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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영화의 위기 속에서도 중견감독들의 활약은 빛났다. 박찬욱,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예상대로 높은 순위에 오른 한편 1, 2, 5위 모두 차세대 감독들의 신작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난관에 부딪힌 한국영화계를 논할 때 세대교체의 부재가 반드시 거론되지만 천착하는 주제와 스타일이 명확한 윤가은, 이란희, 변성현 감독이 보여준 올해의 도약은 더없이 반갑고 앞으로 이들이 한국 독립·상업영화계의 새 축을 단단히 지탱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1위는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에 돌아갔다. 세 번째 장편에 이르러 윤가은 감독은 성폭력 피해자를 중심으로 청소년 드라마를 정교히 빚어냈다. 그 세심함에 여러 필자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동시에 더 많은 논쟁이 요구되는 영화라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2위 <3학년 2학기>는 이란희 감독이 <휴가>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다. 공장의 현장실습생들을 다루되 사건, 사고 대신 사회초년생으
[특집] 올해의 한국영화 6-10위 - 영화가 한국을 말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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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위 - <세계의 주인>
아마도 올해 가장 뜨거운 논의를 이끌어낸 한국영화가 아닐까. <우리집><우리들>에 이어 <세계의 주인>에 이른 윤가은 감독은 “자타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향해 새롭게 열린 영화적 세계”(송형국)를 꾸려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의 세 번째 장편 <세계의 주인>은 18살 주인(서수빈)의 밝음과 호기심의 이면을 살피는 작품이다. “어른이 된 감독의 눈”(김영진)으로 빚은 신작은 “이중, 삼중의 고심이 숏마다 느껴지는 연출”(이유채)로 “비현실적인 소재와 문법을 취하지 않고도 대단히 깊은 감정”(배동미)을 전한다. 윤가은 감독이 “세 작품에 걸쳐 관점과 방법론을 정립”(김혜리)했음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로, 신작에서 느껴지는 그의 성장은 “우리가 한국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아동·청소년 캐릭터 스펙트럼의 확장”(남선우)과 다름없다. “겹겹이 촘촘하게 짜인 윤가은 감독의 세계에 선뜻 들어서기 어렵지만
[특집] 2025 올해의 한국영화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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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2021년 이후 천만 영화가 탄생하지 않은 첫해로 기록됐다. 연간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든 한국영화는 <좀비딸>(563만명), <야당>(337만명), <어쩔수가없다>(294만명), <히트맨2>(254만명) 등 네 작품이며, <주토피아 2>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각각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했다(12월24일 기준). 해외 애니메이션이 박스오피스 선두를 차지하고 500만명을 넘긴 한국영화가 단 한 작품이라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흥행작이 부재한 시점에서 극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멀티플렉스는 전시, 공연 등 상영관을 체험형 공간으로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 극장을 폐점했으며 배급사의 경우 단독 개봉, 재개봉, 특별 상영회 등 세부 타깃을 겨냥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2026년 극장가의 정경은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신년호를 맞이해 <씨네21>은 ‘2025년 올
[특집] 2025 BEST MOVIE - 한국영화 베스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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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인들이 제다를 찾았고 어디에서도 밝힌 적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들은 매일 열리는 토크 세션에서 무슨 말로 사우디아라비아 관객들을 환호하게 했을까. 영화제 기간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4인의 발언을 요약해 전한다.
숀 베이커 감독
차기작에 관해 처음 말한다고 운을 떼며.
“단편 차기작이 한편 있다. 패션 브랜드 ‘셀프 포트레이트’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만든 영화 <산디와라>로, 양자경이 1인5역으로 분한다. 이번에도 내가 연출, 각본, 편집을 맡았다. 장편 차기작은 <아노라>와 비슷한 규모로, 보다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특히 제작사가 꺼릴 만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제발 영화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고, 살길을 직접 찾아 나서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다. 나 또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영화 연출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고, 연출 이외의 직무에서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배우
[영화제] “살길을 직접 찾아 나서” 제다를 찾은 영화인들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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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레드씨국제영화제(이하 레드씨영화제)가 12월4일부터 13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에서 열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개국 이래 최초로 문화부를 설립한 후 국가 전역에 35년 만에 영화관을 짓기 시작했으며, 2019년부터 문화부 산하 비영리단체 레드씨영화재단(Red Sea Film Foundation)을 통해 영화제를 운영 중이다. 이번 영화제에선 어떤 영화, 어떤 게스트가 화제를 모았을까. 2025년 열린 영화제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화제작 동향은 어떨까. <씨네21>이 3년 내리 레드씨영화제에 참가해 영화 강국을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모저모를 취재했다.
