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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서던 5월4일 오후 프레스 센터 1층 게스트라운지. 미국실험영화의 숨은 거장 제임스 베닝과 대화하기 위해 두 사람이 동석했다. 그를 이 자리에 초청한 유운성 프로그래머 그리고 5일 제임스 베닝의 영화 <시선을 던지다>의 시네토크 모더레이터를 맡은 민환기 중앙대학교 교수. 제임스 베닝 영화의 전도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제임스 베닝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이다.
민환기│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
제임스 베닝│단편을 몇편 만들었고, 장편은 20편 정도 만들었다. 독학으로 시작했다. 전통적인 내러티브 영화가 아닌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궁금했다. 서서히 카메라 사용법을 알게 되면서 이런 저런 걸 시도하기 시작했다.
민환기│대학에서는 수학을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제임스 베닝│내가 카메라를 처음 접했을 때 학생은 아니
“모든 역사는 풍경에 어떤 방식으로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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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받은 큰 충격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때 그것을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른다. <라라 선샤인>은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작가 수진이 자신을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구원을 찾아가는 영화다.
새 작품을 준비하던 수진은 미술관에서 어느 화가가 한 여자를 마구 때리고 성폭행하다 죽은 사건에 흥미를 느낀다. 사건은 정당방위로 밝혀져 여자에게 무죄를 선언하였으나, 수진은 이 사건이 정당방위를 가장한 계획된 살인사건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녀는 사건의 피해여성이 어린 시절 화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피해여성을 자신이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만들어 낸 허구의 작품을 통해 대리적인 구원을 받으려는 수진은, 그러나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자신의 가설이 거짓된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허
고통과도 같은 구원, <라라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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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innipeg│2007│가이 매딘│79분│캐나다│오전 11시│메가박스 10
시간과 뗄 수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위니펙. 위니펙.” 영화 속에서 워낙 감미롭게 불리는지라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캐나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이곳 위니펙은 캐나다 출신 실험영화 감독 가이 매딘의 고향이자 그가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터전이다. 마니토바 주의 수도이며, 감독이 직접 쓰고 읽은 내레이션에 따르면 “몽유병이 전세계 평균의 10배에 달하는 곳”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 리듬감있는 내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료화면과 연출된 픽션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위니펙의 기원과 역사, 그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감독 자신의 과거가 한데 엮이는 이른바 ‘다큐 판타지 실험영화’다. 자장가처럼 낮은, 그러나 끊김없는 기차소리가 영화 내내 지속되는 가운데 관객들은 “언제나 겨울이고, 언제나 잠에 빠져 있는” 도시, ‘나의 위니펙’의 무의식을 탐험하게 된다
다큐 판타지 실험영화 <나의 위니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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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ielo, La Tierra Y La Lluvia│2008│호세 루이스 토레스 레이바│110분│칠레, 프랑스, 독일│오후 2시│전주시네마타운 8
영화가 눈을 뜨면 카메라가 늙은 나무 둥치를 훑어 올라간다. 카메라의 몰입은 치열하다. 나무가 나무 아닌 추상으로 보였다가 이윽고 다시 나무로 보일 때까지 응시는 지속된다. <하늘, 땅 그리고 비>에서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을 보는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눈길이 대략 이러하다. <하늘, 땅 그리고 비>는 다큐멘터리 <노 웨어 노 플레이스>가 전주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칠레의 토레스 레이바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이따금 사냥꾼의 총성이 귀를 찢는 컴컴한 숲과 변화무쌍한 하늘, 휑뎅그렝한 해변을 가진 칠레 남부 섬마을. 차가운 돌멩이처럼 응어리진 외로움과 무력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혼자 비를 바라보고 혼자 사과를 베어물고 혼자 라디오를 듣는다. 간혹 서로 속삭이는 위로의 말은 관객
