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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펴냄
실제 발생했던 범죄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다. 국내외의 범죄들을 짧은 재연과 ‘이야기’로 풀어주는 방송들에는 전문가가 출연한다. 은퇴한 수사관이나 전문 프로파일러들은 현장의 시점에서 사건의 이면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시청자는 들어본 적 없는 덜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범죄자’의 이름만 언급돼도 알 법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도 있다. 깜짝 놀라는 리액션과 함께 사건을 이야기로 한참 들은 후에 범죄 전문가들은 꼭 덧붙인다. 우리는 범죄자의 이름보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형사 박미옥>의 특별함은 이것이다. 탈주범 수사 과정을 읽다 보면 독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자의 이름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책에는 그의 이름이 끝내 언급되지 않는다. 저자는 탈주범의 행적에는 티켓다방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기반이 되었음을 주목한다. 흥미진진한 ‘썰’로서 사건을 설명하지 않고 사회 시스템과 취약 계층, 사람
씨네21 추천도서 - <형사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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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지음 / 창비 펴냄
소설책의 첫장을 연다는 것은 누군가의 세계로 발을 디디는 일이다. 섬세하게 세공한 인물의 세계, 주인공들이 겪었던 계절의 잔향과 내면을 같이 겪어보겠다고 더듬더듬 들어가보는 것이다. 잘 직조된 세계에서 주인공이 겪는 불행은 읽는 사람을 함께 괴롭게 하기도 하고, 때문에 소설의 문을 닫고 나오면서도 그 속에 ‘두고 온 인물’의 행복을 기원하게 된다. <두고 온 여름>의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도 마찬가지다. 기하와 재하 형제가 함께 병원에 다녔던, 그 여름을 함께 읽은 독자는 어른이 된 소년들이 앞으로 겪어낼 여름이 부디 눈부시고 푸르기를, 얼룩이 남은 마음 언저리가 이제는 부디 평안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만든 인물을 창조주로서 충분히 사랑하고 애틋해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고등학생 기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생긴다. 새어머니, 여덟살 터울의 남동생 재하와 함께 살게 되면서 기하
씨네21 추천도서 - <두고 온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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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지음 / 허진 옮김 / 다산책방 펴냄
아일랜드의 어느 가난한 집 소녀가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동안 먼 친척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진다. 친척 집으로 가면서 소녀는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팬케이크를 구워줄지, 아니면 밭에서 돌을 고르는 일을 시킬지 궁금하다. 낡은 집인지 새집인지, 화장실은 집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드디어 만나게 된 아주머니는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주고, 욕조에 아낌없이 물을 채워 목욕시켜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발가락이 길고 멋지다고 해준다. 아저씨는 소녀가 달리기하는 시간을 측정해주고, <빨강머리 앤>의 매튜 아저씨처럼 새 옷을 사준다. 누군가 소녀에게 무례하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말을 하면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소녀를 칭찬하며 보호해준다.
<맡겨진 소녀>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이다. 카드 게임에서 소를 잃
씨네21 추천도서 - <맡겨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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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의 새 SF 앤솔러지 시리즈 <SF 보다>가 출간되었다. 1호는 ‘얼음’이 주제다. ‘얼음’은 물이 언 고체 상태를 가리킬 수 있고, 기후 위기와 맞물려 지구에 빙하기가 왔다는 테마를 뜻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이 세계에 거대한 재앙이 닥쳐 세상 자체가 파괴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구병모 작가의 <채빙>에는 ‘사한’(司寒, 얼음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신)이 등장한다. 얼음이 거의 없는 미래 세상의 인간들은 통 속 투명한 존재로 처리된 ‘나’를 사한으로 모시며 종교 제의를 벌인다. 그들에겐 얼음을 캐는 행위가 너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신적인 존재와는 거리가 먼 과거 세상의 인간일 뿐이다.
박문영 작가의 <귓속의 세입자>는 우리 세계의 일상적 열기가 얼마나 뜨겁고 불편할 수 있는지, 그 뜨거움 속에서 ‘나’를 지키고 또 타인과
씨네21 추천도서 - 'SF 보다 Vol.1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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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재 지음 / 캐비넷(올댓스토리) 펴냄
<실미도> <국화꽃 향기> <공공의 적2> <한반도> 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쓴 김희재 작가의 창작 실용서. 영화와 드라마 각본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경험, 그리고 추계예술대학교 영상시나리오전공 주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직접 쓴 작품들에 대한 후일담부터 최근 유행하는 이야기의 특징과 구조 분석까지를 두루 다룬다.
