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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백골단을 기억할 것이다. 일단 끌려온 전경 대원들과는 골격 자체가 달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당시에 무술 유단자로 구성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전경들이야 늘 대열을 이루고 있어 상대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저쪽에서 최루탄을 쏘면, 이쪽에서는 짱돌을 던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맞서기에 전경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골단은 다르다.
그들의 임무는 시위대의 체포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대열에서 튀어나와 시위대로 돌진할 수 있었다. 무거운 진압복을 벗고 하얀 헬멧에 경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몸놀림이 전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신체조건은 얼마나 좋은가? 질주를 하는 속도 또한 거의 전국체전에서 보는 운동선수 수준이었다. 게다가 한번 붙잡히기라도 하면 가해지는 욕설과 구타의 남다른 차원이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백골단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부활한 모양이다. 뉴스를 보니 새로이 ‘경찰관 기동대’라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부활하는 백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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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스는 족히 넘을 일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 밀린 일들이 다 소화되기도 전에 다음 일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잡동사니들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심지어 텔레비전 한대는 현관에 내앉았다. 꼼꼼히 정리해서 되새겨야만 마음이 편했던지라 쉽게 적응이 안 됐다. 갑작스런 노출에 황급해진 기분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된 꼬라지였다. 그렇게 대충 20일이 지났다. 이사를 했고, 아빠를 보냈고, 생일을 맞았고, 회사에 앉아 있을 겨를도 없이 부천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아직 이사한 집엔 실감도 없다. 어정쩡한 기쁨인지, 조금은 좋은 누군가의 비밀도 알아버렸다. 역시 정리할 기분은 되지 않았다. 원래 놓여 있던 위치를 잃은 물건들은 어떻게 재배치를 해도 어색하다. 그냥 몰려오는 시간에 찡기듯 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조금은 스펙터클하지 않은 사건들로 꾸며졌다면 즐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결국 밤을 새워야만 여유가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2
[오픈칼럼] 시간은 언제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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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날개를 폈다. 지난 8월 7일 개봉한 <다크나이트>가 개봉 첫주에만 전국에서 약 108만8300명(배급사 집계)을 동원, <미이라3: 황제의 무덤>(이하 <미이라3>)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의 발표에 따르면 이제까지 배트맨 시리즈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2005년 <배트맨 비긴즈>의 최종 관객수인 98만 명을 오프닝 기록으로 갈아치운 것이다. 하지만 <미이라3>에 비해 관객동원속도는 절반가량 늦은 편이다. 지난 주 개봉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한 <미이라3>는 첫주에만 216만명을 동원했었다.
<미이라3>가 2위로 내려온 가운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2단계 하락해 4위를 기록했다. 의외의 복병은 올해 첫 공포영화인 <고死 :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死>)였다. 8월 6일, 개봉 첫날부
<다크나이트>,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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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죽은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이 남긴 자서전 <마법의 등>은 웬만한 그의 영화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부친 살해에 가까운 아버지에 대한 증오, 햄릿을 능가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욕망과 좌절,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선을 넘어간 복잡한 애정관계 등이 거침없이 서술돼 있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것은 마치 경험 많은 배우가 혼자 무대에서 펼치는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자서전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하듯 구성돼 있다. 베리만의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은, 용기있는 고백록은 죄 많은 늙은 노배우의 속죄의 염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침묵하는 여성, 쉴새없이 말하는 여성
베리만은 결혼을 다섯번 했다. 정식 결혼만 따져 그렇다. 자녀가 아홉명이며, 이들이 모두 정식 아내로부터 태어난 것도 아니다. 함께 일했던 여배우치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이들 가운데 해리엣 안데르손, 비비 앤더슨, 리브 울만은 오랜 기간 베리만과 동거한 배우
[걸작 오디세이] 목소리에 의존한 속죄의 멜로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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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쥬스> 20주년 기념 DVD가 올해 9월에 나온답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헤더스> 20주년 기념 DVD는 벌써 나왔어요. 저 같은 사람에겐 하늘이 무너질 소식입니다. 어떻게 <비틀쥬스>가 벌써 20주년이랍니까? 하지만 아무리 제가 부인하려고 해도 이 영화가 1988년에 나왔고 올해가 2008년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거겠죠.
