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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영화제에서, 7시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롱테이크의 새로운 미학을 선보인 벨라 타르, 난해한 실험성으로 급진적인 영화의 예시를 제시한 알렉산더 클루게 등은 도전 자체가 의미있는 거장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 제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보지 않은 모든 영화는 무용지물이다.
가시적 세계 그 너머로 침투하는 시네아스트, 벨라 타르 회고전
홍성남/ 영화평론가
옴니버스영화 <비전스 오브 유럽>(2004)에 포함된 벨라 타르의 작품인 <프롤로그>는 빵을 얻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단 하나의 숏 안에 담아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5분짜리 영화는 어쩌면 타르 영화의 요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속의 무게를 담으려 하고 인물과 세계가 만나서 빚어지는 어떤 공기를 포착하려 하며 결국에는 가시적인 세계 그 너머로 침투하려는 의지를 가진 카메라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
[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4] 巨匠本色, 거장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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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의 장점 중 하나는 진보적인 실험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해왔다는 점이다. 모두가 어려운 영화일 거라고? 그렇지 않다. 세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면 혹은 딱딱해진 지각과 감각이 만개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아래의 영화들을 추천한다. 자, 겁먹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스크린에 몸을 맡기자. 그럼 신천지가 열린다.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Profit Motive and the Whispering Wind
2007년 │ 존 지안비토 │ 58분 │ 미국
정치적이며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는 존 지안비토의 신작. 영화는 인적이 드문 묘비들과 미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비들을 무수히 비춘다. 그곳에는 바람이 불고 그 바람 소리를 따라 과거 역사는 현재로 불려온다. 이 영화의 시선은 이미 죽어버려 땅속에 묻힌 것들을 의도적으로 오래 응시함으로써 지금 다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시선의 회복을 촉구한다. 그 공간에 관한 관조적 시선
[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3] 驚天動地, 실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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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다 낯선 이름들이다. 하지만 지난 한해 이런저런 영화제를 순회하며 세계영화의 중심으로 곧 들어올 신예들이라고 판명된 미래의 명단이다. 이중 당신을 매혹시킬 새로운 이름은 누구일까. 영화제의 재미란 낯선 이름과 처음 보는 영화에서 나의 공감을 발견해보는 것이기도 할 텐데, 그렇다면 다음의 작품들은 당신을 시험에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늘, 땅 그리고 비> The Sky, the Earth and the Rain
2008년 │ 호세 루이스 토레스 레이바 │ 110분 │ 칠레, 프랑스, 독일
잊을 만하면 사냥꾼의 총성이 귀를 찢는 어두운 숲과 변화무쌍한 하늘, 휑뎅그렁한 해변을 가진 칠레 남부 섬마을. 차가운 돌멩이처럼 응어리진 외로움과 무력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세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그들은 혼자 걷고 혼자 비를 바라보고 혼자 사과를 베어물고 혼자 라디오를 듣는다. 간혹 서로 속삭이는 위로의 말은 관객에게까지 들리지 않는다.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며 병
[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2] 刮目相對, 신성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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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The Obscure
2007년│ 류우에 │ 87분 │ 중국
오우삼의 <적벽대전>, 펑샤오강의 <집결호>, 더 거슬러올라가면 장이모의 <인생>. <소설>을 연출한 류우에의 경력은 촬영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자오선생> 외에도 <미인초> <십삼괘포동>을 연출했으며 <소설>은 그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그리고 류우에는 네 번째 연출작 <소설>에 이르러 이를 데 없이 비범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마침내 탄생시켰다. 중국의 유명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생과 시와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 그 자리에 진행 보조원으로 자리한 한 여자가 있다.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던 영화는 그 여자가 문득 이 호텔에서 지난 과거의 남자를 재회하면서 허구의 이야기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둘은 서먹함과 반가움으로 재회를 기념하며 아이같이 즐거워하지만 밤이
[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1] 名不虛傳, 작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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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에 다시 영화의 빛이 축복처럼 퍼진다.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1일부터 9일까지 그 빛을 뿌린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기존의 ‘인디비전: 국제경쟁’ 부문의 명칭을 ‘국제경쟁’으로 바꿔 신인들의 경쟁을 독려하는 한편 자유, 독립, 소통이라는 전주만의 대안적 기치는 여전히 고수함으로써 변화와 전통의 균형 감각을 자랑하고 나섰다. 예년에 비해 많은 1204편이 출품됐으며, 그중 40개국에서 온 195편의 알찬 상영작을 만날 수 있다. 튼실한 프로그램 외에도 헝가리의 거장 감독 벨라 타르, 프랑스의 유명배우 드니 라방 등 각국의 해외 게스트도 속속 전주를 찾을 예정이다. 영화의 고을에서 열리게 될 대안의 잔치를 어떻게 즐겨야 할까. 그 즐거운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 다섯 가지 키워드로 상영작을 미리 소개한다. 작가, 신성, 실험, 거장, 미지의 세계.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에 빠져도 즐거우리라.
