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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판화 작가 김미로의 전시가 열린다. 판화작업이지만, 작가가 사용하는 기법은 고전적인 의미의 판화작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석판화, 에칭, 실크스크린 등 각종 판화기법을 한번에 이용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오히려 판화기법을 회화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작품을 보면, 작가에게 판화는 미술의 특정 ‘장르’라기보다 ‘표현기법’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드로잉을 결합해 좀더 풍부한 표현력으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표현 대상은 주로 동물이나 식물 등 자연의 이미지. 작가는 각 대상이나 주제별로 이미지를 겹쳐서 찍어내거나, 하나의 표현 대상이라 할지라도 이미지를 교묘하게 중첩시켜 하나의 패턴으로 만든다. 캔버스나 한지에 드로잉이나 판화로 제작된 이미지를 자르고 오려 붙여 새로운 작품을 완성시키는 콜라주 기법도 사용한다.
시인이 시어로 심상을 표현하듯, 판화의 기법을 차용해서 이미지로 시를 쓴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최근 한국에 이어 미국·캐나다로 순회전을 하는 제2회 국
판화로 시를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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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의 발라드 모음집이라니. 말만 들어도 하품이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노래를 좀 한다는 애들은 꼭 소풍 장기자랑에서 <Hero>를 불렀다. 길을 걷다가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One Sweet Day>를 한 300번째 들었을 때는 고막을 파내고 싶었다. 잭슨 파이브의 명곡 <I’ll Be There>가 머라이어의 고음 내지르기로 망쳐진 걸 저주하던 사람들을 몇명이나 만났던가. 저니의 <Open Arms>와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해리 닐슨의 <Without You>를 리메이크한 것도 그녀의 중죄 중 하나다.
여하튼 그 모든 지겨운 발라드를 끌어모은 ≪The Ballads≫는 불황의 시대에 익숙한 히트곡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음반사의 의지가 더욱 돋보이는 앨범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거다. 투덜거리면서 앨범을 CD 플레이어에 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모든 곡들을 따라서 흥얼거리게
팝 디바 고음의 중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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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나 프렌치팝 등 스타일리시한 장르들과 결합하면서 보사노바가 얻은 오해 중 하나는 ‘지나치게 소프트하기만 한 음악’이란 점이다. 적어도 국내 음악신만 보면 이건 오해보다 기정 사실에 가깝다. 장르 특유의 편안한 리듬과 화성, 미니멀리즘에 근거해 보사노바는 오래전부터 주류 팝신과 인디신 구분없이 뮤지션과 청자 모두에게 가장 다루기 만만한 재즈의 하위 장르 중 하나였다. 물론 이런 태도가 장르의 본질까지 곡해한 건 아니지만 음악적으로 이 장르를 매우 단순화시켰던 게 사실이다.
‘Blue & blue’라는 프로젝트명을 내세운 싱어송라이터 황종률의 2집 ≪Blue & blue2≫는 들을수록 새로운 맛이 우러나는 보사노바 음반이다. <이사> <소풍> <낮잠> 등 언뜻 보면 일상의 편린들을 거르지도 않은 채 단순하게 노래로 옮긴 듯하나, 이 앨범 속엔 지겹도록 삶에 대한 번뇌와 회의를 반복하다 얻어진 단단한 관용과 여유, 진득한 멜랑콜리가
단단한 여유에 멜랑꼴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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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스탭, 크고 작은 비중의 배우들까지 10명의 인터뷰이 중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문을 던져야 했던 인물은 단연 주윤발이었다. 그의 촬영이 끝날 때까지 추위와 졸음을 이기며 당연하다는 듯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련된 30분의 인터뷰. 웬만한 서구인을 능가하는 당당한 풍채, 신중하게 빛나는 두눈을 질문자에게 일일이 맞추는 세심함, 할리우드 스타 특유의 여유있는 매너에 유머감각, 그리고 완벽한 영어까지. 그가 사라진 뒤, 말 많고 까다롭고 시니컬한 11명의 기자들은 이 ‘도사’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단 무천도사 캐릭터에 대해 말해달라. 원작에서 그는 대표적인 ‘변태 할아범’ 아닌가!
=당신, 일본에서 왔나?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웃음)” 아마 당신이 나보다 무천도사에 대해 더 잘 알 텐데, 사실 난 그 만화를 본 적이 없다. 감독에게 처음 캐릭터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그런 역할을 안 한 지가 꽤 오래됐다. 홍
<드래곤볼> ‘변태 할아범’ 무천도사 역의 주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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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개월 전.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실사영화 <드래곤볼>이 촬영현장으로 기자들을 초청했다. 드래곤볼? 초등학생 무렵 교실에서 돌려보며 낄낄거렸던, 꼬맹이 오공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만화책으로 TV애니메이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던 그 ‘드래곤볼’? 그렇다. 바로 그 드래곤볼. 드래곤볼을 찾아 나서는 오공의 심정으로 출발했고,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현장에서 익숙하고 낯선 감독, 배우들을 만났다. 어느덧 겨울이 훌쩍 다가와 앉은 11월. 쨍한 태양빛이 먼저 반기던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뒤늦게 전한다.