인간과 환경의 섞임에 관한 영화 <하늘, 땅 그리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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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삼인삼색 2006’에 참여한 바 있는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의 장편 데뷔작 <카이라트>(1991)는 그의 영화적 아버지인 브레송적인 스타일에 누벨바그의 생동감을 겹쳐 놓은 듯한 작품이다. 1988년에 만든 자신의 단편영화 <한여름의 더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카이라트>는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구조이다”라고 말하는 오비르바예프의 영화관이 보다 명확히 제시되어 있는 작품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대학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방황하는 ‘카이라트’라는 젊은이의 불안정한 심리의 표상인 듯, 갑자기 날아온 돌에 유리창에 구멍이 뚫리는 수미상관적인 극의 구조 속에서, 동일한 장면을 반복시키는 등의 편집을 통해 일상적 시간의 흐름에서 일탈한 낯선 분위기가 극 전반을 휘감고 있다. 오미르바예프는 의도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우려 하는데, 빛과 음영의 대칭을 강조하는 흑백의 영상은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북돋우며
오비르바예프의 보다 명확한 영화관, <카이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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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is No Laughing Matter│2007│이구치 나미│137분│일본│오후 8시│전북대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담, 혹은 여교수와 제자의 비권력형 섹스 스캔들. 미술학교에 다니는 19살 미루메는 캠퍼스 벤치에서 담배 불을 나눈 여교수 유리가 얼마 전 기차를 놓쳤다며 차를 얻어 탄 사람이라는 걸 알아본다. 석판화 수업을 맡은 유리와 몇 번 더 마주친 미루메는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델을 선다. 호감은 섹스로 이어지고 미루메는 육체관계를 감정과 동일시하며 유리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스무 살 연하의 남자에게서 바라는 것이 분명한 여자에 비해, 솜털이 보송한 소년은 관계의 한계를 알기에 맹목적이다. 무작정 찾아간 유리의 집에서 남편의 존재를 알게 된 미루메는 실망한 뒤 멀어지려고 하지만 갈증만 더하고, 여기에 미루메를 바라만 보는 ‘톰보이’ 엔짱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더해진다.
<개와 고양이>를 만든 이구치 나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
비권력형 섹스 스캔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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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전동성당의 내부에 들어섰을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빛바랜 적회색 벽돌, 천장에서 밑으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아치의 곡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애처로웠다. 로마네스크 양식 특유의 섬세함 때문일 것이다. 순간 한 여인이 생각났다. 10여년 전, 이곳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했던 연인과 영원히 이별했기 때문이다.
영화 <약속>에서 조직폭력배 상두(박신양)의 자수 계획을 알게 된 희주(전도연)가 그의 손을 잡고 뛰어들어간 곳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눈물의 결혼식을 올리고, 사랑하는데도 헤어져야 하는 절절한 아픔을 신에게 토로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해야 할 공간이 이별의 슬픔을 달래는 장소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별의 공간으로 전동성당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순교지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슬퍼서 더욱 아름다웠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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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of the Grain│2007│압델라티프 케시시│151분│프랑스│오후 8시│CGV 5
지네딘 지단이 아니고서야, 프랑스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이 쉬울 리 없다. 북아프리카 출신 슬리만 베이지는 35년간 부두에서 일해왔지만, 일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근무시간을 축소 당하기에 이른다. 평생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이자 발기도 되지 않은 슬리만은 이혼한 전처의 일품요리 쿠스쿠스로 제2의 삶을 계획한다. 든든한 조력자도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애인의 딸 림이 팔 걷고 나서서 서류작성부터 행정에 이르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60세가 넘은 슬리만의 노후대책은 공무원들의 탁상행정과 전처와의 협업이 못마땅한 애인 때문에 삐걱거리고, 어렵게 얻은 1일 영업권으로 준비한 개업파티도 큰아들의 불륜 상대가 식당에 나타나면서 위기를 맞는다.
