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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스타이프에 대해서는 지난 몇년간 좀 애증을 갖고 있었다. 저평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좀 재미없었던 ≪Around the Sun≫ 이후 이 남자가 뭘 하고 있었느냐. 그는 이러저러한 패션쇼의 제일 앞줄에 앉아 나이 어린 스타들이랑 담소를 하는 것으로 소일했고, 영화 프로듀서로서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값비싼 식사를 하러 다녔고, 마크 제이콥스의 신상 캠페인 모델을 했다. 그러나 얼터너티브 록의 선구자가 얼터너티브 패셔니스타가 됐노라 푸념하는 사이 R. E. M의 14번째 앨범 ≪Accelerate≫가 등장했다. 이번 앨범은 확실히 지난 몇년간 R. E. M이 들려준 사운드와 다르다. 초창기의 얼터너티브 사운드로 복귀했다는 뜻이다. U2와 카사비앙 같은 밴드와 동업한 프로듀서 잭나이프 리의 입김이 강렬해진 덕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버 프로듀싱이 철저하게 배재된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은 아주 짧고 세다. 앨범 전체가 34분밖에 안 된다. 마지막 곡이 끝나는 순간 아쉬워서 아
초창기 얼터너티브 사운드로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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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야. 이 순간은 바로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 공연의 시작을 앞에 두고 세 광대가 말다툼을 벌인다. 전쟁, 예술, 사랑의 화신인 그들은 자신이 대변하는 가치를 공연의 소재로 선택하려 하지만 무대 막이 오르자 어쩔 수 없이 세 가지가 모두 들어간 이야기를 펼쳐낸다. 세 광대가 선사하는 동화의 주인공은, 음악가 한스. 전쟁이 발발하자 피아노를 치던 손으로 총을 잡은 그는 부상을 입고 홀로 남겨진다. 길을 헤매다 우연히 적군과 마주친 그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지만 외로움은 이들 사이에도 우정을 이끌어내 두 남자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가 어느 한적한 도시의 작은 카페라고 상상해보는 건 어때?” 적군의 이야기 속 춤추는 여인 마리. 적군의 여동생이라는 그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그 눈부신 광경에 한스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숨을 조여올지라도 예술과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환상동
세 광대가 전하는 아름다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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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만화 수용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지만 유럽은 여전히 우리에게 만화 변방이나 다름없다. 일본 ‘망가’에 길들여져 유럽 만화의 정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들의 편식증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기준을 한참 뛰어넘는 선정적인 표현도 유럽 만화가 소개되지 못하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서서히 불고 있는 유럽 만화의 출간 붐은 균형있는 만화섭식을 위한 반가운 소식이다. 세기의 모험가 ‘코르테 말테제’ 시리즈로 유명한 위고 프라트가 글을 쓰고 에로틱 만화의 거장 밀로 마나라가 그림을 그린 <인디안 서머>는 적당히 야하면서도 유럽, 특히 이탈리아 만화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어 유럽 만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없다. 특히 ‘예술의 경지’에 이른 밀로 마나라의 에로티시즘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인디안 서머>가 밀로 마나라의 작품 중 가장 점잖은(?) 작품이라니 아쉬울 따름. 혹 말초적인 자극만 가득하리라 예단하는 독자들이 있을
이탈리아 아트 카툰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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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으로 ‘미학’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저자가 이번에는 강의안을 토대로 서양미술사를 개관했다. 단호하고 투명한 글투는 여전하고, 잔잔한 시야에 이미지부터 냅다 던져 논의에 시동을 거는 화법도 변함없다. <서양미술사I>은 걸작들의 면면을 시대순으로 열거하고 예술제도의 변화를 부언하는 양식사를 배제한다. “피상적 사실의 홍수”로 독자를 헛배 불리기 싫어서다. 물론 겉보기에 이 책은 고대부터 모더니즘까지 차근히 순차 편집된 통사다. 그러나 내용은 형태와 색채, 투시법 등의 조형 원리와 역사적 헤게모니를 번갈아 장악한 이질적 예술 충동에 대한 해명이다. 저자는 각 장의 화두와 관점을 과거 연구자들로부터 빌려왔는데 이는 <서양미술사I>을 미술에 관한 책인 동시에 미술사관(史觀)의 역사로 읽게 한다. 예컨대 파노프스키는 비례론과 원근법, 아순토는 중세인의 미감을, 알베르티는 <회화론>을 ‘제공’
동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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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의 가장 도발적이며 아름다운 재해석.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영국의 캐논게이트 출판사가 기획하고, 한국을 비롯한 33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신화총서>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사고>로 휘트브레드상을 수상한 스코틀랜드 작가 알리 스미스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중 이피스 신화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소설이다. 소녀를 사랑한 소녀가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소년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의 이피스 신화는 <소녀, 소년을 만나다>에서 영국의 레즈비언 커플, 앤시아와 로빈에게 투영된다. 실제 레즈비언으로 반려자인 새라 우드와 20년간 함께 살아온 알리 스미스는 성적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에 가해지는 일상적 억압들을 꼬집는 한편, 스코틀랜드 지역의 민간 신화와 설화를 접목해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 너, 우리, 그들로 이어지는 시선의 교차는 사려 깊고, 고대 신화를 현대인의 삶속에
