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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호텔. 흰 티셔츠를 걸친 사노(사노 히로키)와 전통복을 입은 미야타(미야타 요시노리)의 뒷모습이 보인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바닷가 이즈 지역으로 여행을 왔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매미 울음이 들려오는 여름날의 여행은 누구든 기분을 들뜨게 할 테지만, 사노는 무슨 이유인지 가라앉은 모습이다. 동행한 친구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고 무표정하기만 하다. 주인공을 닮은 카메라는 정적인 태도로 클로즈업을 자제하며 거리를 두고 인물을 담는데도 어느새 아슬아슬한 감정이 들게 한다. 홀로 바닷가를 걷던 사노는 우연히 만난 한 가족에게 불쑥 다가가 “빨간 모자, 아드님 건가요?”라며 무례하게 묻고,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를 찾는 전화를 받고는 휴대전화를 바다에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사노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하길 미루며 관객의 궁금증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특히 그가 잃어버린 빨간 모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처음엔 쉽사리 이
[기획] 담백한 형식에 스며든 젊은이들의 초상, <슈퍼 해피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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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여름날의 푸른 바다를 맘껏 볼 수 있는 영화가 도착했다.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의 신작 <슈퍼 해피 포에버>는 일본 이즈 지역을 거니는 여름 여행자들의 사진첩이자 상실에 대한 송가이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청춘들의 초상화다. 영화의 미니멀한 형식을 짚는 리뷰와 함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슈퍼 해피 포에버>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겐트영화제, 낭트3대륙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온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의 인터뷰를 여기에 띄운다.
*이어지는 글에서 <슈퍼 해피 포에버> 리뷰와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미니멀리즘으로 그려낸 상실, <슈퍼 해피 포에버>가 전하는 청춘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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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조종사의 이마를 총으로 가격하고, 감정을 주체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던 <굿뉴스>의 조직원 아스카를 기억하는가. 좁고 격렬한 비행기에서 내려온 배우 야마모토 나이루가 한층 가벼운 옷차림과 여유로운 얼굴로 한적한 해안 마을을 거닌다. <슈퍼 해피 포에버>에서 그가 분한 나기는 여름의 여행객이다. 친구가 함께 오지 못해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아내를 떠나보낸 남자 사노(사노 히로키)를 만난다. 여행지의 바람은 혼자가 된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불고 인연의 마술은 실패할 리 없다. <슈퍼 해피 포에버>의 12월24일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야마모토 나이루 배우를 <씨네21>이 국내 매체 중 처음으로 만났다. 대화하는 동안 그는 종종 스톱 사인을 보냈다. 이것이 나기의 감정인지, 자신의 감정인지 헷갈려서 잠시만 생각하겠다고 하던 그는 결국 분리할 수 없겠다며 웃어 보였다.
- 나기는 집에 핸드폰을 두고 오고 생일도 잊는
[인터뷰] 비일상에 몸을 맡긴 채, <슈퍼 해피 포에버> 배우 야마모토 나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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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존한다. 헤겔의 <법철학 강요>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두개의 서로 반대 의미를 가진 모순적 문장들을 단순히 ‘그리고’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서 일관된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게 헤겔의 의도였을 테다. 하지만 후대 철학가들은 앞 문장에 중점을 두어 뒤 문장을 포섭하거나, 거꾸로 뒤 문장을 주축으로 앞 문장을 해석하는 전략을 취했다.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는 전자를 헤겔 우파라고 부르며, 진보주의적 성향을 띠는 후자를 헤겔 좌파라고 지칭한다. 나 같은 학자들, 특히 의지가 투영되는 세상(수많은 의지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지고 굴러가는 세상)을 파악하고 해명하려는 학자들은 이 두축 사이에서 요동한다. 한편으론 벌어진 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세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보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납득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늘 어딘가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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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2014년생 배우 권은성은 일찍이 핫초코 광고,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파친코> 시즌2 등으로 눈도장을 찍어왔다. 그에게 2025년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곤충 소년 기영, <태풍상사>의 능청스러운 늦둥이 범이 그리고 <대홍수>의 자인으로 관객과 부지런히 만난 특별한 한해다.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에서 김다미, 박해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권은성은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에서 엄마 안나(김다미)와 함께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소년을 연기했다. 생애 첫 제작 보고회 참석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타난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굉장히 떨렸지만 막상 해보니 참을 만하고 괜찮았다.”
