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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에서 <지난 여름>을 찍고 돌아온 서울. 최승우 감독은 전작의 깨달음이 “일상에 들어서니 무색할 정도로 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신 그의 눈에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바쁘게 반복적인 일상을 살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서울의 초상이 들어왔다. 전작의 시공간을 완벽히 대비시킨 신작 <겨울날들>은 아무 말조차 할 수 없는 한기만이 맴돈다. 무언의 영화. 이는 “말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최승우 감독의 확고한 선언이다. 언어가 유실된 자리에는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영화를 만들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철거 현장에서 해체되고 부서지는 파열음”을 비롯해 모두가 시체처럼 침묵을 지키는 출퇴근길이 그러하다. “언젠가 한 번 사람들이 모두 휴대폰만 보고 귀를 막고 있는 출퇴근길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목적지만 설정해 둔 채 한 곳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현실의 지침이 턱끝까지 느껴졌다.” 영화 속 침묵만큼이나 더 거
BIFF #6호 [인터뷰] 침묵의 무게, <겨울날들> 최승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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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데뷔작이다. <지우러 가는 길>에서 배우 심수빈은 담임 선생님의 아이를 갖게 된 고등학생 윤지로 분한다. 경선(이지원)이 임신 중지를 결심한 윤지의 의도를 알아채고 도와주려는데, 처음엔 그의 손길을 거절하다 점차 경선을 친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부산영화제에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친 심수빈은 “영화제 이전엔 긴장돼서 잠도 못 이뤘는데 집에 돌아갈 날이 되니 12시가 지난 신데렐라가 되어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차분하고 진중하게 자신의 첫 영화 현장을 전하던 배우 심수빈의 말을 전한다.
- 각본을 어떻게 읽었나.
유재인 감독님께서 <지우러 가는 길>의 자연스러운 미술을 추구하셨다고 하는데 시나리오에서부터 미감이 느껴졌다. 센스 있고 다채로운 시나리오였다. 윤지에게 공감이 됐고 나와 통한다고 느꼈다.
- 어떤 면에서 공감이 되던가.
내게 은지는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방어적이지만 속으로는 누군가의 애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BIFF #6호 [인터뷰] 연기의 희열, <지우러 가는 길> 배우 심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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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슈타 차테르지/인도/2025년/109분/아시아영화의 창
9.25 C5 20:00
첫 장편 연출작 <방랑의 로마>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인도 여성 감독 타니슈타 차테르지가 두 번째 작품 <암린의 부엌>으로 부산에 돌아왔다. 주인공 암린(키르티 쿨하리)은 남편과 자녀들을 살뜰히 챙기는 주부. 인도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데 따른 차별로 인해 종종 괴롭지만, 안팎으로 종교적 소임을 다하며 살아간다. 가사 노동에도 충실하던 그는 남편이 사고로 다친 후 임금 노동에까지 뛰어든다. 음식 솜씨 좋은 그가 취업한 곳은 비건 부부의 집. 다른 문화권에서 온 부부는 암린이 본 적 없는 식재료를 꺼내놓고는 “평소 하는 것처럼” 요리하라고 한다. 당황하면서도 부딪혀보는 암린은 생소한 조리법 이상으로 새로운 삶의 단면을 엿본다.