웰컴 투 전주! 대안의 잔치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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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여서 얻는 게 뭐죠?”_<데스워치> │ DVD 출시
<GP506>의 한핏줄 영화라고 부름직하다. 1차 세계대전 중 폐허가 된 독일군의 참호를 발견한 영국군 중대가 그 안에서 점차 미쳐가며 서로를 죽인다는 내용의 공포영화.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젊은 병사로 등장하는 벨은 동료들에게 연약한 낙오자 취급을 받지만, 결국 모두가 미쳐가는 가운데에서도 칼부림의 광기에 휘말리지 않는 인물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간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참혹한 도살장. 이미 그곳에서 소년의 앳된 얼굴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 아빠도 나보고 미쳤다고 말하는걸.”_<춤스크러버>
<아메리칸 뷰티>보다 7℃ 정도는 더 싸늘한, 미국 중산층에 대한 냉소와 성장영화의 형식을 기묘하게 반죽해놓은 작품. 가전제품 광고처럼 모두가 멋들어진 집에서 우아하게 살아가는 교외의 한 마을. 부모들이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동안, 아이들은 로커룸 앞에서 마약을 나누며 그들만의
놓치면 아쉬울 제이미 벨의 미개봉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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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와 닮은꼴의 유년기
제이미 벨의 유년기는 <빌리 엘리어트>와 묘하게도 닮은꼴이었다. 벨의 어머니는 열여섯의 나이에 그를 임신했고,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를 떠났다. “60년대에 발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영국의 변두리 시골 마을에서 홀어머니의 손에 자라난 벨은 빌리처럼 허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소년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춤에 매혹된 집안이었다. 댄서 출신의 할머니, 이모, 어머니를 둔 벨은 동네 소녀들의 춤 수업을 흘끗거리며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큰 소리를 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봐 토슈즈를 바지 속에 숨긴 채 발레를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1999년, 2000 대 1의 경쟁을 제치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낙점을 받은 소년은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감히 상상치도 못했을 압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러셀 크로와 톰 행크스를 제치고 BAFTA(영국 아카데미: British
<빌리 엘리어트>에서 8년 뒤, <할람 포>의 배우 제이미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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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년을 기억한다. 작은 뼈마디가 금세라도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릴 것처럼 온몸을 뒤흔들고 중력을 거부하듯 세차게 날아오르던 소년, 빌리 엘리어트. 열망과 두려움, 환희와 울분을 격정적인 몸짓에 응집해 폭죽처럼 터뜨렸던 열네살의 제이미 벨은 2000년 스크린이 발견한 영롱한 보석이었다. 그리고 2008년. 어느덧 20대에 들어선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이후 처음으로 고향땅 영국으로 날아가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제목이 곧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할람 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무 위 오두막에 틀어박힌 채 살아가는 할람은 어머니의 드레스를 걸치고 립스틱을 바른 채 망원경으로 세상을 훔쳐본다. 새어머니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증오하면서도 부글대는 호기심과 성적 열망으로 관계를 맺는가 하면, 고향에서 도망쳐나와 머무르게 된 런던에서는 시계탑 뒤편의 다락에 몰래 기거하며 어머니와 꼭 닮은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본다. 찬란한 희열로 허공을
[제이미 벨] 빌리, 이젠 어른이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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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계상은 예상 밖이다. 낯 가리지 않는 서글함, 툭하면 눈썹을 씰룩거리는 요상한 표정, 말을 거르지 않는 솔직한 태도. 하긴 영화들도 그랬다. 희망이 엇나간 청춘의 <발레교습소>, 오랜 연애의 구질함들이 들춰지는 <6년째 연애중>, 바닥까지 한심한 호스트 인생 <비스티 보이즈>. 단순하고 밝은 삶은 그 주위에 없었다. 직선적인 영웅물보다 흐트러진 사람 이야기가 좋다는 올해 만 서른의 늦깎이 연기자. 그렇지만 충무로의 신선한 얼굴. 그리고 범상찮은 연기력의 동갑내기 배우 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힘. 2006년 군 제대 뒤 쉬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온 그는, 단연 주목할 만한 젊은 배우 중 하나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다고 했는데, 어땠나.
