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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오컬트물의 주역으로 변신해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약 11년 만에 극장가를 찾은 배우 송혜교를 만났다. <더 글로리>에 이어 <검은 수녀들>로 나타난 그로부터 멜로드라마의 양지에서 장르물의 그늘로 이동한 배우가 내뿜는 빛을 목격하는 요즘이다. 수녀를 향한 차별에 단호히 맞서면서 악령 들린 소년을 살리려는 유니아 수녀로 분한 송혜교는 격렬한 의식을 막 끝낸 것처럼 후련해 보였고, 신작 촬영을 위해 다듬은 쇼트커트를 한 채 또 다른 낯섦을 향해 성큼 다가가는 중이었다. “<더 글로리>를 끝내 놓고는 왜인지 잠시 사랑 이야기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더라. <검은 수녀들>과 마침 연이 닿았고 구마 행위를 할 때 그동안 내게서 보지 못했던 표정과 몸짓이 스스로도 궁금해졌다.”
- <더 글로리>와 <검은 수녀들>에서 송혜교는 각각 복수와 구원의 아이콘이다. 공통점을 찾아보게 된다. 언뜻 차가운 외피를 뚫
[인터뷰] 빛을 부르는 어둠을 입고, <검은 수녀들>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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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형상’ 악령이 다시 나타난 한국에 구마를 할 ‘검은 사제들’이 부재한다면? 걱정할 것 없다. 그 빈자리를 넘치게 채울 수녀들이 온다. 1월24일에 개봉하는 <검은 수녀들>은 옳다고 믿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속에 악령이 숨어들었다는 걸 안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서품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라는 금기를 깨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수녀 미카엘라(전여빈)와 함께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잇는 오컬트물이지만 불가해한 공포로 서늘해지기보다 시스터후드 영화로서 연대의 뜨거움을 안기는 쪽을 택한다. 그 중심에는 배우 송혜교와 전여빈이 있다.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그랬듯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준 두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함께하는 기쁨, 더없는 용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검은 수녀들> 송혜
[커버] 함께 타오르다, <검은 수녀들> 배우 송혜교, 전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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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이상한 여자>의 혜리(전혜연)에겐 이상한 파괴력이 있다. 연극판에 발을 들인 서울대생인 그녀는 집단이 자신을 향해 가하는 추앙과 추문 사이를 넘나들다 웃는 얼굴로 조용하게 엿을 날리는 인물이다. 한국 사회의 관습과 부조리에 지진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건 어른의 능란한 액션이 아닌 자유인이라는 본질, 예술가의 꿈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자주 볼 수 없는, 그래서 더 특별한 캐릭터 스터디이기도 한 이 역할은 배우 전혜연의 순수하고 투명한 인간성과도 공통분모를 이룬다. 오디션 자리에서 “저는 제가 되게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해 정형석 감독을 웃게 만든 이 대담한 배우는 이어 덧붙였다. “어른이 되면 겉과 속이 다르거나 잇속을 차릴 수도 있고, 계산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나는 중고등학생 때 입었던 교복만 벗었을 뿐이지 그때의 감성 그대로 자란 것 같다. 영화 속 혜리는 나라면 도저히 하지 못할 행동도 하지만 그런 모습의 발로는 그녀의 순수함과 자
[WHO ARE YOU] 전혜연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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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점프 페스타(Jump Festa)는 슈에이샤의 주최하에 애니메이션 아티스트가 창작물을 전시하고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는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축제다. 2024년 12월21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된 2025 점프 페스타에서는 <소년점프+> 10주년 스테이지를 통해 <최애의 아이> <라멘 아카네코> 등 14개 작품을, 레드와 블루로 나뉜 <슈퍼 점프> 스테이지에서는 <주술회전> <원피스> <체인소 맨> 등 20개 작품을 올리며 새로운 정보를 공개했다. 애니메이션을 향한 뜨거운 집중도 속에 국내에는 어떤 작품이 함께하게 될까. 신선한 소재, 흡인력 높은 이야기, 동시대적 메시지를 손에 쥔 애니메이션을 관객에게 연결하기 위해 에스엠지홀딩스는 세 가지 포인트를 내세웠다. 국내 처음 공개되는 하이퍼 프로젝션 연극 <하이큐!!>의 미공개컷도 수록했다.