물론 <비틀쥬스> 20주년 이야기를 하려면 위노나 라이더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이 배우의 경력도 벌써 20년을 넘겼어요. 처녀작인 <루카스>가 86년작이니까 22년입니다. 역시 하늘이 무너질 소식입니다. 전 언제나 위노나 라이더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엑스 세대’라고 불리던 무리들 말이에요.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엑스 세대’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저 같은 아이들이 위노나 라이더에게 같은 세대의 동질감을 느꼈던 건 사실입니다.
[듀나의 배우스케치] 위노나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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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현대사는 두번의 전쟁을 치렀는데 물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숨가쁘게 연이어 터진 두 전쟁은 사실상 한 세대가 치른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 참전세대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였고 유년의 기억이나마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였다. 그런데 이 두 전쟁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전후 세대가 등장하기 전에 기묘한 세대 하나가 전쟁과 전후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자신들이 남의 땅에서 치르고 있던 전쟁의 포연을 뉴스로 접한 세대이며 한국전쟁 세대에게는 식민지적 기억이었던 미군 C레이션박스를 참전병사들의 손에 들려 남중국해를 건너온 ‘전리품’이라는 제국주의적 기억으로 각인한 세대, 훗날 38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세대이다.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는 바로 그 세대, 전쟁에 대한 도착(倒着)된 기억을 담고 있으며, 군사적 파시즘에 대항해 초급 민주주의를 쟁취한 뒤 지리멸렬해진 386세대가 연출한 최초(<알포인트>의 공수창 또한 이 세대에 속하지만 알다시피 이
[영화읽기] 한국은 피해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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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님은 먼곳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 이이>)가 한주 간격을 두고 차례로 개봉했다. 세편의 영화가 올 여름 한국영화의 흥행 도미노를 겨냥하고 나섰음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놈놈놈>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175억원이라는 거대 제작비로 탄생한 초대형 블록버스터이고 거기에 못 미쳐도 <님은 먼곳에>의 70억원이라는 제작비는 적지 않으며 <눈눈 이이>는“2008년 한국 블록버스터의 자신감을 입증할 최강 프로젝트”라고 보도 자료를 냈다. 흥행 추이를 놓고 보면, 7월 말 현재 <놈놈놈>이 5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이다. 흥행 결과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여름 시즌에 한판 붙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각자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전영객잔] 2008년 한국 블록버스터의 신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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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死: 피의 중간고사>는 단체사진을 찍지 못해서 다들 아쉬워했다. 원래 현장공개 하는 날 강당에서 모두 모여 촬영하기로 했는데 무산됐다. 결국 이 합성사진은 촬영이 끝나기 사흘 전에 부랴부랴 따로 개인 컷을 찍어서 한데 모은 거다. <숙명> 때와 똑같이 하면 흥미가 반감될 것 같아서 장르를 감안해 스포일러를 넣었다. 영화 보실 분들은 사진 너무 유심히 뜯어보면 곤란하다. 나중에 욕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대두(大頭) 시리즈인데, 슬라이드 쇼 형식의 동영상이다. 음악까지 얹었다. 손예진씨에게 보여줬더니 쓰러지더라. 근데 동영상이라 ‘숨은스틸찾기’에 제공하기에는 좀 곤란한데. (웃음)”
[숨은 스틸 찾기] <고死: 피의 중간고사> 중간고사 끝난 뒤 합성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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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소가 뜻밖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빈 테이블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카페 안이 바글바글하다. 대개 배우들과의 인터뷰는 이른 시간이나 따로 분리된 공간에서 한다. 인터뷰 상대가 직접 정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전해 듣고 제대로 대화가 가능할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 그러나 기우였다. 제 시간에 맞춰 등장한 김현숙은 외려 “음악 소리 때문에 녹음이 잘 안 되는 것 아니에요?” 하며 먼저 말문을 튼다. “잠깐 동료들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는데 1년도 버티지 못했다”면서 “시장도 있고 사람 냄새 나는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이 세상에 날씬한 것들은 가라. 곧 뚱뚱한 자들의 시대가 오리니”라는 출산드라의 저주나 가족들의 구박을 이겨내기 위해 술잔을 들이켜다가 여동생의 남편을 탐하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사(酒邪)를 대중이 흔쾌히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저 넉살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김현숙은 <미녀는 괴로
[김현숙] “영애씨는 막돼먹기보다 용기 있고 여리기도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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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캐스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천축국으로 가는 험난한 여행길
[대박 캐스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천축국으로 가는 험난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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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당신 때문에 전세계가 난리입니다, 조커씨.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도 매혹적인 악당으로 등극하셨어요. 영웅인 브루스 웨인의 인기를 뛰어넘은 건 물론이고, 투페이스, 펭귄맨, 캣우먼, 미스터 프리즈 등 역대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악당들, 심지어 역사상 가장 완벽한 악당이라는 ‘잭 니콜슨 조커’보다 더 완벽한 악당의 탄생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니까요.