<대홍수>와 인연은 쉽지 않았다. 무려 5차 오디션까지 거친 터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배우로 보낸 그에게도 재난물과 SF가 결합된 <대홍수>는 “정말 신비
[WHO ARE YOU] 매력이 헤엄치는, <대홍수> 배우 권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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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생인>은 페이크다큐멘터리다. 한국의 김상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일본의 가상 방송국 메이지TV가 취재한 다큐멘터리인 듯 연출하고, 배우 강서하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이예진(본명 이군호)을 연기한다. 2년차 모델이자 배우 지망생인 예진은 앳된 외모와 달리 80살을 앞두었다. 예진은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당시 피해를 입은 조선인으로, 피폭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그를 노화하지 않는 ‘영생인’으로 만들었다. 원폭 피해자인 예진은 한때 한국 정부의 지시에 의해 수용소에 감금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각종 혐오에 노출돼 차별 속에 살아간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영생인>은 프로덕션의 한계를 촘촘한 디테일로 돌파해낸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암부를 영생인의 존재와 교직하고, 영생인의 생물학적 속성과 생활 습성 등을 장르의 문법 안에서 다양하게 기술하며 관객에게 영화만의 설정을 납득시킨다.
[리뷰] 다각도로 들여다보지만 다방면으로는 펼치지 못하고, <영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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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마을 방범대는 마을 축제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그 보상으로 인도행 티켓을 얻는다. 짱구(박영남)와 맹구(정유정)는 인도의 골동품 가게에서 코 모양의 가방을 구매한다. 맹구는 신비한 힘에 이끌려 그 가방 바닥에 숨겨진 종이 두장 중 한장을 코에 낀다. 그 종이를 낀 맹구는 순식간에 악역으로 돌변한다. 여기에 인도의 아이돌 아리아나, 형사 카빌과 딜, 갑부 울프가 가세해 종이를 둘러싼 야단법석 추격전이 펼쳐진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는 <짱구는 못말려>의 32번째 극장판이다. 이번 편은 첩보와 코미디 등 온갖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시리즈의 개성에 발리우드 장르를 접합하려 한 점이 돋보인다. 맹구의 이야기로 우정의 본질을 묻는 성숙한 주제도 훌륭하다. 다만 장르적 시도가 성공적인지에는 의문이 들며 큰 주제에 비해 서사가 빈약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리뷰] 발리우드 영화인지 뮤지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가 되고 싶은,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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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살의 무명 화가 이사벨라 두크로트에게 기적이 찾아온다. 그녀의 그림이 갤러리스트 기젤라 카피타인에게 발굴돼 바젤아트페어에 초대받은 것이다. 서랍 속 그림은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언리미티드에 소개되고 그날부터 이사벨라는 유명 화가가 된다. 사실 그녀는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고 55살에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늦깎이다. 왜 미술계는 이사벨라를 주목했으며, 그녀는 화가가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사벨라 두크로트 언리미티드>는 예술가 이사벨라 두크로트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예술관과 작업 방식, “행복한 삶은 예순부터 시작한다”라는 철학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매력 넘치는 소재에 비해 완성도는 아쉽다. 우선 두크로트의 예술이 가진 의의와 미학을 조망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 그녀를 세련된 화가로 포장하려는 과장된 음악과 산만한 서사도 몰입감을 방해한다.
[리뷰] 카메라가 주인공의 힙함을 소화하지 못할 때, <이사벨라 두크로트 언리미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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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사노 히로키)가 오래전 묵었던 호텔을 다시 찾은 이유는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가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찾기 위해서다. 세상을 떠난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수포로 들어가고, 호텔 직원이 흥얼거리는 보비 다린의 를 들으며 사노는 아내와 함께한 과거를 떠올린다. <연인처럼 숨을 멈춰> <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을 연출한 이가라시 고헤이의 신작이다.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노의 간절함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나 그보다 공들여 연출되는 것은 5년 전, 사노와 나기가 우연히 동행한 순간들이다. 서서히 애정을 싹틔우는 둘의 실루엣은 역설적으로 나기의 빈자리를 상기시킨다. 노래 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을 교묘히 잇는 듯 보이지만 그 접점의 근원지인 호텔도 곧 폐기될 장소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모든 시공간을 붙잡아두려는 시도, 저변에 깔린 무력감이 애틋하게 와닿는다.