창작자와 소비자의 피드백 사이클 속에서 장르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전개되어, 어떻게 결론을 내고,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약속이 형성된다. 이 약속이 ‘공식’이 되고, 공식이 반복되며 ‘장르’로 자리 잡는다. 그런데 현실의 삶이 변화할 때, 반응하지 않았던 것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진다. 혹은, 반응하던 이야기를 거부하면서 장르가 소멸되기도 한다. 그런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면 여러 장
씨네21 추천도서 - <이야기를 설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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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지음 / 민경욱 옮김 / 비채 펴냄
미쓰다 신조의 책은 밤에 읽으면 안된다. 공포를 자아내는 솜씨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검은 얼굴의 여우>에 이은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하얀 마물의 탑>은 호러 미스터리 소설로, 태평양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가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탄광에서 수수께끼 사건을 경험했다면, 이번에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일의 무대는 바로 등대다.
공포물의 클리셰 중에 ‘사망 플래그’라고 불리는 (일종의) 복선이 있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라는 편지를 받고도 하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주인공의 상황이 딱 그렇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되기로 하고, 새로 근무하게 된 고가사키등대로 향한다. 그런데 등대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다. 등대까지 길을 안내해줄 사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혼자 길을 떠나게
씨네21 추천도서 - <하얀 마물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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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경, 박찬욱 지음 / 전영욱 사진 / 을유문화사 펴냄
영화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화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를 읽는 일도 그 즐거움을 배가한다. 시나리오집은 완성된 이야기가 최초로 어떤 모습으로 완결되었는지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헤어질 결심 포토북>은 <헤어질 결심>의 스틸 사진집이다. 스틸 사진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말하는데, (앵글부터 프레임 크기까지) 영화 장면을 그대로 반영한 장면일 때가 많다. <헤어질 결심 포토북>은 영화 속 순간들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한 사진들을 실은 책이다. 김현호 보스토크프레스 대표가 편집을 함께 맡아 본문을 꾸렸으며, 국내 최고의 보정 기술을 보유해 한국인 최초로 소니 글로벌 이미징 앰버서더로 선정된 김주원의 후보정 작업으로 마무리되었다. 1만6천여컷의 사진을 300여컷으로 압축해 담으면서 원작의 흐름을 새롭게 재현했
씨네21 추천도서 - <헤어질 결심 포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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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포토북_정서경, 박찬욱 지음
하얀 마물의 탑_미쓰다 신조 지음
이야기를 설계하라_김희재 지음
SF 보다 Vol.1 얼음_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지음
맡겨진 소녀_클레어 키건 지음
두고 온 여름_성해나 지음
형사 박미옥_박미옥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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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 <사랑의 고고학>, 드라마 <슈룹> <마인> 등 출연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마일리 사이러스 <Flowers>
사실 미국 팝도 K팝도 잘 모른다. 마일리 사이러스도 이름만 알고 잘 몰랐는데, <Flowers>가 귀에 꽂혀 제목을 검색해본 후 자주 듣고 있다. 복고풍의 멜로디와 허스키한 목소리, 무심한데도 강렬한 창법이 참 좋다.
<성난 사람들>
이틀 만에 다 봤는데 다시 보려고 한다. 글도 연출도 연기도 최고. 짱 재미.
<절연>
정세랑 소설가가 기획한 소설집. 아시아 9개국의 9명의 작가가 ‘절연’을 키워드로 쓴 소설들을 엮었다. 작가들의 인사말이 한줄씩 적힌 첫 페이지부터 참 좋다. 알피안 사아트 작가의 말처럼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가만히
[LIST] 옥자연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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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BS <TV 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은 MC 신동엽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과 그것은 일부 ‘페미’들의 억지에 불과하니 지지 말라는 주장으로 불타오르는 중이다. 지난 4월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성+인물> 때문이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성(性)과 성인문화 산업 속 인물을 탐구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의 첫 6회는 일본의 성문화에 관한 것이다. AV, 즉 성인 비디오에 출연하는 여성배우들을 초대해 “일본 AV 여배우는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다”, “AV가 있기에 성범죄율이 낮아진다” 같은 토크를 내보낸 2회가 특히 비판받았다. 거대한 규모의 일본 AV 산업 안에서 속거나 착취당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출연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먼 과거가 아니라 불과 몇년 전 한국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도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제작진은 “시사나 보도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 왜 이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냐고 묻는 것에 동의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성+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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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제국>
넷플릭스 ▶▶▶▶
침팬지가 인간과의 DNA 유사성이 98%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다큐멘터리 시리즈 <침팬지의 제국>은 아프리카 우간다에 위치한 응고고 숲에 터전을 마련한 응고고 침팬지 집단을 관찰함으로써 역으로 인간을 이해해보려 한다. 정치, 권력, 가족애, 성장, 연대 등 인간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던 서사들이 여기에 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최첨단 기술의 시발점에 존재했던 침팬지들. 어느 날 우리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쩌면 이들이 우리보다 더 위대한 문명을 세울지도 모른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오스카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제임스 리드가 연출한 작품.