하이퍼 프로젝션 연극 <
[포커스] 2025년, 어떤 세계관으로 떠나볼까?, <은혼> <하이큐!!>… 올해의 에스엠지홀딩스 라인업을 즐기는 세 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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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이 매년 공동 주최하는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의 기획전 ‘영화와 문학2’가 1월31일부터 2월21일까지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다. 일본 근현대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 13편을 상영한다. 상영작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기 대표작을 영화화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산의 소리>(1954), 일본 메이지 시대를 상징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동명 원작을 이치카와 곤 감독이 영화화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75) 등이다. 기획전과 함께 영화의 원작 도서를 전시하는 행사도 진행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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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무거운 캐리어와 그보다 더 무거운 노구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윌리 로먼. 일평생 한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복무했고 나이든 아내와 장성한 두 아들을 두었지만 여전히 가장으로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 아서 밀러가 1949년에 출판한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미 고전이 됐다. 원전의 상징과 가치, 시대를 막론하고 무대에 다시 오르는 해마다 이 극이 가지는 동시대성에 관해선 수많은 평론가와 기자가 일찍이 정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리해야 하는 한 가지는 극의 제목에 명시된 ‘죽음’이다. 세일즈맨 윌리를 포함해 작중 모든 등장인물은 일종의 죽음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죽음은 물리적인 사망을 포함해 과거로부터의 단절, 관계의 변화 등 수많은 폐쇄와 분리로 은유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작중 모든 인물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이들은 변화의 해일을 못 본 척하며 좋다고 믿는 과거만 맹종하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필멸한다
[culture stage] 세일즈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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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양육을 위해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한 ‘싱글 대디’ 유은호(이준혁)는 복귀 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상사에게 시달리다 해고 통보를 받는다. 헤드헌팅 회사 ‘피플즈’ CEO 강지윤(한지민)은 회사의 잘못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 관해 진상조사를 요구했다가 오히려 희생양이 되어 불명예 퇴사를 한 과거가 있다. 이들이 당한 이런 상황은 현실 세계에서 흔한 일이다. (주로 여성) 양육자들은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부당한 해고를 통보받는 일이 많다. 조직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희생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비록 로맨스의 외피를 둘렀지만 오피스물로 봐도 무방하다. 지윤은 겉으로는 “돈값”을 강조하지만 이력서에 담기지 않는 그 사람의 가치를 발견해주고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을 돕는다. 드라마는 헤드헌터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사회 초년생의 성장 과정, 직장 내 관계의 역동, 작은 선의의
[오수경의 TVIEW] 나의 완벽한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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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물어봐>
tvN, 넷플릭스 / 16부작 / 연출 박신우, 김진성, 오승열 / 출연 이민호, 공효진, 오정세, 한지은 / 공개 1월4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SF로서도 로맨스로서도 갸우뚱
한국은 국제적 위상이 커짐에 따라 우주정거장에 최첨단 실험 설비를 탑재한 생물학모듈을 설치하는 데 성공한다. 이곳에서 우주인들은 치매, 난임, 난치병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보스 이브(공효진)는 700억원을 지불하고 우주에 온 공룡(이민호)의 존재를 성가셔하는데, 사실 지구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에게는 비밀스럽게 완수해야 할 미션이 있다. 난임으로 고생 중인 MZ그룹 며느리의 난자에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던 회장 아들의 정자를 주입시킨 시험관 아기를 만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로 떠난 공룡은 자신이 회장에게 이용당했을 뿐 진짜 임무를 수행하게 될 사람은 고은의 정략결혼 상대인 강수(오정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별들에게 물
[OTT 리뷰] <별들에게 물어봐> <모텔 캘리포니아> <배뱀배뱀뱀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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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오컬트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찾아온다. 1993년 하이텔 통신을 통해 처음 연재된 <퇴마록>은 무서운 귀신이나 저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구원하는 퇴마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파문당한 신부 박윤규, 상처입은 파이터 이현암, 예언하는 아이 장준후, 신의 아바타 현승희. 각기 사연도 기술도 다른 네명의 퇴마사는 선한 사람들을 악으로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무협, 엑소시즘, 종교, 신화, 전설 등 다양한 민속 요소를 혼합한 세계관은 현대적인 캐릭터 해석과 디자인, 밀도 높은 시각효과를 만나 이전과 다른 경험의 장을 재창조한다. 특히 오컬트라는 장르에 충실한 점프 스케어 구간도 균질하게 배치돼 있다. 원작 소설을 읽지 못한 관객층까지 포용하기 위해 스토리와 캐릭터를 친절하게 풀어낸 인상이다. 제48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초청작.
