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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변호사 오드리(애슐리 박)와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 롤로(셰리 콜라)는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다. 이들은 아시안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씩씩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남부러울 것 없는 오드리도 마음속에 담아둔 한 가지가 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그녀가 친부모에 대해 아는 점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오드리는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고, 여기에 롤로와 그녀의 사촌 데드아이(사브리나 우), 오드리의 대학 동창인 배우 캣(스테파니 수)이 합류한다. 네 여자는 중국에 온 것을 기회로 오드리의 친엄마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오드리는 이곳에서 단순히 아시안 걸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다. 캣, 데드아이, 롤로 또한 몰랐던, 혹은 살면서 눌러뒀던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는 와중에 밝혀지는 새로운 진실. 이들은 좌충우돌 모험을 마치고 오드리의 친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아시안, 여성, 입양 등 가볍지 않은 소재를 유쾌하게 저글링
[리뷰] ‘조이 라이드’, 현실을 비트는 발칙한 유머와 여성들의 왁자지껄한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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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우지현)과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정인(정이서)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된 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마을 사람들의 억압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관심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다른 곳으로도 도망치지 못한 채 자기 몸 하나 겨우 보호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정인 앞에 도시에서 이사 온 혜정(김혜나)이 나타난다. 외모부터 성격, 취향과 경험까지 많은 부분이 남다른 혜정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재수 없는 여자’로 통하지만, 정인에게는 부러움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혼자 사는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모종의 연대감을 공유하던 두 사람은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해 점차 감정을 교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편이 정인을 찾아온다.
하명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그녀의 취미생활>은 폐쇄적인
[리뷰] ‘그녀의 취미생활’, 총 들 일 없는 세상을 바라며 그려보는 달콤씁쓸한 구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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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현 작은 마을에 전입해온 타니구치 다이스케(구보타 마사타카). 유독 과묵해서일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이스케의 과거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부유하고 유서 깊은 여관의 둘째 아들임에도 가족과 절연하여 고향을 떠나왔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의 유일한 과거다. 생계를 위해 벌목을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다이스케는 리에(안도 사쿠라)가 운영하는 문구점을 자주 방문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상실의 슬픔이 있는 리에와 감춰진 아픔이 있는 듯한 다이스케는 점차 가까워져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에 이른다. 평화롭고 화목한 시간이 계속되리라 믿었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다이스케가 세상을 떠나고 묘지 안장을 의논하기 위해 그의 형이 리에의 집으로 찾아온다. 다이스케의 형은 불단에 놓인 사진을 보고도 동생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리에에게 말한다. “이건 다이스케가 아닌데요.” 리에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변호사 키도 아키라(쓰마부키 사토시)는 리에의 의뢰
[리뷰] ‘한 남자’, 절제하며 드러내는 웰메이드 미스터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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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살 현순직과 41살 채지애가 제주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은 영 어색하다. 그들은 해녀이기 때문이다. 현순직은 뛰어난 기량으로 일찍이 최고수 ‘상군 해녀’가 되어 87년간 물질을 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채지애는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해녀 어머니와 같은 길을 택한 지 10년이 채 안됐다. 그런 두 해녀가 지금 한배를 타고 ‘들물여’라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서 현순직만 봤다는 바닷속 물꽃을 찾기 위해서다.