<생선 쿠스쿠스>는 이민자 가족이 ‘생선 쿠스쿠스’를 파는 선상 레스토랑을 개업한다는 휴먼드라마다. 상영시간은
사랑보다 강한 것은 습관 <생선 쿠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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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 신설한 워크 인 프로그레스 행사가 5월4일 3시 메가박스 8관에서 열렸다. 워크 인 프로그레스는 현재 제작진행 중인 국내외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모아 영화관계자 및 제작자들에게 쇼케이스할 목적으로 신설됐다. 역대 전주영화제에 참여했거나 올해 참여한 감독 중 8명의 작품이 대상에 선정됐으나, 이날 행사에서는 6편의 작품에 대한 쇼케이스가 열렸다. 라민 바흐라니의 <Goodbye Solo>, 김응수의 <나는 본다>, 라우라 카르데나스·이스라엘 카르데나스의 <Jean Gentil>, 이강현의 <보라>, 존 토레스의 <Moro2Moro>, 이창재의 <안녕 미미> 등이다. 행사는 작품의 일부를 상영하고 감독이 프리젠테이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후보작 감독 중 존 토레스는 개인상의 이유로 오지 못했다. 한편, 스튜디오 2.0, 루믹스 미디어, 골든 브릿지, 청년필름, 인디스토리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작품
워크 인 프로그레스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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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아르노 데스플레생│65분│프랑스│오후 5시│CGV 4
오래된 집은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자손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감독의 아버지는 몇 대에 걸쳐 살아온 집을 매물로 내놓고, 감독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 데스플레생 가(家)의 과거를 복원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복원 대상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감독의 할머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진술, 자필 편지, 초상화 등을 통해 현재로 소환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아버지나 감독에게는 할머니를 떠올릴 만한 어떤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두 살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기에, 아버지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그녀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다. 데스플레생은 할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열렬한 애정을 <현기증>의 남자주인공 스코티가 아름다운 매들린에게 매혹됐던 감정과 비교한다. 그것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모호한 연모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도 사랑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데스플레생 가(家)의 과거 복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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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한복판, 굵직한 행사들이 분위기를 달궜다. 국제경쟁부문 상영작 <캡틴 에이헙>의 주연배우 드니 라방이 어제 오후 2시 쌈지마켓 2층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퐁네프의 연인들> 등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질문이 오갔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맺어진 김기덕 감독과의 인연도 언급됐다. 어제 오후 8시반부터는 <실록 연합적군> 상영 뒤 와카마쓰 고지 감독과 이명세 감독의 ‘씨네토크’가 진행됐다. 이명세 감독은 제작방식, 캐스팅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객석으로부터는 심도있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빅 이벤트, 축제 분위기를 달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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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관련 변동사항 참고하세요. 오늘 오후 2시 전주시네마 8관과 오후 8시 프리머스 4관에서 각각 진행되는 <하늘, 땅 그리고 비>와 <불법 카센터>의 GV가 취소됐다. 오후 2시와 5시 프리머스 2관에서 상영되는 <애국자>와 <감정의 힘>의 GV는 영화 시작 전 평론가 울리히 그레고르의 작품 설명을 말한다. 이후 별도의 관객과의 대화는 진행되지 않는다.
GV 변동사항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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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된 한국 단편은 총 610편이었다. 작년의 512편보다는 무려 20% 가량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역대 전주영화제 사상 가장 많은 단편이 출품된 것이다. 덕분에 선정 위원들은 겨울 내내 단편영화만 봐야 했다. 제작비가 많은 드는 필름영화가 옛말이 된 디지털 시대에 젊은 감독들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꽤 긴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제작비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의 선택이었으리라. 이래저래 겨울방학은 단편과 씨름하며 보내야만 했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단편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슴 설레기도 했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올해 전주에서 상영되는 단편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경향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이후 남한 사회에 등장
비정치 세대의 현실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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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이 영화 <캡틴 에이헙>으로 전주영화제를 찾아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퐁네프의 그 남자’ 전주에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