인천에서 LA, LA에서 멕시코시티, 멕시코시티에서 두란고까지 이어지는 비행 여정을 전달받았다. 멕시코는 가본 적 없었고, 두란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지명이었다. 인천에서 멕시코시티까지는 직항이 없었고, 멕시코 북서쪽에 자리한 두란고는 고속버스만한 여객기로 승객을 실어나르는 소박한 곳이었다. LA에서 10시간, 멕시
<드래곤볼> 웨스턴의 고향, 비밀의 손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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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인 희로애락이 있다.”
주지훈은 연기에 대해 설명하다 이런 독특한 표현을 썼다. 차가운 의자 위에 앉아 바보처럼 입을 다문 채 고고한 스타덤의 맛을 즐길 것만 같았던 그는 예상외로 시니컬하고 열정적인 달변가였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 기자시사 이틀 뒤인 10월2일 목요일 오전, 빽빽한 인터뷰 스케줄 속에서 한 시간의 만남을 어렵사리 가졌다.
1982년생인 주지훈은 모델 경력 4년차 때 <궁>(2006)으로 데뷔해 벼락같이 스타덤에 올랐고 두 번째 드라마 출연작 <마왕>(2007)으로 (국내에선 7~8% 시청률에 머무는 대신) 일본에서까지 큰 인기몰이를 했다. <앤티크>는 그의 영화 데뷔작이자 세 번째 출연작 그리고 세 번째 주연작이다. <앤티크>의 이진혁은 어린 시절 상처를 감추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삼십대 초반의 부잣집 도련님이다. 예민하고 까칠하지만 그 속엔 정이 많고, 이기적이고
[주지훈] “프로 세계에선 0.1%도 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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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은 <내 생애…>에도 잠깐 등장한다. 황정민이 분실됐던 엄정화의 가방을 뒤지는 과정에서 보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된 장면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만화책을 소품으로 넣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하다가 이 만화를 선택했다. 엄정화가 동성애자인 남편 천호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만화를 본다는 맥락에서도 들어맞는 것 같았고 다음편을 예고하는 느낌도 약간 있었고. (웃음) 2002년 정도에 처음 읽고 2004년에 판권계약을 했는데, 당시가 <올드보이> 이후라 까다로운 상황이었지만 요시나가 후미 작가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보고 허락해줬다. 그분은 내용이 어떻게 바뀌어도 상관없으니 마음 편하게 만들라고 했다. 참 독특한 분이었다. 이렇게 모던한 이야기를 만든 분이 인터넷도 할 줄 모르고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으로 살고 있더라.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만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
[민규동] 그대들도 뻔뻔하게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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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들의 달콤쌉싸름한 이야기를 담은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이 스크린 버전으로 탄생했다. ‘앤티크’라는 이름의 케이크숍을 무대로 아기자기하게 얽힌 네 남자의 삶을 그려내는 이 만화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김태용 감독과 만들었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연출했던 민규동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통해 좀더 다채로운 색깔과 진한 풍미, 그리고 생의 무게를 가진 영화로 변신했다. 만화 같은 시각표현과 신예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가 돋보이며 예상보다 강한 퀴어 코드를 가졌으면서도 날렵한 상업영화의 꼴을 갖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아울러 신선한 조각케이크 같은 영화의 파티셰 민규동 감독과 적절한 연기로 스크린에 데뷔한 주지훈의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민규동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호모 섹슈얼리티가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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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피>를 보고 나오면서, 여전히 견자단은 멋있고 주신과 조미도 예뻤지만, ‘진가상 영화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투덜대며 돌아섰다.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천녀유혼>이 홍보문구에 계속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원작 <요재지이> 때문이리라.
