
-기존의 무협블록버스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반지의 제왕>처럼 두편을 동시에 찍었다. 아마 무협 대작을 만들면서 이런 시도를 한 건 우리가 처음이지 싶다. 똑같은 세트와 로케이션에서 제작비도 절감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그런 시도는 중요하다고 본다. 아직 제작 초기 단계라 특별히 편집한 동영상은 없는데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본격적으로 프로모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제작방식은 다른 무협 대작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연의 황후> 이후 견자단의 새로운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견자단은 <화피>에서 폭력적인 배드 가이로 등장할 예정이다. 물론 가슴에 사랑을 안고 있지만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은 악한의 모습이다. 견자단 스스로도 이 영화에 애착을 보인 건 한몸에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동위 무술감독과의 호흡도 좋다. 그가 용으로 변해 나오는 장면도 있고, 하여간 그의 팬들은 기대해도 좋다.
-최근 무협블록버스터들의 홍·중 합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특별히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중국과 홍콩을 구별하는 일은 드물다. 아무래도 홍콩 영화인들로서는 중국 쪽과 합작을 해서 중국영화로 인정받게 되면 개봉 등 이점이 많으니까, 더더욱 그런 경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영화들을 아시아영화 시장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 실제로 진곤 역할을 한국의 권상우나 원빈에게 맡기려고 접촉한 적도 있다. 또 음악감독이나 음악작업 역시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고. 일단 9월28일 중국 전역에서 1천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개봉하게 되고, 한국쪽 수입사도 정해지면 개봉에 맞춰 모든 배우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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