=영화로선 괜찮았고, 배우로선 좀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했는데 편집된 부분들이 있어서. 지원(윤진서)과의 이야기들이 많이 잘렸더라. 그래서 승우가 왜 지원에게
[윤계상]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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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4월22일 4시30분
장소 스폰지하우스 명동
이 영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6여년의 시간을 담는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소녀 마르잔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좇는다. 부유하고 진보적인 부모 밑에서 자유롭게 자란 마르잔은 이소룡과 마이클 잭슨을 숭배하고 감자튀김을 사랑하는 소녀다. 하지만 독재 왕정을 몰아내고자 했던 혁명의 이상이 이슬람 근본주의로 교체되고, 이라크의 침공으로 나라가 전화에 휩싸이면서 마르잔은 부모님의 품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2007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100자평
매혹적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뽐내듯이 최첨단의 기법을 동원해 밋밋한 교훈을 전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정반대로, 2차원의 흑백이라는 소박한 그릇에 복잡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 선사한다. 한국관객들에겐 생소하고 난해할 이란의 현대사는 소녀의 시선을 통해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순간들로 생생하
차도르 쓴 펑크 소녀 <페르세폴리스> 언론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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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투미>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며 형무소에서 백악관까지 간
라디오의 대통령 '피티그린'을 그린 영화로
1970년대 미국사회와 그 속에서 변혁기를 맞고 있는
흑인사회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영화로
오는 5월 1일날 개봉 할 예정이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를 클릭해주세요
[개봉작 NEW] <톡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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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재현 지수 ★★★★
라디오 다시듣기 희망 지수 ★★★☆
백인 출연 지수 ★
라디오 방송국 WOL의 PD 듀이(치웨텔 에지오포)는 교도소에 수감된 형의 면회장에서 우연히 교도소 최고의 인기 DJ 피티(돈 치들)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피티는 석방 뒤 막무가내로 듀이를 찾아가 라디오 DJ를 시켜달라며 방송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마침 새로운 DJ를 물색하던 듀이는 방송국장 손더링(마틴 신)까지 속이고 피티에게 기회를 준다. 문까지 꼭 걸어 잠근 채 방송을 시작한 피티는 울렁증에 시달리고 과격한 언사로 손더링을 괴롭게 하지만, 밀려오는 청취자들의 전화 연결 요구에 손더링은 피티의 DJ 자리를 보장한다. 지나치리만큼 솔직담백한 피티의 입담은 점점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며 사람들을 들썩이게 하고, 듀이의 꿈이었던 TV 토크쇼 출연까지 이루어진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국 마이크에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피티가 방송 사고를 내면서 둘은 갈라서고 만다.
<톡투미>는 &l
흑인영화의 유구한 전통 <톡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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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의 정력지수 ★★★
에로 마니아들의 반가움 지수 ★★★★
아낙네들의 육덕스러움 지수 ★★
아낙네의 음기가 천지를 호령하는 어느 마을이 <가루지기>의 무대다. 떡장수 변강쇠(봉태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마을사내들 중에서도 제일 가는 부실남. 속된 말로 “껍땅만 남자일 뿐 속 빈 강정”이다. 과부할멈(윤여정)에게 동정을 뺏기는가 하면, 여러 아낙네들에게 물건을 희롱당하며 하루하루를 굴욕으로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마을로 흘러들어온 달갱(김신아)에게 마음을 뺏긴다. 하지만 고자나 다름없는 강쇠에게 사랑은 언감생심 꿈꾸기 힘든 그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강쇠는 우연히 만난 백발도사(송재호)에게 비책을 얻고 그의 도움으로 ‘힘세고 오래가는’ 마을 제일의 사내로 거듭난다. 오줌줄기로 산불을 진압하고, 힘센 절구질로 아낙네들의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를 아낙네들이 가만둘 리 없는 건 당연한 일. 강쇠의 몸부림에 신음으로 화답하던 아낙네들은 저마다 선물을 싸들고 그의 집에 줄
21세기판 변강쇠전 <가루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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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관찰력 지수 ★★★★
내러티브 밀도 지수 ★★
감독과 배우(특히 하정우)의 호흡 지수 ★★★★
삶이 이처럼 쉬워도 되는 걸까. 골프 연습장이며 고급 헬스클럽을 오가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승우(윤계상)는 청담동의 잘나가는 호스트다. 그에게 쿨하게 연애를 걸어오는 지원(윤진서) 역시 그와 동종업계 종사자인데 알고 보니 월세 350만원짜리 집을 감당할 만큼 잘나가는 몸이다. 승우의 누나와 동거 중인 또 다른 호스트 재현(하정우)은 당장 내일의 생활비도 없는 몸이지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 일보 직전이다.
삶이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걸까. 한순간에 망해버린 집안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승우는 잠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전전긍긍할 정도로 아끼는 여자친구를 한시도 믿지 못한다. 언제나 당당한 지원은 앞날을 향한 가늠에 누구보다 능함에도 불구하고 어제까지 한 침대를 썼던 이의 믿음 하나를 얻지 못해 대낮에 대로변에서 무참히 맞는다. 천냥 빚에 발목 잡힌 재현은 당장 오
돈이라는 이름의 욕망에 눈이 먼 이들 <비스티 보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