제5회 레드씨영화제는 총 15편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을 제외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에서 제작된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작품들 중 월드프리미
[영화제] 꼭 영화에 담고 싶던삶의 국면들, 제5회 레드씨국제영화제 지상중계 - 화제작부터 영화제가 반영한 산업 현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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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2025)는 1959년 장뤼크 고다르가 만든 <네 멋대로 해라>의 촬영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당대 파리의 풍경부터 <네 멋대로 해라>에 등장하는 장면의 구도, 가장 중요한 실존 인물들의 외양까지도 <네 멋대로 해라>의 판박이로 만들어졌다. 두 영화가 얼마나 닮았는지 사진으로 비교해보자.
왼쪽은 <누벨바그>, 오른쪽은 <네 멋대로 해라>의 스틸컷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 미셸과 파트리시아는 각각 프랑스의 남자배우 장 폴 벨몽도와 미국의 여자배우 진 세버그가 연기했다. <누벨바그>에선 오브리 뒬랭과 조이 도이치가 장폴 벨몽도와 진 세버그를 연기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조이 도이치가 <에브리바디 원츠 썸!!>(2016)에 출연했을 때부터 그를 진 세버그 역에 캐스팅하려 맘먹었으며, 오브리 뒬랭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본 적은 없다며 느슨하고 무신
[기획] 장소, 구도, 얼굴 모두 그대로 - <누벨바그>와 <네 멋대로 해라>는 얼마나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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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2025)는 아주 방대하고 정교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만들어진 극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작중 인물들의 모습, 장뤼크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1959)를 찍었을 때의 현장 상황, 문화적 맥락 등을 1959년 파리와 똑같이 만들려 애썼다. <누벨바그>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몇 가지 요소들을 미리 알고 나면 더욱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Q. <네 멋대로 해라>를 먼저 봐야 하나요?
A.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누벨바그>를 더욱 풍성하게 감상하기 위해서, 연출자의 의중을 더 명확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네 멋대로 해라>를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누벨바그>는 <네 멋대로 해라>의 실제 제작기 영상에 가까울 정도로 만들어졌고, 점프컷(장면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방식) 등 <네 멋대로 해라&g
[기획] 고다르, 카이에 뒤 시네마,진 세버그, 그리고···, <누벨바그>에 대해 알아야 할 대여섯 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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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장뤼크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드는 이야기를, 그가 <네 멋대로 해라>에 실었던 스타일과 정신으로 찍는 영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누벨바그>의 각본 첫장에 썼다고 알려진 이 어구는 <누벨바그>의 핵심을 아주 간명하게 압축한다. <누벨바그>는 관객을 1959년의 프랑스 파리로 데려가는 타임머신이며, 그 호시절을 자연스레 체험하게 하는 매력적 속임수다. 이곳은 바로 한창 프랑스영화계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가 태동하던 시절, 영화사의 혁신이 일어나던 소용돌이, 모든 시네필의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지대, 장뤼크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알랭 레네 등 영화사의 거장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내뿜던 황금기다. <누벨바그>는 이 파도 속의 한때, 2022년 타계한 장뤼크 고다르가 그의 첫 장편영화인 <네 멋대로 해라>(1959)를 촬영했던 시기를 그려낸
[기획] 1959년의 파리는 바로 지금,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누벨바그> 리뷰와 여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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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웨이츠와 애덤 드라이버의 캐스팅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부자 역할을 맡는다는 아이디어에 두 배우는 처음 어떻게 반응하던가.
