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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가 끝나고 1주일간 숭례문 때문에 난리가 났다. 어딜 가나 숭례문 화재가 화제가 됐고 입 달린 자는 모두 한마디씩 했다.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인데 한국의 상가 어디서나 그러하듯 술 취한 친척들의 고함소리도 여기저기 터져나온다. “이게 다 놈현 때문”이라는 관용구가 있는가 하면 “이명박이 시장 하면서 개방한 거 아니냐”는 성토성 발언이 나오고, “대체 문화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라는 한탄도 들려온다. 정치권에선 “국민 성금을 걷자”는 말을 했다 거센 반발에 휘말리는가 하면 인수위 정부조직개편안에 노 대통령 퇴임축하연까지 별 관계도 없는 일들이 일제히 숭례문 화재와 연관된 것처럼 들먹여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숭례문 화재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장르를 옮겨가는 느낌이다.
온 국민이 숭례문에 이토록 진한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가 어느 정도 냉소주의자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숭례문 화재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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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이나 충격적인 시를 읽으면 가슴이 멍해진다. 그 멍해진 감동을 추스르고 나면 마음속에는 단단한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이미지의 시대에 문학을 놓지 않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 내가 읽었던 소설이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진다. 상대방이 그 글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나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단단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있으므로 아무 상관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너와 나는 이미 그 소설을 떠나 하나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담론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논쟁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하여 이야기를 격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양상은 조금 달라진다. ‘너 그 영화 봤어?’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의 대답이, ‘아니’라면 ‘꼭 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봤어? 해봤어? 가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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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을 보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명장>의 오리지널 작품인 장철 감독의 <자마>(1973)는 그의 영화 가운데서도 유독 특이한 작품 중 하나다. ‘장철의 아이들’이라 할 수 있는 적룡과 강대위는 <복수> <신독비도> <권격> <보표> <무명영웅> <십삼태보> 등에서 언제나 형제 혹은 친구로 등장해 남성적 의리의 세계를 보여줬는데, <자마>에서는 처음부터 그 둘이 남남으로 등장해 결국은 대립 끝에 죽기 살기로 싸운다. 당시 그 팬들 사이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마>의 조감독이 바로 오우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오우삼이 장철에게 영향받은 점이 바로 그 무한 우정과 의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오우삼 스스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 늘 말해왔던 <첩혈가두>(1990)가 바로 그 의리의 부서짐을 그렸던 <
[오픈칼럼] <명장>을 보고 단상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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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로 목요일부터 시작된 북미 극장가는, SF액션 블록버스터 <점퍼>가 사로잡았다. 전세계 어디든 원하는 장소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 <점퍼>는, 스티븐 굴드의 동명소설을 <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더그 라이먼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첫주 수입 3385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헤이든 크리스텐슨, 레이첼 빌슨, 새뮤얼 L. 잭슨 등이 출연한다.
<점퍼>를 포함해 지난 주말 새로 개봉한 영화는 모두 4편이다. 채팅 테이텀이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줬던 <스텝업>의 프랜차이즈로, 주연배우와 감독이 모두 바뀐 <스텝업2 - 더 스트리트>(이하 <스텝업2>)와, 프레디 하이모어가 출연한 판타지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하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가 모두 개봉과 함께 5위 안으로 진입했다. 특히, <스텝업2
<점퍼>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로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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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은 대개 자기 머릿속에서만 유효하다. 매일 타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던 청년과 여고생이었던 누구의 로맨스 또한 그러했다. 아침마다 그녀는 그가 주는 첫 선물이 꽃일지 향수일지, 그와 가정을 꾸린 신접살림 인테리어의 메인 컬러는 핑크로 할지 화이트로 할지를 꿈꿨다. 그와 나눌 첫마디의 말부터 연인의 단계로 가기 위한 시나리오도 여러 편이었다. 또 어떤 날은, 청년이 지금 그녀를 보며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당시 여고생이 가진 지식의 범위에서 가장 새빨간 섹스신을 상상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야기들이 무색하게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넘쳐나던 출근 인파 덕에 매일 몇분씩 그의 콧김을 쐰 것이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아, 아련하여라.