=(우물우물!)왜 그렇게 심각해? 난 그딴 거 관심없어. 그냥 난 이 세상이 혼돈에 빠지는 걸 즐길 뿐이라고. 우히히히헤히헤헷!
-맞아요! 실제로 당신은 스스로 ‘혼돈의 앞잡이’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긴 세상을 향한 응징자란 뜻인가요? 법 따위는 우습게 허물어뜨리고 세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전지자란 뜻인가요?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혼돈을 막으려는 배트맨을 견제하고 방해하려는 악의 대변인이란 뜻인가요?
=(쩝쩝!)왜 그렇게 심각해? 그딴 영양가없는 궁금증 말고… 내 입가에 흉터가 왜
[가상인터뷰] 절대악 중의 절대악! <다크 나이트>의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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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에 개봉하는 영화 <젤리피쉬>는 그간 테러, 폭력,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해왔던 기존의 이스라엘영화와 달리 세명의 여자들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삶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에트가 케렛, 쉬라 게펜 부부가 어떤 사람들인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바다의 실제 배경이 되는 도시, 텔아비브와 주인공 세 여자 중 한명인 바티야 역을 맡은 배우 사라 애들러에 관해 알아보자.
1. 에츠가 케렛, 쉬라 게펜 부부
<젤리피쉬>의 두 감독 에츠가 케렛과 쉬라 게펜은 부부이다. 남편 에츠가 케렛은 첫 단편영화 <스킨 딥>(Skin Deep)으로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해 이름을 알렸지만, 실은 이스라엘의 유명한 대중작가이자 만화가. 특히 재밌고 초현실적인 그의 소설은 젊은층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냉장고의 소녀>(The Girl on the Fridge) <미싱 키신저>(Missing Kissinger) 등 그의
[알고 봅시다] 우리가 몰랐던 이스라엘의 또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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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부터 24일까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주최로 제8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이 열린다. 관습과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는 다양한 실험적 영상들, 미디어, 공연 등이 미디어 극장 아이공, 쌈지 스페이스를 비롯하여 전시장, 문화카페 등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미디어 크로스오버 축제를 표방하며 작품 상영뿐만 아니라,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와 초청밴드들의 공연이 포진된 개·폐막식(개막작은 권상준의 <투수, 타자를 만나다>, 폐막작은 조혜정의 <위대한 타자들>), 아시아 국제영상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는 ‘네마 구애전’, 미디어 전시 페스티벌인 ‘네마 놀이터’, 아시아 국제학술심포지엄인 ‘네마 공작소’, 그리고 야외무대 프로젝트 ‘대안시각 프로젝트’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흥미로운 기획들로 포진된 ‘네마 구애전’이다.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작가 10명의 비디오 아트, 실험영화들을 소
새로운 정치성을 사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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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들의 스타발굴프로그램이 생겼다. 오는 10월3일부터 6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릴 제1회 코리안 프로듀서스 인 포커스(Korean Producers In Focus, 이하 KPIF)는 한국 프로듀들의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를 선발, 소개하는 마켓이다. 이 행사를 통해 선정된 5편의 작품은 국내투자사 및 공동제작사를 대상으로 공개피칭의 기회를 가질 예정. KPIF를 주관하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전재영 기획단장은 ‘단순히 프로듀서와 제작사간의 다리를 놓는 게 아니라, 그해의 베스트 프로젝트를 선발하고, 스타 프로듀서를 키우는 행사’라고 소개했다.
-KPIF는 어떻게 탄생한 행사인가.
=부산영화제에서 하던 지지난해까지 부산영화제 PPP 내에 NDIF(New Directors in Focus)란 행사가 있었다. 신인감독들이 자기 작품을 피칭하면서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그렇게 제작사나 투자사와 연결을 해도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행사 자체가 없어졌는
[전재영] “프로듀서가 자기 개성대로 작품을 개발해보자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