심장을 떨리게 할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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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상황의 마스터키. 키보드 맨 왼쪽 위에 위치한 [Esc] 버튼은 영어단어 Escape(도망, 탈출, 벗어나기)의 줄임말이다. 한겨레 매거진 <Esc>의 콘텐츠를 엮어 만든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은 유난하지 않게, 그러나 특별하게 놀기를 권하는 책이다. 트렌디한 카페나 클럽을 즐기라는 뻔한 제안이 아니다. 재미없인 못산다는 <Esc> 필자들이 까다로운 감각의 체로 걸러낸 실용정보의 정수다. 일상에서 재미찾기가 이 책의 골자인 만큼 소재도 일상적이다. 공항, 테마파크, 동물원, 홍대 앞, 레지던스, 파티, 문방구, 노트북, 부엌, ‘세컨드 라이프’, 속옷, 카메라, 와인 등.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코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방법 7가지와 일상 속에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방법 7가지가 차례로 펼쳐진다. 공항에서 잠자기, 세계의 폭탄주 만들기, 안전운전을 위한 수칙,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제과제빵 용어사전 등은 14가지 제안에 따라오
특별하게 놀고 싶은 사람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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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외우기 힘들었던 것들은 멜로디나 장단을 넣어서, 또는 노래에 담아 외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잘 외워졌다. 광고도 다르지 않다. “브랜드를 잘 기억하도록 노래로 만들어라!”
장동건이 빈 욕조에 몸을 담그고 노래를 부른다. 천하태평 긍정적인 인생관을 담고 있어 더 매력적인 이 CM송, 일명 ‘되고송’ 은 최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패러디되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의 리더십을 노리고 TV에만 월 70억원이라는 업계 최고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이슈를 만들었던 KTF ‘쇼’에 비해 모호하고 어려웠던 SK텔레콤의 T가 이번 광고로 일단 쉽고 편해졌다. 광고가 히트했는지의 바로미터는 ‘패러디가 활발히 되느냐’인데 그런 점에서 T의 이번 광고는 확실히 떴다.
광고에 사용되는 음악은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광고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면서 흐르는 BGM(Back ground music), 광고 끝부분에 노출되는 브랜드명에 멜로디를 넣어 쉽게 기억시키는 징글(
[CF 스토리] 노래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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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밤이 더 뜨거워진다. KBS2 <미녀들의 수다>와 MBC <놀러와>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SBS <더 스타쇼>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4월28일 첫 방송되는 <더 스타쇼>는 최수종과 박수홍이 호흡을 맞춰 다양한 영역의 스타들을 만나는 토크쇼. 최수종은 SBS <최수종 쇼> 이후 4년 만에 토크쇼 진행자로 나선다. <더 스타쇼>는 정통 토크쇼다운 면모로 신변잡기식이 아닌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스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초대손님들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스타들을 초대한다. 첫회 손님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인 심형래에 이어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축구선수 박지성, 가수 보아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끼 많은 공처가’ 최수종이 ‘국민 MC’ 유재석, ‘미녀들의 오빠’ 남희석을 상대로 얼마만큼 시청점유율을 뽑아낼 수 있을까? 승부 결과는 화요일 오전 인터넷 뉴스로 확인하시라!
[이주의 추천프로] 최수종, 도전장을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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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시티>의 폐지에 앞서 슬며시 사라진 드라마 장르가 있다. 바로 청소년 드라마다. 지난해 KBS2 <최강 울엄마>와 SBS <달려라 고등어>를 끝으로 청소년 드라마는 맥이 끊겼다. 드라마의 성격과 방송시간대에 견주어 시청 타깃층이 모호하고,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였다. 청소년 드라마는 표면적으로 고아라, 하지원 등 신인 연기자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지만 내용적으로도 가치가 충분했다. 가출·왕따·자살·동성애 등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그들의 시선으로 풀어내 세대간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지원으로 단막극 형식으로나마 청소년 드라마가 제작돼 가뭄 끝 단비 역할을 했다. 지난 2월, 다문화가정과 왕따를 소재로 방영한 MBC <나도 잘 모르지만>에 이어, 5월7일 KBS1에서도 단막극 <정글피쉬>(시간 미정)가 전파를 탄다.
<정글피쉬>는 2007
[TV] 청소년 드라마는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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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이념적 보수에서 시장적 보수로 변신했다. 한마디로, 수구꼴통의 오합지졸들이 시장주의 탈레반의 군대로 정연한 대오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 민주당 세력은 여전히 과거에 한나라당을 물리쳤던 마법의 공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민주와 통일이라는 80년대 이념으로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결정적 오류다.