[coming soon] 퇴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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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 중 하나인 춘절 명절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춘절은 매년 대형 영화간 접전이 벌어지는 시기이지만 2025년의 춘절 연휴는 그 양상이 어느 해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공개 예정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애니메이션영화 <나타지마동강세> 속편인 <나타지마동요해>다. 2019년 여름에 개봉해 <유랑지구>를 제치고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50억4천만위안의 수익을 내며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흥행작 순위 4위에 오른 <나타지마동강세>는 당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자국 애니메이션영화의 반란이었다. <봉신연의>를 원작으로 한 <봉신> 삼부작의 두 번째 편인 <봉신2: 전화서기>, 중국 무협영화의 대가인 서극 감독이 김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대작 <사조영웅전: 협지대사>가 <나타지마동요해>와 맞붙을 예정이다. 중국 명절 극장가엔 코미디도 빼놓을 수
[베이징] 누가 춘절의 승자가 될 것인가, 2025년 춘절 연휴를 강타할 신작 라인업과 이에 따른 우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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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토크쇼에서 완벽한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 있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로 출발하는, ‘취향 고백이구나’ 싶은 리스트였지만 최소한의 조건을 전제했다. “완벽한 영화라는 건 모든 미학적 요소를 어느 정도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걸 깎아내릴 만한 단점을 찾기 어려운 영화들이죠.” 이후 타란티노는 <죠스>(1975), <엑소시스트>(1973), <애니홀>(1977), <영 프랑켄슈타인>(1974) 등을 언급하다가 마지막에 이걸 빼먹을 순 없다는 듯 다급하게 외친다. “<빽 투 더 퓨쳐>(1985)! 정말 완벽한 영화죠.”
타란티노의 단언과 달리 이 영화들의 단점을 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동시에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목록이다.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가 단점이 없는 게 아니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라면 결과적으로 타란티노가 옳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완벽한 영화, 완벽한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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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삶은 종종 칙칙한 무채색으로 그려지지만 그 안에 언제나 빛이 깃들어 있다. 월세, 예산, 아르바이트 등 물질과 돈에 얽매인 세상이 가뜩이나 예민한 사람들의 속을 긁어댈 때 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언제나 술과 담배, 그리고 다시 예술이다. 여기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조명해온 감독이 있다. 오랜 세월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작업해온 정형석 감독이다. 다양한 경험 덕분일까. 그가 위로를 건네는 대상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든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말을 아낀다는 그의 신념에서 우리는 작품에 배어 있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정형석 감독의 신작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는 작은 연극 극단에 서울대 출신 신입 단원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소란을 다룬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던 이야기는 이내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기도 한 이번 작품에 대해 정형석 감독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인터뷰] 자신과 대면하는 예술가,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정형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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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겨울을 이겨내는 독립투사의 생애 의지와 자주정신은 어쩌면 턱끝까지 동여맨 외투와 목도리, 얼굴을 감춘 모자에 젖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메운 곽정애 의상감독을 만나 그가 빚어낸 비유와 상징을 나누어보았다.
- 추운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부터 엄혹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까지 의상 설정을 결정할 명확한 요소들이 있다. <하얼빈>의 의상 컨셉은 어떻게 정해졌나.
영화를 준비하면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기존 작품을 참고하면 좋을지 우민호 감독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경하게 말하더라.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정적인 첩보물의 느낌이 나는 <하얼빈>의 특징을 살리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채도를 낮추고 묵직한 무게감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잡았다. 개개인의 개성이 컬러풀하게 드러나기보다 독립군이 하나의 군집으로 보일 수 있도록 톤도 맞추었다. 이때 카라바조의 그림을 참고했
[인터뷰] 처연함을 입다, <하얼빈> 곽정애 의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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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나애진)는 낮엔 계약직 디자이너로 일하고 밤엔 뱀파이어가 나오는 웹툰을 그리며 바쁘게 산다. 그 와중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서 연인 경현(강봉성)과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국 정서는 따로 가족을 꾸려 지내고 있는 아버지 영주(안석환)에게 어머니의 빚을 받으러 떠난다. 목적지는 동해시의 ‘벌교횟집’, 그곳엔 아버지와 함께 이복동생인 정해(김진영)네가 살고 있다. <은빛살구>의 장만민 감독은 돈과 차용증으로 얽히고설킨 가족구성원들의 모습을 ‘뱀파이어’로 묘사하며 새로운 가족상을 그린다. 영화와 관객 사이에 주어진 적당한 거리감은 서로를 물고 뜯으면서도 가족이란 이름과 예전의 기억으로 자꾸만 엮이게 되는 이 서글픈 관계를 계속 관찰하게 만든다.
- 물질주의에 지배된 가족의 풍경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한편으론 인물들을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으려는 연출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영화 속 인물 중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각자의 욕망을 좇는 모습 그대
[인터뷰] 거리감을 두고 볼 수 있도록, <은빛살구> 장만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