우도 해녀들을 7년간 취재한 다큐멘터리 <물숨>(2016)을 만들었던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다시금 제주 해녀 곁으로 돌아왔다. 감독은 6년간 작업한 신작 <물꽃의 전설>로 제주 해녀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영화는 은퇴한 현순직의 이야기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채지애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신구 세대의 이야기가 오가는 구조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주 해녀 문화가 앞으로도 전승돼
[리뷰] ‘물꽃의 전설’, <물숨> 7년에 이어 다시 6년, 제주 해녀 문화는 계속될 거라는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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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시장 규모 25조원, 플랫폼 누적가입자수 6천만명 시대(2021년 기준). 누군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돈을 입금하고 주소를 알려주고 심지어 집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타겟>은 망가진 물건을 보내고 잠수를 타는, 가장 흔한 형태의 중고거래 사기에서 시작해 이를 연쇄살인사건 스릴러로 확장한다. 신형 아이맥 24인치 중고거래를 위해 별 생각 없이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인 남자가 살해당하고, 범인은 그의 집을 아지트 삼아 중고거래를 이용한 대규모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인테리어 회사 팀장 수현(신혜선)은 현장 인부들과 직접 부딪치는 일도, 회사 상사의 추파에도 씩씩하고 칼같이 대처하지만, 그런 그도 중고거래 범죄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제 막 이사한 집에 저렴한 가격으로 살림살이를 마련하려다 고장난 세탁기를 잘못 구입하게 된 그는 자신에게 밀려오는 스트레스의 싹을 잘라내고자 직접 범인을 잡기로 마음먹는다. 중고거
[리뷰] ‘타겟’, 디지털 시대 새로운 종류의 공포를 소재 삼은 영화들이 오히려 신선함을 잃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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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3번 버스를 좋아했다. 그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좀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간도 많고 체력도 충분했다. 일단 타기만 하면 종로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감수할 만했다. 서점과 음반 가게, 영화관 등 중학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게 있는 종로. 버스가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을 끼고 돌 때면 앞 유리창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쭉 뻗은 길을 보면 마음이 트였다. 일요일의 도심을, 눅눅한 집과 서늘한 학교를 잊고 쏘다녔다. 영화관 입장권은커녕 메모지 묶음 하나 살 돈도 없을 때가 실은 더 많았지만, 새것을 실컷 보는 나들이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면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졌다. 남대문시장쯤으로 걸어와 57번이나 58번 버스를 탔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탈 수 있는, 타야 하는 버스도 늘어갔다. 나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보다 ‘확실하지 않은’ 버스를 더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버스를 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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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시련을 안기면 드라마가 되고 집단에 재앙을 내리면 재난영화가 된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인물에게 위기를 주어 그들의 선택을 지켜보게 하는 동안에 어떤 카메라는 그 얼굴을 주시한다. 두편의 한국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보호자>를 연이어 보고 하나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 이유는 많은 점이 상이한 두 영화에서 도드라진 공통점으로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신체 이미지에서 시작된 얼굴의 클로즈업은 현대 상업영화에서는 또 다른 영화적 장소로서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기보다는 얼굴의 향연에 가깝게 전시되는 듯하다. 상업영화에 스타의 얼굴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얼굴의 클로즈업이 그저 영화의 부품처럼 장면의 최소 단위 기능만 수행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다. 반대 지점에서 접근한다면 근접한 얼굴숏은 어떤 기능만큼은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호자>에서는 무엇과의 사이를 벌
[비평] 카메라 너머의 얼굴들, ‘보호자’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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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정치가 없다. 그래서 정치적이다. 영화의 마지막, 명화(박보영)가 묻는다. “여기 살아도 돼요?” 이 공간에서 거주해도 되냐,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어도 괜찮냐는 이중의 의미를 실은 질문에 누군가 답한다. “살아 있으면 그냥 사는 거지. 뭘 물어.” 명화는 사는 데 필요한 건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흰 쌀밥을 꼭 움켜쥔다. 마치 종교화처럼 쉽고 간명한 상징과 우화의 이미지. 중세 암흑시대 교회 프레스코화에 가까운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메시지. 정정해야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정치가 없는 게 아니라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다. 이어 그 실패의 자리에 어떤 호소보다 강력한 동일시가 이뤄진다. 다름 아닌 영탁(이병헌)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서 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굴리는 시뮬레이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에서 또 다른 유토피아로 이동하는 이야기다.
[비평] ‘콘크리트 유토피아’, 우리는 영탁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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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에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먼저 맥주를 시켰다. 친구, 친구 애인과 인터뷰차 만나는 자리였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서 새롭게 들어온 공간과 직업은 평소에 도통 관심이 없던 쪽이라 해당 분야 종사자와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이번 자리에서 내가 듣고 싶은 부분은 실무적인 것도 물론이지만 특히 해당 업계에서의 터무니없고 황당하고 유치한 사건들에 관한 것이라 카페가 아닌 호프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장소를 잡았다. 물론 내가 시원한 맥주를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퇴근 시간대가 되자 가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더 찾아보고 조용한 곳으로 갈걸’ 후회하며 다이어리를 펼쳤다. 맥주를 마시며 미리 작성해놨던 질문 리스트를 다시 살펴보는데 계속 딴생각이 들었다. 계속 남원랜드 아저씨 생각이 났다.