‘민주’의 과제는 민주적 정권교체(김대중), 참여민주주의(노무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통일’의 과제 역시 굴곡은 있었지만 개성공단, 북한관광, 정상회담 등 가시적 성과를 내며 진전돼왔다. 이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자 대중은 다른 욕망을 갖게 됐다. 상부구조에 눈을 빼앗긴 사이에 삶이라는 하부구조가 망가진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빈틈을 치고 들어왔다.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민주)과 민노당(자주)의 부진은 여기서 비롯된다. 민주당은 아직 패배의 원인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왜 졌는지 모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미안함과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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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노래는… ‘되고송’이다. 그 잘나신 얼굴로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면 근심이 사라진다. 후렴부는 주문처럼 입에서 맴맴 돌고 심지어 개사까지 내 멋대로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의학적으로 음악치료가 있다던데 혹 이런 효과일까. 장동건이 한 이동통신 CF 광고에서 부른 ‘되고송’은 이상한 힘이 있다.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긍정의 힘을 발산한다. 이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이번주 마감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정말 이번주는 죽어라 일했다. 제2창간이란 거대한 미션 아래 몇달 전부터 준비해온 개편작업은 씨네리의 시계를 멈추게 할 정도였다. 결국 13년 씨네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기사를 만들었다. 물론 인력보강 없이(밑줄 쫙. 사장님 보세요~). 취재팀은 원고 쓰느라 허덕이고, 사진팀은 촬영하느라 허덕이고, 디자인팀은 디자인하느라 허덕이고, 이 모든 팀의 중심고리인 편집팀은 편집하느라 허덕이다 각 팀들이 놓친 부분까지 챙기다 죽을 뻔했다.
이럴 때마다 혼자 흥
[오픈칼럼] 생각대로 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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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적벽대전. 1962년 추석, 극장가의 형국이 그러했다. 을지극장엔 <화랑도>가 진을 쳤고, 국제극장엔 <인목대비>가 납시었다.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국도극장에 성벽을 쌓았고, <칠공주>는 피카디리극장을 차지했다. 그리고 명보극장엔 <대심청전>이 판을 벌였다. “제작비가 1천만원이 훌쩍 넘는” 대작영화들이 한날한시에 극장가를 분할 점령했다. 게다가 5편 모두 ‘색채(컬러) 시네마스코프’라는 간판을 앞세운 사극이었다. 추석 프로에 “사운을 건” 제작사들의 혈투는 1961년 <춘향뎐>과 <성춘향>이 벌인 대국만큼 후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신경전은 몇 곱절 이상이었을 것이다. “전례없는 제작비의 경쟁이… (중략)… 한정된 국내시장… (중략)… 에서 어느 정도 승산을 가질 수 있을지 테스트 케이스가 될 것이다.”(<동아일보> 1962년 8월28일)
1960년대 들어 급부상
[한국영화 후면비사] 충무로 스펙터클에 목숨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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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시사회를 보고 왔습니다. 처음 접한 귀여니 영화였는데, 저에겐 그냥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영화가 ‘멋진 남자주인공’으로 내세운 놈들이 다들 견딜 수 없는 막장들이었다는 거죠. 마조히즘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섭니다.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다 불쌍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가장 딱했던 건 여자주인공을 맡은 차예련이었습니다. 전 몇년 동안 습관적으로 이 배우의 경력을 지켜봤죠. 이유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전 1편을 제외한 모든 <여고괴담> 시리즈의 졸업생들에게 습관적으로 관대해요. 그냥 다들 ‘우리 편’ 같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굉장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어요. 전 <구타유발자들>의 시사회 때 기자들이 다 나가고 텅 빈 상영관 객석에서 동료 출연배우들과 함께 우두커니 서 있던 그 사람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충격을 먹은 적 있습니다. 딱 에드워드 고리가 그린 뱀파이어가
[듀나의 배우스케치]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차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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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영화는 매혹적이다. 영화제란 할리우드와 동아시아, 유럽 몇몇 나라에 한정된 영화 메뉴가 간만에 다양화될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 베트남, 유구한 역사 실크로드의 기억을 간직했지만 소련 연방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젊은 국가들이 포진한 중앙아시아로 발길을 돌려보자. 익숙한 명성을 확인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것이 발견의 기쁨이다.
1990년대 포스트 소비에트를 엿보다, 중앙아시아영화 특별전
안시환/ 영화평론가
‘중앙아시아 특별전: 포스트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5개국 영화’는 구소련 해체 뒤 독립국가로 분리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장편 10편과 단편 2편을 소개한다. 소련 해체 이전 작품과 2000년대 작품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해체 이후 1990년대 작품이 중심이다. 초청작의 인지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작품은 카자흐스탄 초청작이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6’에 참여한 바 있는 다레잔 오미
[전주영화제 미리 보기 5] 前代未聞, 미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