두 사람은 금방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게 전부였다. (웃음) 캐스팅이 출발점이 된 건 내가 언제나 배우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거꾸로 작업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몇 가지 테마, 특히 캐릭터를 함께 만들고 싶은 배우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은 산발적인 아이디어들을 가능한 한 많이 모은 다음 대본 작업 자체는 빨리 끝낸다. 그런데 한 가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조금 다른 것이 그다지 많은 아이디어를 수집하지 않은 단계에서 대본이 빠르게 써졌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톰 웨이츠를 애덤 드라이버의 아버지로 상상했고 이어서 누이 역할에 마임 비아릭을 떠올렸다. 다음 챕터에선 케이트 블란쳇과 비키 크리프스를 자매로 상상하면서 이야기가 풀려나갔다. 많은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터뷰] 관찰과 공감의 리듬,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짐 자무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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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 축적의 무늬를 그리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미국 뉴저지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남매의 이야기는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진다. 파더·마더·시스터 브러더라는 세 역할을 세 대륙에서 세 챕터로 구사하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패터슨>에 이은 짐 자무시 최신의 미니멀리즘이라 할 만하다. 세개의 독립된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주제를 공명시키는 방식에서 짐 자무시는 중세시대 세폭 제단화 형식인 트립틱 구조의 대가로도 수식된다. <미스테리 트레인>(1989)에서는 멤피스라는 도시가, <지상의 밤>(1991)에서는 택시라는 공간이, <커피와 담배>(2003)에서는 커피와 담배라는 오브제가 각 에피소드를 묶었다. 다만 이번엔 낯선 이들간의 우연한 만남 대신,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해야 할 관계를 다룬다. 세 가족은 서로 전혀 모르고 그 어떤 서사적 연결고리도 없지만 롤렉스 시계, “Bob’s
[기획]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시간의 유산을 통과하고 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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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물을 그다지 노력 없어 보이게 만드는 데는 정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작업이 좋다.” 언뜻 심심해 보이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표면은 스타일이 가장 정교하게 작동하는 작품의 기분 좋은 역설을 품고 있다. 이런 작품들 앞에서 우리의 감각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도로 예민해진다. 약간의 익숙함, 그리고 비어 있음 속에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가족구성원이라는 역할로 활약하는 6명의 개인들을 관찰한다. 그들이 보내는 오후 한때엔 이렇다 할 사건도, 해결도 없다. 다만 누군가의 부재와 상실 속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시간의 줄기가 문득 빛을 낸다. 시체들의 밤을 건조한 유머로 옮긴 괴작 <데드 돈 다이> 이후 6년 만. 칸영화제와 작별하고 베니스로 자리를 옮겨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짐 자무시 감독을 인터뷰하고, 축적을 통해 완성되는 영화의 세부를 ‘자무시 코드’로 추려냈다. 짐 자무시는 뉴욕 자택에서 화상으로 접속
[기획] 패턴의 예술가, 짐 자무시의 가족여행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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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진 감독은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통해 지금껏 영화로 만나긴 힘들었던 게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었고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감독이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일랜시아>의 오래된 유저로 직접 등장해 하나의 게임이 누군가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보여준 덕에, 2000년대 무렵 PC 온라인게임에 문화적 향수를 느끼던 동시대의 관객들은 유년 시절의 그리운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박윤진 감독은 12월29일 OTT 플랫폼에 공개될 <세이브 더 게임>3부작으로 다시금 게임의 세계를 파헤쳤고, 그 범위와 규모는 대한민국의 게임사 전반으로 한층 넓어졌다. 1부 <세이브 더 게임>은 패키지 게임을 중심으로 한 국내 1세대 게임산업의 태동기를, 2부 <온 더 라인>은 2000년대 한국 온라인게임의 전성기를, 3부 <굿게임(GG), 한국의 게이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터뷰] 게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세이브 더 게임> 3부작 박윤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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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가 서로의 연애를 지켜보는 <연애남매>, MZ 무당들이 자신의 연애운을 직접 점쳐보는 <신들린 연애>까지 끊임없이 변주하는 연애 프로그램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불량 연애>는 말 그대로 불량배의 ‘순애’를 중심 소재로 선택한, 다소 골 때리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독특한 기획만큼이나 출연자들의 전적도 화려하다. 전직 폭주족 리더, 전 인텔리 야쿠자, 유흥업소 운영자 등 한때 마음껏 삐뚤어져봤거나 비행(非行)을 일삼았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다. 순응보다는 반항, 이성보다는 본능, 인내 아닌 발악. 집단생활 속 튀는 행동에 더 가까웠던, 그래서 사회의 주변인으로 존재해온 11명의 남녀는 14일간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감정적 소용돌이를 마주한다. 불량배들의 사랑을 관찰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한 예능 요소도 인상적이다. 폭력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경비원이 시종일관 대기하고
[이자연의 해상도를 높이면] 앉으라고! 사랑하러 왔잖아! <불량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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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승에는 사람들의 오래된 집단적 기억이 스며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 전승이 비현실적인 신화나 우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는 그러한 집단 전체가 오랜 시간 공유하는 믿음이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을 때가 많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전승들을 조각조각 퍼즐처럼 모아 기억의 원형을 찾아내는 연구는 대단히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단군왕검이라는 존재의 전승은 특히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찾아보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삼국유사>혹은 <제왕운기>에 나온 버전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대대로 내려온 단군왕검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추론해볼 수 있는 자료와 편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단군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비적 존재의 이미지가 강해진다는 것
[홍기빈의 클로징] 단군왕검 연구를 망친 <환단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