2016년 여름, 2주 정도 할머니 간호를 위해 지리산 구례에서 지냈다. 무료하게 병원과 집을 오가다 하루는 점심
[김세인의 데구루루] 어쩐지 슬프고 화가 나면 생각나는 남원랜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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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인 <해변의 여인> 현장 사진을 찾아보았다. 나에게 있어 고현정(오른쪽)은 환상의 여인이었다. 어릴 적 귀가 시계라 불리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인상 깊게 봐서 정말 만나보고 싶은 배우였다. <씨네21>에서 일하면서도 만나는 게 참 쉽지 않았던 그녀. 짧은 만남이지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ARCHIVE] 환상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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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드라마 <굿와이프>, 영화 <자백>에 이어 또 한번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났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작에 갇히는 느낌이 들어서 웬만하면 원작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나가 연기한 ‘김모미B’는 동명의 원작 웹툰 연재 당시에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파트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했던 김모미는 살인을 저지른 후 성형수술을 받고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간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자기답게,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나나의 신중한 태도는 단기간에 완성된 행운이 아니다. 원작의 모사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만의 ‘김모미B’를 연기하기까지, 나나가 배우로서 부단히 훈련해온 과정을 함께 들었다.
- 3인1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현정, 이한별 배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 대본 리딩 때 한번 뵀고, 촬영장에서
[인터뷰] 내 안의 나를 꺼내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스크걸’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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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뷔작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었듯, 첫 OTT 시리즈물 작업에 있어서도 고현정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준다. <마스크걸>의 세 번째 김모미, 일명 모미C인 그는 폭주기관차 같은 작품의 종착지에 묘령의 얼굴로 유유히 서 있다. 한국 여자배우 중 여왕(<선덕여왕>)과 대통령(<대물>)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인물인 그에겐 “혼자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도 있었다면, 좋은 배우들 사이의 일부로 놓여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어 새롭고 반가웠던” 작품이 <마스크걸>이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에르메스 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마저 아이코닉해 충격을 준 이 배우는, “평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표정과 근육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탈색시키면서 지금의 김모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렇게 몸의 움직임까지 최소화해 만들어낸 고현정의 김모미는 무망한 삶에 간신히 적응한 비련의 여자이기보
[인터뷰] 모른다는 주문을 외우며, ‘마스크걸’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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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에서는 세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한다. 배우의 변화는, 인물의 성형 여부와 세월을 말해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주효하게는 세개의 다른 자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흡인력을 갖는다. 동일인물을 연기함에도 결코 동일해지지 않는 배우들로부터 김모미는 비로소 고유해진다. 여기, 한 여자를 연기하는 두명의 여자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상하는 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을 모두 책임지는 배우들이다. 디바가 되고 싶었던 소녀, 인터넷 방송의 스타,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 교도소의 미친 여자, 그 누구도 아닌 초연한 존재에 도달하기까지 김모미는 고현정과 나나의 현신을 빌려 비로소 웹툰 밖으로 걸어나온다. 배우 고현정과 나나는 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사성에 집중하기보다 총 7회 분량의 드라마에서 단 2회씩 등장함에도 강력한 존재감과 개성을 남기는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파트너십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커버] 같지만 다른 존재들, ‘마스크걸’ 고현정 x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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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나.
= 수시 2차로 들어왔다.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에서 면접 비율이 높은 대학을 찾다가 학생부와 면접고사가 50%씩 반영되는 정화예술대학교에 지원했다. 면접에서 과제에 대한 분석이 아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나에 관해 물어본 학교는 정화예술대학교가 유일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호감이 갔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대답을 잘했다. 포트폴리오가 평범했는데도 합격한 걸 보면 면접을 잘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 면접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소위 말하는 영상 관련 입시생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만 보고, 그 작품에 대한 남들의 모범적 해석을 줄줄이 외우는 건 면접에서도 입학해서도 별 도움이 안된다. 내 식대로 사고했을 때 창의적인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자기 방식을 찾는 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 현재 영화 촬영 현장의 동시녹음팀에 재직 중이다. 일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강의
[인터뷰] ‘스펙트럼이 넓다는 강점’, 정한구 정화예술대학교 영상미디어학부(현 융합예술학부 영상제작전공) 19학번 졸업생