그 과정에는 신나는 음악, 맛깔나는 편집, 총천연색 상상 신의 희열이 동반한다. 영화는 인물이 크고 작은 충격을 받을 때마다 함께 놀
BIFF #6호 [씨네초이스] 암린의 부엌 Full P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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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멘 칼레디 / 이란, 조지아, 벨기에 / 2025년 / 73분 / 와이드 앵글 - 다큐멘터리 경쟁
9.22 C3 13:00 / 9.24 L2 20:00
이란의 쿠르드 마을에 사는 78세 카디제 할머니는 다큐멘터리스트하면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흥미로운 대상이다. 부상으로 도래지를 떠나지 못한 황새 한 마리를 돌보고 있는 그녀는 비싼 치료비와 먹이값, 황새는 진료할 수 없다는 수의사들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도시를 누비고 튜브에 몸을 실어 물고기 사냥에 나서는 당찬 할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단 하나,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으로 떠나려는 딸의 계획이다. 쿠르드족 출신 헤멘 칼레디 감독의 장편 데뷔작 <노래하는 황새 깃털>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가 아닌 찰나와도 같은 몇 주를 정성껏 응시한다. 유쾌한 주인공을 담아내는 카메라와 편집 방식은 관찰 대상을 닮은 듯 위트를 잃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는 일에 온 마음을 쏟는 한 사
BIFF #6호 [씨네초이스] 노래하는 황새 깃털 Singing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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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한국/2025년/84분/비전 - 한국
9.22 KT 16:00 / 9.23 C2 19:00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일하고, 집에 돌아가고, 지하철의 인파 사이에 가만히 서 있다. 어딘가 언덕배기의 원룸에 머무르는 이들은 계속하여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 미약한 움직임들은 기계 장치의 부품처럼 맞물리고 돌아간다. 카메라도 딱딱하게 멈춰 그들을 바라본다. 인물들은 말이 없다. 사람 간의 대화가 적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겨울날들>은 대사라 부를 법한 발화를 제거한 무언 영화이고, 마땅한 사건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오로지 전술한 움직임들의 반복들만이 영화의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공간이 만드는 지속만이 제시될 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들은 목격되지 않는다. 최승우 감독은 전작 <지난 여름>에서 농촌 마을의 정경을 그린 바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농경이라는 계절의 순환에 맞춰 살고, 자연스레 죽었다. 시간이 흐르니 이야기도 있었다. 반면에
BIFF #6호 [씨네초이스] 겨울날들 Winter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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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폰 탐롱라따나릿/태국/2025/122/아시아영화의 창
9.22 L7 19:00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 5주 차를 맞은 프렌에게 신신당부하며 건넨 조언이다. 허나 현대 사회에서 안온한 하루를 맞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고층 빌딩이 우거진 방콕의 도심 속 인사과에서 일하는 프렌은 무단결근 중인 직원의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데 애를 먹는다. 출퇴근길 뉴스에선 매일 폭삭 가라앉은 경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가운데, 프렌의 일상에 숨구멍이 트일 곳은 도무지 없어 보인다. HR의 본말인 <휴먼 리소스>는 인적 자원을 의미한다. 시장경제의 톱니바퀴 속 자원이란 쉽게 소모된 뒤 끝내 교체되어 축출되고 마는 운명이다. 영화는 프렌의 시선에서 냉랭한 도시를 조용히 관조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번잡하다. 절망을 노래하는 뉴스와 불합리한 구조에 끼어 사라진 이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새 생명을 위해 안정을 요구하는 사회는 도리어 실존적인 불안의
BIFF #6호 [씨네초이스] 휴먼 리소스 Human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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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디코 에네디/ 독일, 헝가리, 프랑스/ 2025년/ 147분/ 아이콘
9.24 B2 15:30 / 9.25 B1 19:30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사일런트 프렌드>가 비추길, ‘식물들의 사생활’은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연대기로 흐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인간이 아니라 독일 마르부르크 지역에서 수 세기 이상 살아남은 어느 은행나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식물의 시간관으로 축조된 영화답게 <사일런트 프렌드>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유유히 넘나들면서 인간, 그리고 식물의 생애를 기묘하게 엮어나간다.
일디코 에네디는 긴 공백기를 뚫고 발표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에서처럼 식물적 기질과 자태를 지닌 인물들을 이번에도 불러들인다. <사일런트 프렌드>로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양조위가 대표적이다. 때는 2020년 팬데믹, 독일 대학에 초빙된 홍콩 신경과학자 토니 웡(양조위)은 캠퍼스의 고독 속에서 어느 프랑스 과
BIFF #6호 [씨네초이스] 사일런트 프렌드 Silen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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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여행을 닮았다. 출발하기 전에 가장 설렌다. 도착하고 나면 몰랐던 세상이 펼쳐진다. 언젠가는 기어코 끝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장의 사진과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며 물을 뿐이다.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참석한 사강(수지)과 지훈(이진욱)도 궁금해한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경로로 이별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연인의 부재를 감당한다. 임선애 감독은 두 남녀를 끌어당기는 삶의 미스터리에 반해 그 회복과 치유의 나날에 동행했다. <접속>(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 “90년대 한국 멜로의 정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 엔딩 크레딧을 보니 배우 수지가 기획자로도 참여했다. 연출을 맡은 배경은.
수지 배우가 오래 전부터 백영옥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제작사가 판권 구입 후 수지 배우를 먼저 캐스팅한 다음 내게 연출을 제안했다
BIFF #6호 [경쟁] 빛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임선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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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이라면 언제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의 검열과 제작 금지 처분에도 창작을 지속한 여정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 역시 이란 출신인 하산 나제르 감독은 거장의 묵직한 격언을 내면화한 신작 <허락되지 않은>으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한 편의 영화 촬영 과정을 따라간다. 아이들이 그린 찬란한 꿈 사이로 어른들이 처한 현실이 고개를 들 때, 이 금지된 프로젝트의 맥박은 조용히 그러나 선명히 뛰기 시작한다.