‘중국의 <아라비안나이트>’ 혹은 ‘중국의 <전설의 고향>’이라 할만한 <요재지이>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 중국의 8대 기서 중 하나로 500여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요재지이>는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요재는 바로 작가 포송령의 서재 이름이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선녀, 귀신, 여우를 비롯해 각종 사물의 정령 등이 주로 등장하는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국영, 왕조현 주연의 <천녀유혼
[울트라마니아] 홍콩의 신상옥, <천녀유혼>의 이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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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감독 자크 리베트 상영시간 132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2.0 프랑스어 자막 영어 출시사 아터피셜 아이(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
<도끼에 손대지 마라>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연작소설 <인간희극> 중 <랑제 공작부인>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의 배경은 <인간희극>의 핵심시기인 ‘왕정복고 시절’이며, 발자크는 원래 ‘도끼에 손대지 마라’를 소설 제목으로 정하면서 ‘위기에 처한 인간’을 청교도 혁명에 빗대려 했다. 작가의 의도를 따른다면 영화는 정치적인 알레고리이자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풍속도로 기능해야 하겠으나, <도끼에 손대지 마라>는 사랑과 열정을 탐구하는 데 더 매혹을 느낀다.
아르망 장군은 무도회에서 공작부인 앙투아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에 흔들리는 전쟁영웅과 사교계 유명인의 관계는 전쟁처럼 진행된다. 남자는 서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발자크 원작이 낳은 불멸의 사랑, <도끼에 손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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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성이란 말은 변덕 심한 세월이 자기 입맛에 맞게 여기저기 갖다 붙여놓는 단어다. 유행이 세월따라 변하고 또 변하듯 개성도 어제오늘 운명이 다르다. 90년대 후반 등장했던 일군의 개성파 여자배우들, 공효진, 김민선, 이요원, 배두나의 오늘도 그렇다. 공효진이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를 지나 <미쓰 홍당무>로 화려하게 피었고 배두나가 세권의 사진집을 내며 도시의 팬시한 스타로 자리잡았지만 이른 결혼으로 활동이 뜸해진 이요원과 톡톡 튀는 목소리가 이젠 더이상 새롭지 않은 김민선은 다소 심심한 배우가 되어버렸다. 개성파 배우의 길 찾기는 변화무쌍한 세월을 이겨내야 하는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김민선이 2007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두편의 영화 <가면>과 <별빛 속으로>를 찍으며 갑작스레 바쁜 몸가짐을 보여준 건 그래서 조금 흥미로웠다. 워낙 높은 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튕겨내는 듯했다. 노출이 화두가 되어버렸지만 그림, 남장, 승마, 사극 등
[김민선] 두려워말자, 다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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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게 어탁(魚拓·물고기의 탁본)이라는 거다. 경기도 파주시의 보광사에서 촬영했다. 어탁이 있는 절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 하여간 이날 날씨가 되게 추웠다. 오전에 다른 장면 찍고 오후에 날씨가 조금 풀린 다음 이 장면을 찍었다. 당연히 오다기리 조 표정이 원래 이렇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오다기리 조에게 어탁 안으로 머리를 한번 넣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한 건데,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크니까 깜짝 놀랐다. 이나영씨하고 오다기리 조하고 평소에는 조용조용 대화하곤 했는데 이날은 하여간 둘 다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더라.
[숨은 스틸 찾기] <비몽> 오다기리 조는 개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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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기획한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는 동명의 공연 실황과 그 준비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탱고의 황금기’, ‘1940년대 아르헨티나’, ‘마에스트로의 재회’ 등 커다란 타이틀로 과거를 추억할 뿐 당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지 않는다. 탱고의 천재 뮤지션 23인이 모여 만든 공연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의 정체는 뭔지, 그리고 그들의 혼이 넘실대던 194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어떤 풍경이었는지. 영화가 빈칸으로 남겨둔 몇 가지 질문의 답을 미리 알아보았다.
1. 한 음악가의 아르헨티나 횡단이 시작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Cafe de Los Maestros)는 영화의 프로듀서인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25년 전 만들었던 앨범 <De Ushuaia a la Chiaca>의 속편 같은 작업이기도 하다. 산타올라야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포크 뮤지션 레온 지에코와 함께 1983년 아르헨티나를
[알고봅시다] 지금 아르헨티나는 탱고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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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울지 않는다.
한국전쟁 직후 전쟁 고아들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유일한 소녀 순남은 꿋꿋하다.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을 꿈꿨다가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치고 말 그대로 ‘거지 고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지만, 순남은 울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간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깊은 눈빛.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 순남은 박그리나가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을 통틀어 그의 마음 가장 깊이 새겨져 있다. “영화가 너무 아름답게 나왔어요. 보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제가 그렇게까지 순남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 못했는데, 기자시사회 때 보니까 장면 하나하나 얼마나 공이 들어갔는지 다시 느껴지고, 그 덕에 제 모습도 더욱 순남이로 보이게 된 것 같거든요.”
1985년생 박그리나의 스물두살 시절이 온전히 녹아들어간 <소년은…>은 그의 다섯 번째 영화다. <령>(2003)으로 데뷔, &
[박그리나] 발레리나의 발을 닮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