이처럼 공상은 보통 공상에서 그치게 된다. 상상이라는 것이 강의시간표처럼 정연한 순서로 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현실성있게 느껴지던 치밀한 계획이라 할지라도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다보면
[내 인생의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 -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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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의 여름은 암울했고, 흉흉했으며, 또 끔찍했다. “3개월된 갓난아이부터 70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봐도 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는 스물여섯 청년은 세상을 향해 ‘재크나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한탕해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는 살인마 김대두는 전국을 돌며 피를 뿌렸고, 그 대가로 고작 “현금 2만6천원과 여자손목시계 1개, 고추 30근, 쌀 한말, 플래시 1개, 불루진 바지 1벌, 그리고 가짜 금반지 1개”를 손에 넣었다. “사흘마다 한번씩 살인을 저질렀으니” 사형을 언도받았어도 동정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대두 사건의 여파는 ‘한국판 돈환’ 박동명에 대한 세상의 비난보다는 작았다. 태광실업 대표 박동명은 시온그룹을 이끌던 거부 아버지를 둔 대표적인 재벌 2세. 애초 대검 특별수사가 문제삼았던 혐의는 위장 이민과 불법재산 해외 유출건이었다. 서민들조차 이민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
[한국영화 후면비사] 박동명 X파일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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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복을 입은 한 사내가 정육면체의 방에서 깨어난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듯, 여섯면에 달린 문들을 하나씩 열어보다가, 용기를 내어 그중 하나를 통해 옆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의 풍경도 그가 방금 떠난 공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큐브의 가운데로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사내의 몸을 치고 지나가는 짧은 금속성 굉음이 들린다. 사내의 얼굴에 빨간 줄이 생기고, 그 줄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뒤 사내의 몸은 마치 3D 입체 모델처럼 작은 조각들로 잘린 채 바닥으로 무너져내린다.
경험과 이성
영화는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거기에 갇히게 되었는지 밝히지도 않는다. 모두 죄수복을 입었으나 이렇다 하게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잠을 자다 끌려왔고, 어떤 이는 냉장고 문을 열다가 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떤 이는 이게 정부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다른 이는 어떤 사이코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외벽을 디자인했다는 건축가만이
[진중권의 이매진] 부조리가 합리주의를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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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 이야기’는 원래 19세기 중엽 런던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풍문이었다. 이발사가 손님들의 목을 따고, 기계장치 의자에 의해 시체가 아래로 떨어지면 아래층의 제빵사가 시체를 가지고 고기파이를 만들어 판다는 등 스위니 토드를 둘러싼 풍문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 시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스위니 토드에 의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익명의 손님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예외는 있지만,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비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극의 희생자들은 서로 연관성을 지니는 인물들이다. 어떤 비극에서도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티터스 안드로니커스>에는 스위니 토드 이야기와 비슷하게 살인과 육체훼손, 그리고 죽은 시체로 만든 고기파이가 등장하지만, 그 극의 어떤 인물도 아무런 의미없이 죽어가지는 않는다. 죽을 사람
[영화읽기] 사회 전체를 향해 면도칼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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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슈렉 일당의 짓궂은 몽둥이에 계속 얻어맞기만 하더니 오랜만에 느긋한 태도로 아직 죽지 않아, 하는 식으로 익숙한 코드와 발랄한 노래와 친근한 캐릭터들을 잔뜩 풀어놓은 <마법에 걸린 사랑>을 내놓았다. 물론 죽을 리가 없다. 디즈니가 팔아넘기는 상품들은 유구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며 금강석처럼 견고한 상품은 진정한 사랑의 키스(true love’s kiss)를 해줄 내 짝을 찾기만 한다면 그와 같이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꿈이다. 주인공 지젤은 이혼남이며 또 이혼 전문 변호사인 차가운 로버트에게 당신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어떻게 아느냐, 애인에게 노래를 불러줘서 알게 해주라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남자의 노래 따위, 술 마시다 간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 몰래 숨겨 가지고 들어온 맥주캔을 쥐고서 듣기 십상이고 게다가 거기서 ‘오빠’가 불러주는 윤도현의 <사랑2> 같은 느끼한 노래를 들으며 아, 오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어, That’s