[리뷰] 사라졌거나, 사라질 모든 시공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슈퍼 해피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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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의 일생>은 재난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영락없는 재해의 풍경으로 문을 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더니 전세계의 땅이 꺼진다. 화재와 물 부족 사태가 속출한다. 인터넷도 수개월째 불통이 된다.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회피와 폭주로 양분하는 가운데 고등학교 교사 마티(추이텔 에지오포)는 간호사로 일하는 전 부인 펠리시아(캐런 길런)를 떠올린다. 마티와 펠리시아는 몇해 전 이혼했지만, 죽음이 머지않았다면 함께하고 싶은 상대로 서로를 고를 수 있는 사이. 오랜만에 마주해 각자 교실과 병동에서 겪은 혼란을 터놓던 그들은 신기한 우연에 이른다. 둘 다 아주 독특한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접한 것이다. 거기에는 한 남자(톰 히들스턴)가 미소 짓는 사진과 함께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고 적혀 있다. 언제부턴가 이 감사 인사는 거리의 광고판을 넘어 TV, 라디오에서까지 들려온다. 더는 우연일 수 없는 사건은 마티와 펠리시아뿐만 아니라 모두의
[리뷰] 끝을 기다리면 공허해지고, 끝을 기억하면 겸허해진다, <척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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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aidesign.kookmin.ac.kr
전화번호 02-910-5280
교수진 주다영, 허정현, 윤지선, 연명흠, 정진열
커리큘럼
기초디자인, 디지털 드로잉, 제품과 시스템, 디자인 사고, 디자인 역사와 윤리, 다빈치 작업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디자인을 위한 파이썬, S-TEAM Class, 디자인과 컨텍스트, 정보디자인, IoT 디자인, AI와 스마트 스페이스, 인터랙션 디자인, 디자인 데이터분석, 비즈니스 디자인, AI와 아트, 상상 작업실, 데이터 시각화, 디자인을 위한 유니티, 디지털 스토리텔링, 모바일 프로토타이핑, AI와 서비스 디자인, 자연어 처리 실습, 생성디자인, 음악과 사운드 UX, 브레인 인터페이스, AI디자인 포트폴리오, 로보틱스 이론과 실제, 디자인 창업, 디지털트윈과 메타버스, 생체인식 이론과 실제, 디자인 지적재산권, 캡스톤 디자인
학과 소개
국민대학교 AI디자인학과는 국내 조형예술 교육을 선도해온 국민대학교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AI디자인학과] ‘AI 시대를 설계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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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시리즈는 블록버스터, SF, 전쟁 영화에 이르기까지 거대함에 탐닉한 장르의 용광로이며, 장르의 포식자인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제임스 캐머런은 <터미네이터2>(1991)에서 인간이 보호해야 할 선한 존재임을 전제로, 선과 악이 각각 기재된 인간형 로봇을 선보인 바 있다. <아바타>(2009)에 이르러 기술로 탄생한 존재인 나비족이 인간의 자리에 놓이며, 선하거나 포악한 인간은 기계의 자리를 대체한다. 첫 번째 시리즈가 인간이 나비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속편에서는 나비족의 중심성이 강화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자리바꿈은 더욱 분명해졌다.
제임스 캐머런은 최신의 기술을 적극 수용해왔다. <아바타>에서는 3D를 넘어 4D를 시도했다. 물론 그것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관객에게 물을 뿌리거나 향을 방사하는 식의 시도는 극장의 컨디션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며, 영화가 지향하는 몰입의 방식에 의문을 남겼다.
[커버] 3D 안경 너머의 리얼리티, <아바타: 불과 재> 달라진 체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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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시리즈는 현존 최고의 시각효과 기술로 만든 작품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판도라 행성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관을 창조해낸 결정적 이유가 실은 진일보한 시각효과 기술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그는 영화와 극장의 미래까지 다 떠안은 듯 <아바타: 불과 재>를 홍보하는 동안 AI가 전혀 쓰이지 않은 영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바타: 불과 재>가 구현한 여러 기술들을 키워드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어떤 특수 상영관에서 <아바타: 불과 재>를 볼지 선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정보다.
퍼포먼스 캡처
과거엔 모션 캡처, 모캡이라고도 불렸던 이 촬영 기술은 배우들의 감정까지도 잡아낸다는 뜻의 퍼포먼스 캡처로 용어 변경을 거쳤다. 배우들이 보디 슈트를 입고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뒤집어쓴 채로 연기한다. 이들이 연기하는 공간은 볼륨이라고 불리는 세트장으로, 100여개가 넘는 적외선카메라로 둘러싼 이 공간에서 배우들이
[커버] 표정과 물살까지 지배하라, <아바타: 불과 재>에 쓰인 제임스 캐머런의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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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가족이야.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꾸만 전투에 참여하려는 아이들에게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제이크의 이 단언은 <아바타: 불과 재>(이하 <불과 재>)가 지닌 철학의 근원이며, 왜 <불과 재>가 <아바타: 물의 길>(이하 <물의 길>)의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로 읽히는지를 알려준다. 다만 이에 대한 설명을 꺼내기 전에, <불과 재>를 말하며 3D 기술과 각종 시각효과의 신비를 제치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따지는지부터 적어야 할 것이다. <아바타>가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바타> 시리즈의 핵심을 서사로 여기는 의견은 드물었다. 그보다 <아바타> 시리즈는 온갖 영화적 기술의 최전선으로 논해졌고 서사의 측면에서는 “제임스 캐머런은 이렇게 바보 같은 서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정성일 영화평론가, <씨네21>738호)
[커버] 태초로의 퇴행, 혹은 의도적 회귀, <아바타: 불과 재>의 서사가 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