- 이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기리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내게 단순함의 아름다움, 세심한 관찰법, 그리고 판단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의 정신을 받들어 <허락되지 않은>에도 이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 그들의 꿈
BIFF #6호 [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용감하다, <허락되지 않은> 하산 나제르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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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애 / 한국 / 2025 / 108분 / 경쟁
9.22 BH 16:30 / 9.23 L4 12:00 / 9.24 SH 20:00
비행기에 탄 아이는 코가 찌릿할 걸 알면서도 사이다를 마신다. 어린 승객에게 음료를 건넨 승무원 사강(수지)도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상대는 이미 가정을 이룬 남자이자 같은 일터의 기장인 정수(유지태). 준비된 결말이라고 해서 덜 아플 리는 없다. 자기 입으로 이별을 고해놓고도 몇 날 며칠 잠을 설친 사강은 여느 때와 같은 불면의 밤, SNS 게시물 하나에 마음을 빼앗긴다. “실연당했습니다”라고 운을 떼더니 혼자 있기 싫다면 함께 아침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는 그 글에는 참가 신청 링크까지 첨부돼 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사강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나간다.
초대에 응한 이들 중에는 10년 넘는 장기 연애를 마친 지훈(이진욱)도 있다. 기업 대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로서 고전문학의 명문장을
BIFF #6호 [경쟁]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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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 대만 / 2025년 / 124분 / 경쟁
9.22 B2 12:30 / 9.24 CX 09:00
대만-홍콩 스타 서기의 장편 데뷔작 <소녀>는 종종 숨이 막힐 만큼 관객을 압도한다. 답답하고 억압적인 공기가 영화 전반을 휘감으며, 폭력과 학대의 순환, 세대를 거쳐 가정 속에서 형태를 바꾸며 되풀이되는 양상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배경은 1980년대 후반, 대만의
항구 도시 기륭이다. 주인공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소녀 샤오리(바이샤오잉).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웃음이라곤 찾아기 힘든 아이이다. 이는 어머니 촨(가수 9m88)으로부터 이어받은 상처의 유산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촨의 고통은 고스란히 딸의 현실을 어둡게 물들인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치앙(구택)은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어머니는 그 분노를 다시 샤오리에게 쏟아낸다.
정반대의 성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법. 발랄하고 사교적인 전학생 리리(린핀퉁)는
BIFF #6호 [경쟁]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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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우스칭 / 대만, 프랑스, 미국, 영국 / 2025년 / 108분 / 경쟁
9.22 BH 12:30 / 9.23 B3 12:20 / 9.25 CX 12:30
린 시절은 흔히 단순함과 순수, 장난기와 모험심, 경이와 발견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대만계 미국인 감독 쩌우스칭의 <왼손잡이 소녀>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담아낸다. 어른들의 얽힌 관계, 무거운 책임, 그리고 경제적 곤란 속에서 자라나는 성장의 단면을 비춘다. 싱글맘 수펀(차이젠얼)과 두 딸, 20대의 이안(마스위안)과 다섯 살 이칭(예니나)은 시골에서 타이베이로 상경해 야시장에 작은 음식 가판대를 차린다.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하려 애쓰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번번이 그들을 가로막는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뿐 아니라 친족들의 시선과 평가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인 어린 이칭은 할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악마의 손’을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그 말은 이
BIFF #6호 [경쟁] 왼손잡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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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6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BIFF #6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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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줄리엣 비노쉬··· 2주 차에도 별들이 뜬다!
흔히 영화제의 2주 차는 1주 차보다 적막하다는 오해가 있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다르다! 오는 24일, 25일 홍콩의 대배우 양조위가 출연작 <사일런트 프렌드>의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다. 23일 오픈 토크에서는 <왼손잡이 소녀>의 제작자이자 <아노라>의 감독인 션 베이커가 관객을 만나고, 같은 날 ‘까르뜨 블랑슈’에선 봉준호 감독이 <유레카> 상영 후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25일엔 한국과 홍콩의 거장 이창동 x 두기봉 감독이 대화를 나누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얼굴 줄리엣 비노쉬 배우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BIFF #6호 [Topic] 양조위, 줄리엣 비노쉬··· 2주 차에도 별들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