<웬디>
웨이브, 티빙, 네이버 시리즈온 ▶▶▶▶
데이비드 로어리만큼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갖고 있는 1980년대생 감독인 벤 자이틀린 버전의 <피터팬 & 웬디>다. 디즈니의 지원을 받은 로어리가 원작으로부터 크게
[OTT 추천작] ‘침팬지의 제국’ ‘웬디’ ‘아이언 자이언트’ ‘내 친구 추파카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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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 감독 데이비드 로어리 / 각본 데이비드 로어리, 토비 할브룩스 / 출연 에버 앤더슨, 알렉산더 몰로니, 주드 로, 야라 샤히디 / 플레이지수 ▶▶▶▷
기숙학교 입학을 하루 앞둔 웬디(에버 앤더슨)는 남동생들과 놀다가 아빠에게 꾸중을 듣는다.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갖고 놀아?” 내일부터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웬디의 불만은 바로 나이 드는 것이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든 웬디. 그런 웬디의 눈앞에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피터팬(알렉산더 몰로니)과 팅커벨(야라 샤히디)이 나타나 웬디와 동생들을 상상 속 세계인 네버랜드로 안내한다. 그다음 벌어지는 일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피터팬의 앙숙인 후크 선장(주드 로)의 습격을 받아 아이들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발표된 지 100년도 넘은 제임스 매슈 배리의 원작 소설 <피터와 웬디>가 현재까지 계속해서 재창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
[OTT 리뷰] ‘피터팬 & 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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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7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강수연 1주기 추모전 ‘강수연, 영화롭게 오랫동안’ 개막식이 열렸다. 객석을 가득 채운 영화인들 앞에 선 강수연의 동생 강수경씨는 “추모회 이야기를 김동호 위원장님께 말씀 드렸을 때 1초의 망설임 없이 ‘해야죠’ 하고 추모위원회를 구성해주셨다. 오늘 추모회는 영화인들이 만들어준 자리라 우리 가족뿐 아니라 언니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 같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추모위원회에는 임권택 명예위원장, 김동호 추진위원장, 박중훈·예지원 위원장을 주축으로 총 29명의 영화인이 합심했다. 김동호 위원장은 “2주기 때는 좀더 학술적이고 영화사적인 면에서 강수연의 업적을 기리는 세미나와 책자 발간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수연이라는 꿈
개막식에서 김동호 추진위원장이 연출한 단편영화 <주리>(2012)가 상영됐다. 김동호 위원장은 “강수연 배우의 성격이 거의 그대로 표출돼 있어 <주리>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 같다”고 말
[씨네스코프] 이토록 영화로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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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OTT 서비스의 양대 산맥인 디즈니+의 1분기 실적이 공개되었다. 가입자 증가 수치보다 얼마나 수익을 올리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지만, 400만명의 구독자가 줄어든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디즈니+는 지난 4분기에도 이미 가입자 240만명을 잃었다. 600만명의 구독자를 다시 모으는 것도 어려운데 오히려 더 감소한 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디즈니+의 총가입자 수는 1억5780만명이다.
디즈니+의 하락세는 지난해 12월 말의 가격 인상 여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존 요금제에 3달러를 추가해 월 10.99달러로 변경했고, 기존 요금으로는 광고를 봐야만 콘텐츠를 볼 수 있다. 가입자가 줄었고 수익도 당장은 나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디즈니+는 북미에서 직접 제작하는 분량을 줄이고, 특정 콘텐츠를 3분기에 제거하는 결정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외부 유통을 더 늘리지 않을까. 디즈니의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오리지널 콘텐츠 줄이는 디즈니의 승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