[냉정과 열정 사이] 거짓말이어도 괜찮아, 기분 좋게 속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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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의 관계로 읽기
첫 번째 판본. 이게 가장 따분하다. 프랭크 다라본트와 스티븐 킹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합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의 소설을 프랭크 다라본트는 마치 그의 소설의 집사라도 된 것처럼 충실하게 옮겼고, <쇼생크 탈출>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다음 <그린 마일>은 (지루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스티븐 킹의 팬클럽이라면 이 판본은 충분히 따져볼 만한 게임이다. 우선 영화의 절반 정도를 따라갈 때까지 프랭크 다라본트는 매우 충실한 독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모디 부인이 점점 종교적 광신을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때부터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둘 다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무언한다. 스티븐 킹은 문자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희망’(hope)을 제시한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아들로 이루어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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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실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충분히 경고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건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가 아니라 지난 한해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영화를 한달 동안 몰아서 본 다음 중얼거린 질문이다. 제이슨 라이트먼의 ‘10대 소녀의 지옥을 웃기게 그린’ <주노>와 마이클 베이의 ‘10대 소년의 로망을 심각한 척 담은’ <트랜스포머>를 한해에 동시에 보게 되었을 때, 텍사스에 관한 두편의 ‘웨스턴 이후’의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비범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라드>와 조엘 코언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다음 뉴질랜드에서 온 앤드루 도미닉이 브래드 피트를 주연으로 연출한 ‘웨스턴’ <제시 제임스 암살>을 보게 될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
[전영객잔] 새롭게 사유하라!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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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월12일 화요일 4시
장소 CGV 용산
이 영화
화가 성남(김영호)은 우연히 유학생들과 어울려 대마초를 핀 것이 문제가 되자 파리로 도피하여 그곳 한인 민박집에 머무르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내(황수정)와는 매일 밤 1시에 통화를 하지만, 파리에서 그는 몇명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10여 년 전 애인 민선을 만나고, 민박집 주인이 소개해 준 현주를 따라 미술관에 가기도 한다. 현주의 룸메이트인 유명 미술대학 유학생인 유정(박은혜)도 만난다. 성남은 점점 더 유정에게 끌리게 되고 구애하게 된다.
100자평
'화가 김성남의 34일간의 감정 기록'. 홍상수가 트리트먼트에 부제로 붙여 놓았다는 이 말보다 영화 '밤과 낮'을 더 잘 요약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방점은 '감정 기록'에 있으며, 물론 그 감정의 드라마의 중심에는 '연애감정'이 있다. 영화의 '일기체' 형식은 느슨해 보이지만, 단단한 구조의 다른 형식이기도 하다. 말
홍상수의 <밤과 낮>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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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다이어리] <점퍼> ‘점퍼’가 되고 싶어요.
[헌즈다이어리] <점퍼> ‘점퍼’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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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 <데스노트 L>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를 만났다. 2007년 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배우. 그와 가진 15분간의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데스노트 L>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데스노트> 1편이 일본에서 개봉하고 스핀오프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출연 이야기도 오갔다. 그때는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연출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님으로 정해지고, 대본도 구체적으로 나오면서 조금씩 긴장되고, 부담도 느꼈다. 그러데 대본을 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L이 있더라. 지금까지 L은 계속 방에 틀어박혀서 냉정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듯 일을 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고, 스스로 움직이더라. 내가 생각하고 있던 L과 너무 다른 이미지여서, 나도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시나리오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들었다.
=납득이 안됐다기 보다는 모르겠더라. 어떻
"모든 만남이 공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